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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y Darling Clementine(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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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요인 이 노래를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깊은 계곡에서 광석을 캐는 광부/ 아버지는 포티나이너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다. '포티나이너(Forty-niner)'는 골드러시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사람을 이르는 말로, 가진 것 없이 초라해져만 가는 자신을 자조하며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였다. '포티나이너'란 골드러시가 극에 달했던 1849년에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사람들을 말한다.
1848년 1월 23일, 캘리포니아 북부 아메리카 강변의 제재소에서 일하던 한 목수에 의하여 시작된 골드러시는 당시 미국 사회를 열병으로 끓어 오르게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아메리카 강변으로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공무원도 있었고 신문기자도 있었으며, 군인, 의사, 판사 등 상류층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가 직장을 팽개치고 노다지를 캐기위해 서부로 서부로 향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신문사가 휴업을 하고,선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배가 운항을 중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유럽, 남미, 중국 등 외국에서도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광부가 되어 1848년부터 1858년까지 약 10년 동안 5억5천만 달러의 금을 캘리포니아에서 캐냈다. 이것은 지금 시세로 환산해 보면 실로 엄청난 액수이지만,'포티나이너' 모두가 거부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거친 노동과 빈약한 식사로 인한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하루종일 뼈가 부서지게 일을하고서도 밤에 돌아가 쉴 곳도 마땅찮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허술한 막사에는 독사가 똬리를 틀고 있기 일쑤였고, 의복도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이 피땀 흘려 캐낸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허탈감에 사로잡힌 '포티나이너'들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노랫가락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는 한 포티나이너에겐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이렇게 시작하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포티나이너'들의 슬픔과 눈물이 담긴 상실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3.1운동 직후라고 한다. 소설가 박태원에 의해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가사가 바뀐 이 애조의 노래는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중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기 시작하였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언제 들어도 애틋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 정다운 노래의 나뭇가지에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날개 접힌 가오리연처럼 얽혀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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