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잔혹동화가 꽤 있습니다.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노간주 나무’라는 동화도 잔혹한 이야기입니다.
전처의 아들을 죽이고 그 아들이 다시금 복수를 하는,
문제는 죽이고 죽는 장면이 너무나 천연덕스러운데 있습니다.
죽고 죽이는 사람도 문제지만 죽고 죽는 사람들 곁의 사람들도
참 눈부시게 천연덕스럽습니다.
거기다가 흐르는 노래는 어떻구요.
그런 잔혹동화에다가 비교해보면
오늘 담휘랑 함께 본 어거스트 러쉬는 순수무구한 배추나비 같은 동화입니다.
음악에 대한 <담론>이 특별한 귀를 가진 주인공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모든 것에는 소리가 있어ㅡ 밀밭에서 밀이 바람과 함께 빚어내는 소리를 듣는
천진한 아이의 모습을 찍은 장면은 정말 아름답더군요.
(그 아름다운 장면 사진을 보면서 내내 생각했던것은
불행히도 그 바람이란 명사가 합해지면 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흔들리게 되고 그 흔들거림은 우리의 명치를 두드리는 것일까? 였습니다.
바람에 미묘한 느낌을 부과하셔도 괜찮아요.ㅎㅎ)
음악을 밥보다도 더 좋아해야 하고 자신보다 더 좋아해야 한다는
그래야 진정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진정한 악역도 아닌 그렇다고 선인도 아닌 미묘한 배역의 로빈 윌리암스에 의해
발효되어집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 그러나 아이의 음악성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회색인 역할을 그가 멋지게 해냅니다.
귀에다 피어싱을 줄줄이 달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늙은 남자,
그의 자글자글한 늙음이 그에게 천박스런 역할을 어울리게 만들더군요.
어거스트 러쉬의 엄마, 첼리스트
어거스트 러쉬의 아빠. 기타리스트이자 싱어
이 둘이 처음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은 뉴욕,
아무도 없는 빈 옥상에서의 우연한 만남도 만남이지만
달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러쉬의 아빠,
즉 음악에의 교감으로 시작되지요.
11년 이란 시간을 엄마 아빠는 러쉬가 살아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랑에 대한 상실감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조차 버린 채
그저 쓸쓸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이 버린 음악을 그 시간 동안, 러쉬가 대신합니다.
(약간 오버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ㅋ~~)
키타도 하다못해 피아노도 없는 고아원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그 음들이 언젠가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줄 거라는 신념으로 말이지요.
러쉬는 고아원을 걸어 나와 음악이 부르는 곳을 향해 걷다가
뉴욕에 오게 되고
처음 키타를 보던 날 키타를 연주하게 되고
처음 피아노를 쳐보던 날 무수한 곡을 작곡해내는 천재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줄리아드 음대를 다니게 되고
그가 작곡한 레퀴엠이 뉴욕필하모니커에 의해 연주 되고
아이가 들을 것이라는 혹은 아들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첼로를 시작하게 된
엄마 라일라도 뉴욕필과 협연을 하게 됩니다.
라일라를 그리워하던 루이스 역시 돈만 버는 현실을 접고
음악으로의 귀환을 하지요.
사랑으로의 귀환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러쉬는 연주하고 그 연주에 홀려서 라일라는 다가오고
루이스 역시 11년 전의 어느 날처럼 차에서 내려 공원으로 달려와
아들이 연주하는 음악 속에서 재회를 하게 되지요.
그렇지요.
우리가 연극이나 영화 혹은 글에서 가장 생명 없어 하는,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네 삶속에서는 참으로 목말라하는
<우연>은 이 영화의 아주 단단한 컨셉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음악은 절대 단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타고난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 하더라도 갈고 닦음이라는 엄청난
시간과의 싸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며칠 전 신문에서 백건우가 지금도 여전히 하루의 많은 시간을
피아노와 함께 보낸다는 것,
그리고 연주 할 때 마다 매번 새롭다는 것,에 대해서
오롯한 감동을 느낀 소생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러쉬는 영화 속에서, 영화 보는 동안 내내, 상식을 짓밟아줍니다.
(앗, 내게도 이런 메조히즘 구석이?)
그리고 멋지게 음악만을 향해서 비상합니다. 천재의 비상,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그 거대 도시인 뉴욕에서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그들을 이어주는 음악이라는 선은
생활인인 우리의 눈에는 샤롯의 거미줄 만큼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느다란 선은 그들에게 아주 선명하고 강해서
그럼, 그럴수 있지,
내가 눈이 어두운 게야, 했다는거지요.
영화도 향수 비슷합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는 탑노트는
영화를 보는 동안을 뜻하지요.
소생처럼 몰개성하거나 몰분석적인 사람은
탑노트의 안녕하세요에 거의 취해있곤 합니다.
왜 이렇게 너그러운지 소생도 참 한심할 때가 많다니깐요.
영화를 보고난 후의 미들 노트 (하트노트)ㅡ
향수의 구성요소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후의 향ㅡ는
약간 정신이 든 후라선지 탑 노트의 시간보다는 예리해집니다.
하여 음악이나 소리에 대한 그 아름답고 화려한 표현들을 떠올리며
미들노트의 향에 속한 체 머물고 싶었으나
어가스트 러쉬의 향에서는 미들 노트가 없더군요.
미들노트가 없는 향수에서 베이스 노트를 기약할수는 없는 법,
라스트노트는 무엇보다 개인이 체취와 버무려진 독특한 색채를 지닌
변형된 향기이니
같은 향수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게 되지요.
그나저나 12월은 성냥팔이 소녀부터 시작해서
산타할부지 까지
별이 왕성한 동화의 계절이니
한번 쯤 동화에 푸욱 젖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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