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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80대의 역할 모델 , 88세의 박사장님 이야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9. 08:26

올해 88세 된 박사장님의 하루의 일과입니다.

 오전 5시30분에 일어 나십니다.

우선 조간 신문을 읽으시고 사모님(76세)은 부엌에서 두 분의 아침 밥을 만드십니다.

반찬은 주로 된장국과 동치미, 김, 계란 부침, 어리굴젓입니다.

냉장고에 곰거리,생선, 고기등 많이 있지만 사모님은 누가 오나 된장 찌게만 하십니다.

사모님이 된장 국이나 찌게를 좋아 하셔서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습니다.

사모님이 자주 아프셔서 그때는 박사장님이 손수 밥을 하십니다.

음식 솜씨 없는 세째 며느리가 올 때면  사모님이나 박사장님이 안심을 못하시고 부엌에 들어오십니다.

식사 후  밥상 위에 사모님이 드실 약을 놓아주고 당신도 드십니다.

고혈압약, 영양제, 그리고 전자렌지에 은행을  빈 우유곽에  15알 넣어서 1분간 돌리셔서  두 분이 드십니다.

사모님이 기관지가 좋지 않아서, 덜 벌어진 은행은 뺀지로 일일이 까서 놓아 주십니다.

7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40분 거리의 회사로 출근을 하십니다.

 

박사장님이 하시는 회사는 초,중,고등학교, 가정, 회사의 무인경보기를 달아 주는 중소 기업입니다.

전직이 고등학교 교사였고  충남 ,대전의 중 고등학교에서 수학,체육 교사를 하시다가

교육위원회의 장학관을 오래 하셨고 정년퇴임은 여고 교장 선생님일 때 하셨습니다.

 

일제 시대때 연희 전문학교 상과를 나오시고 충청도에서 수학교사로 교직을 시작 했습니다.

시골 학교 재식시에 특별활동으로 육상을 가르쳤는데 그만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했습니다. 그 후 체육 교사로,  과목이 바뀌었습니다.

평생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시고 6시 30분에 집을 나가셔서 합숙 중인 운동 선수를 보고 출근 하셨습니다.

박사장님이 장학사일때 충남은 전국대회에서 육상의 실적이 늘 좋았습니다.

교직에 재직시에 교원노조 총무를 했다가  면직 되고 6개월의 옥고도 치루는 고생을 하셨습니다.

몇 년후 복직을 하셨지만 교사가 안되셨으면 정치가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야당 성향이 많습니다.

 

교사 재직시에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두 번 타셨습니다.

해마다 전국 체전, 소년 체전에 참석하십니다.

유니폼과 모자를 쓰시고.....최고령이시고 모두 제자들이 많아서 가시면 즐겁지만 그날로 돌아 오십니다. 금일봉을 전하고 오십니다.

젊은 교사들에 대한 배려지요.

 

 

박사장님은  12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하십니다.

이것도 평생 같은 시간입니다. 교직에 계셔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으로 역시 버스를 타고 돌아 오십니다.

 

회사에 차도 많으나, 연세가 많으셔서 자가 운전은 안하시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십니다.

집에 오시면 컴퓨터로 바둑을 두시거나 스토쿠를 열심히 하십니다.

지금은 스토쿠 상급을 하고 계십니다.

 

사모님은 연속극을 보시고 박사장님은 12시까지 컴퓨터 바둑을 두시다가 주무십니다.

 

같은 동네의 걸어서 5분,10분 거리에 장남과 차남이 살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아프시면 큰 며느리가  차로 모시고 병원에 다닙니다.

 

주말이면  장남과 셋째 아들과  예산군 덕산의 시골 집에 가십니다.

박사장님이 태어 나시고 자식들이 태어난 고향 집에는 경기도에 사는 큰 딸과 사위가 서해안 고속 도로를 이용해서 미리 와 있습니다.

어느 때는 며느리들도 함께 갑니다.

요즘은 며느리들이 다 아파서 못가고 있습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박사장님의 누님을 모시고 오고 (90세) ,홍성에 사는 여동생(74세)부부도  옵니다.

 

밤이면 사랑방에 장작을 넉넉히 지피고 아랫목 부터 목화솜 이불을 죽 깔고 다 같이 잡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빼뽀 저수지(이름이 재미 있습니다)에 다 같이 가서 어죽이나 매운탕을 먹고 가끔은 덕산 온천에 단체로 목욕하러 갑니다.

큰 딸과 사위, 아들들이 합심해서 나박김치를 담궈서 세 집으로 나눠서 먹고 있습니다.

김장도 시골집 마당에서 한꺼번에 합니다.

재료와 양념값은 모두 박사장님이 내십니다.

 

박사장님은 자식들이 이사 갈 때나  손녀딸이 결혼 할 때 상당히 많이 (보통 할아버지보다) 준비금을 주십니다.

손주들이 입학 ,졸업을 할때도 그렇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간 넷째 아들의 손주들이 대학을 졸업 할 때마다 참석하셔서 [워싱톤 주립대학교],[ M I T  대학교},[유타 주립대학교] 졸업식을 보시고 오셨습니다.

넷째 아들 부부는 박사장님 내외분이 가실 때마다 두 달 씩 모시며 미국의 그랜드캐년,라스베가스, 등 유명한 곳을 관광 시키는 효자,효부들입니다.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시면 나이가 좀 들어 보이시지만 염색을 하면 70대 초반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피부과에서 [피부나이] 70세라고 말했습니다.

 

박사장님 집안 은 장수 집안 으로 박사장님의 아버님도 99세에 돌아 가셨습니다.

건강하게 사셨고 한 달 동안 아프시다 가셨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근면하게 계획적인 스캐줄대로 살아 오시고 술, 담배를 하지 않으시며 편식을 하지 않으십니다.

 

박사장님의 자녀는 5남 2녀입니다.

장남(68세)은 교육청에 근무하다 정년 퇴직했고 , 둘째 아들(64세)은 변호사이며,교수입니다.

큰 딸(62세)이 작년에 환갑이었고, 셋째 아들(60세)과 다섯째 아들(50세)은 서점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넷째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지 32년이 됐고 막내 딸(46세)은 중학교 미술교사입니다.

 

장수 사회에 수명은 길어 졌으나 일거리와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고생을 하는 노인 들이 많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일로 인정을 받고 존경받는 박사장님이야 말로 80대의 모범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당신이 경제권이 있고 , 어느 곳에 가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아우라가 많은 분입니다.

 

박사장님!

제 시아버님이십니다.

 

저는 행복한 며느리입니다.

아버님의 며느리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셋째 며느리 입니다.

 

 

 

 

 

 

 

출처 : 모과 향기
글쓴이 : 모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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