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테크/종교이야기

[스크랩] “卍” 자의 종합연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12. 18:12
“卍” 자의 역사 속 발자취 (상)
글 : 청원(淸源) 【정견망 2006년 1월 07일】
1, “卍” 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卍” 자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卍” 자(영어로는 swastika)는 산스크리트어로는 Srivatsa이다. 과거에는 “길상해운상(吉祥海云相)” 으로 음역했는데 그 뜻은 “길상(吉祥)의 집합”이다. 이 “卍”자는 북위(北魏) 때 보리류지(菩提流支 Bodhiruci)가 번역 출간한 《십지경론(十地經論)》 12권 중에서 “만(萬)” 자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구마라집(鳩摩羅什)과 현장(玄奘)은 모두 이를 “덕(德)” 자로 번역하여, 만덕장엄(萬德莊嚴)의 뜻으로, 불교 공덕의 무량함을 강조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卍” 자가 “萬(만)”으로 읽히는 것은 당나라 측천무후 장수(長壽) 2년(서기 693)년에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송(宋) 대에 나온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 6권 중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주상(측천무후를 말함)께서 이 문자를 천추(天樞: 북두칠성의 첫째 별)로 삼고, 그 음을 만(萬)이라 부르시니, 이는 길상과 온갖 것이 모인 것을 상징한다.”
“卍”자 부호를 쓰는 방법은 왼쪽으로 향하는 “卍”과 오른쪽으로 향하는 “卐” 두 가지가 있다. 당나라 혜림(慧琳)이 편찬한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서는 “卍”을 정확한 것으로 적고 있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卐” 이 올바른 것이라고 한다. 이 점은 한지(漢地, 한족들이 주로 사는 지역)와 티베트 지역)에서 사용되는 “卍” 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티베트의 오랜 종교인 분교(苯教)에서는 도리어, “卍” 을 신봉(信奉)하는 부호로 삼았다. 티베트어로는 “卍”을 “융중(雍仲)”으로 읽는데, 그 뜻은 “견고(堅固)”하다는 것으로 또 광명(光明)을 상징하고, 끝없는 윤회를 의미한다.

2. “卍”은 전 세계적인 부호
일반적으로 “卍”자 부호는 불교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각지의 고대 유적지에서는 “卍” 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크레타(Crete), 아랍(Arab),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로마(Rome)와 초기 기독교, 비잔틴(Byzantium) 문화, 고대 인도 및 중국, 이집트 등지에서 모두 “卍” 자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보편적 문화 현상의 관점에서, 인류학자들은 “卍” 자를 “십자문(十字紋)” 혹은 “태양문(太陽紋)”이라 부르는데 그들은 이것이 초기 인류가 태양에 대해 지니고 있던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원전 5000년 무렵 서아시아 메소포타미아 하수나(Hassuna) 시기의 도기(陶器)에는 "卍" 자 부호 두 개가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는 "卍" 형이고, 다른 하나는 변형된 "卍" 형이다.
메소포타미아 하수나 시기 도기의 "卍"자 모양 도안, 약 기원전 5000년

 
트로이(Troy)에서 발견된 "卍" 도안

 
고대 그리스 트로이전쟁을 묘사한 채도(彩陶), 말 위에 그려진 "卍" 부호 3개

서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유적인, 이란 바쿤(Bakun)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3500년 무렵의 채도(彩陶)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는 생육(生育)을 상징하는 여신 모양의 도기가 있는데 그것의 어깨에도 “卐”자 표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 문물 중에서도 "卍" 모양이 새겨진 신상(神像) 혹은 식기가 다량 발견되었다.

 
두개의 "卍"자가 중첩되어 새겨진 종(鐘) 모양의 여신, 약 기원전 900년
  
 

그리스에서 출토된 기원전 약 700년 무렵의 곡물 항아리, 상면의 아르테미스(Artemis: Luna) 도안 주위에 여러 개의 "卍"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인도에서 출토된 기원전 2000년 무렵의 인장(印章)에는 많은 "卍" 모양 및 그 변형된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J.Mashall 경의 저작 <모헨조다로와 인더스 문명(Mohenjo Daro and the Indus Civilization>에는 인도 하곡(河谷)에서 출토된 기원전 2000년 무렵의 "卍" 모양 도장이 많이 있다.

 
인도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출토된 인장, 은화 상의 "卍"자 약 4000-5000년 전
약 5000년 전 수메르(Sumer) 문화에서도 "卍" 모양의 길조를 상징하는 부호가 대량으로 출토 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卍" 자가 이미 널리 유행했었고, 초기 기독교 예술과 비잔틴 예술 중에서 장식으로 사용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그리스, 고대 크레타와 트로이 사람들은 많은 장식품에 광범위하게 "卍" 모양을 사용하였다.
카프카스(Kavkaz) 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기에서도 "卍" 도안이 발견되었다. 고대 북미의 나바호족(Navajo: 인디언) -- 인디언에게 "卍" 는 비와 바람 신의 상징, 남미와 중미의 마야인과 폴리네시아인 또한 모두 "卍" 자를 사용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 "卍" 모양의 부호는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요크셔(Yorkshire)에서 발견된 거석(巨石), 이 돌 위에 새겨진 "卍" 자는 기원전 2000년 무렵의 것으로 판단된다. 학자들은 스웨덴과 이탈리아에서도 유사한 석각(石刻)을 발견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卍" 부호(도자기 그림)
 

고대 이집트의 "卍" 부호(도자기 그림)

3. 중국 역사속의 "卍"자 부호
만약 "卍"자 부호를 불교의 전래에 따라 중국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고고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9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이미 "卍" 모양의 도안이 나타났다. 또한 "卍"자 부호는 상고시대의 유적지에서도 빈번히 발견할 수 있는데 간쑤(甘肅), 칭하이(靑海, Majiayao 문화), 광동(廣東, Shixia 문화), 내몽고(內蒙古, Xiaoheyan 문화), 후난(湖南, Pengtoushan 문화, Gaomiao 문화), 저장(浙江, Hemudu 문화), 산둥(山東, Dawenkou 문화) 등 중국 각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상고시대의 중국인들이 이 신성한 부호에 결코 낯설지 않았고, 중국인들은 석가모니부처의 시대나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한 연대보다도 앞서 "卍"자 부호를 사용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卍"자 부호는 약 9000년 전의 펑터우산(彭頭山) 문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약 7400년 전의 후난(湖南) 가오먀오(高廟) 문화, 허무두(河姆渡) 문화(약 6900년 전)에서는 새 부리로 표현되어 네 개의 "卍" 모양이 중심에 위치한 도기가 발견되었다.
간쑤(甘肅), 칭하이(靑海) 지역의 "卍" 부호는 주로 마자야오(馬家窯) 문화의 목장유형의 도기에서 다량 나타나는데 이것들은 약 4000년 전의 것이다. 4800년 전 광둥 스시아(石峽) 문화에서도 "卍" 부호가 새겨진 도기가 발견되었다. 내몽고 샤오허옌(小河沿: 강변) 문화에서 출토된 아가리가 넓고, 길이가 긴 도기에서도 "卍"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약 4780년 전의 것이다.
이외 다른 지방에서도 적지 않게 "卍" 모양의 부호가 발견되었다. 랴오닝(遙寧) 아오한치(敖漢旗) 스펑산(石棚山) 묘지에서 출토된 샤오허옌 문화의 도기에서는 일곱 개의 "卍" 부호가 발견되었다. 내몽고 라터허우치부얼(拉特后旗卜爾) 한투산(罕圖山)의 암벽화, 신장(新疆) 사야(沙雅)에서 출토된 한위(漢魏)시대의 인공 화석주(花石珠: 꽃 모양을 새겨넣은 구슬)에서도 모두 "卍" 부호가 발견되었다.
  

다원커우(大汶口) 문화 유적 M2007에서 출토된 채도솥(彩陶釜)과 "卍"자 모양을 확대한 사진(기원전 4300-2500년)
 
목장 유형 도기 단지(陶器壺), 1974년 민허(民和)현 관후타이(官戶臺) 출토, 약 6300년 전

샤오허옌(小河沿: 강변) 문화에서 나온 도기의 "卍"자 부호, 약 4500년 전.


 
목장 유형 도기, 1975년 칭하이 웨두(樂都)현 류완(柳灣) 묘지에서 출토, 약 4300년 전
1980년 칭하이 민허현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卍" 모양이 새겨진 긴 목 채도(彩陶). 이 도기의 표면에는 (○+“卍”)모양의 도안이 4개 있으며, 선이 매끄럽고 묘사가 분명한데 상당히 아름답다.

 
신석기 시대 마자야오 문화의 "卍" 모양 긴 목 채도(彩陶)

 
중국 고대 유물 중에 "卍"자 부호를 사용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고파촉국(古巴蜀國: 전국시대 한(漢)나라)의 청동 대구(帶鉤: 혁대의 두 끝을 끼워 맞추는 자물단추)에도 "卍"과 유사한 부호("卍" 자 둘레를 사각형으로 두름)가 있다.
당(唐)대에는, 당 덕종(德宗)부터 만당(晩唐)시기까지 "卍" 가 새겨진 거울이 유행했다. 예를 들어 허난(河南) 시아(峽)현 류자추(劉家渠) 당 문종(文宗) 개성(開成: 문종의 연호) 3년 묘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 위쪽 중앙에는 "卍"자 부호가 있고, 그 주위에는 “영수지경(永壽之鏡)”이라는 네 글자가 있다. 광동 후이양(惠陽)에서 출토된 송(宋)대 사기 대접 안쪽에는 "卍" 모양과 유사한 것("卍" 자 둘레에 두개의 동그라미가 새겨짐)이 있다. 원(元) 대 푸젠(福建) 더화(德化)의 취더우궁요(屈鬪宮窯) 유적에서는 "卍" 모양으로 장식된 콤팩트 분갑이 다량 출토되었다. 명(明) 초기에는 “만자당건(卍字頂巾)”이라는 모자가 있었고, 만력(萬曆) 연간에는 연꽃잎 모양의 청화(靑花) 그릇, 청화 접시도 "卍"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유명한 수출용 “클라크(Clarke) 자기” 접시에는 "卍"자 모양이 더욱 많이 보이는데 보통 가장자리를 장식하지만 때로는 중심 부분을 장식하기도 한다. 청(淸) 대 채색 견직물, 투조(透雕)문과 창문에서는 다수의 "卍" 부호가 연결된 “완부돤(萬不斷)” 이 흔히 보이고, "卍"자 모양은 기타 공예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고대 유물에 사용된 "卍" 부호는 모두 길조를 바라는 함축적 뜻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청 초기 덕화요(德化窯)의 청화 클라크 접시("卍" 모양을 위주로 장식)

민국 28년 2월에 만든 신관(信管: 폭탄 등에 장치하여 폭약을 터뜨리는 도화관) (1940년) 표면에 "卍"자 부호가 있다.
발표시간:2006년 1월 7일

“卍” 자의 역사 속 발자취 (하)
글: 청원(淸源)【정견망 2006년 1월 8일】

4. 각기 다른 문화 속의 "卍"자 부호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 "卍" 모양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외에, 그리스, 아프리카 및 영국, 프랑스 등 북유럽 문화에서도, "卍"자 부호는 모종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卍" 모양은 일종의 장식품이다. 그리스에서 "卍" 모양은 “사각 사자(四角獅子)”의 대명사이고, 인도에서는 “만(萬)”자 장식품의 일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로마 문화, 켈틱(Celtic) 문화 및 북유럽 해적의 유물 중에서도 "卍"자 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卍"자 부호를 보이 스카우트와 걸 스카우트 등의 상징으로 사용했으며, 또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제45군단의 완장으로도 사용했다. 미국 코네티컷 주(Connecticut)의 하트퍼드(Hartford)에 있는 한 유대 교회당(Synagogue)에서는 "卍"자 모양을 바닥 장식으로 사용했는데, 현재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콜럼버스(Columbus)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에, 그곳 토착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卍" 모양을 사용해왔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독일에서 “卐”자 모양을 처음 사용한 것은 프로이센(Prussia) 시대이다. 또 중앙아시아에 있는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유대교회당에서 "卍"자 모양을 사용한 장식이 발견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각종 다양한 문화에서 "卍"자 모양은 일반적으로 행운, 길상, 건강을 상징한다.
 
로마 시대의 "卍"자 부호 모자이크 장식

유럽의 한 교회 외벽에 새겨진 "卍" 모양 도안
 
루브르(Louvre) 박물관에 소장된 2700년 전 그리스 매듭형 장식물 위에 새겨진 "卍"자 모양 도안

1880년 캐나다에서 발견된 "卍"자 장식 이불. 학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꾸민 이유는 "卍"자 모양이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1907년 미국의 한 우편엽서에는 "卍" 모양을 중심 도안으로 써 행운을 나타냈다
 
"卍" 모양으로 장식된 인디언들의 행운 은수저

미국 텍사스 인디언들이 만든 "卍"자 모양 장식 바구니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만약 어느 일정한 각도에서 원자 모형의 전자구름(Electron cloud) 형태를 세심하게 관찰하면 그 속에서도 "卍" 부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탄소 원자의 전자구름을 보면, 각각 α(Alpha), Ω(Omega)와 卍자 모양을 찾을 수 있다

5. "卍"자 부호의 진정한 의미
인류 문화의 수많은 수수께끼 중에서, "卍"자 부호도 물론 그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이것은 더욱 특이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쓰이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세계 각 문명에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다. 비록 "卍" 모양은 매우 간단하지만, 인류의 서로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 모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사용되었지만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卍"자 부호는 행운, 길상, 그렇지 않으면 항상 신(神)과 동시에 나타난다. "卍"자 부호는 고고학과 문학의 기원 연구 방면에서 많은 학자들의 주의를 끌었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인류 문자의 기원 부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태양의 형상에서 기원했다고 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이 인류의 번식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에는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전문적으로 "卍"자 부호를 연구한 논저가 있었다. 청(淸)대 말기, 조금주(曹金籒)의 《설만(說卍)》은 동치(同治)년간에 인쇄된 《석실문자총서-주서(石室文字叢書-籒書)》에 실려있다.

1939년 왕사창(王賜昌) 선생의 저작 《(석만(釋卍)》은 당시 중국과 서양의 연구 성과를 모두 검토해, 풍부한 내용을 다루었다. 서양 학자 Louis Gaillard의 저작 《중국의 십자와 만자(Croit et Swastika en Chine)》가 1904년 상해에서 출판되었다. 그 밖에 J.Mashall, 요종이(饒宗頤)등의 학자가 "卍"자 부호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러면 "卍" 모양의 진정한 의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전법륜(轉法輪)》에서 "卍" 부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그러면 이 만(卍)자 부호를 우리 불가에서는 무엇으로 보는가? 어떤 사람은 길상여의(吉祥如意)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속인 중의 해석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만(卍)자 부호는 부처의 층차 표지(標志)로서 오로지 부처의 층차에 도달해야만 있을 수 있다. 보살(菩薩)・나한(羅漢)은 없다. 하지만 대보살(大菩薩)・사대보살(四大菩薩)은 모두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보살들이 모두 일반 부처의 층차를 훨씬 능가했으며 심지어 여래보다도 더 높은 것을 보게 된다. 여래 층차를 능가한 부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래는 만(卍)자 부호가 다만 하나 있을 뿐이다. 여래 이상의 층차에 도달하면 만(卍)자 부호가 많아지게 된다. 여래를 한 배 능가하면 만(卍)자 부호가 두 개 있게 된다. 또 능가하면 곧 3개・4개・5개가 있으며, 많으면 온 몸에 모두 있게 된다. 머리 위, 어깨 위, 무릎 위에 모두 나타나며, 놓을 자리가 없을 때에는 손바닥, 손가락 볼록한 곳[手指肚], 발바닥, 발가락 볼록한 곳[脚趾肚] 등에 모두 나타난다. 층차가 부단히 제고됨에 따라 만(卍)자 부호는 부단히 증가한다. 그러므로 만(卍)자 부호는 부처의 층차를 대표하는 것으로, 부처의 층차가 높을수록 만(卍)자 부호가 더욱 많게 된다.”
이 글을 본 사람 중에는 아마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卍자 부호가 부처의 단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라면……”, 그러면 이것이 왜 그리스 등 상고시대 문명에도 나타나는 것일까?

리훙쯔 선생은 이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그럼, 우리는 또 역사로부터 말해 보자. 서방 사회에서 출토한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도 만(卍)자의 도형을 발견하였다. 사실, 큰 홍수(大洪水) 이전의 상고(上古)시대에서는, 그들 역시 부처를 신봉(信奉)했던 것이다. 대홍수가 났을 때 일부 서아시아와 히말라야 산의 서남쪽 일대에 살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 인종(人種)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의 백종(白種) 인도인이며, 그 당시에는 바라문(婆羅門)이라 불렀다. 사실, 바라문교가 첫 시작할 때 신봉한 것은 부처였으며, 먼 고대(上古) 그리스인이 신봉한 부처의 계승이었으며 그 당시 그들은 부처를 神이라 불렀다.” (《정진요지-불법과 불교》)

현재 우리는 "卍"자 부호가 인류 역사상 광범위하게 전파되었고, 서로 다른 문명에서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사실 인류의 유구한 역사 중, 신과 부처에 대한 신앙의 계승과 발전의 구체적 증거라는 것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B.L.Goff: Symbols of prehis-toric Mesopotamia
페이꽝휘(裴光輝) <클라크자기(克拉克瓷)>,2002년 푸젠(福建) 미술 출판사
요종이(饒宗頤) <만고(卍考)——칭하이 도문 해석(靑海陶文試釋)>
Spiritual Secrets in the Carbon Atom 발표시간:2006년 1월 8일


(역)과 (만)
萬相이 원만한 상태로…길상의 상징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면 卍(역)은 불교의 상징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사찰 현판에 그려진 것이고, 그 밖에 불전의 서까래, 기와, 탑비의 귀부, 불화 등 여러 방면에 나타나고 있다.
卍(역)은 범어(梵語)로 스바스티카(Svastika)라 하며, 원래는 글자가 아니고 상(相)이요 상징형이다.
이 상징형은 중국에서 卍이라는 글자로 개창(改創)되기 이전부터 고대 인도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국가의 장식 미술에 모두 나타나고 있었으며, 바라문교, 자이나교 등에서도 이 문양을 사용해 왔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 신의 가슴에 있는 선모(旋毛)에서 발하는 서광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슴과 발 등에 나타난 것을 ‘상서로운 상(相)’으로 여겨 길상의 상징으로 삼음과 동시에 불심인(佛心印)으로 사용하였다.

卍(역)은 ‘부처님 몸의 상서로운 相’이 기원
동서남북 기본에 우주 우회전 운동 가미

卍(역)은 십자형을 기본으로 하는 동서남북의 상징에 우회전하는 운동적 요소가 가미된 형태이다. 십자형의 네 가지(枝)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구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옮겨가는 태양의 궤적에 따라 공간이 분할된다는 사실이다.

고대인들은 도시나 궁성을 세울 때 남북 축선 상에 건물을 배치하고 남북과 동서에 각각 성문을 열어 사대문을 갖추어 십자의 형태를 취했다.
그것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인간의 자리를 하나의 소우주로 창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사문유관(四門遊觀) 한 행위는 곧 지구상에 창조된 소우주를 편람 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卍(역)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가로 한 번 그은 선은 삼세(三世)이고 세로 그은 것은 시방(十方)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는 무형적인 시간이고, 동.서.남.북의 사방은 방위적인 공간이다.
공간은 평등이고 시간은 차별이다.
그래서 은 일심의 덕이 삼세시방을 관통해서 종횡무진한 것을 나타낸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행한 설법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문양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무불상시대 예배 대상의 하나였던 바퀴모양의 법륜을 도식화 한 것이라고도 한다.
바퀴살의 모양을 형상화한 데서 생겨났다는 이야기이지만, 이 견해는 불교 성립 이전 그리스나 페르시아 등지에서 이미 이와 같은 문양을 사용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신빙성이 약하다 할 것이다.

卍(역)이 오른쪽으로 도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우주 및 태양계의 회전 운동에 동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도는 우선(右旋)은 우주 자연의 정상적인 운동 원리로 여겼으며, 그 반대 방향 즉 좌선(左旋)을 우주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배척한다.
탑돌이를 할 때 우요삼잡(右繞三)이라 하여 탑을 중심에 두고 시계 방향인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데, 이는 우주의 운행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예이다.

한편 부처님이 전생에 선업을 쌓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특수한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었다고 하는데, 그 32상 가운데 백호상(白毫相)이 있다. 백호상의 요체는 부처님의 눈썹 사이에 흰털이 하나 나서 오른쪽으로 말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80종호에서도 신체의 털이 모두 오른쪽으로 말려 올라간다고 했다. 이것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주의 순행원리에 부합하여 길상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엄경음의〉에서도 오른쪽으로 도는 형상을 설명할 때 오른쪽으로 도는 모양으로 표시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 장수 2년(693)에 불교의 길상상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卍자의 형태를 가진 글자를 만들어 정식 문자로 채택하였으며, 만덕이 모였다는 뜻을 새겨 ‘萬’자로 읽었다. 〈화엄경음의〉에서는 길상상의 상징 의미를 卍으로써 설명했는데, 卍은 그 발음이 만(萬)이며, 길상만덕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했다. 결국 은 만상(萬相)이 원만(圓滿) 유전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길상의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경〉 48권에, “여래의 가슴에 상(相)이 있다. 이 형상은 卍자와 같다.
이를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 한다” 했다. 또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에, “卍자의 상은 금강견고(金剛堅固)의 갈무리처로 마음을 장엄했다.
일체의 모든 마구니가 온다할지라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중국 후진(後秦) 때의 인도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과 당나라 승려 현장(玄裝, 602~664)) 스님은 을 ‘德’자로 해석했으며, 길상해운, 유락(有樂), 경복(慶福), 행운의 의미로 번역하기도 했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자인 십지보살(十地菩薩)의 가슴 위에 생기는 길상상이라 했으며,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슴에만 생기는 한정된 것이 아니라 부처의 경지, 즉 불심인 그 자체라고 했다.

卍은 중국서 길상 뜻의 정식 문자로 채택
두 가지 혼용하다 현대 들어 卍으로 일반화

한편, 중국 민간에서는 卍자가 만능의 신력(神力)을 갖고 있으며, 우주 천지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자로 간주했다.
중국 먀오족(猫族)의 풍습에서는 卍자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수차(水車)의 모양을 닮은 卍자를 풍농(農)을 가져다주는 주술의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 생활 장식 문양으로 널리 사용했다. 특히 주택의 창살 문양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길상만덕이 실내에 충만하기를 바라는 세인들의 세속적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불교 미술에 등장하는 문양의 역사는 매우 길다.
가장 오래된 예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기 직전에 남겼다는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에 있는 족적(足跡)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紀)〉에 의하면 탑 부근의 정사(精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돌에 부처님의 족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삼장법사 현장이 친히 이 족적에 예배하고 스스로 본을 떠서 중국에 가져왔으며, 지금은 산시성 방주(坊州)에 있는 옥화산(玉華山)의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부처님 족적의 왼발 발가락에는 卍자 형태가, 오른쪽 발가락에는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 후에도 문양은 불교 미술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인도 쿠샨왕조 때의 아마라바치 조각과 마투라 조각의 불공양제물 등에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굽타왕조 때 만들어진 아잔타석굴의 불족도(佛足圖)와 벽체나 기둥에 새겨진 부조, 불화의 배경 장식 문양에도 문양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 불화에서 문양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삼존도〉에는 부처님 가슴 부분에 문양이 나타나고, 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의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2의 표지에도 같은 문양이 보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불화 가운데, 교토 치온인(知恩院) 소장의 〈미륵하생경변상도〉와 도카이안(東海庵)에 있는 〈아미타여래도〉, 그리고 도쿄의 일본은행, 네즈(根津)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여래도〉 등에서도 우선(右旋)하는 형태의 문양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고려 시대 불화에서는 우선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에서도 원주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의 귀부와 봉화 각화사의 고려 시대 귀부에서처럼 좌선하는 형태의 卍문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원공국사승묘탑에는 두 가지 형식의 문양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조선시대의 것을 예로 들자면, 예천 용문사 대장전에 걸려 있는 목각 탱화(1684년 작)의 액자 상단 부분에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하나 새겨져 있다. 또한, 영주 부석사 소장의 괘불(1745년 작)에는 卍 문양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슴에 나타나 있으며, 구례 천은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 돌절구에 새겨진 문양도 같은 형태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고려 시대 불화에는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간혹 귀부 등 석조물에서 좌선하는 형태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좌선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우선하는 형태가 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혼재 현상은 고성 건봉사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에서 뚜렷이 나타나 있다. 회전 방향이 각기 다른 문양이 한 곳에 병존하는 특이한 사례로, 왼쪽 기둥에는 좌선하는 형태가, 오른쪽 기둥에는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근년에 지은 사찰에서는 우선하는 문양이 시문된 경우는 한 두 개의 사찰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좌선하는 卍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축한 사찰 건물의 지붕 합각 부분이나 서까래 마구리에 그려진 것은 물론이고, 종단에서 불교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표지 역시 卍문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원래 길상 상징로서 문양이 동일한 뜻을 부여한 한자의 卍자와 함께 혼용되어 오다가 현대에 이르러서 卍자로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불교신문 2127호]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