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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디슨에게 배우는 창조적 성공의 방식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3. 15. 19:53

62년 연속 1093건의 미국 특허와 1293건의 국제 특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유한 발명왕 에디슨! 그의 발명품들 중 상당수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 들이는 기업들의 모태가 되었다. 스스로 GE를 설립하고, 조명, 축음기, 영화, 건전지 및 시멘트 산업을 선도하기도 한 그의 놀라운 이력은 끊임없는 혁신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성공'의 표본이다.
이런 성공을 가능케 한 그만의 사고 방법과 가치 확대 방식에 대해 알아 보자. 


1) 철저한 '문제 해결' 중심의 사고

에디슨은 평생 동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평생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재미였어요."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놀라운 자연의 신비를 밝히는 탐구의 모험"에 끊임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성공의 과정에 수반되었던 수많은 실패도 그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그의 목표는 성공의 결과물로서의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의문을 마침내 밝혀 내는" 성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초상
에디슨의 아이디어 발상법과 창조적 사고방식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에 몰두하는 이런 열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철저하게 '문제 해결' 중심으로 사고하는 사고 방식과 실험 결과에 대한 엄격한 객관주의를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끊임없이 실험하고 집요하게 지식을 탐구했으며, 그 결과에 대해 엄격한 객관성을 유지했다. 에디슨의 실험 과정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생각할 수 있는 껏 다양한 가설을 계속 실험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실험은 "같은 질문을 백 가지로 다르게 함으로써 신비를 파헤쳐 자연의 허를 찌르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모든 실험 과정을 철저하게 데이터화했다. 이 데이터들은 후에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행해진 실험에서도 생각지도 못하던 진가를 발휘하면서 그에게 복합화된 여러 실험의 결실을 안겨 주었다.


2) 사고와 지식, 실험의 '복합화'

에디슨의 '창조적 성공'의 요체는 '복합화'된 사고와 지식이었다. 스스로 한 가지 실험의 결과를 위해서도 백 가지의 다른 가설을 활용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결코 한 분야에서 고집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자연과학의 답을 얻기 위해 인문과학의 지식을 탐구하는 식이었다. 요컨대 어떤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로운 아이디어 발상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렇게 복합화된 그의 아이디어 발상법은 후에 그의 아이디어 활용에서 눈부신 결과를 가져왔다. 즉, 반복된 아이디어의 발상과 활용이 하나의 패턴화됨으로써 나중에는 분야에 상관없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의 핵을 발견하고 그 결실을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뭔가 새로운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에디슨은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이런 현상을 어디서 봤더라?"라고 질문했다. 바로 패턴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독서 습관과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실험방식 덕분에, 에디슨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패턴의 식별력을 갖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나타날 패턴을 공공연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 활용에 이런 방식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의 창조적 발상법을 다룬 어린이 도서 

아이디어 발상법은 물론 그 과정도 복합화된 것이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개인노트에 기록했는데, 그 기록 노트를 보면 한 가지 아이디어를 하나의 키워드로 된 메모에서부터 다양한 낙서와 그림, 스케치 등으로 다변화시킨 표현들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연계해내는 다양한 유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기계를 분해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낸 후 다시 조립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이 또한 그 과정을 일일이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색을 좋아했고,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공상을 일일이 스토리로 만들어 이야기하거나 적어두곤 했다. 그는 사실 훌륭한 스토리텔러였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이 능력은 그의 아이디어 발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공상 가운데 일부 필요한 부분들은 새로운 발명 아이디어로 활용하기도 했다.


3) 지식의 네트워크

에디슨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에 전문분야별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팀을 구성했다. 그는 지원자들을 반드시 개인적으로 직접 인터뷰했으며, 이를 통해 문제 중심의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채용했다. 그들은 하루 12∼18시간씩 일에 매달렸지만, 때로는 런치타임이나 근무중의 낚시, 낮잠 등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충전했다. 또 농담과 잡담을 즐기고 서로에게 악의 없는 장난 치기를 좋아했다. 그들의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이 이런 농담이나 잡담 속에서 탄생하기도 했다.

 

 국립 에디슨공원

업무에 임할 때에도 상하와 성역이 없는 토론이 그들의 지식 네트워크를 돈독하게 유지해 주었다. 또 공개적인 아이디어의 교환을 장려했는데, 여기에는 에디슨 자신의 아이디어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팀원들에게 그것을 공개하고 팀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또 아이디어가 신기술화되었을 때에는 로열티 등 그 대가를 함께 나누었다. 그는 또한 자신을 비롯한 팀원 모두에게 새로운 분야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 주었다. 1주일에 한 번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기술 세미나를 개최한 것을 비롯하여 외부 지식인들과의 교류와 커뮤니티 구성을 장려했다.


출처 : 경매하는 친구들의 모임
글쓴이 : 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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