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사람만이 가야 하고 사람으로서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람에겐 사람으로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 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 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피룡됴 없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게에게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예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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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Sunshine (밀양) 원제 소설 : 이청준_'벌레 이야기' 감 독 : 이창동 각 본 : 이창동 출 연 : 전도연, 송강호, 조영진, 김영재, 선정엽 외 제작년도 : 2007년 삽입곡 : "거짓말이야 " By 김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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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판단과 용서는 과연 누가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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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경우는 영화 <밀양>처럼 한 여자가 혼자 감내해야 하는 무조건적인 고통보다는 훨씬 평범한 구조 안에서 더 깊은 고통을 남아 낸다.
약국을 하는 두 부부에게 어느날 닥친 아들의 유괴와 살해..뒤 이은 아내의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기독교적인 탐닉도 결국은 자식의 죽음을 목격한 여자에겐 감내하기 쉽지 않음을 치열하게 보여주며, 결국은 아내의 죽음이라는 것으로 이 여자의 고통을 사회나 종교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그려낸다.
아이를 죽인 범인도 아이의 주산학원 원장이며 이 한 사건으로 인해 한 가정이 파탄이 나는...작가 이 청준이 아이를 죽인 범인이 자신이 하느님을 영접해 죄를 용서받고 마음이 편해 졌으니 자신으로 인해 자식을 잃고 괴로워 하는 피해자의 부모도 편해 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받은 충격을 바탕으로 써 내려갔다는 소설은 죄에 대한 판단과 용서는 과연 누가 하는 것인가? 라고 하는 영화와 소설의 공통적인 주제에 대해서 직설적인 질문을 하듯이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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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역시 그 주제는 분명한데..보다 여자 주인공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더 괴로운 환경을 설정 한다.
일단 남편이 바람을 피웠었고, 교통사고로 먼저 죽은..남편에게 버림받고 그 남편조차 교통사고로 완전히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가여운 여자. 원망하고 싶어도 옆에 없고 그저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이 여자에게 하나 밖에 없는 남편의 흔적인 아들이 살해 당한다는 잔인한 설정이 그녀의 현실적인 고통을 더욱 더 크게 만든다.
소설에서 이 여자에게 교회로 가도록 전도하는 김집사의 출현은 영화에서는 끔직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소설에서 주인공 부분의 직업이언던 약사는 영화에서 신애을 교회로 이끄는 김집사집의 직업으로 교체 된다. 몸을 치료하듯이 정신까지고 치료 하고 싶어하는 김집사의 욕심을 더 극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일까...꽤 지능적인 변모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맹신하는 것에 동참해서 그 고통을 덜기를 바라는 모습..서서히 교회의 생활에 빠져 들지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한 여자의 방황은 처절할 정도다. 그 사실적인 표현이나 상황 설정도 마찬가지고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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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논의 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작가나 감독의 성찰은 한 사람의 고통에 비해서는 모독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여진다.
실제 단순이 기독교로 설정이 되어 있을 뿐 소설에서 그겨진 것 처럼 절에 가나 교회에 가나 특별히 달라 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영화에서 교회에서의 모습...특히 한국의 교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행사를 보는 일반인들에 대한 시선을 조금 담아 둔 것으로 종교 모독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은 한국 기독교의 자격지심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실 너무 약하게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 영화에서의 표현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 진다. 소설이 종교가 개인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과 달리 영화에서 기독교는 그런 개인의 고통에 기승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깐느 영화제에서 기독교에 대한 감독의 시선 때문에 불편해 했다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영화 속의 종교는 루터로 부터 시작된 바른 주님의 종교와는 거리가 먼 한국의 신흥 종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나 개인의 생활적 정갈함과는 거리가 먼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종교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신애가 기독교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교회 부흥회에 목사의 기도시간에 김추자의 CD를 꼽아 두고 "거짓말이야"가 흘러나오도록 하는 장면은 슬픈 희극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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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부모가 먼저 죄인을 사하기 전에 너무 쉽게 하느님이 죄를 사해 버려서 피해자는 용서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설정은 종교와 용서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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