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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지 소로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1998)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31. 15:53

조지 소로스, 실패한 철학자이자 성공한 금융투자자

 

세계 금융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조지 소로스는 성공한 금융투자자로서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금융투자자로서 성공한 전, 그가 청년 시절 철학에 심취했던 것, 특히 칼 포퍼의 영향을 받았던 일이며, 금융투자자로서 성공한 이후에 펼치고 있는 자선사업가로서의 활동은 그를 여타의 금융투자자와 구별짓는다.

조지 소로스가 금융투자자로서 성공한 이유로 그의 독특한 전력을 꼽는 호사가도 있지만, 철학과 금융투자자와의 관련성에 대한 심도있는 글을 아직까지 본 적없다. 그런데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본업에 대한 사업적 판단을 할 때에 타고난 경제적 감각이나 경제학적 지식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는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오늘날의 세계 경제를 진단하고 있는 책을 여러 권 출간하고 있는데,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그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 소로스가  펼쳐 보이는 견해는 경제학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기보다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인다.


성공적인 투자자의 현실에 대한 철학적 리뷰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인식의 기본틀>에서 그는 1990년대 말 이후의 세계 경제를 진단함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판단의 잣대를 설명하고, 제2부에서는 오늘날의 경제 현실의 문제점을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보고 있다. 제1부에서 그는 다분히 철학적인 배경 지식을 활용하여, 우리 인식의 불완전성 및 인식과 현실의 상호 작용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우리의 인식적 기능과 참여적 기능은 서로 간섭하며, 따라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그 실제 결과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제1부를 읽으면서, 금융투자자로서 현실 경제 문제에 대한 신속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면 그만일뿐인 소로스가 왜 이렇게 한가한 철학적 풍월을 되뇌이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소로스의 관심은 지식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대한 반성에 있으며, 그는 이러한 반성적 자세를 제2부의 경제 분야에 연장시켜 적용한다.

제1부 ‘인식의 기본틀’에서 소로스가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반사성’은 우리의 의사결정이 현실에 미치는 불확정적 영향을 의미한다.(그는 이후의 책에서 반사성 개념을 ‘재귀성’으로 발전시킨다.) 또한 우리는 외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의 내적 조건이 외적 현상을 결정짓기도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반사성은 제2부의 문제 해결 방안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각이다.) 소로스는 반사성은 비단 경제 현상뿐만 아니라 역사 현상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 속성이라고 덧붙인다. 이론의 완전무결성과 현실의 고정불변성을 부정하는 그의 설명은 좀 장황하지만, ‘반사성’은 제2부에서 오늘날의 경제 현상을 진단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 제시에 꼭 필요한 개념이다.

솔직히 소로스의  ‘반사성’ 개념은 학문적으로 치밀하게 논증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인식적 기능과 참여적 기능의 간섭’이란 명제도 그것에 내포된 철학적 쟁점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철학적 논점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실패한 철학자일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철저히 탐구되지는 않았으나, 권위 있는 철학적 틀을 이용하여 경제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통찰하고, 자신의 식견을 사업에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성공한 금융투자자일 것이다.


금융투자자의 역설(逆說), 시장의 자유에 규율과 규제를!

 

제2부는 소로스가 지금의 경제현실을 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반사성’의 개념에 따라 분석한 내용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경제 상황에서 보여지는 문제점, 원인 진단, 해결책이 자유주의적 경제 전문가들의 설명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늘의 경제 현실에 대한 그의 견해에 권위 있는 경제 전문가의 그것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그러나 통찰력 있는 사업가의 견해가 경제학자의 그것보다 못하다고 보는 것은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견해는 변화무쌍한 경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견해로서 경청할 만하며, 그는 문제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까지 일관성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특히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매우 큰 결함을 갖고 있다고 본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위기를 비롯하여 세계 경제의 몇 차례의 위기가 생긴 원인으로 그는 금융시장의 작동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 문제의 해결이 단순히 시장의 균형 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사회(경제와 정치)의 균형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위기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과 중심을 오가며 이윤극대화를 꾀하는 금융자본, 그것이 주변부를 급격히 이탈함으로써 주변의 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되고 있음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소로스가 보기에 지금의 경제 현실은 경직된 경제 이론과 그에 근거한 정책에 의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은 시장은 균형과 불균형을 오가기 마련이이며, 시장에서 발생되는 불균형은 시장의 기능을 통해서 균형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경제정책은 시장의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철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소로스는 시장은 스스로의 통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외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내포된 대전제, 즉 시장의 균형 가설은 지금의 경제 문제를 진단함에 있어 심각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그것은 시장의 속성을 왜곡되게 이해한 것이며, 그러한 이해에 근거한 정책들도 기대한 바의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따른 작금의 경제 정책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무사안일한 자세의 문제점이다. 그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 없는 시장 자유주의를 ‘시장 근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의 견해는 지금의 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 아니라,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소로스가 보기에 현재 진행 중인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은 그것을 보완할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은 시장의 차원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새로 만들어져야할 시스템은 시장 원리에 지배받지 않는, 그와 무관한 원칙이 지켜지는 시스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는 오늘날 자유주의 시장 경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틀이 마련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로스가 제시하는 대안인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도덕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것을 뒷받침하는 세계적인 정치적 의사결정기구 창설’은 현실적인 구체성이 매우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앞으로 지어야할 집의 대체적 밑그림을 제시하는 소비자일 뿐, 구체적 설계도를 그릴 실무자는 아닌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소로스의 주장은 전문적인 학문의 차원에서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론의 결함은 이미 오래 전에 지적된, 케케묵은 논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경제학자들의 전문 지식과 대중들의 경제 상식 간에는 크나큰 괴리가 존재하며, 오늘날의 경제 정책이 경제학자들의 전문 지식이 아닌 대중들의 상식 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지지와 동의가 없다면, 전문가의 소견으로 제 아무리 시의적절하고 타당한 경제 정책이라고 해도 시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 금융 시스템, 넓게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소로스의 문제 제기는 안일한 처방에 안주하는 경제전문가에 대한 비판의 성격을 띠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세계화된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사회적 규제를 주장하는 그의 견해는 지금의 자유주의 금융시장 체제에서 성공한, 그래서 그 체제를 옹호할 것으로 여겨지는 금융투자자의 의견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현 체제에서 성공한 금융투자자는 그것의 보수적 옹호자일 것이라는 단정이야말로 우리의 선입견에 불과하다.(그렇다고 그가 사회주의적 경제사상을 피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와 정치의 관련성을 환기하고, 시장 경제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경제 외적 원리로서 통제할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성공한 금융투자자의 입을 통해 발언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역설적 주장은 소로스의 인문학적 소양에서 비롯된 통찰이며, 안목 있는 식견일 것이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의 전진(前進)

 

이 책 전체에서 소로스의 일관된 생각은 시장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은 없으므로, 언제나 현실을 관찰하고, 발견되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그가 말하는 열린사회의 성격을 말해준다. 닫히고 고정된 사회는 새로운 방안을 창안할 필요가 없지만, 열려 있고 유동적인 사회는 늘 언제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로스가 독자에게 설득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의 역동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대응자세가 필요하다는 정도가 아니다. 제1부에서 말한 반사성 개념에 근거하여, 우리의 기대와 계획에 따라 오늘날의 문제적 현실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경제 위기로 시끌시끌한 요즘, 우리의 경제 현실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잡기 위해 한번 일독해 보아도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글쓴이 : 클라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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