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해상 장악한 해양국가, 가야국 비밀풀었다 | |||||||||||||||||||||||
[책동네] 민족사학자 이종기 선생 유고집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출판 | |||||||||||||||||||||||
얼마 전만 해도 독도를 두고 일본과 날카롭게 대치했었다. 파렴치한 일본 정치인들은 여전히 역사왜곡에 몰두하고, 2차 대전 당시 남의 민족 짓밟았던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 일본인은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하면서 한반도 남쪽지역을 점령하고 다스렸다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본인의 거짓을 꾸짖기만 할 뿐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들춰내지 못한다.
저자는 70년대 중반 한일의 역사학자들이 외면할 때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지도 삼아 자전거로 일본 규슈의 구석구석을 뒤졌다. 또 허황후의 고향인 인도의 아요디아로 건너가 가야국이 어떠한 위치의 나라였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조금은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뭔가 홀린 듯 일본을 뒤지고, 인도의 구석 땅을 헤매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도 홀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황후와 가야공주에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허황후가 했다던 "이 몸은 아유타국 공주이옵니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는 여러 번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 인도에서 송장 사진을 찍었다가 죽을 뻔했고, 일본에선 시퍼런 낫을 들고 노려보는 농부와 맞닥뜨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런 일들이 그의 발을 묶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 외가 할머니인 허황후가 자신을 인도해준다고 믿었기에 아무 두려움도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남의 나라 땅 숲 속, 외진 곳 어두컴컴한 동굴에도 서슴없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 어떤 학자도 해내지 못한 일을 그는 홀린 듯 해나갔다. 오로지 가야국의 실체를 밝혀 임나일본부설의 거짓을 파헤치고, 가야국이 해상권을 장악한 해양국가임과 우리 겨레의 핏줄이 고대 일본을 세웠음을 증명하려고 혼신을 다했다.
그는 일연의 삼국유사가 설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임을 믿었다. 그래서 그 삼국유사와 중국 삼국지의 한자로 된 역사를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 풀어내려고 애썼다. 특히 일본 역사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한 것들을 들춰낸다. 예를 들어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왜인" 편을 보면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徒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 拘邪韓國七千餘里 始渡一海 千餘里至對海國" 이를 일본인들은 "대방군에서 왜로 가는 데는 해안에서 순(循)하여 수행(水行)하고, 한국을 력(歷)해서 혹은(乍) 남(南)하고, 혹은 동(東)하여 그 북쪽 해안 구야한국에 도착하는 칠천여 리. 이렇게 해서 바다를 넘어 천여 리 대해국에 닿는다"라고 풀이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사남사동(乍南乍東)'이란 "잠시 남쪽으로 갔다가 이내 동쪽으로 방향을 꺾는 행로"를 말하기 때문에 만약 서해안을 따라 바닷길로 간다면 남쪽으로는 내려갈 수 있어도 동쪽으로는 꺾을 수 없기에 잘못된 풀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의 해석은 "대방군에서 왜로 가려면 바닷가 물길을 따라가다가 한국 땅을 거치게 되는데, 잠시 남쪽으로 갔다가 잠시 동쪽으로 가면 그 북쪽해안인 가라나라에 다다르게 되며, 여기까지가 7천여 리이다. 비로소 한 바다를 건너면 천여 리쯤의 뱃길로 대해국에 이르게 된다"가 되어야 맞다고 주장한다.
또 여기서 저자는 또 한 가지의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이 큰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를 얻어 탄 구야한국의 땅, 가락국을 표기하면서 '그 북쪽 해안'이라고 한 점이다. 저자는 이와 함께 삼국지 위지동이전 또 다른 구절에서 '변진의 한 갈래인 독로국은 왜국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其瀆盧國 與倭接界)'란 내용을 찾았다. 그뿐이 아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실린 가락국의 경계를 보면 "동쪽으로는 황산강으로, 서남쪽은 창해로, 서북쪽은 지리산으로, 동북쪽으로는 가야산으로..."로 이어지다가 어찌된 일인지 남쪽엔 동그라미 두 개만이 덜렁 표시돼 있음을 지적한다.(東以黃山江 西南以滄海 西北以地理山 東北以伽倻山 南而○○爲國尾) 이는 일연이 "밝힐 수 없는 지명이 남쪽에 있었다"라고 소리없는 외침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로 미루어 저자는 가야국이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양국가이며, 일본 규슈 북부에도 영토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그것을 표시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김해 수로왕릉 납릉정문의 장식판에 있는 두 마리 물고기 무늬가 인도의 라마왕 탄생서원 앞과 일본의 야쓰시로 신사에도 있음을 발견해낸다. 그것은 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 야유타국에서 왔음과 허황후의 딸인 가야공주가 일본에 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방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일본 규슈 구석구석을 탐사하면서 가야공주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가야공주가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묘견궁(妙見宮)과 여덟 개의 성, 여왕릉으로 추정되는 자우스야마 터, 거북을 탄 여왕상, 여왕유래 돌비석, 갓파의 상륙을 기념하는 쿠마가와 강변의 '갓파도래비', 야쓰시로 북부 조난초에 있는 비밀제련소로 보이는 동굴의 아난도상 등을 그는 확인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탐사를, 이 책을 단순히 민족주의 시각으로 윤색하고, 미신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 애쓴 점이 돋보인다. 범선으로 물길을 갔던 시간을 계산해내고, 삼국지, 삼국유사 등에 실린 한문의 해석에도 꼼꼼한 잣대를 들이대며, 일일이 사진을 찍어 대조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에도 약간의 '옥에 티'는 보인다. 그것은 대중서일텐데도 전문용어와 함께 약간의 어려운 낱말이 난해다는 느낌을 준다. 수도(修道), 탁선(託宣), 원망(遠望), 천강(天降), 조묘(祖墓), 철매(鐵煤) 따위의 낱말이 나오면 독자들의 읽어가던 흐름에 잠시 걸림돌을 만들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굳이 잡아내려는 흠집일 수도 있을 만큼 이 책의 돋보임을 깎아내리지 못한다. 지은이는 세상을 떴고, 그로부터 10년 만에 이 유고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1976년 일본에서 "히미코 여왕 도래에 얽힌 수수께끼(卑彌呼渡來の謎)"를 낸 저자는 한 달 만에 책을 회수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그 책을 회수하는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그 책을 잇는 이번 책의 펴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겨레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모두 손을 잡아야 할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은이가 말하는 우리 역사의 '물동이 릴레이'에 참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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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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