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탄부활과 절기

[스크랩] 시리아의 성지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19. 22:13

시리아의 성지
직 가

 
기독교인들에게 다마스쿠스의 큰 관심은 직가로 모아진다. 다마스쿠스 근교에서 대회심의 종교적 체험을 했던 바울은 그 도시의 직가에 있는 기독교인 유다의 집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새 출발했다.

사도 바울이 걸었던 직가를 찾기 위해서는 다마스쿠스의 구도시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오늘날 다마스쿠스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적인 구도시요, 또 하나는 19∼20세기에 확장된 신도시다. 이중 우리의 관심은 구도시다. 역사의 때가 겹겹이 묻어있는 고도중의 최고도인 이곳은 타원형 모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구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1천3백m에 이르는 길게 뻗은 대로가 바로 직가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 왔을 때 직가는 너비가 15m에 이르고, 길 양편에는 석주들이 늘어선 로마식 대로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름은 그대로 남아있으나 과거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길은 좁아졌고 직가의 서쪽 절반은 천장이 있는 전형적인 아랍인 시장 수크(Suq)가 되어버렸다. 다만 지금도 몇 개의 석주와 로마시대의 건축물의 일부가 남아 과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고장이다. 성 세르기우스 성당과 바위산 꼭대기의 성 테클라 수도원이 위치하고 있다.

마룰라 (MAALULA)

성 테클라 수도원  (CHAPEL OF ST. THECLA)
터어키 콘야 (신약의 이고니온) 출신으로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터어키 남해 안의 실리프케에 세계 최초의 여자 수도원을 창설했던 인물이다.
실리프케에 창설했던 수도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으나, 이곳에는 그분의 유해가 안장된 수도원이 남아 있다.

성 세르기우스 성당 (CHURCH OF ST. SERGIUS)
성 세르기우스는 북부 헤사파 출신으로 그곳 로마군 수비 대장으로 있을 때 유프라테스 강변 요새지에 순시하러 갔다가 몰래 기도를 하던 중 이것이 발각되어 헤사파로 호송된다.
당시는 테키우스가 황제로 있을 때인데, 그는 비밀 집회를 갖고 권세와 부를 가진 자들을 비판하고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을 옹호하던 기독교인들을 국사범으로 취급하여 모든 기독교인을 색출하여 혹형에 처한 까닭에 기독교 박해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이에 그의 호송병들은 그의 군화 바닥에 못을 박아 이를 신고 걷게 했으며, 헤사파에 도착해서는 입술에 로프를 꿰어 달고 칼로 난자하는 혹형을 가하였지만 그는 끝내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하였다.
그 후 그분의 믿음의 용기를 추앙하여 시리아 크리스천의 수호 성자로 모시게 되는데, 그 기념 교회가 지금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 교회 (CHURCH OF ST. MARY)
시리아 교회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를 보관해둔 교회. 현재 이 교회에서는 아람어로 예배를 이끌고 사제들도 아람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아람어 성경 필사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수님도 아람어로 강의하셨고 신약의 상당 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되었던 것을 후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지금은 사어 내지 고어로나 존재하고 실종된 것으로 알고있던 아람어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시리아의 크리스천 센타로서 안디옥의 지위를 물려받아 비록 교세가 미약하다고는 하지만 크리스천 각 교파의 교회 건물들이 모스크와 나란히 서있는 도시로서 안디옥의 대주교로 봉직했던 성 크리소스톰이 기독교 윤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그리스 정교회의 기본 교의를 마련했던 곳이다.

알레포 (ALLEPO)

5세기 주상 성자 시므온이 알레포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칼라트 사마안에서 높이 60 미터 높이의 꼭대기에 만든 작은 방에서 37년간 고행에 정진하여 쌓은 지혜와 신심으로 사해에 이름을 떨치고 갑바도기아 수도원 제도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그의 제자였던 성 제롬은 알레포 인근 칼키스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하다 꿈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지시로 베들레헴 탄생 교회의 지하 서고에 파묻혀 성서의 라틴어 번역에 몰두, 끝내 그 사역을 완수함으로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알레포의 즈데이다 지역은 지금도 크리스천들이 몰려 사는 지역으로, 시리아 정교회, 시리아 카톨릭은 물론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레바논 마로나이트 교회의 건물들이 모스크 숫자보다 더 많고, 사회주의 나라 시리아, 모슬렘의 나라 시리아에서 교회 지붕 위의 수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알레포 고성 (ALLEPO CITADEL)
구시가지의 산정에 있는 알레포 고성은 거의 완전하게 12세기 아랍 요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웅장하고 견고한 고성은 이곳 알레포가 십자군 원정때 북부 시리아 모슬렘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보여 준다.  

에블라 (EBLA)

 
70년대 중반에 에블라( 텔 마르딕 )에서 만 오천개의 에블라 문서가 발굴되었고, 이 고문서를 판독한 결과 에블라가 히브리족의 조상 에벨이 세운 것이 아니냐 해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곳이다.

에블라 문서 발굴 후 서방의 한 유력지에서 에블라가 아브라함 시대와 비슷한 문화를 유지했으며 특히, 에블라의 군주 에브룸이 에벨 이름과 비슷하고 시민들 중에서 아브라함, 에서, 사울과 같은 히브리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인 에벨이 세운 왕국이라고 주장하면서, 성서 학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히브리' 라는 단어는 셈의 아들 아르박삭의 손자 에벨의 이름에서 기원하는데, 히브리족의 조상이 이곳에 왕국을 건설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블라는 수메르계가 세운 고대 국가의 하나로서 이들이 사용한 언어는 수메르어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언어중 에젤에서 발굴된 주전 3천 2백년경의 설형문자인 수메르어가 인류 최초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데, 에블라어는 수메르어와 마찬가지로 에벨이 사용했던 셈어도 야벳의 후손들이 사용했던 인구어도 아닌 것으로 밝혀져 셈계의 에벨이 에블라를 건설했다는 주장은 근래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에블라인들은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바알이나 비옥의 여신 아쉬타르는 물론 전쟁과 지하 세계의 신 라사프, 태양의 신 샤마쉬와 같은 우상을 숭배하였다.

사도바울교회 (ST. PAUL'S CHAPEL)


 

직가의 끝 동문을 나와 남쪽으로 300m 쯤 성벽을 따라 걸으면 큰 성문과 만난다. 성문 뒤쪽으로 돌아가면 돌로 지은 작은 예배소(chapel)가 있다.
사도 바울 예배소로, 쫓기던 바울이 크리스천들의 도움으로 광주리에 실려 성벽을 내렸다는 지점에 세운 교회다.
성벽을 새로 복원하고 그 성벽에 십자가와 바구니를 표시해 두었으며, 성벽 안에 기념 교회가 있다

아나니아 기념교회


 
직가가 끝나는 동편은 지금도 크리스천 구역이어서 교회가 밀집해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이 아나니아 교회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중, 강한 빛으로 시력을 잃은 사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가 그곳 교회 지도자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아 다시 앞을 보게되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완전히 변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마스쿠스는 교회의 핍박자 사울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로 변한 곳이요, 바울의 신앙적 탄생지로서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영원히 빛내는 곳이다.

바로 이곳, 바울이 아나니아에게 세례 받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곳에 세운 교회가 아나니아 기념교회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 만나는 아주 작은 지하교회지만 역사의 연륜을 실감할 수 있다

바알신전, 하마, 홈스


바알 신전 (TEMPLE OF BELL)
주전 2천 2백년 경에 처음 세워졌으며,  기원 후 32년 팔미라가 경제적 풍요를 구가할 때 현재와 같은 규모로 중건하였다.
이곳 시리아의 라타키아항 인근의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고문서에 의하면, 가나안 족의 최고신은 모든 생물의 창조주인 '엘' 이고 그의 부인은 '아쉬랏' 이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바알' 혹은 '벨' 이다.
이로 보면 바알 신앙이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방에서 생겨나 민족의 이동과 함께 이곳 시리아, 특히 페니키아 해안 지방에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는데 , 이곳 내륙의 팔미라도 레바논의 시돈이나 바알벡, 시리아의 우가리트와 같이 바알 신앙의 본거지의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하마 (HAMA)
성경에 나오는 옛 아람 왕국의 하나인 하맛 왕국의 수도.
홈스 (HOMS)
로마 치하에서 최고 절정의 황금기를 누렸던 옛 에매사의 아랍 지명.
민속 박물관
오토만 시대의 시리아 총독 관저를 개조하여 민속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 중에는 손톱만한  크기의 보석에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아 확대경으로나 볼 수 있는 글씨로 코란 한장을 새긴 것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이라고 해야할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아모리 족, 아람족과 같은 고대 성서 민족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세례요한 머리무덤 교회 (우마야드 모스크)


 
이곳에 있는 우마야드 모스크는 시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교 대사원으로, 아랍 권을 통틀어서도 매우 크고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슬람 제국의 첫 번째 왕조인 우마야드 왕조때 세운 이 모스크는 규모뿐만 아니라 사원 안팎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우마야드 모스크의 모자이크는 아랍 모자이크 예술의 백미라는 평이다.
이 대사원은 다마스쿠스의 장구한 역사 변천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원래 이 사원이 서있는 자리는 원주민 아람인(Aram)들의 하다드신전이 있던 곳이다.
하다드(hedad)는 비를 주관하고 땅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고대 시리아의 최고신이었다. 로마제국시대에 들어와서 그 자리에는 로마인들의 최고신을 위한 주피터 신전이 건축되었고, 그후 기독교 시대였던 비잔틴 제국 때는 세례요한 교회로 전환되었다.

세례요한 머리무덤 교회 (SHRINE OF ST. JHON THE BAPTIST)

우마야드 본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홀 중앙에 돔형의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안에 모슬렘 통치자들의 무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의 부인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 마케루스 하궁에서 효수당한 후 처형에 대한 증거로 다메섹에 주재하던 시리아 총독에게 보내졌다가 이곳에 묻혔다고 전한다.
아랍 모슬렘 시대 세례요한 교회는 이슬람교 대사원으로 바뀌었다. 그 후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저:지오코리아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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