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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활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친숙한 그림 샤르댕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6.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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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Ro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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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Wasserbehä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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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Teetrink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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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화가.

샤르댕 /샤르댕이 그린 유화 〈The ...

친밀하고 사실적인 표현과 조용한 분위기, 밝은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정물화와 실내풍경화로 유명하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물들을 주제로 정물화(예를 들면 〈찬장 Le Buffet〉, 1728)를 그렸으며, 풍속화의 주제로 평범한 일상사를 선택했다(예를 들면 〈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 Dame cachetant une lettre〉, 1733). 그는 또한 몇 점의 뛰어난 초상화도 그렸는데, 특히 말년의 파스텔화는 매우 훌륭하다. 172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샤르댕은 파리에서 태어나 실제로 그가 태어난 지구인 생제르멩데프레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미술가인 피에르 자크 카즈와 노엘 니콜라 쿠아펠 밑에서 잠시 일했지만, 그가 받은 미술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724년 그는 독립 화가로서 '생 뤽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러나 1728년 궁정화가인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1656~1746)의 도움으로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그 아카데미에 〈가오리 La Raie〉와 〈찬장〉을 출품했는데, 이 두 작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샤르댕은 아직 기반을 잡지는 못했지만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731년 마르게리트 생타르와 혼인했다. 2년 뒤 최초의 인물화인 〈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을 발표했으며, 그때부터 샤르댕은 정물화나 〈식사 전의 기도 Le Bénédicité〉와 같은 가정생활을 다룬 실내화와 〈젊은 화가 Le Jeune dessinateur〉·〈팽이를 들고 있는 아이 L'Enfant au toton〉(루브르 박물관)와 같이 일이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다룬 반인물화를 번갈아 그렸다. 그는 같은 주제를 자주 되풀이해서 그렸으며, 같은 유형의 작품들을 여러 점 남겼다. 1735년 그의 아내가 죽은 뒤 작성된 재산목록은 그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무렵에는 이미 샤르댕이 화가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40년 그는 루이 15세 를 알현하고 그에게 〈일하는 어머니 La Mère laborieuse〉·〈식사 전의 기도〉를 바쳤는데, 이 두 작품은 현재 모두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4년 뒤 그는 마르게리트 푸제와 재혼했으며 그로부터 30년 뒤에 그녀를 모델로 하여 지금 루브르 박물관의 소묘 전시관에 걸려 있는 파스텔화를 그려 그녀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이무렵에 샤르댕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는데, 루이 15세는 현재 뉴욕의 프릭 컬렉션에 들어 있는 그림일 것으로 생각되는 〈새오르간 La Serinette〉을 받고 1,500리브르를 지불했다. 샤르댕은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경로를 따라 계속 꾸준히 승진했다. 아카데미의 동료들은 살롱전(아카데미의 공식 전람회)에서 그림을 전시하는 일을 처음에는(1755) 비공식으로, 뒤에는(1761) 공식으로 그에게 맡겼는데, 살롱전은 1737년 이래로 2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려 왔으며 샤르댕도 성실하게 참가해왔다. 그가 백과전서파의 한 사람이자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와 만난 것은 바로 공직에 있을 때였는데, 디드로는 그가 그토록 감탄한 '위대한 마술사' 샤르댕에게 기꺼이 최대의 찬사를 보내는 미술 비평을 쓰기도 했다
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요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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