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정의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악인조차도 마음대로 해치지 못하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할 때도 망설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2008년)는 정의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한없이 못된 악당 조커는 절대 누구를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배트맨을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트려 결국 영웅 행위에 대해 회의하는 지경까지 몰아붙인다.
과연 정의가 모두를 이롭게 하는가. 배트맨은 영웅이 범죄자로 둔갑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어둠의 기사가 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철학적 물음을 화려한 액션과 결합해 이 작품을 여타의 수퍼 히어로물과는 다른 의식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매트릭스'처럼 잘 포장된 액션 속에는 사유하는 인간의 고뇌가 숨어 있다.
이를 잘 드러낸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제법 배트맨 역할에 잘 어울리는 크리스천 베일은 물론이고 악역을 빛나게 만든 히스 레저의 연기가 뛰어났다. 이 작품이 유작이 된 히스 레저는 조커를 너무 완벽하게 연기해, 오히려 주인공 배트맨이 악당 조커의 그늘에 가려 버렸다.
배트맨 시리즈 중에 최고로 꼽을 만한 이 작품은 블루레이 타이틀로도 완벽하게 탄생했다. 특히 블루레이 타이틀은 오히려 극장에서 보여주지 못한 아이맥스 영상을 제대로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여러 장면을 거대한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했다. 그러나 일반 극장에서는 아이맥스로 상영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맥스 촬영 장면은 일반 극장 스크린 크기에 맞춰 화면의 위, 아래가 잘려 나갔다. 감독의 의도와 달리 잘린 영상이 상영된 셈이다.
1080p의 블루레이는 아이맥스 극장이 아닌 일반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맥스 영상을 고스란히 수록했다. 그래서 아이맥스로 촬영한 장면은 16 대 9 와이드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일반 35미리 촬영 장면은 2.35 대 1로 나온다.
그 차이는, 칼리브레이션이 잘 된 풀HD 프로젝터를 이용해 100인치로 영상을 투사해 보면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명확하다. 거대한 원본 필름만큼 화면을 가득메운 영상의 디테일은 실로 놀랍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세세한 디테일과 쨍한 화질, 선명한 색감은 이 타이틀을 레퍼런스로 꼽게 만든다.
돌비트루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청취 공간을 뒤흔드는 박력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음향 또한 블루레이 시연용으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블루레이는 부록 디스크까지 완벽하게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제작과정, 영화 속 배트맨의 무기 및 도구와 관련된 기술 등을 소개하는 부록은 흥미진진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을 순간포착한 장면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는 올해 나온 최고의 타이틀이다.
아이맥스 촬영 영상. 아이맥스 필름은 일반 35미리 필름보다 9배 정도 커서 더 많은 그림들을 담을 수 있다.
일반 35미리 영상. 위, 아래 검은 띠가 보인다.
'이퀄리브리엄'에서 왠지 어색하고 강팍해 보이던 크리스천 베일이 배트맨 역할은 잘 어울렸다.
조커 역을 완벽하게 해낸 히스 레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에서 조커를 연기한 잭 니콜슨이 완전히 묻혔다.
배트맨이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다른 초인들과 다른 점은 초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점. 그래서 그는 과학에 의존한다.
그의 배트슈트는 현재 군에서 사용하는 케블러 방탄 섬유로 제작. 1965년 듀폰사가 개발한 케블러 섬유는 유연하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해 총알을 막아준다. 또 소방복에도 쓰이는 불에 안타는 섬유 소재인 노멕스도 사용됐다.
배트 슈트 위에 덧대는 보호판은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 코스타메사에 있는 세라다인사가 개발한 세라믹 갑옷을 이용했다. 세라믹 갑옷에 쓰인 세라믹 보호판은 강철과 맞먹는 강도를 가졌다. 세라믹 보호판은 붕소 카바이드를 화씨 4,000도에서 구워 만든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지만 고속으로 부딪치면 깨지기 때문에 갑옷 뒤에 합성수지를 붙여 파편이 살갗을 찌르지 못하도록 한다. 군용 방탄복에 들어가는 가슴 보호판이 이렇게 제작된다.
지하 도로 추격전도 아이맥스로 촬영. 아이맥스는 필름이 큰 만큼 카메라도 커서 무게가 무려 45kg이나 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장면 전환이 빠른 극영화 촬영은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려고 최경량 아이맥스 카메라 MSM을 사용. 추격 장면에서도 MSM을 사용했는데 워낙 스피디하게 촬영이 진행되다보니 MSM 카메라 1대가 부서졌다.
배트모빌이 쓰레기차를 들이받아 파고드는 장면은 실제 차 크기의 3분의 1 정도인 미니어처를 만들어 촬영.
이 작품에서 깜짝 등장한 배트포드는 바퀴 위에 대공포를 얹은 개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포드는 모형이나 CG가 아닌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된 실물이다. 이를 스턴트맨이 도로 주행을 하며 촬영.
엎드려 타다시피 하는 배트포드의 특징은 엔진이 바퀴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앞바퀴와 뒷바퀴에 각각 1개씩 달려있는데, 이처럼 황당한 기술은 2003년 스위스에서 이미 개발돼 실용화됐다. 스위스는 바퀴 드라이브로 불리는 이 기술을 이용해 160마력 엔진을 바퀴에 장착한 자동차를 만들었다. 오토바이의 경우 바퀴 1개에만 장착해야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정의를 추구하는 검사에서 투페이스라는 악당이 되는 검사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
브루스 웨인의 승용차로 나온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무르시엘라고는 스페인어로 박쥐라는 뜻. 나름대로 의미있는 설정이다. 배트맨의 자동차인 배트모빌은 람보르기니와 험비를 섞은 디자인. 배트모빌처럼 제트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는 1963년에 크라이슬러에서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연비가 낮고 구조가 복잡해 몇년 뒤 단종됐다.
병원 폭파는 실제 폐건물을 폭파시켰다. 이를 위해 사전에 건물을 불규칙하게 잘라놔 쉽게 무너지도록 했다.
배트맨이 홍콩의 높은 빌딩서 글라이딩 하는 장면은 홍콩시에서 촬영 허가를 해주지 않아 홍콩 야경을 아이맥스로 촬영한 뒤 , 점핑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찍어 합성했다.
조커와 막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시카고의 공사중인 맥클럭 빌딩서 촬영.
배트맨은 밥 케인이 1939년에 창안해 디텍티브 코믹스에 연재한 만화가 원작이다. 당시 그는 10~12세 어린이들을 위한 탐정물로 배트맨 시리즈를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