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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박준 저] 행복이란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2. 2. 21:24

 

  무엇이 그리도 조급하고 두려웠던 것일까? 남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나? 그러고 보면 언제나 나의 생각은 어떤 하나의 틀에 갇혀 꽉 막혀 있었다. 우리나라엔 일반룰이 있다. 어느 나이 때엔 취직을 해야 하고, 어느 나이 때까진 결혼을 하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바로 그런 일반적인 것들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내 삶의 행복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엔 있을 수 없는 것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일반룰을 충실히 따르며 살아갔던 사람조차도 행복과는 요원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교사가 되고 싶어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한다. 그 결과 임용에 합격한다. 과연 그 때부터 미루어두었던 행복이 찾아오나? 맞다. 잠시 행복했다. 적어도 결과 발표가 나온 모니터창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은 그 순간엔. 하지만 곧 연수를 들어가고 학교에 배정받아 적응하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임용에 합격하면 담배 끊을 거야."라고 말하던 선배는, 지금 더 심한 골초가 되셨다. 이쯤 되면 김우정씨의 "연봉 1억이 넘는 사람도, 남들 보기에는 엄청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기가 잘 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행복해하지 않아요 (239p)"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지금 당장은 내가 그런 입장이 아니니 그게 부러워 보이며 행복은 그 속에 있다고 믿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막상 이루어지고 나면 다른 고민이나 걱정이 또 밀려들게 마련이다. 알라딘이란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그 욕망의 끝없음을 살펴본 것처럼 말이다.(알라딘감상평으로 이동) 그렇다면 우린 영영 행복할 수 없단 말인가?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 허황된 일반룰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걸 소유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행복한 것일 뿐이다. 단, 그 일이 어떤 무거운 사명의식에 따라 마지못해 하는 일이어선 안 된다는 것.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하고 내 자신이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그럴 때 일은 여가활동이 되고, 여가활동은 일이 되는 놀라운 삶의 마법이 일어난다.

 

  바로 이 책에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의 말처럼 'Carpe Diem'을, 「개밥바라기별」에 나오는 노동자 아저씨의 말처럼 "사람은 씨팔.......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를 현실에서 맘껏 적용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 개개인을 바라보면 일반룰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적령기임에도 조바심을 느끼지 않고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거나 무료봉사를 하며 그간 모아둔 돈이 조금씩 바닥나고 있음에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게 뭐냔 말이냐? 우리가 지금 일반룰을 벗어났다고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이들은 그런 불행을 자초하면서도 오히려 '써바이 써바이(행복이란 말의 캄보디아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과 우리가 서로 다른 種의 인간이거나 이들과 우리가 쓰는 '행복'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반대이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분명히 이들은 그런 일반룰을 반대로 행동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고 난 똑같은 이유로 불행하다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는 깨끗한 물 아니면 안 되고, 더울 때 에어컨 없으면 안 되고,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흔까지 사는 게 쉰까지 사는 것보다 행복할까요? 깨끗한 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할까요? (80p)" 백지윤씨의 말인데, 이 말을 통해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누구는 '깐깐한 물(?)'을 마시려 오늘도 열심히 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하고 오래 살 것 같으니까. 바로 그게 행복이라 생각하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정확히 그게 빈틈이었던 셈이다. 온실 속의 화초로 모든 것들과 차단된 채 만수무강할 것이냐?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세상과 부딪기며 짧은 인생 굵게 살 것이냐? 그런 물음들이 가능하다면 이 이야기는 또 어떤가?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보면 '내가 많이 살았구나' 싶어요.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이 일찍 가는 거 많이 봤으니까. '서른 셋이면 살만큼 산 거 아닌가. 많이 누렸지 뭐'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게 감사하죠. (104p)" 이기원씨의 말이다. 장수해야만 행복한 게 아니란다. 그저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이게 얼마나 맥 빠지는 소린가? 마지못해 살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에게 그걸 감사히 여기세요 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도 분명한 건 의식이 전복되는 순간 이와 같이 현재를 긍정하게 되고 바로 이 순간에 행복을 불러들일 수 있게 된다. 고로 행복은 미래에 있는 그 어떤 유토피아 같은 게 아니라 지금 나의 곁에 있지만 내가 의식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난 그런 나만의 행복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일반룰에 의한 행복이 아니라 나만이 누릴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그런 행복 말이다.

 

  안연지씨는 캄보디아인들의 행복을 "삶을 즐기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잖아요. 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정하고 상관하지 않는 달까. 욕심이 없고 뭘 해야겠다는 삶의 목표 같은 것도 없어요. 그런 걸 많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없어도 행복한 거 아닐까요? (204p)" 라고 말했다.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생각의 과잉은 우릴 불안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땅이 꺼질까? 지붕이 무너질까? 늘 불안해했다던 '杞憂'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보험에 들고 돈에 대한 불안으로 재테크를 하고, 직장에 대한 불안으로 스펙 올리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의 모습일 뿐이다. 행복은 그와 같은 의식 과잉을 떠나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나의 것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할 때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왜 열심히 일하세요?"라고 물으면, "행복해지려고"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 나 또한 그런 안타까움을 반복하고 살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치유제가 될 것이다.

출처 : 방랑자의 공간
글쓴이 : 건방진 방랑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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