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테크/한국의국보, 보물,기념물,천연기념물

[스크랩]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2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09:08

서도소리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명     칭 서도소리(西道소리)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수량/면적
지 정 일 1969.09.27
소 재 지 서울 서울전역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설     명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즉 서도지역에서 불리워진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하며,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서도잡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눈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안주애원성 등이 있는데, 조선 전기부터 서도지방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그 설움을 푸념으로 읊은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평안도 소리는 일반적으로 레, 미, 솔, 라, 도의 다섯 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떠는 음인 ‘라’에서 완전 5도 내려가는 것으로 선율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사설이 길며 장단도 일정하지 않아 적당히 사설에 맞추어 치는 것이 특징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이 있는데 난봉가와 산염불이 유명하다. 황해도 소리는 평안도 소리와 함께 서도소리의 일반적인 선율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선율진행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또한 평안도 민요에 비하여 일정한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밝고 서정적이다.

서도잡가는 서도입창에 반대되는 말로서 앉아서 부르는 소리이며, 공명가, 사설공명가, 초한가, 제전, 추풍감별곡 등이 있는데 이 중 공명가가 유명하다. 서도잡가는 긴 사설을 가지고 있으며, 장단은 노래말의 자수에 따라 불규칙적이다. 끝을 여밀 때는 반드시 수심가조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며, 위의 음은 흘려 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들 소리를 느긋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된다. 서도소리 창법은 좀 특이한데 콧소리로 얇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소리로 길게 쭉 뽑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콧소리를 섞어서 가만히 떠는 소리 등이 특징이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함께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서도지방민들의 생활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소리로, 노랫가락에도 그들의 생활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서도소리에 지정되어 있는 것은 평안도 민요인 ‘수심가’, 시창인 ‘관산융마’, ‘배뱅이굿’ 등이다.
 

 

 

 

관련 자료 

http://blog.daum.net/sbkst/2777734
서도소리1

서도소리 西道소리
지정번호
: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지정연월일
:
1969년 9월 27일
  보 유 자
:
오복녀(吳福女, 작고), 이은관(李殷官)
  전 승 지
:
서울특별시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 즉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잡가 등 관서(關西) 지방의 소리를 가리킨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지방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 하기로 이름이 있었고 기밀경을 지어서 잘 불렀다 한다. 그 뒤 평안도 용강 소리꾼 김관준(金寬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이 나서 일제때 까지 크게 불리웠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 받았고, 그 뒤 김정연(金正淵,작고), 오복녀(吳福女,작고), 이은관(李殷官)으로 이어오고 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된 잡가(雜歌), 한시(漢詩)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눌 수 있다. 민요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로 갈라진다.
평안도 민요로는 수심가(愁心歌)·엮은수심가·긴아리·잦은아리·안주애원성(安州哀怨聲) 등이있으며, 황해도 민요로는 긴난봉가·잦은난봉가·병신난봉가·사설난봉가·산염불(山念佛)·자진염불·몽금포타령 등이 있다. 또 서도잡가로는 공명가(孔明歌)·사설공명가·초한가(楚漢歌)·제전(祭奠)·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등이 있으며, 시창(詩唱)과 비슷한 관산융마(關山戎馬), 배뱅이굿도 여기에 속하며, 공명가는 판소리 적벽가(赤壁歌) 중 제갈공명이 남병산(南屛山)에서 동남풍을 비는 대목의 사설을 서도소리 가락에 얹은 것이고, 산염불은 무가(巫歌)의 염불요(念佛謠)가 속요화(俗謠化)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수심가는 비교적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전체 서도소리의 척도가 된다. 이 소리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무렵에 성천(成川)의 명기(名妓) 부용(芙蓉)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조선초기부터 이 지방 사람들에게 벼슬길을 막아버리자 그 설움의 푸념으로 읊어진 넋두리였는지도 모른다. 관산융마는 영조 때 신광수(申光洙)의 공령시(功令詩)를 율조(律調)에 올려 부르는 소리로 서도 시창(詩唱)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읊은 사람은 평양 기생 모란(牡丹)으로 전하고 있으며, 그 성조(聲調)가 처량하고 우아하여 많은 기생들이 모창(倣唱)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도 본바닥 창곡가(唱曲家)가 아니면 그 진수를 꿰뚫지 못했던 것이다.
추풍감별곡은 작자 미상의 회장소설(回章小說) 추봉감별곡(秋鳳感別曲)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조(唱調)는 가사나 긴잡가처럼 고르게 다듬어진 장단과 변화성 있는 선율은 없으며, 구성지게 읊는 규방가사(閨房歌辭)의 성조(聲調)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도조의 처량함과 우아함을 겸유한 목소리가 아니면 부르기 어려운 소리이다. 그밖에 긴아리와 자진아리는 평안도 용강과 관서지방의 구전민요로서 토속적인 소박한 맛이 간직된 소리이다. 안주애원성은 평안도 안주지방에서 베를 짜기 위하여 실을 잦던 아낙네들이 부르던 노래라고 하는데, 함경도 민요 애원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주애원성이라 했다 하며, 부녀자들의 고달픈 생활에 대한 애환이 가사 속에 들어있어 밝은 내용의 소리는 아니지만 가락이나 장단면에서는 수심가나 긴아리보다도 오히려 경쾌한 맛을 보여 준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면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고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소리들을 느릿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 즉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잡가 등 관서(關西) 지방의 소리를 가리킨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지방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 하기로 이름이 있었고 기밀경을 지어서 잘 불렀다 한다. 그 뒤 평안도 용강 소리꾼 김관준(金寬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이 나서 일제때 까지 크게 불리웠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 받았고, 그 뒤 김정연(金正淵,작고), 오복녀(吳福女,작고), 이은관(李殷官)으로 이어오고 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된 잡가(雜歌), 한시(漢詩)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눌 수 있다. 민요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로 갈라진다.



평안도 민요로는 수심가(愁心歌)·엮은수심가·긴아리·잦은아리·안주애원성(安州哀怨聲) 등이있으며, 황해도 민요로는 긴난봉가·잦은난봉가·병신난봉가·사설난봉가·산염불(山念佛)·자진염불·몽금포타령 등이 있다. 또 서도잡가로는 공명가(孔明歌)·사설공명가·초한가(楚漢歌)·제전(祭奠)·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등이 있으며, 시창(詩唱)과 비슷한 관산융마(關山戎馬), 배뱅이굿도 여기에 속하며, 공명가는 판소리 적벽가(赤壁歌) 중 제갈공명이 남병산(南屛山)에서 동남풍을 비는 대목의 사설을 서도소리 가락에 얹은 것이고, 산염불은 무가(巫歌)의 염불요(念佛謠)가 속요화(俗謠化)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수심가는 비교적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전체 서도소리의 척도가 된다. 이 소리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무렵에 성천(成川)의 명기(名妓) 부용(芙蓉)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조선초기부터 이 지방 사람들에게 벼슬길을 막아버리자 그 설움의 푸념으로 읊어진 넋두리였는지도 모른다. 관산융마는 영조 때 신광수(申光洙)의 공령시(功令詩)를 율조(律調)에 올려 부르는 소리로 서도 시창(詩唱)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읊은 사람은 평양 기생 모란(牡丹)으로 전하고 있으며, 그 성조(聲調)가 처량하고 우아하여 많은 기생들이 모창(倣唱)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도 본바닥 창곡가(唱曲家)가 아니면 그 진수를 꿰뚫지 못했던 것이다.

 

추풍감별곡은 작자 미상의 회장소설(回章小說) 추봉감별곡(秋鳳感別曲)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조(唱調)는 가사나 긴잡가처럼 고르게 다듬어진 장단과 변화성 있는 선율은 없으며, 구성지게 읊는 규방가사(閨房歌辭)의 성조(聲調)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도조의 처량함과 우아함을 겸유한 목소리가 아니면 부르기 어려운 소리이다. 그밖에 긴아리와 자진아리는 평안도 용강과 관서지방의 구전민요로서 토속적인 소박한 맛이 간직된 소리이다. 안주애원성은 평안도 안주지방에서 베를 짜기 위하여 실을 잦던 아낙네들이 부르던 노래라고 하는데, 함경도 민요 애원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주애원성이라 했다 하며, 부녀자들의 고달픈 생활에 대한 애환이 가사 속에 들어있어 밝은 내용의 소리는 아니지만 가락이나 장단면에서는 수심가나 긴아리보다도 오히려 경쾌한 맛을 보여 준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면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고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소리들을 느릿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서도소리2

 

 

 

 

관련 자료 

http://blog.daum.net/arttradition/10780297
 
 관서 향토가요 서도소리 보유자 이춘목씨

 

관서지방인 황해도와 평안도의 향토가요인 서도(西道)소리는 1969년 9월 2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이 되었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지방민들의 생활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 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 하기로 장안에까지 이름이 났으며 기밀경을 지어 잘 불렀다고 한다. 그뒤 평안도 용강(龍岡) 소리꾼 김관준(金官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이 등장하여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에 서도소리가 크게 성창(盛唱)되었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받아 명창으로 이름을 떨쳐 중요무형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그가 타계한 뒤 김정연, 오복녀가 인정되었으며, 김정연과 오복녀가 타계한 현재에는 이은관, 이춘목, 김광숙이 보유자로 되어 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와 좀 긴 통절형식으로 된 잡가, 한시를 읊는 것 같은 시창(詩唱)으로 구분한다.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로 갈라진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愁心歌), 엮음수심가, 긴아리, 잦은아리, 안주애원성(安州哀怨聲) 따위가 있는데 이 가운데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서도의 정서가 담긴 소리 말을 매우 길게 질러내는 구슬픈 수심가 가락은 서도소리 가운데 으뜸으로 치며 남도소리(南道소리) 중 육자배기와 함께 민요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엮음수심가는 수심가와 가락이 같으나 긴 소리 말을 촘촘히 엮어 나가는 것이 다르다. 긴아리는 향토색이 짙은 농요였으나 소리말과 가락이 서정적이어서 소리꾼들이 즐겨 불러왔다. 잦은아리는 긴아리를 빠른 장단으로 부르는 변주형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잦은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山念佛), 잦은염불, 몽금포타령 따위가 있다. 이 가운데 난봉가와 산염불이 유명하다. 서도소리의 선율은 흔히 수심가토리(愁心歌토리)라 하여,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가락으로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서도소리 보유자 이춘목(여, 56세. 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 한신아파트 105-1103)은 1953년에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9살 때에 식구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국악 고등학교 11기생으로 졸업한 뒤에 국립국악원에서 여섯 해 동안 연주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76년에 서도 소리 예능 보유자인 고 김정연선생의 전수자로 공부를 시작해서 1980년 12월에 이수 과정을 끝냈다. 1982년 4월 1일 전수조교로 지정을 받은 후 2001년 11월 30일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드니 금일도 상봉에 임 만나 보겠네.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임 만나 보겠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성황님 조른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성황님 조른다.


장산곶은 황해남도 용연군(龍淵郡) 서쪽 끝에 위치한 곶으로, 멸악산맥이 서쪽으로 길게 뻗어 황해연안에 돌출한 첨단부이다. 조선시대 아랑포영(阿郎浦營)과 조니포진(助泥浦鎭)이 위치했으며, 수군만호가 한 사람 배치되던 국방상 요지 중의 하나였다. 앞쪽에는 대청도(大靑島)·소청도(小靑島)·백령도(白翎島) 등이 있고, 북쪽에 몽금포(夢金浦), 남쪽에 구미포(九味浦)가 있다. 해안의 흰 모래사장과 주변에 송백의 삼림경관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예로부터 백사정(白沙汀)으로 불리던 명승지였다. 곶의 산정에는 국사봉(國祀峰)이 있고, 그곳의 장산곶사(長山串祠)라는 사당에서는, 소용돌이가 심하여 위험한 이곳 해안에서의 무사고를 비는 제사를 봄·가을에 지냈다. 이러한 장산곶의 설화를 노랫말로 부르는 소리가 구성지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서도소리의 전승을 위해 오늘도 애를 쓰고 있는 이춘목씨. 학창시절에 선생님들께 체계적인 국악교육을 받은 후에 이정범선생과 황재기선생에게 설장고와 농악을 사사하기도 했다. 항상 노력을 하는 소리꾼으로 소문이 나 있듯이 1995년부터 1998년까지 6회에 걸쳐 이춘목 서도소리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1996년에는 광명시민대상을 수상하고, 1997년에는 광명시민국악단 단장을 맡았다. 그 외에 많은 공연으로 서도소리의 보급에 힘을 쓰고 있는 이춘목씨는 현재는 (사)서도소리보존회 부이사장과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예총 광명지부 부지부장, 광명시문화예술위원 등을 맡아보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서도소리의 보존, 전승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녀의 포부처럼 더 많은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 : ..
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