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이후로 거의 경제, 경영서적은 보지 않고 있다. 그 영역을 역사, 철학책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봄에 나는 간신열전이라는 책을 아주 열심히 본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는 간(奸)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민족 등 조직의 생사존망에 관한 아주 중요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간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인생을 망치고 국가와 민족, 조직을 멸망으로 이끈 예가 많다고 말한다. 즉 간을 살피고, 구별하고 간을 제압하는 것은 매우 큰 현실적인 필요성을 갖는다고 이 책은 말한다. 즉, 간이라는 것은 일종의 광의적인 의사소통방법이라 볼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충신과 간신의 의미는 재차 정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런 정의를 내리고 싶다. 충신과 간신의 고전적인 정의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서 거시적인 이익에 대해서 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을 한 부류로 보고 싶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결정권자와 소통능력을 갖춘 사람을 다른 한 부류로 보고 싶다. 전자가 어쩌면 고전적인 의미의 충신, 후자는 고전적인 의미의 간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두 능력을 모두 함께 갖춘 사람은 현실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역사에서 오래 동안 뿌리내렸던 제도인 재상제에서 이 두 능력을 모두 소유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또한 뒤집어서 보자면 이 두 능력의 차이를 가려내어 사람 부리는 재주를 갖춘 군주와 리더도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충신과 간신이라는 개념은 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부여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리더와 참모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리더는 한 국가 혹은 어떤 한 조직을 전성기로 이끌었다. 이런 점 때문에 역사는 흥망성쇄가 반복되는 것이고, 우리들이 속한 조직들도 흥망성쇄를 겪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결정권자들은 자신과 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판단능력을 갖춘 사람들보다 선호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판단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의견이 참일지 거짓일지 판단하기에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런 불확실성의 상황에서는 판단결과가 자신과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들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복안을 몇 가지는 마련해두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막의여우, 롬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제시해 주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 사막의 여우 롬멜, 전쟁의 신 나폴레옹,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재량권을 갖춘 참모조직과 조직의 하부 혹은 현장에서의 정보,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매우 강조했다. 정주영 회장님의 경우에는 “호랑이가 온다”는 말을 들으며 작업현장 누비고 다니며 꼬치꼬치 물어보며 작업을 독려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롬멜의 경우에는 지형숙지와 전장정보 수집을 위해 끊임없이 최전선 막사를 누비고 다니며 병사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아무튼 결론은 조직이 외형을 갖추고 커지기 시작하면, 관료제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직의 리더와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것만으로 조직을 장악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도 관료적인 조직의 폐해, 참모조직의 폐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큰 조직이 오히려 취약해지는 이유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조직의 리더에게 그만큼 의사소통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런 의사소통능력을 갖춘 리더라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매우 단순화되고, 기동성이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믿는다. 즉, 최하부에서의 정보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자신에게 도달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그들에게 되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쏟을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현장과 하부조직과의 의사소통이 잘 되는 리더에게는 그다지 충신과 간신의 구분이 그다지 필요가 없기도 할 것이다. 이와는 완전히 180도 다른 방법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이끈 엘리자베스 1세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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