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하면서 여러가지 난관에 봉착하지만 그 중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이 미수이다.
주워들은 건 있어서 막연히 미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미수로 짭짤한 재미 한두번 보고 나면 미수의 유혹은 벌거벗은 여인네와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은 정말 유혹에 약하다. 게다가 인간이기에 언제나 "좋았었을텐데..."의 긍정적인 방향의 가정법 시제만을 선호한다. 기억속에 남는것도 그런 기억뿐이지, 실패의 가능성이라거나 실제로 실패했던 기억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언제나 놓친 고기가 아깝듯이...
난 평생 카지노라는 곳에 두번 가봤다. 도박을 위한 게 아니라 그냥 여행을 하다 우연히 들른거지만... 처음 호주 카지노에 갔을때 정말 게임 룰도 모르고 두번째 베팅에 10배 수익이 난적이 있다. 집사람이 손을 끌고 나와버렸다. 그래야 산다고... 호주 여행중 교통비를 노름에서 딴돈(?)으로 충당했을 정도니...
두번째는 라스베가스에 업무차 혼자 갔을때이다. 집사람이라는 방패막이 없었던... 룰도 어느정도 알겠고...
우습게도 10번 베팅에 딱 한번 성공했다. 슬롯 머신도 주식과 비슷해서 크레딧(한번에 베팅하는 단위)이 적으면 그만큼 따는 돈도 적다. 이른바 풀빵을 하게되면 수백배까지 날 수 있다는 광고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슬롯 머신 앞에도 대문짝 만하게 써 있으니까. 로또 복권의 당첨확률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건 아무데도 써 있지 않지만^^ 우습게도 그렇게 게임을 하다 또 10배 넘는 수익이 나 버렸다. 집사람이 있었다면 끌고 나갔겠지만, 풀빵 베팅 세번인가에 10배 수익을 고스란히 날리고 말았다.
미수의 함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미수로 성공한자 미수로 망할 수 있다는 건... 알면서도 당하는 함정이 아닐까 한다. 미수로 얻은 수익이 내 돈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데 말이다.
미수는 2.5배의 레버리지 효과를 보장한다. (선물 옵션은 이보다 더 심한 레버리지이니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1억원을 투자해서 그 배가 넘는 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미수풀빵으로 우연히 내일 상한가를 가는 놈을 잡으면 본전 기준으로 30%가 넘는 수익(3천만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수익이 났다면 바로 그 순간 집사람한테 부탁해서라도 장을 떠나야 한다. 미수의 함정 때문이다. 1억원이 미수 풀빵으로 1억3천이 되고... 더 굴리고 굴려서.. 운이 너무 좋아서... 미수로 따블이 나서... 2억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최악의 경우 2억으로 미수 풀빵을 쳐서 하한가에 물릴 경우 -30% 손실이 난다. 그럼 6천만원이 공중에 붕 뜨고 만다. 이런거 두방이면 원금 까먹고 복리로 계산하면 8천만원 아래로 원금이 눈녹듯 사라져 버린다. 손절 잘하면 그럴리 없다고 하겠지만... 미수 풀빵하는 마음가짐으로 손절이라는 걸 할리도 없다.
주식은 오르거나 내리거나 50% 홀짝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확률 게임이니까... 언뜻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수학적 확률에 대해 조금만 고민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동전을 던져 앞이나 뒤가 나올 확률이 얼마일까?
50%... 절반... ?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동전을 10번 던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0번 모두 뒤가 나올 확률도 있고 또는 앞이 나올 수도 있다. 정확히 5:5 가 나올 확률은 극히 드물다. 왜 그럴까... 확률이란 횟수의 수렴이기 때문이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확률에 수렴(비례)한다. 동전을 10번 던져서 앞이 나올 확률은 50%가 아닐 수 있지만 100번, 1000번, 10000번으로 갈수록 50%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미수가 성공할 확률은 100%가 될 수도 있지만, 0%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종자돈은 한계가 있으니까. 미수라는 건 우리 종자돈을 몽땅 한꺼번에 원래 가치 이상으로 던진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성공확률은 50% 훨씬 이하로 떨어진다. 동전 10번 던져서 50%가 될 확률이 크지 않듯이 말이다. 게다가 미수는 3일 반대매매, margin call이라는 덫이 있으니 성공확률은 더 떨어진다. 기관이나 세력이 미수금 잔고를 확인하고 매매에 임한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Martingale 투자법이란 것도 있다. 100원을 투자해서 손실을 보면 200원을 투입하고, 또 손실을 보면 400원, 800원, 1600원식으로 베팅액수를 두배로 늘려가는 것이다. '밑천 많은 놈이 딴다'는 도박판 심리. 2004년 여름쯤인가 유명 사이버 애널 한명이 자신의 투자 초창기에 이 기법으로 선물투자에서 큰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걸 본적이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 뿐이다. 선물 투자에서 1억을 초기자금으로 하고, 손실이 나면 2억, 또 손실이 나면 4억식으로 베팅을 했다고 한다. 3연패를 하면 무려 8억을 투입해야 하고,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8연패를 하면 128억을 쏟아부어야 하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주식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게 왜 생존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비유를 하자면 주식시장의 생존이란...
- 동전을 던질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 카지노에서 풀빵 크레딧으로 풀베팅하지 않고 조금씩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다는 뜻이고...
- 무한 위험에 빠지는 고스톱이 아닌 언제든지 손절하고 나올 수 있는 포커 게임을 한다는 뜻이다.
이런 미수의 함정을 알고 나면 미수할 생각이 싹 사라진다. 물론 크게 한탕 해서 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강심장 도둑 심보가 아니라면...
같은 원리로 몰빵의 함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A,B,C 라는 세종목에 분산 투자를 하고 나면 우리는 늘 A라는 종목에서 수익이 난걸 B,C라는 종목이 깍아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A,B,C 세 종목 모두 수익을 내서 수익 극대화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그럼 또 유혹에 빠지게 된다. "A에 몰빵을 했다면..." 역시 위험한 가정법이다. "B나 C에 몰빵을 했다면 죽을뻔했네..." 라는 긍정적 사고방식은 온데 간데 없다. 고수들이 말하듯 포트는 수익 극대화가 아닌 위험 극소화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데 말이다.
포트의 효율성을 무시한체 몰빵을 하게되면 미수와 같은 효과를 낸다. 1억이 1억 3천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1억이 7천만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손실을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A,B,C 전종목이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A,B,C 중 손실 비율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평균적으로는 언제나 안전하다는 말이다. 몰빵을 한 경우라면 A,B,C 각각 -5,-4,-6%의 수익률일 경우 최악의 경우엔 -6%가 될 수 있지만, 포트를 구성했다면 최소한 -5%로 막을 수 있으니까...
미수와 몰빵 함정... 그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미수몰빵이다. 지금까지 말한 위험성을 딱 두배로 레버리지 효과를 내는 거다. 모아니면 도... 너살고 나죽기... 미수몰빵은 러시안 룰렛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과연 내가 목숨을 내걸고 머리에 총을 대고 그런 도박을 할 수 있을까... 못할거다. 하물며 레버리지 효과가 현물의 세배에 달하는 선물옵션은 어떨까? 돈 없는 개인이 파생하는 건 죽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나 자신도 미수를 극복하는데 8개월이 걸렸다. 아주 간단하게 막아버렸다. 자신의 주식 계좌를 증거금 100% 계좌로 돌려 운영을 하면 원천적으로 미수가 불가능하다. 이성적으로는 언제나 제어가 가능하지만 심리적으로 무너질때 (이성이 없을때) 자기 자신을 가둬두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아예 계좌 자체를 미수 불가 계좌로 만든거다. 또 한가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증권사는 미수를 사용하는 투자자를 좋아한다. 수수료도 레버리지 만큼 챙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별의별 짓을 다해 신용으로 풀빵을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개인투자자가 즐겨 사용하는 증권사일수록 레버리지 효과를 2.5배가 아닌 3-4배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빨리 수수료나 많이 내고 쪽박차고 장을 떠나라는 고리 뜯는 하우스와 같은 짓이다.
단타의 유혹도 비슷한 함정을 가지고 있다. 한때 단타만으로 꽤 많은 수익을 낸 적도 있다. 전체 포트의 5%가 넘는 수익을 단타로 냈었는데 우습게도 몇주만에 수익률은 0.1%도 되지 않았다. 단타로 난 수익은 단타로 나가니까. 노름판에서 몇판 크게 땄다고 그 판을 떠날때도 내 주머니속에 그 돈이 남아 있을까?
스윙 투자는 최소한 2보 전진 1보 후퇴의 기회라도 있지만, 당일치기 단타/초단타는 일보 전진 일보 후퇴, 심할때는 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거듭한다. 수익률이 들쭉날쭉이어서 장기로 따져보면 안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수와 몰빵, 또는 미수 몰빵, 단타... 공통점은 투자자의 욕심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욕심... 일확천금.
미수, 몰빵, 단타의 무한 위험을 알았다면... 아니, 단지 아는 수준이 아니고 피부로 느꼈다면 이제 그 위험 회피 수단을 찾아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미수, 몰빵, 단타와 같이 주식에서 느끼는 불합리한 위험 요소를 스스로 깨달을때까지 (단순히 나쁘다는 말을 듣는게 아니라) 자신을 설득하는 거다.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간 파계승은 무려 10년을 수도했는데도 한순간의 욕정을 이기지 못한 경우다. 참는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왜 안해야 하는지 '이해'를 한다면 황진이를 평생 곁에 두고 벗으로 삼았던 서경덕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역시 survival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난 서경덕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 참을 일이 생기면 참지 않고 저지른 다음 그 결과를 보고 나 자신을 설득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그럼 신기하게도 그런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 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진다.
주식에서 인내를 하라고 하지만, 인내보다 중요한것이 '이해'가 아닌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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