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임대차관리차원에서 건물명도에 관한 제소전화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제소전화해는 성립하게 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적시의 건물명도에 유용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건물명도를 위해 제소전화해를 맹신할 수는 없다.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소전화해제도는 법이론적으로나, 제도적, 관행적으로 너무나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제소전화해의 효력에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민사소송법상의 이론적인 부분이어서 다소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소송의 경우를 먼저 예로 들기로 한다. 임대차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이 명도를 거부하자, 건물주 甲이 점포임차인 乙을 상대로 건물명도소송을 제기했다. 乙은 이 재판에서 패소를 직감하고 재판도중에 丙에게 무단전대를 해버렸다. 재판이 종결된 이후에 점유자가 바뀌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재판이 종결되기 이전에 점유자가 바뀌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소송을 제기한 甲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된다. 재판 도중에 점유자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재판의 이론적인 한계로 인해, 기존에 乙에 대해 명도판결이 되더라도 乙에 대해서만 효력이 발생할 뿐이고, 재판 도중에 점유를 하게 된 丙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丙을 명도하기위해서는 丙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명도소송을 제기할 무렵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라는 재판을 해서 점유의 변동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조치해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제소전화해절차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먼저, 건물명도 제소전화해절차의 관행을 살펴보자. 임대차계약 체결 이후에 잔금을 완납하면서 임차인이 점포를 명도받아 사용에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제소전화해에 필요한 서류들이 수수된다. 이 서류를 통해 제소전화해신청서가 작성되고 법원에 접수되어지는데, 법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제소전화해신청일로부터 2-3개월 이후에나 제소전화해기일이 정해지게 되고, 지정된 기일에 양측이 법원에 출석해서 신청되어진 제소전화해내용에 대해 동의함으로서 제소전화해가 성립한다. 먼저 설명한 건물명도재판과 비교할 때, 제소전화해의 경우에도 제소전화해절차가 종결되기 이전에 점유자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기존의 임차인에 대해 성립된 제소전화해조서만으로는 바뀐 점유자에 대해 명도집행을 할 수 있는 효력은 없다. 제소전화해의 경우에는 양측이 법정에 출석하여 제소전화해가 성립하는 날이 바로 재판(변론)종결일이 되는데, 제소전화해가 성립하기 이전에 임차인이 임대인 몰래 무단전대를 했다면 비록 임차인과 제소전화해가 성립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제소전화해의 효력은 그 임차인에 대해서만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그 제소전화해조서를 가지고 전차인을 강제집행할 수는 없게 된다. 결국, 영악한 임차인으로서는 일정 기간이 되면 별도의 판결 없이 바로 명도집행을 할 수 있는 제소전화해에 부담을 느끼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제소전화해가 성립되기 이전에 몰래 전대차관계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우리 제소전화해절차가 이루어지는 관행상 이러한 허점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위험을 대비한다면, 건물명도를 위한 제소전화해를 함에 있어서도 일반 건물명도소송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을 별도로 하거나, 무단전대에 따른 상당한 위약금약정을 하는 대비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치않다. 명도소송을 할 때와는 달리 제소전화해를 함에 있어서는 명도로 인한 현실적인 갈등이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건물명도로 인한 갈등은 제소전화해조서에서 약속한 기간이 도래하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차임이 많고 이권이 큰 임대차계약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도 이런 임대차계약일수록 제소전화해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승계인에 대한 제한적인 효력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판결(제소전화해조서)의 효력(기판력, 집행력)은 기본적으로 재판의 당사자간에게만 미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변론(재판심리)이 종결된 이후에 소송목적물을 승계한 사람에 대해서는 판결의 효력이 승계될 수 있다. 따라서, 제소전화해절차의 종결일 이후에 임대차목적물을 승계받은 사람 역시 제소전화해조서의 효력을 받게 될 수 있는데, 문제는 승계인에 대한 제소전화해조서(판결)의 효력에는 판례상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법률적인 용어로 정리하자면, 제소전화해조서의 효력이 승계인에게 미치는 것은 제소전화해조서의 청구(신청)원인이 대세적(對世的) 효력이 있는 물권적(物權的) 청구권일 경우에 국한되고, 대인적(對人的)인 효력에 불과한 채권적(債權的) 청구권일 경우에는 제소전화해의 효력이 승계인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대법원판례이다(대법원 1991. 1. 15.선고 90다9964호).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 명도소송을 예로 들기로 한다. 피고의 불법점유로 인하여 원고가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물권적 청구권)에 기한 명도청구를 하고 이러한 재판 끝에 판결이 선고되었다면, 변론종결일 이후의 점유자는 판결의 효력을 그대로 받게 되지만(원고의 명도청구가 소유권방해배제청구권이라는 물권적청구권에 기초하기 때문), 반면 임대차계약기간이 종료되어 임대차계약기간만료에 따른 명도청구를 해서 판결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면, 변론종결 이후의 무단점유자에 대하여는 기존의 판결의 효력을 미치게 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원고의 청구가 채권적 청구권이기 때문).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대해서는 채권적 청구권과 물권적 청구권을 불문하고 판결의 효력을 승계인에게 미치게 해야 한다는 학설상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이를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건물명도를 위한 제소전화해 대부분은 청구(신청)원인이 물권적 청구권이 아니라 채권적 청구권에 근거를 둘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제소전화해성립 이전은 물론, 화해성립 이후의 점유자인 승계인에 대해서마저도 임차인에 대한 제소전화해조서로 명도집행이 불가능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즉, 현재의 대법원판례하에서는 건물명도를 위한 제소전화해조서를 통한 집행은 제소전화해조서에 응한 기존 임차인이 점유하고 있을 때만이 가능하게 되고, 점유가 변동되어 다른 사람이 점유하게 되는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된다. 이런 점에서도 기존 대법원판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제소전화해신청 자체가 너무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제소전화해는, 당사자간에 합의된 내용이 강행법규에 반하지 않는 한 그 내용을 그대로 조서에 반영하여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발생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임대인을 위해 매우 유용한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① 화해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임대차계약 내용 자체가 부실하다는 점, ② 제소전화해만 하면 틀림없이 명도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신념 때문에, 제소전화해조서에는 ‘언제 명도한다’는 문구와 그 밖에 임대차계약서에 기재된 몇가지 형식적인 문구 정도만이 열거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부실한 내용으로 화해한다면 제소전화해를 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명도를 위한 제소전화해는 승계인에 대한 명도집행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점을 대비한 적절한 화해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단전대의 경우, 제소전화해조서만으로는 명도집행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무단전대의 경우에 상당한 위약금을 계약서상 약속하고 이를 제소전화해조서를 통해 미리 확정지어버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또한, 굳이 무단전대가 아니더라도 계약이 종료되어 명도해야 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이 명도의무를 지체할 때, 지체일수당 얼마의 금액을 약속하는 위약금문구를 제소전화해의 내용으로 기재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제소전화해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물다.
결국, 현재의 허술한 제소전화해의 관행은 부실한 계약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제소전화해제도의 허실을 염두에 둔 보다 정확하고 법에 맞는 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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