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테크/책방이야기

[스크랩] <소금꽃나무>를 아시나요?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8. 17:15

 

 

가슴이 먹먹해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잠시 쉬었다 다시 읽을지,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돌연 가방을 챙겨 열람실 밖으로 나왔다. 이미 머리와 마음은 책을 떠나 과거 어느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굳이 계단으로 내려온 건 아날로그적 회상의 꼬리를 자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좋은 글이란?,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 따위의 질문으로 치달았다. 거침없이 대답거리도 떠올렸다. ‘무릇, 글이란...’ 거의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떠올렸지만 머릿속에선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삭제해도, 삭제해도 사라지지 않는 ‘악플’들처럼. 도서관 로비를 나서며 서둘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연기와 함께 상념과 회한도 휘발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상념은 더 이상 상념이 아니었다. 울분이었다. 


<소금꽃나무>를 나는 단숨에 읽어내지 못했다. 분량이 길어서도 내용이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과 뒷골을 파고드는 통증을 참아내기 힘들었다. 타닥타닥 장작개비의 비명과도 같은 똑 부러지는 표현들, 군더더기 없는 거침없는 외침들, 질척한 이야기를 애써 담담하게 표현하려 애쓴 절제와 냉철함의 흔적들... 관념의 조작이나 섣부른 기교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파닥파닥 뛰는 생명의 힘과 열정으로 써낸 ‘김진숙의 20여년 노동일기’를 접하는 일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읽는 내내 <전태일 평전>을 떠올렸다. 둘은 닮은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듯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닮을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가 삶과 죽음으로 갈린다는 건 무의미한 비교지만, 그 점이 바로 어쩔 수 없는 둘 간의 차이이기도 했다.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감당하기 힘든 감동과 전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신직전 열사의 심정, 동료들의 절규, 노동자의 땀냄새 대신 지식인의 가필과 해석으로 덧칠된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곤 했었다. 반면,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전태일 평전>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 노동자의 땀과 눈물로 쓴 ‘날것’ 그대로의 감동과 흥분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발전일 테다. “대학생 친구가 한명만 있었으면”했던 전태일 열사의 바람이 뒤늦게 이루어져 수많은 ‘학출’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활약하던 시대를 넘어 ‘학번 없는 노동자 김진숙’이 지식과 관념으로 얼룩진 화려한 수사의 벽을 넘어 덤덤하고 당당하고 노동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감동적인 말과 글로 옮기면서 마침내 “학번 없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말이다.  

   

그러나 척박한 노동현실을 얘기한다는 점, 더군다나 1970년에 부르짖던 전태일 열사의 절규가 2003년 김주익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의 절규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어쩔 수 없이 같은 운명을 타고 난 책일 수밖에 없다. 김진숙 역시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놓칠 수 없는 치 떨리는 분노의 주된 내용이다.


“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


“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게,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

( --- 제3장,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중에서. 121, 123쪽.)   


아마도 이런 것들이, 주말의 도서관나들이를 망쳐놓은 주범이 아니었을까. 난데없이 눈물을 머금게 하고, 순간 주먹을 불끈 쥐게 했던 이야기들. 답답해진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한참동안 숨고르기를 하게 했던 이야기들...   


“ 100원짜리 옥수수빵 사다가 밤중에 이불을 덮어쓰고 쥐새끼처럼 빵을 파먹던 성자, 태숙이들. 자면서도 “잘못했으예.” 잠꼬대를 하며 흐느끼던 영숙이, 미순이, 상남이 들. 같이 일하다 그만둔 친구가 짙은 화장에 번쩍이는 힐을 신고 나타나면 그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빨갛고 노란 옷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져 소문으로만 떠돌던 희야, 옥련이, 효진이 들. 설날 보온밥통 선물을 들고 모처럼 뿌듯하게 찾아간 고향집 아랫목이 너무 따뜻하고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휴가 지나고도 이틀을 더 눌러앉았다가 출근하자마자 유리성 안에서 뺨이 붓도록 얻어터지고 “엄마, 회사가 무섭다.” 밤새 눈물로 편지를 써 놓고는 부치지도 못한 채 그 무서운 곳으로 날마다 향하던 어린 옥선이, 태자, 미숙이 딸끔이 들.”

(--- 제1장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중 ‘그 시절의 이력서’에서. 43쪽)


“ 내가 삥땅을 안 했다는 결백함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옷을 벗는 일밖에는 없었고, 그래서... 했다. 씨발. 아무리 합법적인 근거가 있다 해도 변명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고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용서되지 않는 일이 있다.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게 아니라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어쩌자고 겨우 열아홉 살이었던 것이다. ”

(--- 제1장, ‘사는 것 같던 날’ 중에서 52, 53쪽.)


“ 아빠의 영정을 들고 철모르는 웃음을 웃고 있는 용찬이를 두고, 세상 어느 여인보다 행복하게 해주겠노라 맹세했던 용찬이 엄마를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이젠 돌리셔도 됩니다. 용찬이가 크면 아빠를 죽인 놈이 누군지 똑똑히 알겠지요. 유가족에 대한 보상보다도 두 달 동안이나 일을 못한 조합원들 임금 교섭 단체 협약을 협상 조건으로 제시했던 용찬이 엄마는 정말 가슴 미어지도록 자랑스러운 우리의 동지입니다. ”

(--제3장. <더 이상 죽이지 마라!> 1991년 6월 30일 ‘박창수 열사 추모제’에서. 117쪽)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가방 끈을 굳게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감상에 젖었던 대로라면 응당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그간의 습관이었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채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을 꺼내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태일 평전>만큼이나 감동적인 책이 나왔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소금꽃나무>가 무슨 뜻이에요?”


말이 좀 길 것 같아 문자대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떨어진 후 말을 이었다.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의 등짝에 새겨져 있는, 땀이 굳어서 생긴 소금덩어리들이 만들어낸 나무 모양을 말하는 거야. 뿌리도 없고, 가지도 없이 꽃만 피어나 한 사람의 등에 서있는 나무, 그게 바로 소금꽃나무라는 거야. 김진숙이라는 노동운동가가 발견하고 이름붙인 나무. 이 땅 노동자들의 피곤하고 지친 얼굴표정이기도 하고 말야. 암튼 함 읽어봐라.” 

출처 : 인간과 그밖의 것들...
글쓴이 : 시라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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