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사의 옛터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하는데,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선(禪)의 아버지 도의선사의 발자국을 따라
일요일 아침 시원한 황태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첫 답사지인 둔전리 계곡의 진전사지로 향했습니다. 둔전저수지가 있는 진전사지는 우리나라 선풍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도의선사”께서 선(禪)을 펼쳤던 깊은 산속으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랍니다.
동해의 넘실대는 바다의 파도
동해의 넘실대는 바다의 파도
동해의 넘실대는 바다를 옆에 끼고 가을 하늬바람을 맞으며 풍경의 침묵이 있는 폐사지로 달려갑니다. 속초 공항을 끼고 계속 오르면 길가에는 막국수 집이 하나 둘씩 보입니다. 공항막국수, 풍년막국수, 실로암막국수 그리고 탄약중대가 나오면 우측으로는 설악산의 권금성과 울산바위가 멀리 보입니다.
둔전리 저수지의 단풍 - 진전사지 부도 오르기 전
둔전리 저수지의 단풍 - 진전사지 부도 오르기 전
도의선사의 숨결을 찾아가는 길은 몇 년 전 만해도 좁다란 시멘트 농로였으나 지금은 버스가 드나들 정도의 널찍한 길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둔전리 계곡을 찾는 사람 수가 늘어서 여름에는 이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나 봅니다. 우리나라 선종의 시조 격인 도의선사께서 선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때에 이 깊은 심산유곡에서 정신수양과 선의 세계를 만들어 갔겠지요. 그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오늘 답사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 아닌가요?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삼층석탑<진전사지 3층석탑>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삼층석탑<진전사지 3층석탑>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해 질 때쯤 우측 차창 옆으로 삼층석탑 한기가 모습을 들어옵니다.
진전사지 3층 석탑
누가 만든 탑이길래...
진전사지 3층 석탑
진전사지 탑을 보는 순간 수려한 실루엣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이 삼국시대 탑의 완성품이라면 여기에 있는 진전사터 삼층석탑의 수려함은 탑의 기단부와 탑신부에 새겨진 팔부신중과 여래상의 조각 수법 또한 보통이 넘는 석공의 작품이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하층 기단부의 비천상
상층 기단부의 팔부신장
1층 탑신부의 아미타여래상
하층 기단부의 비천상
상층 기단부의 팔부신장
1층 탑신부의 아미타여래상
하층 가단부에는 비천상이 상층 기단부에는 팔부신중 상이 유려하게 조각되어 있고 1층 탑신부에 새겨진 사방부처님은 각기 다른 수인(아미타구품인)으로 이 세상의 중생을 구제하려고 합니다.
억새와 어우러진 진전사지 탑
억새와 어우러진 진전사지 탑
문화유산은 그 시대의 반영이라고 합니다. 그 시대 이런 첩첩 산중에 이렇게 아름답고 정교한 석탑을 만들었을까요? 사료(史料)가 충분하지 않아서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필시 이곳 진전사가 우리나라 선풍의 시작점으로 당나라에 선을 배워온 도의선사께서 비록 세상 밖으로 널리 큰 뜻은 펼치지는 못했어도 우리나라 선풍을 큰 반석에 올려놓아 다진 분이 만든 절이기에 이정도 가치 있는 부처님의 기념물을 두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도의 시원(始源)양식인가?
부도는 선종의 산물입니다. 부도가 만들어진 것은 교리나 예불의 의식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참선만이 중요시하여 조사의 입적은 마치 부처의 입적과 같이 생각하여 문파에서는 조사가 입적하면 그 무덤을 묘탑으로 정성스레 만들어 조성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립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도는 아름답고 다양한 조각으로 꾸며 당시 시대의 반영을 부도라는 조형물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이는 9세기 미적 감각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전사지 부도 오르는 길
진전사지 부도 오르는 길
진전사부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탑이 있는 곳에서 저수지 방향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야합니다. 약 200~300미터 올라가면 "둔전 저수지"가 보이고 바로 그 아래 푯말에 "진전사지 부도"라는 표시와 50미터라고 쓰여 있습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숨이 목까지 차오를 때면 부도가 소나무 숲에서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부도탑 옆 발굴을 끝낸 공터에는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으나 새로운 건물을 바삐 짓고 있었습니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진전사지 부도
소나무에 둘러싸인 진전사지 부도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부도는 언뜻 보면 신라계 탑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그 이유는 부도의 기단부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인 이층 기단으로 되어 있어 탑의 그것과 똑같으니까요. 다만 탑의 탑신부에 해당하는 부분에 연화대좌를 놓고 팔각원당형의 몸돌을 올려놓은 다음 옥개석으로 덮은 형태로 이 부분이 탑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전사지 부도 기단부
탑신부의 팔각 원당형 탑신부
진전사지 부도 기단부
탑신부의 팔각 원당형 탑신부
우리나라 부도의 시원 즉 원조 격이라는 844년에 세워지는 국보 제104호 “전 흥법사지 염거(廉居)화상탑“(구 중앙박물관 앞 소재)와 부도미술의 완성품이라 할 수 있는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부도의 시원은 팔각 원당형 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전사지 부도<확대>
진전사지 부도<확대>
진전사터의 부도를 보면 아래 기단부는 신라 탑의 형식을 탑신부는 팔각원당형 부도의 모습을 닮은 것을 보면 앞서 말씀드린 “傳 염거(廉居)화상탑”나 철감선사 부도보다 더 앞선 시대라는 추론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이 부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도의선사의 부도 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양양 둔전리 산골의 단풍은 더욱 곱게만 물들어 갑니다.
# 찾아가는 방법
서울에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현남 나들목을 나가 속초방향으로 가다가 속초 공항이 나오면 좌회전을 한다. 좌회전하여 속초 공항을 끼고 약 7-8킬로 정도가면 진전사지 표시가 있는데 그를 따라서 끝까지 가면 토종닭을 파는 식당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둔전리 저수지 방향으로 가면 진전사지 부도가 있고 식당 바로 아래에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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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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