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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교학 자 료 - 청교도의 설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9. 08:37
청교도의 설교


1. 서론


많은 말씀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기 보다는 프로그램이나 교회 성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에 교회사속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여김받는 청교도들의 설교를 고찰해봄으로써, 목회 사역에 있어서 설교의 중요성과 설교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설교를 연구해야 할 당위성은, 근세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인 챨스 스펄젼과 마틴 로이드죤즈 목사가 다름아닌 청교도들의 우물에서 목을 축였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2. 청교도들에게 있어 설교의 필요성과 우위성


말씀 전파는 뉴잉글랜드 청교도주의의 본질적이며 가장 중요한 교회의식이었다. 청교도들은 설교가 성례나 어떠한 의식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설교가 성경을 촉진시키는 성경적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윌리엄 퍼킨즈는 설교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설교는 교회를 모으고 선택된 자들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설교의 또 다른 임무는 "주님의 양무리들 가운데서 이를  아내는 것입니다. 설교는 사람들을 지식으로 세워 주어, 각색의 영적 이리들이 이단과 오류와 거짓 가르침과 악행을 가지고 들어올 때 말씀으로 그들을 쫓아내게 해야 합니다. 설교는 선택자들을 완성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보호합니다."

청교도들에게 설교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행동으로 열매를 맺는데 목적이 있었다. 리챠드 백스터는 말하기를 "설교자의 화살은 사람의 머리에 대고 쏘지 않고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 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설교자의 과제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담아 놓으신 바를 자신의 본문에서 끌어내는 해석이었다. "나는 그 구절의 의미와 관련된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설교하지 않는다"고 챨스 시므온은 말했다.

청교도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설교가 성경을 알리는 데 있어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 일치했다. 존 데이븐 포트는 "하나님께서 택함받은 죄인들을 자신에게로 회개케 하거나 돌이키게 하는데 축복하시고 사용하시는 통상적인 방법은 자신이 사역자들의 설교 가운데 하나님 자신께서 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메시지로 갖고 가게 하시는 것이라"라고 자신의 강단에서 선포하였다.

윌리엄 퍼킨즈의 설교의 기술에 진리를 전파하는 기본적인 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설교자는 본문 메시지를 위한 대변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전하고자 하는 본문을 섬겨야 한다." 퍼킨즈는 설교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중 석상에서 그리고 계속적으로 선포한다는 것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평범한 수단이요 도구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사역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은 극대화되어지며, 믿음이 양육되고, 사랑이 증대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하여 무지한 자가 훈계되며, 게으른 자가 권면되고 격려 받으며, 목이 곧은 자가 책망을 받게 되며, 연약한 자의 양심이 위안을 얻습니다"고 하였다. 토마스 카트라이트는 설교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와 책망의 방법을 통해서 신자들의 마음과 양심에 적용될 때만이 살아 움직입니다."라고 말했다.

리챠드 백스터의 목사의 설교의 책임성에 대한 경고는 우리로 하여금 설교자의 삶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첫째 목사는 목사 자신이 청중이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설교자가 되었다고 누구나 구원하지 아니하신다. 왜냐하면 능력 있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당하고 신성한 주의 사업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것이다. 둘째, 목사 자신이 설교를 하는 내용의 실제적 죄악 속에 살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의해야 한다. 셋째, 목사가 맡고 있는 큰 일에 맞는, 큰 인물이 되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넷째, 목사 자신이 교리에 상반되지 않고 자신의 파멸의 기회가 될지로 모를 눈먼 장님 앞에 돌덩이를 놓지 않기 위하여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3. 청교도 설교의 정수


윌리엄 퍼킨즈는 그의 설교의 기술에서 설교자를 지도 안내해야 할 네가지 큰 원칙을 말한다.

1. 권위 있는 성경의 본문을 분명하게 읽어야 한다.

2. 성경 자체를 근거로 읽은 본문의 의미와 이해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3. 본문의 자연스러운 의미로부터 몇 가지 유익한 교리 사항을 수집해야 한다.

4. 올바르게 수집된 교리들을 단순하고 쉬운 말로 사람들의 삶과 자세에 적용해야 한다.

리챠드 백스터는 청교도 설교의 정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다시 설교할 수 없을 것처럼 설교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설교한다."

또 그는 우리에게 권면한다. "내 설교를 통해서 영혼들이 구원을 받거나, 아니면 나의 나태함으로 멸망하여 지옥에 간다는 무섭고 중대한 생각을 해보십시오. 나는 이 무섭고 엄청난 생각이 항상 여러분의 심령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윌리엄 퍼킨즈는 이렇게 생각했다. "진실한 목사는 두 가지 면에서 해석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일로 인해 하나님의 해석자이고, 사람들의 소원을 펼쳐 놓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며, 사죄와 용서를 간구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해석자이다."

윌리엄 에임즈는 설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설교가 죽어 있어서는 안된다. 설교는 살아 있어야 하고 또 효과적이어야 한다. 불신자가 교회에 왔다가 감화를 받고,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변화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리챠드 십스는 "진실로 설교는 하나님께서 창안하신 제도이다. 믿음을 얻고 거룩한 지식을 쌓으며, 의지와 정열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 위한 신성한 제도이다"라고 말했다.

설교는 정죄와 위로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명으로써 청교도 예배의 절정이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와 자비를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었다. 청교도 설교는 우리 현대의 신문, 잡지, 대여 도서관,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성인 교육 프로그램을 대신했다. 청교도들은 설교의 기능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성된 구속으로 절정에 이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활동들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사함을 그리고 믿음과 거룩함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약속된 영생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4. 청교도 설교의 특징


청교도의 설교는 국민 전체에게 영향을 끼쳤다. 청교도들이 설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잦은 설교 횟수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교리를 강론하는 일 말고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세번에서 다섯번 설교했다. 청교도 설교가들은 주도 면밀하게 설교를 준비했다. 챨스 시므온은 새벽 3시부터 설교를 준비했고, 하루 이상 설교를 준비했다. 청교도들은 교리와 신학을 떠받들었지만, 특정 본문의 의미를 "활짝 여는" 강해 설교를 거의 절대적으로 지지했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계획하고 치밀하게 구성했다. 길고 세밀했지만, 결코 축 늘어지지 않았다. 신중하게 절제하면서 최종 목표를 향해서 한걸음씩 나갔다. 설교 내용이 성경을 떠나지 않도록 방법론적으로 배려함으로써 진리를 지적으로 파악하고 모든 생활에 신학적인 교리가 적용되도록 했다.

청교도 설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교리를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점이다. 청교도들은 회중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이 적용이라고 믿었다. 적용의 목표는 그리스도인들이 양심의 각성을 통해 마땅히 고쳐야 할 행위를 고치는 데 있었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인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사람들이기에, 영국 국교회의 판에 박힌 강설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청교도들은 설교에서 지적인 요소를 무척 강조했지만, 이런 이지적 이해가 마음과 의지에 뜨겁게 호소하는 힘과 잘 조화를 이뤘다. 그들의 설교는 살아서 꿈틀거렸다. 왜냐하면 청중에게 호소하고 영향을 끼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챠드 백스터는 이 점에 관해 정연한 이론을 펼친다.

"설교가 듣는 이의 마음을 건드려 주지 않는 한, 사람은 고분고분 자기가 아는 진리를 따라 살려 하지 않는다. . 사변이 열정을 짓누르고 있는 한, 설교가 선사하는 단 맛을 맛볼 수도 없다. 이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고로 이해로 모든 면을 다 가름할 수는 없다...... 지식은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하고 진리로 하여금 의지를 움직일 준비를 시켜야 한다. 또한 진리를 받아서 열정에게 위임해야 한다...... 사실 열정은 영혼을 떠받치는 저변이다."

윌리엄 에임즈는 난삽하게 설교하는 설교자들을 이렇게 비난했다. "회중이 기억하기에 어렵게 설교해서는 안된다...... 회중은 설교의 요지를 암기해서 후에 집에서 개인적으로 그것을 복습할 수 없다. 따라서 쉽게 설교하지 않으면, 설교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참예하고 누릴 수 있는 큰 열매를 잃고 만다."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설교의 목적은 교회 안에서 이야기된 내용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발휘되는 설교의 위용에 따라 판단되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설교가 모든 사람에게 평이하며 설득력이 있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청중들의 이성과 감정 모두에 호소했다. 설교자로서의 그들의 천재성은 성경 기록에 대한 충성을 적절하고 분명한 심상과 결합하고, 또한 음험한 핑계와 망상 속에 숨어 도피하는 영혼을 세상의 빛으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심리적 침투력과 결합하는 데 있었다.

청교도 설교에는 교리, 전제, 용도로 이루어지는 분명한 3부의 구조가 있었다. 청교도 설교의 또 한가지 인상적인 특징은 회중들 중에 비평적이고 냉담한 사람들의 반론을 예상하고 답변하는 심리적 통찰이었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종교개혁자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경의 문자적 또는 역사적, 비유적 해석, 예표론적, 우의적 그리고 신비적 의미들로 분류한 중세기의 네 가지 표준적 해석을 거부했다.

설교의 주제들은 죄의 자각으로부터 회개, 소명, 은혜를 통한 믿음에 의한 칭의, 회심, 성화, 마지막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에까지 이르는 그리스도인의 발전의 전체 영역을 망라했다. 어떤 일련의 설교들은 카튼과 차운시가 한 것과 같이 성경 전체 책들에 대한 광대한 연속 주석들이었다. 특별한 경우들을 위해 준비되는 설교들은 주일에 사용하는 복음적 접근과는 다른 수사학을 요구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설교를 영혼의 양식으로 또한 영원을 향해가는 진지한 순례자의 비상 휴대 식량으로 맛있게 먹었다. 최초의 뉴잉글랜드 목사들은 비록 짧은 설교자들은 아니었으나 장황한 설교자들도 아니었다. 퍼킨즈는 교리를 가르칠 때의 음성은 온화해야 하지만 훈례를 할 때의 음성은 "보다 열렬하고 간절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몸짓에 대해 그는 하나님의 전달자를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는 장중함을 권했다.


5. 결론


내가 청교도의 설교를 연구하고 내린 결론은 설교는 결코 하나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으로 전달되는 진리요, 삶으로 입증되는 진리인 것이다. 설교자 자신의 경건함이 무너지면, 메시지의 힘과 능력도 함께 사라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강단의 능력이 사라져가는 이 때에, 성령께서 메마른 우리들과 함께 하시어 말씀이 흥왕하는 계절이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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