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지순례이야기

[스크랩]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이화학당 (서울 중구 정동) 3.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 07:05

문화재 예배당 후면

 

문화재 예배당 후면

 

정동교회 사회교육관

 

감리교회 조선선교 50주년 기념비


884년 6월 24일은 선교사 매클레이 박사가 인천에 도착함으로서 한국선교의 문이 열린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1934년은 조선 감리교회의 50주년에 해당하는 해가 되므로 크게 기념행사를 갖게된다. 조선 감리교회는 1935년 4월 부활절을 기해 50주년 행사를 크게기념하는 행사를 갖게 된다. 기념비에 사용된 돌은 이끼가 끼지 않을뿐더러 견고하고 화려하기로 이름난 보령 염포오석이다. 비석전면에는 "감리교회 조선선교 오십주년기념비. 기독교조선감리회교우일동건립"이라고, 후면에는 "부활주일에 조선과 만주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기념 헌금한 것과 유지들의 기부로 1936년 4월 12일 부활주일에 이를 건립하였다"고 쓰여있다.

 

감리교회 조선선교 50주년 기념비

 

아펜젤러 목사 (제1,3 대 , 1885-1891, 1893-1902)


우리 나라 최초의 감리교 목사이자, 이 땅에 감리교 역사를 뿌리내린 아펜젤러 목사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895년 4월 5일 부활 주일 날 감리교의 스크랜튼 목사와 함께 조선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도착하였다. 아펜젤러는 1858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나 드류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의 뜻을 품고 있던 중 미국 감리교 선교부로 부터 한국 선교사로 오게 된 것이다. 아펜젤러 목사는 고종황제의 허락으로 이 곳에서 선교사업, 교육사업, 봉사활동 등 무수히 많은 일을 하였는데, 그 첫째가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정동제일교회를 세우시고 이 땅에 기독교문화를 꽃피운 일이다. 아펜젤러 목사는 최초의 감리교 모교회건물인 문화재예배당을 짓고 정동교회의 초대 목사가 되신 분으로 조선인의 민족 복음화에 한 평생 힘쓰셨으며, 한글 신약성서 번역작업을 통해 우리 나라 성서보급에도 큰 일을 하였다. 그리고 교육사업을 통해 배재학당을 건립하고 민족의 지식사업에 열정을 다 하였다. 아펜제러 목사가 목포에서 해난 충돌사고로 순직하기 전까지 그의 전 생애를 바쳐 한국에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감리교회, 그리고 한글 신약성서 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진정 위대한 선교사요, 교육자요, 선각자로서 이 땅에 민족 복음화를 위해 죽는 날까지 몸바쳤으며 그 공은 실로 위대하다 하겠다.   

 

초대 아펜젤러 목사 상 

 

초대 아펜젤러 목사 상

 

탁사 최병헌 목사 (제 4대, 1902-1913)


1902년 최병헌 목사가 부임하면서 정동교회의 지도력은 선교사들로부터 한인 목회지로 완전히 전환된다. 탁사 최병헌 목사는 정동제일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쌓으며, 그 위에서 평생 목회 하셨다. 그의 사회적 복음이해는 이미 고찰한 그의 강연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서 전개된다. 탁사의 복음 이해를 위한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그의 글 `죄 도리'이다. 탁사 최병헌 목사는 기독교의 기본 문제인 죄의 원인과 결과와 그 해결책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앙과 결부하여 풀이하였다. 또한 최병헌 목사가 일생동안 신학적 기초로 삼은 것이 재래종교와 기독교와의 만남의 문제를 어떻게 해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주제해명을 위해 1900년 「대한크리스도인회보」에 "삼인문답"을, 그리고 1907년 「신학월보」에 "셩산유람긔'를 각각 종교인간의 대화형식으로 연재했다. 그 후 "셩산유람긔"는 「성산명경」으로 ,"종교변증론"은 「만종일연」으로 각각 단행본이 간행되었다. 이렇듯 최병헌 목사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요, 철학자요, 문인으로서 정동신학의 기초를 집대성한 분이라 할 수 있다. 

 

탁사 최병헌 목사 상

 

탁사 최병헌 목사 상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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