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원혼처럼 떠도는
셀 수 없이 많은 뽀샵 심령 사진들과 CG 귀신 동영상들,
거기에 공포영화 제작 현장의 배우와 스탭들이 하나씩 의문의 살해를 당한다는
잘 알려진 도시괴담을 조합하면
바로 이 태국산 공포영화 [원혼 The Victim]이 탄생한다.
[원혼 The Victim]의 기본 구성은
범죄재연 현장과 영화촬영 현장의 절묘한 액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스스로 자기반영적인 공포영화라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겠다는
이 영화의 거칠 것 없는 솔직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같은 메타호러 계열인 [스크림]이나 [뉴 나이트메어]가
기발한 각본과 창의적인 살인 장면으로
기존의 정형화된 공포영화의 관습들에 대한 일종의 비틀기를 시도했다면
[원혼 The Victim]은 기존의 익숙한 호러 이미지들을
별 고민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프레임 안에 툭툭 던져줄 뿐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여우령]의 설정, [링]의 희생자들의 끔찍한 얼굴,
[회로]의 벽에 붙은 영혼, [환생]의 다굴 귀신(!) 등
잘 알려진 일본 공포영화의 명장면들을 베꼈다는 혐의를 물을지 모르겠으나
이미 영화 전체가 호러와 관련된 모든 영상 이미지들(영화, 동영상, 사진 등등)로 이루어진
하나의 콜라주라고 볼 수 있는
[원혼 The Victim]을 기소(!)하기는 힘들 것같다. --;;
결국 무엇을 얼마나 많이 도용했느냐가 아니라
인용된 이미지가 얼마나 충분히 무서웠느냐 하는 문제만이
영화의 배심원인 관객들에게 남는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요즘에 남발되는(비단 [원혼 The Victim] 뿐만이 아니라)
판에 박힌 공포 이미지들에 대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있다.
예를 들어 결코 앤디 워홀의 먼로가 될 수 없는
무한복제된 사다코의 얼굴 같은 경우
[식스 센스]의 소년이 매일 보는 귀신에 익숙해지듯
이제 관객에게 친숙해진 그녀의 얼굴이
언제까지고 공포심을 유발시킬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2007년 현재
우리 시대의 공포영화는 마치 저주받은 흉가의 그것처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낡은 이미지의 유령들로 가득 차 있다.
[원혼 The Victim]은 그런 지금의 트렌드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공포영화 장르의 후발주자로서 맹목적인 따라 하기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수도 없이 헐리우드 영화를 짜깁기하고 패러디하던
홍콩영화계가 결국 무협영화 이외에도 홍콩느와르라는
개성있는 자신들만의 변종장르를 만들었듯
태국의 공포영화도 그런 과정를 통해서 [디 아이]나 [셔터]같은
나름 저력있는 공포영화를 만들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샴]이라는 태국산 공포영화가 곧 개봉한다는데
시즌이 되면 한 두 편씩 출현하는 태국 공포영화가
예전처럼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사다코의 각기춤이 떠나간 여름날의 극장가를
손목을 꺾으며 라마키얀([원혼 The Victim]을 포함, 태국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전통춤)을
추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태국여인의 서늘한 미소가 채우게 될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