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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교학 자 료 - ‘설교 잘하는 방법’ 불길을 던진 청교도의 설교(2)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9. 08:14

설교에 중점을 둔 청교도들(2)

 

미국에서 청교도들의 설교는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뉴잉글랜드에서는 설교가 매우 중요시되었는데, 이는 출판된 설교의 양이 풍성했으며 예배당의 긴 벽 중앙을 강단이 차지했다는 것과 또한 회중에게 안식일에 두 번, 주중에 행해지는 한 번의 성경적 근거를 가진 강의, 그리고 각종 특별 행사에서의 설교 요구 등에서 알 수 있다. 설교를 중요시 하는 모습은 가장들이 예배를 드린 후 집에 돌아와 자녀들에게 설교 내용을 질문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당시의 설교는 현대의 모든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데서도 그 중요성을 감지할 수 있다.

설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들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여,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생을 선포해 주는 기능을 했다.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청교도 목사들은 이러한 설교 사역을 자신의 주요 의무로 삼아야 했고, 교인들은 이러한 복음의 선포에 귀를 기울였다.

청교도 설교의 구조는 3부로 되어 있는데 교리 소개와 그에 대한 해설(전제), 그리고 실생활의 적용(용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을 인용하고 짧게 본문의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며 본문의 문법적∙문학적 분석과 그것들의 논리적 의미를 제시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교리를 연역하고, 첫 번째 전제 또는 증명을 한다. 마지막 증명이 진술된 다음 차례대로 적용(용도)을 제시함으로써 설교를 끝맺는다.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종말론적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현실적인 생활의 강화와 관련시킴으로써 감정을 움직여 교리를 수용하게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청교도 설교는 평이한 표현법이 그 특징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형이상학적인 설교자들을 향해 자신들의 재치와 학식을 선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는 도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교도들은 학문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연(學者然)하며 부자연스러운 문체가 설교를 듣는 회중에게 설교에 대한 이해를 어둡게 한다고 확신했다.

다시 말해 청교도 설교자들은 현학적인 문체와 표현이 설교를 산만하게 하고 진지함을 방해해 회심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겸손한 태도를 준비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평이한 문체를 오히려 좋아했다. 뉴잉글랜드 설교자들의 목표는 어려운 요점을 해설해 줌으로써 회중이 설교에 쉽고 친밀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청교도 설교를 촌스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뉴잉글랜드의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를 생활과 문학에서 얻은 예화와 비유들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토마스 후커와 토마스 쉐퍼드이다. 이들이 일상 경험에서 얻어지는 생생한 예화를 사용함으로써 추상적인 진리들이 구체화되어 회중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청교도 설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회중 안에 있는 비평적이고 냉담한 사람들의 반론을 예상하고 답변하는 심리적 통찰이었다. 이와 같은 특징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모든 청교도 설교자들의 목표가 회중을 심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토마스 후커와 토마스 쉐퍼드 같은 뉴잉글랜드 초기의 대설교자들의 설교들에서 예증된다. 회중에게 쉽고 설득력이 있는 설교를 행하기 원했던 청교도들은 회중의 이성과 감성에 호소하고, 설교의 결말에 절정을 이루며 설득력 있는 광범위한 적용을 하고자 노력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해석과 적용에 집중하며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서들을 자세히 분석한 후 설교를 준비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회중을 교육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청교도 설교의 세 번째 특징은 성경에 충실한 설교라는데 있다. 제1세대 설교자들은 그들의 강의식 설교에서 자신들의 구약과 신약성경 전체 책들의 연구를 차례로 해설하고자 애썼다. 안식일의 설교들은 도덕적이고 권고적인 데 반해 주간의 강의들은 종종 이단들에 대한 경고로서 요리문답적이고 논쟁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확고하게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목사들은 신∙구약성경을 근면하게 연구하였고 자신들이 연구한 어떠한 본문에서도 영적인 양식을 풍성하게 뽑아냈으며,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다른 성경의 본문들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문자적,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면서 철저하게 예표론적 또는 도덕적 의미와 우의적 의미, 그리고 종말론과 관련된 신비적 의미를 거부했다. 그들은 성경이 과거, 현재, 미래적인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성경의 예언적인 말씀은 설교자들에게는 나중의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이 되었고, 설교를 통해 성경의 예언적인 해석이 당시의 표현으로 나타났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우의적 해석은 비역사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17세기의 마지막 20년에 다시 받아들여져 18세기 초에는 유행하게 되었다.

설교의 주제들은 죄의 자각과 회개, 소명, 칭의, 성화,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모든 교리적 주제들이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어떤 일련의 설교들은 성경 전체 책들에 대한 광대한 연속 주석들이었고, 다른 설교들은 성경의 중요한 부분들을 주석한 것이었다. 또 주제 설교나 탄핵하거나 저주하는 설교들도 있었다. 교회 외의 특별한 경우들을 위해 준비되는 설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회적∙문화적 유산들에 대한 언약을 전하는 내용들이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설교는 지금과 비교할 때 매우 길었지만, 그렇다고 장황한 설교자들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한 시간의 설교가 회중에게 영적 식사로 부족하다고 여겼기에 길게 설교한 것과 같다. 초기에 이들은 설교를 읽는 것은 성령님의 감동을 제한한다고 생각해서 설교문이나 설교의 개요를 적은 메모를 사용하지 않고 암기해서 설교를 하였따. 따라서 전달할 때 매우 좋은 기억력을 요구하는 이러한 설교를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을 바쳤다. 또한 그들은 설교를 암기하여 원고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보다 강렬한 어투와 몸짓을 강단에서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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