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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적 355호 대덕 계족산성-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10:11
342 대덕계족산성 사적 355호 대전 대덕구 미상
 
대전시 장동 계족산(해발420m)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99년 발굴을 통해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의 높이는 약 7∼10m 가량 되며, 동·서·남쪽에 문터를 만들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토기임이 밝혀졌다. 이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계족산성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신라가 쌓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6세기 중·후반 신라나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관련 자료 

http://tong.nate.com/ONIREAN/41722207
 
 
조망 경관이 아름다운 사적 355호 계족산성
▲ 사적 355호 계족산성. 성의 길이는 1,037m이다.
ⓒ 안병기
사적 355호 계족산성은 해발 423.6m 정상에서 갈라져 3km가량 능선으로 이어지는 420m 높이 봉우리의 산정에 있다. 산성의 길이는 1037m. 높이는 약 7∼10m가량이며, 동, 서, 남쪽에 문터가 있다.

어제(14일)는 등산 겸해서 계족산 자락에 있는 계족산성을 가기로 했다. 산성은 내가 사는 곳에서 왕복 10km가량 되는 거리에 있지만 이날은 좀 멀리 돌아가기로 했다.

대청호반을 끼고 있는 계족산 자락 아래 마을들은 가을 경치가 특히 아름답다. 천개동 마을, 효평동 마을, 이현동 마을을 굽이굽이 지나쳤다.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들이 마을 풍경을 한껏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다.

너무 느긋하게 걸어버린 탓일까.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산성에 도착했다. 아침 8시 반에 길을 나섰으니 무려 7시간 가까이 돼서야 도착한 셈이다. 남문터로 드나들던 평상시와는 달리 오늘은 반대쪽에 있는 북문 근처로 오른다.

▲ 남문 근처에서 우측으로 바라본 대청호.
ⓒ 안병기
▲ 성 중간 쯤에서 바라본 원경. 제일 뒷쪽에 보이는 산이 옥천 장용산이다.
ⓒ 안병기
▲ 성 중간 쯤에서 좌측으로 바라본 대청호.
ⓒ 안병기
조망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계족산성

계족산성은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정에 올라서서 대청호 쪽을 향하면 옥천 장용산이 건너다 보이고 고개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면 대전 식장산이 보인다. 대청호를 등지면 대전 전민동과 연구단지가 생생하게 다가오고 그 너머에 아스라이 계룡산 천왕봉이 있다.

청주 상당산성이 조망하기에 좋다고 하지만 계족산성에는 그곳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대청호수의 파란 물빛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바꿔준다.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혹시 리아스식 해안을 끼고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는 남해안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산 아래 펼쳐지는 파란 호수를 바라보다 눈이 시리면 호수 옆으로 병풍처럼 이어지는 능선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시가지를 바라보기도 한다.

시론과 이미지론으로 유명한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이란 책 속에서 이렇게 높은 곳에 서서 눈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가리켜 '지배자적 시선'이라 지칭했다. 내려다본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자신의 삶이 뿌리내리고 있는 대지를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1년에 몇 차례씩이나 이곳에 오는 이유는 이곳이 주는 조망의 즐거움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 발굴중인 우물과 저수지 터.
ⓒ 안병기
정상부에서 동벽으로 난 길을 200m가량 내려가면 물을 담수하여 사용하도록 시설된 우물터와 저수지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산성 안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런 안내판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째 지리하게 계속되고 있지만 발굴 조사는 언제 끝이 나는지 알 수 없다.

현재까지 발굴된 결과만 봐도 저수지의 규모는 상당히 크다. 어떻게 1300여 년 전이나 되는 옛날에 이 정도의 산 높이에서 저런 우물터를 발견해낼 수 있었을까. 우물의 존재를 먼저 확인한 후 성을 쌓았던 것일까. 무작정 성을 쌓고 난 다음에 우물을 찾았던 것일까.

이 정도의 물의 양을 비축할 수 있었다면 적은 숫자의 병력으로도 외부의 많은 적에게 완강하게 맞서서 농성을 벌이며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 북문 근처의 성벽.
ⓒ 안병기
▲ 북문을 지난 등산객이 성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 안병기
어느 나라가 성을 쌓았을까

북문 근처에는 장대지(將臺址)로 추측되는 곳과 건물지가 여러 군데 있다. 실제로 북문 근처에서 장대지를 포함해서 10개의 건물터 발견되었다고 한다.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 등이 발견되어 성이 조선시대까지 줄곧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동안, 이 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1999년 발굴 조사 결과 신라성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신라성이 아니라 백제부흥군이 활동했던 옹산성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661년 9월25일에는 회복군이 점령하고 있던 전략적 요충지인 옹산성(대전 계족산성)은 신라군 주력부대의 공격을 받아 불과 이틀 만에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내고 함락되었다 - 이도학 저 <살아있는 백제사> 중에서

<삼국사기> 김유신조에는 옹산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꽤 길게 서술돼 있다. 서기 661년 고구려를 치러가던 신라군을 백제의 '잔적'들이 옹산성(瓮山城)에서 가로막는다. 김유신은 성을 즉각 포위하고 사람을 시켜서 성 아래에 가까이 가게 하여 적장에게 말한다.

너희 나라가 공손하지 못하여 대국(大國)의 토벌을 당하였다. 명령을 따르는 자는 상을 주겠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 지금 너희들은 홀로 외로운 성을 지켜 어찌하고자 함인가? 끝내 반드시 패망할 것이니 성에서 나와 항복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귀를 기약함보다 더 좋은 방책이 없을 것이다. - <삼국사기> 김유신조

그러나 '잔적'들은 "비록 조그만 성이지만 군사와 식량이 넉넉하며, 장수와 병졸이 의롭고 용기가 있으니 차라리 죽도록 싸울지언정 맹세코 살아 항복하지는 않겠다"고 말하며 창끝과 칼날을 겁내지 않았다고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 억새밭 사이로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
ⓒ 안병기
ⓒ 안병기
ⓒ 안병기
백제 병사들의 영혼 같은 억새풀 군락

그렇게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백제 군사들의 넋일까. 성 남문터 곳곳에는 가을 억새들이 마치 강물처럼 은빛을 넘실거리고 있다. 억새들이 보여주는 은빛이 가슴 한쪽을 서늘하게 한다. 도종환의 시에 가락을 입힌 황의종의 '억새풀'이란 노래가 떠오른다.

당신이 떠나실 때 가슴을 덮었던 저녁 하늘
당신이 떠나신 뒤 내 가슴에 쌓이는 흙 한 삽
떠나신 마음들은 이런 저녁 모두 어디에 깃듭니까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풀.
- 도종환 시 '억새풀' 전문


1997년 5월에 나온 황의종의 첫 번째 창작 작곡집에는 모두 8곡이 실려 있는데 이 '억새풀'이란 노래는 5번째 트랙에 실려 있다.

부산대 음대 교수인 황의종은 1978년 '승무', 1984년에는 '만선'이라는 곡으로 두 번씩이나 대한민국 작곡상을 받은 작곡가다. 작곡이 주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가 직접 부르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전통 정서와 가곡에 바탕을 둔 것들이라서 들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따뜻해진다.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풀. 백제 병사들의 넋이라 해도 좋고 내 넋이라 해도 좋으리라. 이곳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은 장관이다. 멀리 계룡산에서 그 핏빛 노을은 순식간에 전이돼 온다. " 당신이 떠나실 때 가슴을 덮었던" 그 하늘보다 더 붉은 저녁 하늘이다.

저녁놀을 보고 갈까 하다가 하산을 서두르기로 한다. 집에 가서 해야 급히 해야 할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문으로 성을 내려와서 한참 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산성이 조금 외로워 보인다. 그냥 저녁놀이 질 때까지 같이 있어 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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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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