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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퇴 후 20년, 어떻게 살까 ?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17. 00:54

 

 

은퇴 후 20년, 어떻게 살까 1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꿈꾸고 있는 미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미 ‘경제적인 안정’은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비하는 필수 조건일 뿐, ‘꿈’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여기 진정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꿈꾸던 미래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미래는 준비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감사한지도 모르겠다.

함께라서 더욱 아름다운 노후 준비
테마가 있는 동호인 펜션

강원도 문막 오크밸리 인근에 아름다운 노후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펜션 단지를 만들었다. 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후원하며 만난 이들은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9명. 한국예술대학 교수 우광혁씨, 전직 여행작가인 송성수씨와 그의 아버지이며 사진 작가인 송재근씨, 잡지 편집장인 국견씨, 전 방송국 PD인 조도형씨, 도예가 최재희씨, KT에 근무하다 퇴직한 황상기씨, 광고대행사 사장 노봉조씨, 국방대 교수 유규열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같은 꿈을 꾸고 있다.
펜션은 4년 전 황상기씨와 송성수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장애인들을 초청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죠. 함께 살면서 펜션을 운영하고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고, 각자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고.”
넘쳐나는 숙박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음부터 신중하게 준비했다. 교통과 유동 인구, 편의 시설을 모두 고려해 현재의 위치로 결정하는 데만 1년이라는 시간이걸렸을 정도. 대출부터 건축까지 최대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해 평당 250만원 정도에 연면적 72평짜리 6동(객실 각 7개)를 지어 지금의 펜션 단지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이 최종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것은 ‘테마가 있는 펜션’.
“나 홀로 펜션은 이제 승산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 테마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특색 있는 펜션을 계획했죠.” 각기 자신이 가진 특기를 살려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종합아트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우광혁 교수는 세계악기박물관과 야외 공연장, 최재희씨는 도예공방, 송재근씨는 사진 스튜디오를 맡았고 이외에도 골프연습장, 찜질방 등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는 각 2동씩 황상기씨와 우광혁 교수의 펜션을 김강일씨가 위탁 운영하고 있고 다른 멤버들은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중. 환상을 현실로 실현시키고 있는 이들의 낭만적인 프로젝트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사뭇 기대된다.

1 컨셉트를 명확히 하라
전원생활을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동호인 단지를 시작하면 무산되기 십상. 노후 대비를 위해 펜션을 짓고, 장애인들을 후원하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테마를 만들어간다는 등의 구체적인 컨셉트가 있으면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2전담해서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 동호인 단지가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사공이 많기’ 때문. 동호인 중 믿고 맡길 수 있는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전담해서 추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들의 경우 황상기씨가 상주하면서 직접 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3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이들은 대출도 문화관광부의 연이자 3.5%의 ‘관광숙박진흥자금’을 대출받았다. 까다로운 서류 심사를 통과해야 했지만 그 덕분에 많은 비용을 절감했다. 또 굴착기 기술을 배워 직접 시공에 참여하여 건축비를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시골에 동하고 사람에 동하네
귀농 공동체, 장수하늘소 마을

서울, 부산, 수원 등 살아온 터전도 다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방사선사, 영어 선생님, PD, 자영업자로 살아온 환경도 다른 개성 강한 12가구가 같은 뜻을 품고 한 마을을 이뤄 살고 있다. 12가구 중 9가구가 모두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장수하늘소 마을은 대도시의 귀농인들이 만든 귀농 공동체. 장수군에서 순환농업 시범단지를 조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귀농의 뜻을 모은 9가구가 함께 ‘하늘소 영농조합’(출자금 1억4000만원)을 설립해 만든 마을이다. 마을 부지 조성, 전기·수도 시설 정비, 농기계 구입 보조 등 장수군에서 농사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지원하고 마을 주민들은 임대받은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다. 서툰 경운기 운전사, 괭이질 설익은 농부, 아직은 모두 실수투성이 초보 농사꾼들이지만 함께이기에 든든한 사람들. 비슷한 또래, 비슷한 정서의 사람들이 모였기에 나 홀로 귀농이 외롭지 않다. “예전에 남원 시골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주변에 온통 노인 분들뿐이라 대화할 상대가 없었어요.” 아파트에 틀어박혀 사는 거와 무슨 차이가 있나 싶어 얼마 못 가 도시로 돌아왔다는 배옥희씨는 아이들 교육 문제를 귀농 공동체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인근의 초등학교로 등하교하는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만도 큰 공부라는 것이 이곳 젊은 부부들의 공통된 생각. 토마토, 양상추, 감자, 고구마, 쌈 채소 등 저마다 일궈낸 수확량이 처음엔 적자를 못 벗어나더니 올해엔 서로 나눠 먹고 바꿔 먹을 수 있을 만큼 수확량이 늘어 따로 시장에 갈 일이 없을 정도라며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기쁨으로 답한다. 공동으로 퇴비를 구입하고, 고가의 농기계들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 농사가 한결 쉬워졌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을 회의가 열렸어요. 마을의 기본 원칙과 틀을 마련하던 단계라 마찰도 많았죠.” 예상치 못한 갈등 속에 한 발짝씩 양보하는 법을 터득한 장수하늘소 마을 주민들의 농촌에 대한 애정만큼, 마을에 대한 믿음만큼 하루하루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다.

1 나누기에 능해야 성공한다
같이 잘살아 보자고 간 사람들이 원수 사이가 되어 갈라지는 경우도 여럿 있다. 도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시골의 정서 속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느라 투자한 노력을 날려버리지 말고 내 쪽에서 양보하면 만사가 편하다.
2 땅을 나눈 후 소유자를 명확히 하라 부지 매입 후엔 반드시 필지 분할을 마칠 것. 지분 등기 형태로 놔뒀다가 일부 회원의 채무 문제로 지분 전체에 압류가 들어오거나 가등기가 설정될 수도 있으므로 재산 관계를 확실히 해둬야 한다.
3 기반 시설을 고려해 부지를 선정하라 기존 마을의 주민 관계를 생각해서 상하수도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 용수량이 전 세대원에게 가능한지, 동호인들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지하수 양을 계산해야 나중에 분란이 생기지 않는다.


 

은퇴 후 20년, 어떻게 살까 2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꿈꾸고 있는 미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미 ‘경제적인 안정’은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비하는 필수 조건일 뿐, ‘꿈’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여기 진정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꿈꾸던 미래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미래는 준비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감사한지도 모르겠다.

귀농을 위해 직업을 바꾸다
토지 컨설턴트가 되어 자기 집 설계하는 정달훈씨

“이제 집 지으면 평생 살 집인데,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잖아요. 내 손으로 벽돌 올리고, 내 손으로 꽃나무 심은 진짜 내 집을 짓고 싶어요.”
정달훈씨가 귀농을 결심한 건 10년 전 사업에 실패해 가족과 함께 아무 연고 없던 강릉으로 내려가 살면서부터다. 힘든 시기였음에도 바다가 있고 텃밭이 있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호박씨 심으면 호박 하나 열리고, 고추씨 심으면 고추 하나 열린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무슨 진리처럼 다가왔지요.”
강릉에서 5년 동안 귀농 준비를 틈틈이 하면서 그는 땅 전문가가 다 됐다. 강릉이라는 지역 특성상 통나무집이나 펜션을 짓는 공사는 흔한 풍경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자주 찾아오는 건축회사 사장과 친분을 쌓으면서 건축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주말이면 건축 현장에 밥 싸들고 찾아가 집 짓는 것 구경도 하고, 업계 사람들을 소개 받으면서 집 짓기는 물론 땅 고르는 법까지 귀농을 위한 A부터 Z를 하나하나 공부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에는 금세 도사가 되기 마련이듯 자금을 모아 회사를 창업하고 토지 컨설턴트로 이름을 올렸다. 고향인 경기도 가평 현리에 새 터를 잡고 자신과 같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토지 매매를 알선하거나 전원주택 건축을 대행해 주며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땅을 소개해 주었더니 집도 지어달라고 하대요.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사실, 남의 집으로 내 집 짓는 연습을 하는 셈이잖아요.” 짬을 내서 각종 건축 박람회에 가 친환경 건축 자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농사철엔 주변 농가에 가 일을 거들어 주면서 그야말로 실전에 가까운 귀농 공부를 하고 있다.

1 귀농은 삶의 연장이지 다른 삶이 아니다
처음에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내려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시골 생활에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근거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인연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갑자기 무릉도원에 안착한 듯 착각에 빠진다면 귀농한 의미가 없어진다.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의미가 있다.
2 내 집은 내가 짓는다는 생각을 갖는다 무턱대고 건축업자에게 내 집 짓는 일을 일임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관여해 진짜 내 집으로 만들어야 애착도 생기고 내가 살기 편한 집을 꾸밀 수 있다. 건축법도 어느 정도 공부하고, 관련 책도 많이 볼 것. 또한 무허가 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하므로 주의한다.


귀농을 허(許)하노라
토박이가 인정한 이방인, 노수길·조양화 부부

‘이도 저도 아니면 시골 가서 텃밭이나 가꾸며 살지 뭐.’ 전원생활이야말로 노년의 안락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인 양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고쳐먹을 것. 벌어놓은 돈이 아주 많거나 조용한 전원에서 외톨이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10년 전 사업을 정리하고 홀로 강화도로 내려온 노수길씨는 외지인이 아닌 온전히 ‘덕하리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7년의 준비 기간을 가졌다. 강화도에 내려가자마자 마을 이장댁을 찾아 주민들과의 물꼬 트기부터 시작한 그. 처음엔 시큰둥하던 마을 사람들도 마을의 경조사, 대소사는 다 찾아다니며 아는 척을 해오는 그를 보고 언제부터인가 막걸리 한 사발, 소주 한잔을 건네며 마음을 터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마을 사람들 눈에 그가 괴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산자락에 집터를 닦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7년을 생활했으니.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후에 집을 짓자는 심사도 있었고 집을 짓게 되면 내 손으로 설계하겠다는 마음에 집터와 똑같은 크기의 비닐하우스 안에 살며 소꿉놀이 하듯 화장실, 주방, 거실의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경향 하우징 페어, 동아전람과 같은 건축 박람회도 7년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따라다녔다. 아카시아나무 천지였던 산비탈에 자그마한 텃밭이 생기고, 정원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가자 서울에 남기를 고집하던 아내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이름을 따 ‘양화농원’이란 자그만 문패까지 내걸고 완성한 부부의 투박한 흙집. 앞뜰엔 여느 시골집과 같이 상추며 고추며 오이가 자라는 텃밭이, 뒤뜰엔 주말마다 찾아오는 도시 손님들을 위한 조경 잘 된 정원이 숨겨져 있다. 진짜 농사꾼이 되기 위해 지난해 농업 학교까지 수료했다는 노수길씨.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제집 찾은 손님을 어찌 빈손으로 보낼 수가 있냐며 손수 기른 채소들을 잔뜩 손에 들려주는 인심은 영락없는 시골 사람이다.

1 마을 이장을 찾아가라
무턱대고 집을 짓기보다 마을의 어른인 이장을 찾아 양해를 구할 것. 내 땅에 내가 집을 짓겠다는데 무슨 양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 눈엔 생판 처음 보는 외지인이 달가울 리 없다. 시골에서 외톨이로 살 게 아니라면 이장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터나갈 것.
2 귀농을 경험하기 전엔 귀농을 꿈꾸지 마라 최소한 사계절은 농사를 경험한 후 귀농을 결심하자. 벼농사까지 지어 먹는 거창한 것은 아니어도 텃밭에 쌈 채소 키워 먹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귀농 학교처럼 전문적인 교육 기관의 힘을 빌리거나 현지 주민들에게 자문을 구할 것.
3 전원생활, 현대 문명과 병행하라 전원생활이 은둔 생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 있는 자녀와 친구들과의 지속적인 왕래를 위해서는 자동차와 컴퓨터는 전원에서도 기본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배울 만한 것은 배우고 떠나라.


 

은퇴 후 20년, 어떻게 살까 3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꿈꾸고 있는 미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미 ‘경제적인 안정’은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비하는 필수 조건일 뿐, ‘꿈’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여기 진정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꿈꾸던 미래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미래는 준비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감사한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전체가 내 집
매일 여행하는 기분, 전국 전세 투어를 꿈꾸는 박경호씨

“자꾸 고향에 집착하니까, 서울에 집착하니까 노후가 점점 힘들어지는 거예요.” 푸르덴셜 라이프플래너 박경호씨는 서울에서 나 서울에서 48년을 산 서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그가 꿈꾸는 미래는 ‘서울을 벗어난 삶’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전원의 삶’이나 ‘귀농’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는 푸르덴셜 최고의 유지율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억대 연봉자임에도 현재 전셋집에 산다. “집에 집착하지 않으며 사는 게 우리 가족의 모토입니다. ‘house’는 중요하지 않아요. ‘home’이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생활비만 빼고 대부분의 돈을 노후 연금을 위한 상품에 넣어요. 집 사는 데 집착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번 돈으로 누릴 건 누리고 노후에 편하게 살자는 주의거든요.” 일이 버거워질 나이가 되면 상당 금액을 매달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해 놓아 항상 마음이 든든하단다. 그는 아이들이 다 자라 성인이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집 평수를 줄여 오히려 서울에 별장 개념의 집을 두고 전국 각지를 돌며 1~2년씩 전세살이(?)를 하는 게 꿈이다. 처음 입사할 당시 55세를 넘겨도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회사에 대한 그의 조건이었던 것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객 관리를 계속 하고 싶어 서울에 ‘잠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이고, 어차피 전세 자금은 사라지는 돈이 아니니까 죽기 전에 전국을 다 돌아보며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만나는 고객을 고객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고 지방 쪽으로 자꾸 인맥을 넓혀 가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겠어요. 남는 게 시간이면서 그 시간이 또 얼마나 아깝겠어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 만나고, 많은 것 배우며 살고 싶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읽지 않고 놔두는 책이 있다면 멀리까지 찾아가 받아오고, 각국으로 여행을 다닐 때면 오카리나 같은 관악기들을 사서 모으고 있다. 노년에 서예를 배울 계획으로 벼루도 장만해 두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매일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사는 꿈같은 삶이 그에겐 너무도 ‘현실 가능한 미래’다.

1 연금 보험에 투자하되 현재도 즐겨라
국민연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 요즘, 개인적으로 노후 연금 상품에 가입해 두는 게 좋다. 매달 불입금이 높을수록 나중에 누릴 수 있는 금액이 커진다. 하지만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행을 위한 비용이나 문화비는 생활비에 포함시키지 말고 따로 항목을 만들어 떼어 놓는다.
2 전셋집을 구할 땐 최고를 택하라 어차피 되돌려받는 돈이니까 교통이나 주위 환경을 따져 최고의 입지에 전셋집을 얻는다. 사람들도 초대하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내려오게 해 여유로운 삶을 누린다. 전세 계약 상황을 잘 체크하는 것은 기본.
3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아라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살려면 인맥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자들에겐 그 기회가 적은 편. 남편의 인맥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 사람의 노년을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건강 찾아 떠난 제2의 고향
필리핀 은퇴 이민 도전이 준 행복 이민 1호 강한철·황화선 부부

은퇴 이민 1호 격인 강한철, 황화선 부부의 얼굴에는 늘 웃음꽃이 핀다. 2004년 9월, 필리핀 마닐라에 이민을 온 후
아침저녁의 산책, 영화 감상, 여행, 독서, 테니스 등 한국에서는 생각지 못한 여유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안정적이고
즐거운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는 강한철씨가 필리핀행을 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만성 이명증을 위한 휴식. 그 후 서울의 빨리빨리 문화, 각종 경조사와 꽉 짜인 인간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1년 반 정도를 푹 쉬고 나니 이비인후과에서 불치병이라고 했던 이명 증상이 거의 고통을 못 느낄 만큼 치유되었다. 그 덕에 지금은 은퇴 이민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서
자신감을 갖고 남들에게 조언도 해주곤 한다. 하지만 처음 55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필리핀 이민을 준비하면서는 두려움도 있었다.
“필리핀에 오기 1년 전부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사람들의 해외 은퇴 이민 동기와 추세, 이민 대상국들을 조사했어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한평생을 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500만 명 이상이라는데 은퇴 후 몇 년 정도 외국 생활을 하는 것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긴 휴식을 마치고 그는 요즘 부동산 중개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임대 가격 추세, 지역별 가격차 등을 조사하며 바쁘게
뛰고 있다. 한편 아내 황화선씨는 정착 초기 한국인 하숙집에 머물던 경험을 살려 올 4월부터 연수생과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숙집을 운영하는 등 부부 모두 새로운 일에 또 다른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제 2년차에 접어드는
필리핀 생활, 낯설기만 했던 현지인들에 대한 애정도 깊이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가구당 월 30만원 미만의 수입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스트레스가 적고 훨씬 더 낙천적으로 살고 있는 모습이 부럽더군요. 무엇보다 우리에겐 거의 사라져 버린 전통문화와 축제들이 그대로 이어지고 시골에 가면 손님을 반기고 후대하는 전통이 살아 있어 종종 감동을 받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그들이 말하는 필리핀 노후 생활의 행복은 다양한 취미 생활과 사회적 경험들을 갖게 되고, 여성들은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것. 대신 남은 시간들을 이렇듯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에 투자하게 되었다. 은퇴 이민이란 ‘도전’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겪은 부부는 이제 인생의 2라운드를 위한 새로운 책장을 한 장 한 장 여유롭게 넘기는 중이다.

1 해외에서도 쓸 수 있는 기술을 가져라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곳이라는 생각에서 귀족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심을 버려야 한다. 특히 국내에서 안정된 사업체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는 해외에서도 쓸 수 있는 기술이나 사업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 제격이므로 자신을 먼저 돌아보도록 한다.
2 외국어 공부 등 ‘생활’을 위한 준비하기 아무래도 은퇴 이민 생활을 하는 데는 해외여행을 자주 했거나 영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유리하다. 평소 영어 케이블 TV 시청, 쉬운 영어 소설 읽기 등 틈틈이 취미 삼아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3 살고자 하는 수준의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라 이민 정착 비용은 주택의 자가 또는 월세 여부, 골프 등 취미 생활은 무엇이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일례로 생활비는 마닐라를 기준으로 부부 2인이 알뜰하게 살면 월 100만원 미만으로 윤택하게 살 수도 있고, 월 250만 원 정도면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두고 한 달에 10여 회 골프를 치는 생활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맞는 규모의 생활을 정확히 그린 뒤에 노후 자금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출처;eroom.korea.com/bs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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