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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싱글 남자들은 뭘 하며 사나?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7. 06:48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실미도>인가 봐요.”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무엇이냐는 내 친구의 질문에 소개팅이라는 이유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실미도> 이후 쭉 여자친구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극장에 갈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하나마나한 질문을 던졌다. “혼자 영화 보러 가시면 되잖아요.” 그 남자는 국가 전복을 꾀하는 불손한 음모를 들은 보수주의자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혼자 가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을 거고, 남자 둘이 가느니 게이 선언을 하고 말겠다고 했다.
 
커피숍에 둘러앉은 우리가 정작 궁금한 건 그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됐는데?” 친구에게 <실미도>는 그건 그렇다 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도 모두 다 본 <실미도>였고, 해외에 나가 본 적은 없으며, 심지어 나갈 기회가 있다 해도 김치찌개 없는 곳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으며, 김치찌개를 좋아하니 요즘 유행하는 브런치 레스토랑이나 뜨고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가 생애 경험한 공연이나 뮤지컬 관람은 손에 꼽을 정도며, 최근에 그가 읽은 책은 <사람이 모이는 리더는 말하는 법이 다르다>였다. 결국 공통적으로 주고받을 말이 없던 둘은 화학회사에 근무하는 남자의 기호대로 샴푸의 화학식에 관한 심도 깊은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옛날 같으면 결혼해서 애 셋은 낳았어야 할 나이라며 친구는 울부짖었다. “도대체 대화가 통하는 남자가 왜 이리 드물까? 도대체 남자들은 어디서 다 뭘 하는 거야?”

 

옛날 같으면 불 꺼지면 그냥 자면 됐으니 이런 문제로 고민도 않했겠다고 응수하던 우리는 정말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날 우리는 반포동의 잘 나간다는 브런치 레스토랑에 있었는데, 순간 주변을 둘러보고 공포감이 밀려왔다. 손님이 모두 여자였다. 남자라곤 서빙하는 웨이터와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뿐이었다. 남자들은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쓰는 걸까?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소비하는 걸까? 옷도 별로 안 사, 문화 관람에도 관심 없어, 비싼 레스토랑이나 요즘 뜨고 있는 맛집이나 카페도 안 가,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고 홍콩 쇼핑 여행을 좋아하며 주말 아침에 한껏 차려입고 나가서 여자친구들과 수다 떨며 먹는 브런치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사실 오프사이드를 여전히 이해 못하며 인도네시아 대통령 이름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인지 수실로 방밤 유노요도인지 헷갈려한다는 사실을 비난한다면야 할 말은 없다.
 
이 글을 읽고 전 아닌데요! 라고 말하는 남자가 물론 많을 줄도 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유독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문화 소비의 주도층 역할을 하는 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왜 그런 걸까? 왜 그들은 문화 소비에 있어 소외되어 있는 걸까? 모든 남자들이 만날 술 먹고 스타크래프트나 하고 당구나 치는 건 아닐텐데 말이다. 아니, 여기서 질문을 바꿔 보자. 실제로 여자가 문화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건 사실일까? 직접 문화 산업 관계자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흥행과 관련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조사한 바와 같이 영화 시장의 주요 관객층이 20~30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한다. 실제로 사실인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러나 정책연구팀으로부터 이런 답변을 들었다. “사실 성별과 관련된 통계 자료는 없습니다. 2005년 당시에, 그 해에 영화 관람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남자의 85.5%와 여자의 84.4%가 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극장을 자주 찾는 헤비 유저(heavy user)라고 알려져 있긴 하죠. 아마 해당 영화사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들의 경험이 어떤 통계보다 더 맞다고 봐야 할 겁니다”. 

 

영화 배급사 쇼박스의 배급팀 권지원 대리는 역시 영화의 주요 관객층은 여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영화 예매 사이트의 성별 예매 비율을 봐도 그렇고 극장 측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제가 극장에 나가봐도 그렇고, 경험적으로 판단해보건대 여자가 주요 관객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한국영화는 형사나 조폭 등 남성적인 소재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걸까? “그러니까 다 잘 안됐죠. 올해 나온 영화 중 대박이라고 말할 만한 게 <미녀는 괴로워>말고 없잖아요.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는 못해도 기본은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남성 관객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영화는 어떻게든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남자 배우를 강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여성들이 좋아할 수 있게 포장하고 마케팅을 하죠.”

 

남성적인 소재의 경우 인간애나 눈물 코드를 강조해 여성 관객을 끌어들이려고 하고, 간혹 <가문의 영광> 시리즈와 같이 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류의 코미디가 흥행한 건 추석이나 설, 혹은 방학 특수를 맞아 나이대와 연령대의 확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권 대리의 분석이다. 여자와 달리 남자들은 극장을 주로 데이트를 위해 찾는데, 그럴 경우 영화 선택권이 대부분 여자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 대리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끼리 극장을 간다는 것은, 마치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남자 둘이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여자들이 예술영화도 더 많이 보고 문화적으로 수준이 더 높은 거 같습니다.하하.”
 
약 8년간 전국의 주요 극장에서 극장의 관객수 집계를 확인하는 입회인으로 활동해온 청년진보영화사 이동수 대표는 극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경험담을 들려줬다. “제가 몇 년간 이 일을 해왔지만 성인 남자끼리 극장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극장을 이용하는 여자와 남자 비율은 6:4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배급사에서 하는 극장 출구 조사를 해보면 주로 사용하는 카드가 여성을 타깃으로 한 L사의 카드입니다. 그만큼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가 여성 위주로 가고 있다는 얘기죠. 문화의 향유 계층은 확실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20~30대 여성입니다. 남자들은 정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비디오로나 보겠죠.”

 

지난 한 해 출판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단어는 칙 릿이었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이 새로운 장르로 인해 지난 한 해 출판계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궁리를 했다. YES24의 홍보팀 임수정 대리는 자체 조사의 결과 2006년 구매하는 독자 중 여성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30%를 앞질렀으며, 특히 전체 연령 중 남녀 성비 차이가 가장 심한 것은 20대로, 20대 여성 구매자수는 남성에 비해 50%나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교보문고 홍보팀 남성호 팀장은 도서구매 고객 비율이 여자와 남자가 5.5:4.5 혹은 6:4 정도로 보인다며 최근 들어 여자의 사회활동이 강화되면서 여성이 도서 구매에 있어 조금 더 앞서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북마스터 신길례 씨 역시 출판사에서도 여성을 겨냥한 책을 많이 내고 있고 그에 따라 여성 구매자수가 늘고 있다며 서점 내에서도 주요 구매자인 여성들을 위한 코너를 따로 마련해놓고 있다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지난 한 해 칙 릿 열풍이 불 때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남자들은 뭐하나? 왜 문화 시장은 여자 위주로 돌아가는 걸까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는 지난 5월 7일자 김훈 소설, 남성을 휘어잡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훈의 <남한산성> 출간과 함께 남성 독자들이 다시 소설을 손에 잡았다고 보도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출판사 편집자는 경제, 경영, 실용서 분야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여성 독자 비중이 크다. 특히 픽션 분야는 여성 독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책이 귀엽고 예쁜 표지로 포장되는 경향도 그런 여성 독자들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며 남성적인 느낌의 표지는 여자와 남자가 모두 사지만, 여성적인 표지는 여자만 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성 독자의 성향을 분석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나 파울로 코엘료, 폴 오스터 등 베스트셀러의 소설은 여자 독자뿐만 아니라 남자 관객까지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창작과비평사의 영업부 문학 담당인 황진 대리는 보편적으로는 어떤 소설이 나오면 여성독자들한테 먼저 반응이 오는 것 같다. 그러나 코엘료의 소설이나 <다빈치 코드>처럼 완전히 떠버리고 나면 성별이나 연령대가 매우 폭넓어진다. 먼저 젊은 대학생이나 직장인과 같은 여성독자들한테 어필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남성독자들한테까지 확산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 산업, 음식 산업도 여성이 주 소비층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불고 있는 주말을 이용한 짧은 해외 여행, 브런치 열풍도 여자들이 주도한 거다. 주로 미혼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카드 회사들의 할인 서비스가 여행과 레스토랑, 커피숍, 영화관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게 그 반증이다. 결혼 2년 차에 접어드는 한 선배 언니는 “옆에서 남편을 지켜본 결과 결혼 전에는 데이트를 위해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같이 봐줬는데 지금은 1년에 영화 한 편 볼까 말까야.” 라고 다소 아쉬운 듯 말했다.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 남성의 보편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며 생활의 위협에 좀 더 일찍 노출되는 게 한국 남자들의 현실 같다고 덧붙였다. 여자들은 감정적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문화 생활이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자들은 그 시간과 돈이 낭비라고 생각한다거나 혹은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 역시 술을 마신다거나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에 의존해 있다. 월급 중 가장 많이 지출되는 항목이 최근 유행하는 몇 십만원짜리 가방이나 옷이나 동남아 스파 여행이 아니라 고기 먹고 데이트하고 술 마시는 데 쓰는 외식비라는 게 남자 친구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그들은 합창하듯 말했다. “우선 순위에서 그런 게 술 먹고 게임하는 것에 비해 밀리는 거지.” 좋아하는 영화는 <친구>, 타고 다니는 차는 현대, 인생의 책은 <삼국지>인 대한민국 표준 남성이라 할 만한 친구 녀석 하나는 딱 잘라 말했다. “남자들이 문화 생활을 하지 않는 건, 같이 갈 여자가 없어서야.” 확실히 여자친구가 있고 없고에 따라 그의 문화생활은 현격한 수준으로 그 빈도수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난다. “너희들도 취향이 있을 거 아냐, 혹시 취향을 드러내길 두려워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취향을 드러내는 방법 자체를 배우지 못한 건 아닐까?” 라는 나의 물음에 내 친구는 씁쓸하게 말했다. “아마도 군대 때문이겠지. 일본 남자만 보더라도 소비를 하는 데 있어 여자보다 더 적극적일 정도잖아. 하지만 한국 남자, 특히 군대를 경험한 한국 남자들은 취향을 드러내질 못해. 어차피 윗사람에게 맞춰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설사 내가 얘기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다고 해야 하나? 직장에서도 보면 여자가 오히려 남자보다 상사에게 더 직설적인 의사 표현을 많이 하잖아.”

 

한국 남자는 아직도 취향을 개인화하는 법에 서투르고 단체로 행동하는 문화에 익숙해 있다. 그들은 취향을 표현하는 것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느끼기도 하며 대다수의 집단이 반대할 수도 있는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갑자기 클래식 공연을 가고 싶어 표를 끊었다가 결국 게이로 오인 받거나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나 보고 대신 가라고 표를 건넨 선배도 그랬다. 나의 여자 친구 하나는 남자들도 뭔가 기분 전환을 하거나 돈 안되는 일을 하기도 할 텐데, 여자처럼 소비하고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거기에 아주 집중해서 자기화시킨다거나 한 분야를 들이파는 것 같다고 재밌는 해석을 내렸다. 그녀는 이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잘 봐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기인들도 대부분 남자야.” 대학교 때 처음 소개팅 때문에 TGI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가 여자와 같은 걸 주문한다고 치킨 샐러드를 각각 시켜 먹는 웃지 못할 광경을 연출한 친구 하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항상 잘 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 1등 못할 수도 있고, 때론 돈을 못 벌 수도 있는데 말야. 여자들은 덜 그러지?” 라고 물었다. 친구의 질문은 퍽 슬펐다. 맞다.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그런다.

 

어쩌면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그 백년 묵은 무거운 타이틀이 여전히 우리 세대의 한국 남자들에게 스트레스 쌓이면 술이나 마시게 하고 1년에 책다운 책 한 권 볼 여유조차 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실용적인 것만 찾는다. 그 결과 그들은 소비에 있어서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대학교 때 카뮈의 소설을 읽고 있던 나에게 한 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무슨 소설책 읽냐? 25살까지도 살아 있다면 천재 요절 작가 같은 것은 못되니까 그냥 포기하고 열심히 살면 된다더라.” 물론 농담이 반쯤 섞인 말이었지만 그 선배는 소설을 읽는 것조차 직업을 위한 수단 즉 목적의식 하에 이루어진 행위로 생각한 것이다.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혹은 혁신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을 때 문화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서점엔 온통 분홍빛 책뿐이라 읽을 책이 없다고 불평하고, 여자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브런치를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남자는 안타까워 보인다. 한국 남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문화를 소비해도 큰 일 안 난다. 그럴 때 문화 산업도 남자들의 구미에 맞춰 그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맞춤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다. 각각의 개인에게 인생은 살아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하얀색 티셔츠가 하나 있다고 해서 또 하얀색 티셔츠를 사지 말란 법은 없다. 음식 역시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문화다. 당장 지금 읽는 책이 좋은 팀장 되는 법, 이력서 잘 쓰는 법처럼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어도 당신의 인생이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 커피숍에 꼭 여자친구가 있어야 가는 건 아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여자들은 당신의 눈이 퍼마신 술로 인해 충혈되고 밤새 한 게임 때문에 어깨가 뒤틀려 있는 것보다는 함께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걸 더 반기니까 말이다.

출처 : 미소짓는 태양
글쓴이 : 미소짓는 태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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