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마을에 불이 났다. 초가삼간은 물론, 잘사는 기와집들에까지 불이 붙어 온 마을이 불에 타고 있었다. 뒷동산에 올라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 거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저것 봐라. 우리는 집이 없으니 불나도 걱정이 없지? 이게 다 네 아비 덕인 줄 알아라."
최근 일부 정부 인사들이 미국발(發) 금융쇼크가 우리 경제의 '호재'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잡지에서 읽었던 이런 '웃기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들에 의하면, 지금 외국인 주주들이 팔고 떠나고 있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지나치게 높던 외국인 지분의 비중을 줄일 수 있고, 세계경제 침체로 수출이 안 되면 지나치게 낮던 내수의 비중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에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처한 미국의 금융기관들, 특히 투자은행들을 인수하면 우리 금융의 선진화가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어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식시장의 과다한 외국인 지분을 걱정하면 금융세계화에 역행하는 촌스러운 소리라고 비웃고, 지나친 수출의존을 걱정하면 성장만 하면 되지 수출-내수 구분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하던 정부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것은, 바로 '집이 없으니 불날 걱정 없다'고 아들에게 으스대는 거지 아버지와 같은 아전인수적 해석이다. 한 술 더 떠,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3~5위를 차지하던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가 몰락하고, 1~2위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생존을 위해 투자은행 지위를 포기하는 등 투자은행 모델 자체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 우리나라가 그런 업종에 진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난 집에 섶을 짊어지고 들어가자는 격이다.
지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미국과 영국을 선구자로 하여 지난 4반세기 동안 추구된 신자유주의적 금융규제 완화의 귀결이다.
금융규제가 완화되면서, 애당초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를 통해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주업무로 했던 투자은행들은, 단기적 금융 이득에 치중하는 인수합병의 중개 역할, 그리고 '금융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고위험-고수익의 복합 금융상품을 파는 것 등으로 '업종 전환'을 했다. 헤지펀드(국제증권 및 외환시장에 투자해 단기이익을 올리는 민간 투자기금)들은 위험분산이라는 당초 목적보다는 투기의 도구로 전락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역외자본 시장과 조세 도피처들이 늘어나면서, 안 그래도 복잡해져 가는 금융거래가 더 불투명해졌다.
전통적으로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들에 비해 보수적이었던 금융기관들마저 이런 바람에 휩쓸렸다. 미국 보험회사 AIG가 몰락한 것은 생명보험 등 전통적 영역이 아닌, 금융거래에 관련된 보험들 때문이었다. 모기지 업체(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업체)들은 건전한 '내 집 마련'을 돕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채무자의 상환능력은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돈을 빌려주는 투기적 영업으로 이득을 챙겨 나갔다. 일시적으로 큰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주던 일반 은행과 신용카드업체의 대출은, 내일이야 어찌 되었건 우선 돈 빌려 쓰고 보자는 문화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가계부채 위기를 불러왔다.
이번 사태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영국에서부터 고삐 풀린 금융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금융규제를 혁신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독야청청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파탄난 투자은행업에 국운(國運)을 걸고 진출하자고 한다. 우리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 온 산업은행까지 민영화하여 투자은행업에 몰아넣겠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진행된 금융의 개방과 규제완화로 이미 미국과 유사한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문제, (최근에 많이 꺼지기는 했지만) 주식시장의 거품과 주택시장의 거품 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금융의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통해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를 완전 고착시킨다면, 운이 좋아 이번 미국발 위기를 간신히 넘긴다고 해도 결국 우리 경제는 미래에 더 큰 금융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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