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테크/서부산개발권

[스크랩] 부산 강서구 `기회의 땅` 삼각주 재발견 / 부산의 미래특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3. 22:35

'기회의 땅' 삼각주 재발견  /  부산의 미래특구


 

 
  1300리 기나긴 물길을 달려온 낙동강이 그 하구에 선사한 천혜의 삼각주 강서 들판. 모래땅 갈대숲이 이젠 부산의 새 미래를 책임질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서는 강과 바다, 산과 들판, 그리고 섬 등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묘한 곳입니다.
자연의 백화점인 셈이죠. 갈대숲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철새떼,
샛강을 오가는 자그마한 배와 나루터, 가없이 펼쳐진 들판,
그물 사이 한가득 펄떡이는 바닷고기들, 이 모두가 강서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낙동강의 기나 긴 물길이 그 하구에 선사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비옥한 삼각주, 천혜의 땅이 이제 새로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부산의 새로운 미래로 떠올랐습니다.

 
  낙동강 하구 모래톱 너머 일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상전벽해란 말이 여기처럼 실감나는 곳이 없습니다.
강하구는 메워져 대규모 공단이 들어선 지도 오래입니다.
부산의 앞날을 책임질 신항도 막 문을 열었죠.
뭍과 섬을 잇는 다리도 건설 중입니다.
각종 공단에 주거단지, 신도시 등 개발 계획이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갈대숲의 대변신이 달갑지 않은 이들도 많습니다.
수백 년 삶의 터전이 몇 푼의 보상금으로 채워질 리 만무하겠죠.
개발의 이면은 늘 가슴 아픕니다.
예전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돌아가긴 힘들겠죠.
하지만 천혜의 자연과 개발이 공존하는 상생의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리라 생각됩니다.
                글 = 장재건 기자 jjk@kookje.co.kr / 사진 =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모래톱의 대변화


江과의 사투 수세기… 시련의 역사가 퇴적  /  홍수와의 기나긴 전쟁이 삼각주 민초의 삶
제방·수문 들어선 뒤엔 東낙동강이 본류로


 
  제방을 건설하기 전만 해도 낙동강 하구 본류였던 서낙동강에 일제시대 건립한 녹산수문. 수문 옆의 작은 봉우리가 노적봉이다.
 

낙동강 1300리길이 숨을 다한 곳. 낙동강이 기나긴 여정을 끝내며 낳은 땅. 강의 서쪽, 강서는 낙동강의 자식과도 같은 곳이다. 강은 이 곳에 김해평야라는 비옥한 삼각주를 남겼지만 시련도 함께 줬다. 강서의 역사는 강과의 싸움의 역사다. 드넓고도 기름진 이 땅엔 이 곳에 깃들인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칠점산과 삼각주
 
 
왼쪽은 옛 녹산수문.  
"강서는 모래톱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땅이죠. 때문에 유사 이래 끊임없이 지형이 변해왔어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서낙동강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박만택(74) 강서문화원 명예원장은 서기 1세기께 이후 바다였던 곳에 모래톱이 점차 쌓이면서 오늘날의 지형으로 조금씩 변해왔다고 설명했다.

강서구 대저1동에 칠점산(七點山)이란 자그마한 야산이 있다. 지금은 공군 제5전술 공수비행단 부대 안에 있어 일반인들이 잘 볼 수 없다. 7개의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뤄져 칠점산이라 했으나 지금은 일제시대 이후
 
박만택 강서문화원 명예원장이 대저수문 앞에서 서낙동강의 물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각종 개발로 인해 모두 깎여나가고 한 개만 남아 있다.

"오랜 옛날만 해도 현재의 김해 봉황동 지역이 연안이었고 칠점산은 바다 위에 있는 섬이었어요. 이후 칠점산과 덕도산 등 주변의 작은 섬 주위로 낙동강의 토사가 퇴적되면서 오늘날의 삼각주가 형성됐죠. 그래서 칠점산은 강서의 뿌리인 셈입니다." 박 명예원장은 그러나 한개 남은 구릉마저 파헤쳐지는 등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강서의 혼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홍수와의 싸움

오늘날의 강서 지역에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건 300~4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해마다 홍수와의 전쟁이었다. 그나마 삼각주로 형성된 비옥한 들판이 이들을 여기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대저 1동에 동연정, 서연정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어요. 잦은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이 곳에 큰 못을 이뤄 못 주위에 정자를 지어 동연정마을, 서연정마을이라고 했죠. 그러나 계속되는 홍수에 지금은 못도, 정자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어요." 박 명예원장은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만 해도 잦은 홍수 때문에 수시로 마을 지형이 바뀔 정도"라고 전했다.

삼랑진, 원동을 거친 낙동강은 지금의 대저수문 있는 곳에서 동낙동강과 서낙동강으로 갈린다. 서낙동강은 평강천 지류를 만들어 이 세강은 예로부터 삼차강(三叉江)으로 불렸다.

"1930년대 동낙동강에 일천식(一川式·한 일 자처럼 곧은 모양) 제방을 쌓고 서낙동강 위로는 대저수문, 아래로는 녹산수문을 세우고서야 지긋지긋한 홍수에서 벗어났죠." 박 명예원장은 수문과 제방공사 전엔 지금의 서낙동강이 낙동강 본류였다고 했다. 대저수문으로 인해 서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준 데다 곧은 제방이 들어선 현재의 낙동강(동낙동강)이 본류가 됐다는 것이다.

#갈대숲이 비옥한 들판으로

온통 갈대숲으로 뒤덮였던 모래톱이 변신을 시작했다. 홍수가 줄어들자 낙동강이 선사한 비옥한 들판으로 사람들도 몰려 들었다. 오늘날의 곡창지대로 거듭난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인 일제 말만 해도 온 나라가 피폐하던 시절이었지만 이 곳은 부촌이었죠. 기름진 땅에서 벼농사가 잘된 데다 배 농장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했어요. 오죽했으면 가락동엔 쌀이 많이나 배가 부르고 풍족하다는 뜻의 '식만(食滿)마을'이란 곳도 있겠습니까." 강서문화원 박홍목(70) 원장은 그 어려운 시절에도 대저 고향에서 서울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낸 경우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많았다고 전했다.

낙동강의 본류였던 서낙동강 주변은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온갖 물산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명지에서 녹산, 가락동 강가는 나루터가 번성했다. 강가를 오가거나 바다에서 올라온 배들로 파시를 이룬 곳도 많았다고 한다.

녹산 출신인 강서문화유적보존회 황규성(72) 회장은 "강서구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녹산은 지금은 각종 개발로 옛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서낙동강의 길목으로 번창했던 곳"이라며 "해방 전후만 해도 녹산수문이 있는 성산나루터 주위로 가덕도 대구와 거제도 해산물 등을 실은 배들이 수도 없이 오가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낙동강 제방의 낭만


특별한 가을서정  /  12㎞ 둑길따라 그윽한 詩心
황홀한 해넘이 

 

 
1930년대  
 
 
  2006년

서산에 걸친 태양은 세상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노랗고 붉게 변한 하늘을 점점이 수놓는 새들의 날갯짓이 처연하다. 낙동강 물살을 건너온 소슬바람이 온몸을 훑고 간다. 늦은 오후의 제방 둑길에는 이미 가을이 저만큼 와 있었다.

어느 가을해넘이가 아름답지 않겠는가마는 강서의 해거름도 꽤 진귀하다. 그 가운데 낙동강 강줄기와 8차선 공항로 사이의 제방 둑길에서 만나는 가을은 서정 그 이상이다.

둑길은 구포다리부터 명지IC까지 12km. 거의 직선에 가깝게 낙동강을 따라 곧게 뻗어있다. 조붓한 둑길 위는 벚꽃나무와 배나무 가로수들이 촘촘히 심어쳐 운치가 그득하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을 풀잎들도 공항로를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매혹시킨다.

제방을 끼고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둑길 위로 언뜻언뜻 뭔가가 스쳐 지나간다. 강서와 낙동강에 관련된 노래비와 시비들로 제방의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들이다

가장 먼저 이곳 출신인 작곡가 금수현의 '그네' 노래비가 금속 조형물과 함께 구포다리 인근에 세워져 있다. 다음으로 다목적운동장 입구에서 이은상의 '낙동강' 노래비를 만날 수 있다. 한참 지나 배재황의 '오막살이' 다시 이은상의 '고향길',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의 '나그네' 등의 시비들이 차례로 고개를 내민다. 이주홍의 '엄마의 품'을 마지막으로 제방은 길을 닫는다. '나그네'의 시구 '강나루 건너 밀밭길을/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은 일몰 때 읽으면 시심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다. 그밖에 독립유공자 조정환·이수강 선생의 흉상도 둑길에서 조우할 수 있다.

장장 12km의 곧은 둑길. 마라토너들이 가만둘 리 없다. 멀어지는 일몰을 배경으로 낙동강과 갈대숲을 끼고 땀을 흘리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다만 바닥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LSD(가벼운 마라톤)는 무리가 없지만 대회나 전력질주 때는 부상의 우려가 있는 것이 흠이다. 그 외에 강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나 산보를 즐기는 사람들도 제방을 아름답게 꾸미는 소품이 된다.

둑길을 쉬엄쉬엄 달리던 50대 초반의 어느 회사원은 "강, 석양, 그리고 물새 등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달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며 예찬을 쏟아 냈다.

제방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진객이 바로 철새떼. 강서의 낙동강 하구는 을숙도와 함께 이름난 철새도래지.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해마다 130여 종이 날아 든다. 초가을인 지금도 갈대숲 사이로 단아하게 서 있는 백로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김해공항으로 안착하는 항공기의 웅장한 몸체를 가까이서 올려다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글 = 장재건 기자
jjk@kookje.co.kr

 

구포다리의 추억


나루터 관련 종사자 많던 구포 주민들  /  구포다리 건립땐 반대하기도


 
  지하철 3호선 철교 밑에 초라하게 방치된 구포다리.
 
지하철 3호선이 낙동강을 건너는 우람하고 화려한 철교 옆. 저만큼 아래로 중간중간 동강나 옛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다리가 철로와 대비돼 유달리 초라해 보인다. 낙동장교, 흔히 말하는 구포다리다.

1933년 완공 당시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여서 낙동장교란 이름이 붙었다. 다리의 관리권은 북구청이 갖고 있지만 강서 주민이 더 많이 이용하고 애환이 서린 다리다. 지금은 구포대교에 그 길을 내준 데다 2003년과 지난해 물난리로 일부 상판이 내려앉아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다.

"구포다리 건립을 놓고 당시 김해 주민은 적극 찬성한 데 반해 구포 주민은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김해 주민의 찬성이야 당연하겠지만 당시 나루터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하던 구포 주민들에겐 반가운 일이 아니었죠." 박홍목 강서문화원장은 구포다리의 건립은 강서의 발전에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다리의 준공식은 원래 구포에서 개최키로 했으나 당시 김해 주민들의 맹렬한 반대로 대저 들판에서 열었을 정도로 당시 이곳 주민들에게 구포다리는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다. 준공 이후 5일장 구포장날이 되면 각종 물건을 수레에 싣거나 이고 지고 구포로 향하는 인파가 다리를 꽉 채웠다고 원로들은 전했다.

"옛날에 다리를 건너 구포역에서 부산 시내로 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학생들이 많았어요. 아침에 등교 때 늦으면 강 건너 저 멀리 호포 쪽에서 증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다리 위를 내달리는 학생들이 꼭 있었죠. 모라 쪽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멀리서 오는 기차가 보이지 않아 구포다리 위를 건너는 학생들의 걸음걸이를 보고 자신들도 뛰거나 걸어 아침마다 진풍경이었습니다." 대저 출신 김경석(74) 씨의 회상이다.

수많은 사연을 담은 구포다리의 운명도 이제 다한 것일까. 영도다리가 역사적 유물로 보존의 길로 가는 반면 구포다리는 철거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상판이 내려앉는 등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철거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현재 용역을 진행중"이라며 "강서 주민의 의견 수렴을 위해 현재 설문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통 · 물류의 새 심장을 찾아


서부산권發 개발급류, 한국을 바꾼다  /  개장 9개월 정상궤도 박차
고부가가치 창출 항만으로  /  부산~거제 2010년 40분 시대
거리 단축 年 4000억원 절감  /  8.2km 승용 통행료 1만원선


 
  거가대교가 놓일 가덕도의 천가동 공사현장. 이곳에서부터 바닷속 침매터널이 시작된다.
 
부산 면적의 24%(179㎢)를 차지하는 광활한 강서구. 비옥한 들녘은 부산·경남의 곡창지대로 인식돼 여지껏 농촌 아닌 농촌으로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상전벽해. 낙동강의 너른 서쪽벌은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로 전혀 손색이 없다. 기장군과 더불어 부산 과밀화의 대안이자 부산 발전의 심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강서의 수많은 개발사업 가운데 실질적 파생효과가 가장 큰 거가대교와 부산신항의 현장을 살펴봤다.

#교통혁명 거가대교
 
 
부산(강서구 가덕도)과 거제도(장목면 유호리)를 연결하는 거가대교는 '교통혁명'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기존 부산~거제간 거리(사상터미널에서 거제시청까지 140km)를 60km로 확 줄여, 서울~부산 통행시간에 해당하는 3시간30분을 단 40분으로 앞당겨 놓을 전망이다.

다리 건설을 통해 발생될 유·무형의 파급효과도 기대감을 부풀게 만든다. 단축된 거리·시간으로 얻게 될 비용 절감은 연간 4000억 원, 여기에 도로에 뿌리는 유류비로 160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 사업을 맡고 있는 GK해상도로(주)측은 거제~통영~진주와 부산이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묶이면서 소비시장 규모가 현재보다 1조2000억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부산과 경남이 U자형 교통네트워크를 형성해 남해고속도로의 교통량 분산 효과와 함께 남해안 관광의 새로운 인프라 기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착공에 들어간 거가대교의 현재 공정률은 25%. 대죽도와 중죽도를 잇는 인공섬 공사가 거의 마무리 시점에 와 있다. 다리는 2010년 연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자사업으로 추진되는 거가대교의 총사업비는 1조4469억 원. 교량공사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대우건설 등 국내 8개 건설회사가 참여한 GK해상도로(주)가 사업을 주관하며, 준공과 동시에 다리의 소유권은 부산시와 경남도가 넘겨 받는다. 대신 회사는 BTO방식으로 40년 간 통행료를 징수해 공사비를 환수한다. 준공 시점 기준으로 통행료는 일반 승용차가 1만 원이 조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총연장 8.2km의 거가대교는 1개의 침매터널과 2개의 사장교가 혼합되는 독특한 시공방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침매터널은 거대한 콘크리트 침매함을 바다에 가라 앉혀 그 속으로 차량이 지나 다니게 하는 첨단 공법. 유럽 등지에서는 널리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된다.

침매터널이 놓이는 지점은 가덕도에서 대죽도 사이 3.7km 구간. 최대 50m 바닷속에서 모두 18개의 침매함(1개 길이 180m, 높이9.75m, 폭 26.5m )을 이어 붙인다.

이 구간을 침매터널로 만드는 이유는 해군 함정과 대형 선박의 운항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침매함은 36km 떨어진 통영의 안정공단에서 제작해 해상으로 운반한다. 한 개의 침매함을 만드는데 8개월, 동시에 4개를 제작할 수 있어 총 40개월이 소요된다.

대죽도~중죽도~저도~거제를 잇는 나머지 구간 4.5km는 두 개의 사장교(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이 상판을 떠받드는 다리)로 지어진다. 거가대교는 폭 21.6m(왕복 4차선)에 주행속도 80km를 기준으로 건설된다. 다리가 지나는 인공섬 주위에 휴게소도 설치해 다리 자체를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GK해상도로(주)의 관리팀 김태수 과장은 "침매터널과 사장교 모두 육상에서 미리 만들어 해상으로 운반·시공하기 때문에 내년 연말이 지나야 바다위 공사 현장에서 구조물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3대 국책사업의 하나인 부산신항. 웅장함이 느껴지는 북측 터미널에서 컨테이너 선박이 하역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신항 24시

강서구 성북동 부산신항으로 곧게 뻗은 전용도로는 탁 트인 시야만큼이나 한산했다. 간간이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미개통 도로로 착각해 차를 돌렸을지 모른다. 신항 입구에 다다르자 왼편으로 가덕대교와 다목적부두 배후부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부산신항과 가덕도가 이 만큼 지근거리였는지, 그리고 가덕대교외에 신항의 잔교(棧橋)를 통해 가덕도가 사실상 육지화 된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와 함께 3대 국책사업인 부산신항만 개발. 공사비만 2011년까지 9조2000억 원이 투입된다. 당초 계획보다 1년 여를 앞당겨 3개 선석을 개장한지 9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의욕에 찬 조기 출발은 곧 '개점휴업'이라는 참담한 꼬리표가 붙었다. 최신 설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실적은 올해 목표치 80만TEU에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우려와 비난 속에서도 부산신항은 동북아 물류 중심지의 미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공항 관제탑에 해당되는 부산신항의 통제실.  
부산신항에 서면 누구나 그 광활함에 압도된다. 현재 문을 연 북측터미널도 시선이 닿지 않을만큼 웅장하다. 신항의 전체 규모는 342만 평. 배후부지로 북측 93만 평, 남측(가덕도) 41만 평, 서측 195만 평 등 총 329만 평이 순차적으로 개발된다. 특히 부산신항만(주)이 개발할 북측 배후부지에는 물류 시설외에 호텔, 쇼핑센터, 주택, 학교, 공원 등이 공존하는 혁신 도시를 세운다는 구상이다. 대규모 배후단지의 조성을 통해 하역작업만 하는 단순 항구에서 탈피, 화물 창출형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다.

시설·장비면에서도 부산신항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항만운영 정보처리시스템(ACDIAC)은 트럭의 체류시간을 20분 이내, 선박 접안도 14시간 안으로 줄여 생산성과 효율성 두마리 토끼를 겨냥하고 있다.

 
지상 50m 높이에 위치한 안벽 크레인의 캐빈.  
그 가운데 부산신항의 최고 자랑거리는 65m 높이의 안벽 크레인들. 파란색으로 도색돼 바닷가 쪽으로 사열하듯 줄지어 선 모습이 장관이다. 대당 가격이 60억, 무게만 1700t에 달하는 이 자이언트 크레인의 컨테이너 처리능력은 시간당 35개. 동일한 조건에서 북항보다 10개나 빨리 옮길 수 있다.

취재진이 찾았을 때 마침 쿠웨이트 국적 UASC 선사의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산신항만(주)의 안내로 안벽 크레인의 캐빈(운전석)에서 하역작업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캐빈의 지상고는 50m. 원체 높아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려야 한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가슴이 철렁하고 움찔해졌다. 듬성듬성한 철골 구조물 사이로 까마득한 땅바닥이 훤히 내려다 보이기 때문.

허공에 떠 있는 3평 남짓한 캐빈은 항공기 조종실을 연상시켰다. 사방은 물론 바닥까지 유리로 덮여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조종간을 잡은 크레인 기사 김종성 씨는 안전벨트를 동여맨 채 발아래에 시선을 고정하고 하역작업에 열중이다. 접안한 선박에서 컨테이너에 와이어를 걸어 트랙터에 옮겨 싣는 일이다. 길거리에서 자주 봤던 인형뽑기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에게만 허용되는 업무다. 항만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핵심기술이기도 하다. 김 씨는 "간혹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컨테이너를 찍어 올릴 때는 낚시를 하는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아직 일감이 많지 않은 부산신항. 그러나 개항 초기부터 24시간 3교대 근무방식을 그대로 유지해 하역작업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세상을 눈 아래에서 조망할 수 있는 안벽 크레인의 캐빈, 신항의 광활한 전경과 푸른 해역이 동시에 시선에 들어왔다.
                                                                 글 = 김성한 기자
honey@kookje.co.kr

 

 

강서 개발 10대 프로젝트

 

1. 강서신도시
3조 원 투입 10만 명 거주 미래형 혁신도시(대저1동 148만 평). 2007년 착공, 2012년 완공

2. 낙동강정비사업
1470억 원 투입 친환경 수변공원 조성. 올 연말 염막지구 완료.

3. 명지대교
명지~신평 연결 순환도로망(5.2㎞). 사업비 4200억 원. 2009년 완공(공정률 16%)

4. 신항 북측배후지
20만 명 거주 항만배후도시(93만 평). 2013년 완공(공정률 62%).

5. 부산과학산업단지
첨단산업 118개 업체 입주 예정(지사동 일원 60만 평). 2006년 6월 준공

6. 신호산업단지
동남해안 공업지대 구축(신호동 일원 38만평). 2만1000명 수용. 2006년말 완공

7. 서부산유통단지
항만 및 공항 복합물류단지(대저2동 25만 평). 2010년 완공.

8. 명지지구
R&D·국제업무 종사자용 주거지(142만 평). 사업비 1조5613억 원. 2010년 완공.

9. 가덕대교
녹산공단과 가덕도 눌차를 연결하는 교량(780m). 2009년 완공(공정률 32%).

10. 녹산배수펌프장
고질적인 재해·농경지 침수 예방. 사업비 1010억 원.
2007년초 완공(공정률 58%)

 

 

가덕도 사람 이야기… "신항에 삶의 터전 빼앗겼다" 아우성


밀려오는 '뭍의 때' 동심들 물들까 걱정  /  "숭어 많이 먹어줘야 우리도 먹고 살지"
"주민과 함께한 가업 잇지 못해 분통"

 


 
  하늘에서 바라본 가덕도의 맨 남단. 바다를 향하고 있는 지능선 상의 산정에 위치한 하얀 등대가 눈길을 붙잡는다. 등대에서 보면 다대포 거제도 진해시 등 남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진제공=강서구청
 
영도의 1.6배로 부산서 제일 큰 섬이지만 지난 1989년에야 비로소 부산 강서구로 편입된 막내 가덕도.

섬의 대부분이 산줄기로 얽히고 설켜 있어 활용가치를 못느낀 때문인지 오랜 기간 김해 진해 창원 마산 등 인근 지자체로 떠넘겨지는 유랑의 아픔을 겪었다.

패총과 고인돌이 발견돼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임진왜란 땐 해상 요충지로, 러·일 전쟁 땐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하는 등 꽤 쓸모가 있었던 것 같지만 섬이 육지를 배반하여 무슨 역모라도 했는지 유형(流刑)의 이 섬은 파도와 함께 외로움을 곱씹어야 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반짝 소개된 적도 있긴 있었다. 3년 전 태풍 '매미'가 섬을 집어삼켰을 때였다.

가덕도는 이제 낯설지 않다. 부산신항과 컨테이너 배후도로,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와 가덕대교 등 부산의 미래 서부산권 개발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상전벽해란 말을 새삼 떠올리며 가덕 주민들은 밝은 미래를 꿈꾸었지만 2006년 9월 섬 주민들은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허울 좋은 대역사에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내주고 정작 주민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 때문이다. 남측 컨부두는 어민들의 생업을 앗아갔고, 반드시 필요한 섬 일주도로 계획은 '하세월' 하면서 부산과 섬을 잇는 도선은 연말이면 없앤다고 한다. 대신 가덕대교와 거가대교를 연결하는 천성~눌차 도로공사 계획만 애드벌룬처럼 띄운다. 투기자본이 몰려 70% 이상의 토지가 외지인의 소유가 된 사실도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순응은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옛날이 그립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다. 가덕도에서 태어나 지금의 삶도 가덕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순혈' 가덕인 세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덕도 도선 운항 중단 앞둔 진영해운 김태복 사장
 
 
녹산 선착장에서 가덕도에 들어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한다. 흔히 도선이라 불리는 이 배는 오는 12월이면 운항을 하지 못한다. 신항 공사 때문이다. 남측 컨부두와 북측 컨부두를 연결하는 연결잔교(통로)가 생겨 도선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친에 이어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진영해운 김태복(52) 사장 겸 선장. 그는 가덕도와 뭍을 오가며 주민들을 실어나르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지난 1989년 정식 사장이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가 선착장이고 도선이었다.

중학교때부터 이미 배를 몰았다는 그는 가덕도 1200여 가구 4000여 명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며, 가가호호 밥숟가락 개수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연말까지만 운항하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 보름간 거의 식음을 전폐했고 잠도 못잤어요."

이후 신항 공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올 7월까지 운항이 연기된 후 또 다시 올해 말까지 세 번째 연기됐다. 몇 차례 운항 중단 통보와 연기가 반복되면서 그는 "이젠 그저 담담할 뿐"이라며 마음을 비운 듯 말했다. 어차피 도선이 없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어서 몇 개월 연기되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

그는 요즘도 늘 그렇듯 오전 5시 다대포 집을 나와 하단에서 선장을, 동아대 앞에서 직원을 태우고 녹산으로 출근한다. 직접 표를 팔고, 사무실 청소도 손수한다.

가덕도에서 태어나 15살까지 섬에서 살았고, 이후 생업도 모두 가덕도 주민들과 함께 한 터라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 편으로 더욱 슬픔이 북받친다고 했다.

"요즘 섬주민들은 예전과 달리 표정이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편안하고 넉넉했는데 요즘은 살림살이가 고달픈지 이를 악물고 살려는 모습이 얼굴 표정에 역력하다고 말했다. 그 만큼 삶이 팍팍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내 코도 석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육수장망 숭어잡이 사령관 김보섭 대항어촌계장
 
 
"부산사람들이 전국에서 가덕 숭어를 제일 안 먹어. 내가 먹어보니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그 맛 그대론데. 옛날부터 가덕도 숭어를 알아줬잖아. 숭어 잡아서 먹고 살고 하는데…."

김보섭(68) 대항어촌계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오랫동안 참아왔는지 대뜸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알고보니 200년 전통의 어로법인 가덕도 육수장망 숭어잡이의 사령관격인 어로장이었다.

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물어봤다. 숭어 자원은 아직도 풍부하지만 어가가 형편없다고 했다.

"2월부터 5월 말까지 통상 15만~20만 마리의 숭어가 잡혀. 한데 수년 전에는 마리 당 3000~5000원 정도 했는데 요즘은 500~700원 정도야. 경비도 안 나와. 되레 손해야. 그래서 안 잡아."

그러면서 그는 "10년 전만 해도 자갈치시장에서 하루 5000마리를 팔았는데 요즘은 200~300마리도 안 먹는다"고 했다.

불만은 이어졌다. "마을버스가 천성까지만 들어와. 천성에서 대항으로 넘어오는 도로가 형편없어 차가 못다녀. 이런데도 도선을 없앤대. 대항이나 외항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떡하라구. 도로는 안 만들어주고 숭어도 안 먹고."

대항마을은 3년 전 섬에서 유일하게 체험형 어촌마을로 지정돼 5억 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3층짜리 민박집도 지었다. 김 씨가 숨은 주역이다.

하지만 신항 공사와 때를 같이해 어촌체험의 한 프로그램인 돌미역 따기와 자연산 담치잡기를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그 많던 것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의 가덕도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영원한 아버지 소양보육원 지형식 원장
 
 
올해 개원 60주년을 맞은 소양보육원 지형식(52) 원장은 요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막내 초등학교 1학년을 비롯한 107명의 아들 딸들을 돌보기에도 벅찬데 올해부터 부산아동복지연합회 회장이란 감투를 본의 아니게 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 원장을 만나기 위해 전화를 하면 하루는 시청, 다음날은 구청에서 회의가 있어 스케줄 맞추기가 매우 힘들었다.

소양보육원은 1946년 부친 지득용 초대 원장이 춘천에서 개원했지만 한국전쟁 때문에 1950년 12월 이곳 가덕도에 둥지를 틀었다. 지 원장은 1997년 부친의 뒤를 이어 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가업을 이은 점에서 진영해운 김태복 사장과 동일한데 그는 김 사장과 동갑이며 어릴 적부터 친구라고 했다.

"저도 여기서 태어났고, 지금은 대학생이 돼 섬을 떠나 있지만 제 아이들도 여기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제 처도 보육원에서 만나 원장과 생활지도교사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해서 보육원은 제 인생의 전부이자 하나님이 주신 천직입니다."

지 원장의 사고의 기준은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랬다.

"거가대교와 가덕대교가 생기면 제일 염려스러운 점이 술집이나 포장마차 등 유흥업소 등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가덕도 토지의 70% 이상이 외지인의 소유가 된 사실과 관련, 지 원장은 원생과의 대화를 예로들며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이 다가와 올해는 왜 농사를 안 지어요. 고개를 숙인 누런 벼이삭을 보면 전 그렇게 기분이 흐뭇하던데. -그건 땅주인이 뭍사람들에게 팔아서 그런 거야."

가덕사람들에 관해 물어봤다. 지 원장은 "최근에는 사회복지 개념이 확립돼 주민들이 자주 찾아와 청소도 하고, 간식거리도 주고 갑니다. 그들도 어려운 삶인데도 말이에요."
                                             글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가덕도 가볼 만한 곳


척화비· 산성 등 문화재 산재  /  가덕등대 예약땐 1박도 가능

 

가덕도를 찾았다면 빠뜨려선 안 될 볼거리가 제법 있다.

우선 대원군척화비. 대원군이 1871년 세운 것으로 원래 가덕포구(지금의 선창)에 있던 것을 성북동 천가초등 운동장 한 켠으로 옮겨 놓았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척화비 옆에는 친절하게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국군23용사 충혼비는 소양보육원을 지나 천성개에 위치한 천성예비군 교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산화한 23명의 가덕도 젊은이의 영혼들이 모셔져 있다.

천성동에는 부산시 지정 기념물 34호 천성진성이 있다. 천성교회 뒤편에 있다.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 지은 성으로 성벽. 높이 3.5m, 폭 4.5m 정도 남아 있으며 조선 중기의 축성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천성과 이웃 마을인 두문마을에는 고인돌이 있다. 바다와는 불과 30m 떨어진 밭 가운데 위치해 있다.

 
외항포도 놓쳐선 안 된다. 마을 전체가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1905년 5월 러·일전쟁 직전 일본이 이땅에 최초로 군사령부를 설치했다. 이 때문에 이곳에는 포대자리 군막사 대공관측소 동굴 등 군시설물과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다. 일본식 가옥에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외항포에 왔다면 등대를 둘러봐도 된다. 4㎞를 걸어야 한다. 40분 정도 걸린다. 등대는 부산해양수산청 홈피(pusan.momaf.go.kr)에 신청하면 1박을 할 수 있다. 1만5000원. 대항마을에선 가덕도에서 유일하게 어촌체험을 할 수 있다. 가덕도 남단 동쪽 해안절벽에 자생하는 천연기념물 제10호인 동백숲도 유명하다. 이 숲은 불행히도 군 작전지역이어서 민간인들은 보기가 어렵다.

 
맛집 두 곳 소개한다. 대항마을의 '소희네집(051-971-8886)'. 해산물 정식(사진)이 유명하다. 제철의 멍개 해삼 새우 소라 등 23가지와 바지락 미역국이 나온다. 7000원이지만 4인 기준 한 상 단위로만 판매한다. 소희네집 인근의 '자연산횟집(051-971-1548)'. 주인이 직접 잡아 우선 싱싱하며 양도 뭍보다 훨씬 많다. 매운탕엔 두툼한 살코기가 들어있다. 두 집 모두 예약 필수.

 

즐비한 낚시 포인트… 바다·민물 어디서나 당찬 '손맛'


가덕도 고기 사시사철 회유, 천혜의 갯바위  /  초가을엔 0.5호 예민한 채비로 감성돔 공략
낙동강 지류 유량 변화없어 붕어 입질 활발  /  명지·녹산수로 등 연중 강태공 발길 이어져

 

부산은 국내 바다낚시의 수도 또는 메카라고 불린다.
그 만큼 부산이 우리나라 낚시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낚시뿐 아니라 부산은 민물낚시에 있어서도 비중이 상당하다.
부산의 민물낚시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강서구다.
한 발 더 나아가 강서구를 빼놓고는 부산의 민물낚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부산 민물낚시의 큰 틀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강서구가 지니고 있는 민물낚시와 바다낚시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가덕도 남단 곳부리 일대. 이곳은 조황뿐 아니라 경관 또한 일품이다.
 

#바다낚시 천국 가덕도

바다낚시에 있어서 강서구는 가덕도라는 걸출한 낚시터를 갖고 있다. 가덕도 다대포 태종대 오륙도 등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바다낚시 명소들 중에서 가덕도는 규모 면에서 가장 큰 낚시터에 속한다.

규모뿐만 아니라 물고기가 사시사철 머무르거나 회유하기 위한 천혜의 갯바위 여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이만한 섬은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 낚시꾼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특히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쏟아지는 폭발적인 감성돔의 마릿수 조과는 전국의 내로라 하는 바다 낚시터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은 무서운 저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부산서 거리가 가깝다 보니 많은 낚시꾼들이 동네낚시터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뚜렷해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현재 초가을 시즌 가덕도의 감성돔 낚시를 이끄는 주요 포인트로는 주로 병산열도의 소갈미 중갈미 대갈미를 비롯하여 천수대 솔섬 외항포 아동섬 새바지 등 섬의 남쪽 끝부분 근처이다. 가덕도는 대개 이들 포인트에서 감성돔의 입질이 시작되면서 점차 가덕도 전역으로 입질이 확산된다.

가덕도에서의 감성돔 낚시는 화끈한 입질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워낙 많은 꾼들이 몰리는데다 수시로 포인트를 오고가는 낚싯배들 때문에 경계심이 높아진 감성돔이 미끼를 단 번에 삼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0.5호 정도의 예민한 채비를 사용해야 되며, 조류가 빠를 때는 예민함에 탁월하고 봉돌의 침강 속도가 빠른 2~3호 정도의 막대찌를 사용하면 좋은 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경마장 앞 수로 낚시터.
#민물낚시의 보고 낙동강 수로

민물낚시터로서 강서구가 지닌 큰 장점은 낙동강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낙동강 본류에서는 그리 많은 낚시 행위가 이뤄지지 않지만 명지수로 둔치수로 칠산수로 녹산수로 등 낙동강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각 수로는 영원한 민물 낚시꾼들의 보금자리로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이곳 민물 낚시터들은 낙동강 오염과 함께 낚시터로서의 가치가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 수로 낚시터들은 낙동강 덕분에 풍부한 유량이 항상 유지될 수가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일년 내내 강태공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조황의 기복이 적다.

붕어낚시는 다른 어느 낚시 장르보다 날씨나 유량 등 주변 여건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좋은 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주위 환경의 변화가 많이 생겼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낙동강 수계 낚시터 중에서 강서구가 자랑하는 수로낚시터들은 적어도 날씨를 제외한 유량 변화라는 최대의 난제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최고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해서, 강서구의 수로 낚시터들은 유량의 차이가 심한 타 민물 낚시터와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낚시터로 오늘날까지 계속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꾼들에게 가을은 연중 낚시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강서구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이곳 수로낚시터의 붕어들도 덩달아 살이 오른다.

천고마비의 이 계절, 강서구의 아름다운 들녘을 누비면서 동시에 살찐 붕어의 당찬 손맛을 즐기기에는 요즘이 제격이 아닌가 싶다.        박춘식·낚시칼럼니스트

 

강서 화제의 현장 2곳

 
특기적성 공군아저씨한테 배워요  /  매주 목요일 영어·골프 등 교육
대한항공과 주니어 공학교실도  /  버림받고 길잃은 견공들의 피난처
탈진 상태 하루 7~8마리 입소  /  주인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

 


 
  덕두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자기부상열차를 들어 보이고 있다.
 

# 덕두초등학교

"복받은 학교라며 주위에서 시샘에 가까운 부러움을 받고 있어요."
김해공항 코앞에 자리잡은 강서구 덕두초등학교의 즐거운 비명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이 초등학교는 목요일 오후가 되면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군인 아저씨들과 함께 하는 '방과후 수업'이 그 것. 덕두초등학교는 2004년 10월부터 인근의 제5전술공수비행단의 공군 장병 24명을 특기적성 선생님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업 내용이 꽤 흥미롭다. 골프, 글라이더, 수학경시, 영어회화, 라디오조립, 축구, 태권도, 탁구 등. 학교에 직접 군인들이 와서 수업을 진행하거나 골프·탁구 등 학교에 시설이 없는 수업은 학생들을 버스에 태워 영내로 데려가 가르친다. 수업은 매주 한차례 2시간씩 4~6학년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공군부대답게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목이 고무동력기 만들기이다. 1년에 두차례 전교생이 공군 부대장을 만나 진로지도를 받기도 한다.

같은 부산이지만 농촌지역인 탓에 도심 학교처럼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을 실시하기가 어려웠던 덕두초등학교. 묘안으로 공군부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군 역시 대민지원의 일환이자 학생들 30%가 군인 자녀들인 관계로 선뜻 응했다. 이렇게 시작된 군·학의 결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학생들은 매주 돌아오는 목요일 오후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변두리 학교의 교육혁명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현역 군인들을 초등학교의 특기적성 교사로 활용한 것은 국내에서 첫 사례였다.

윤철환 교장은 "군인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이 군대에 대한 이해와 교육적 효과를 동시에 얻고 있다"며 "군대와 학교 사이에 이상적인 공생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자랑했다.

덕두초등학교는 또 공군 부대 외에 지난해부터 대한항공의 엔지니어 30여 명을 강사로 초빙하는 '주니어 공학기술 교실'도 유치해 화제를 일으켰다. 프로그램은 매달 넷째주 쉬는 토요일에 실시되며 호보크래프트나 자기부상열차 만들기 등 과학영재 교육 형태를 띤다. 40명 정원의 '공학기술 교실'은 올해부터 참여 폭을 덕두초등학교 학생 외에 인근 10개 초등학교로 확대해 교육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부산에서 하나뿐인 강서구의 유기견 보호소.

# 유기견 보호소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강서의 대저2동 들녘. 도로에서 한참 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맥도강. 그 강줄기 옆으로 축사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다. 부산시 유기견보호소. 지난해 4월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연 버림받은 개들의 피안의 땅이다.

보호소에서 보호받고 있는 개들은 250마리. 대부분 주인의 손에 버려져 길거리를 헤매다 탈진 상태로 포획돼 끌려왔다. 하루 평균 7~8마리가 입소하지만, 여름 휴가철에는 하루 20마리 정도로 급증한다. "집을 오래 비우기가 부담스러워 아예 애완견을 버리고 휴가를 떠나기 때문이죠. 집을 못찾아 오도록 휴가지에서 개를 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유기견 보호소 엄태진 본부장의 설명이다.

올해 8월까지 부산에서 버려진 개들은 2960마리(2003년 898마리, 2004년 1943마리, 2005년 3785마리). 경기가 안 좋을수록 유기견의 숫자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강서의 유기견보호소는 부산시내 10개 구청에서 유기견 보호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정부나 시가 나서야 할 궂은 일을 민간업자에 떠맡긴 꼴이다.

보호소에 실려와도 유기견의 삶이 나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보호소에 들어오면 사진과 함께 간략한 정보를 개가 발견된 구청의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행여 길을 잃은 강아지라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 고의로 버려졌기 때문에 주인이 나타날 확률은 극히 낮다.

"개들도 사람과 똑같아요. 주인과의 정이 깊을수록 버림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죠. 보호소에 와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개들에겐 한 달간의 입양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입양률은 20% 정도. 이 시간을 놓치면 삶을 보장받기란 어렵다.

질병이나 사고로 치료가 힘든 개들부터 안락사를 시키고, 건강한 녀석들은 최대한 입양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마저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고 한다. '그럼, 그후론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엄 본부장은 말을 아낀다.

유기견 입양은 무상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족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개들이 다시 버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소를 찾을 때는 주민등록등본과 신분증도 꼭 지참해야 한다. 나쁜 마음으로 개를 데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왈왈! 컹컹!' 150평 규모의 축사에 인기척만 있어도 수백 마리 강아지들은 합창하듯 짖어댄다. 주인을 찾는 절규처럼, 녀석들의 울음 에는 진한 슬픔이 묻어난다. (051)941-9123
                                           글·사진=김성한 기자
honey@kookje.co.kr

 

"가을이면 며느리들이 집을 안나가"


원조 전어회에 고소한 갈미조개까지… 청둥오리 · 장어 원기회복에 '딱'

 


어느새 찾아온 가을이 부산 강서를 맛들이고 있다. 강서는 온갖 가을 진미의 경연장. 도심에서는 맛보기 힘든 강서 고유의 맛들이 식도락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넓은 면적을 지닌 강서는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라난 특산물이 주류를 이룬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맛집들이 이들 특산물 등을 활용해 하나같이 고유의 맛을 자랑하고 있다. 매년 명지축제가 열리고 있는 명지시장을 비롯해 갈미조개가 맛나는 선창회타운, 건강식으로 안성맞춤인 청둥오리 요리집들이 모여있는 강동동과 금호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전어회의 전설, 명지
 
 
  전어회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고 했다. 그 전어가 비로소 제철을 맞아 절정의 맛을 뽐내고 있다.

가을이면 전어축제를 여는 명지시장은 80여 곳의 횟집들로 꽉 차 있다. 해마다 이맘 때는 전어 맛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이들 횟집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물기를 닦아가며 전어를 써는 상인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11월 중순까지 여름에 잃었던 입맛을 전어로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명지시장에서 13년째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바다횟집 대표 이동환 씨는 "전어를 활어로 육지에 가져와 횟감으로 먹기 시작한 곳이 바로 명지"라며 "가덕도와 다대 앞바다에서 잡히는 전어는 살점이 두껍고 단단해 다른 지역 전어보다 맛이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명지에서도 처음에는 전어를 구이용으로 먹었다. 성질이 매우 급한 전어가 하루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씨는 "배에서 살아 실려온 전어를 사기 위해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서 있던 옛 기억이 남아있다"며 명지에서 전어를 활어로 처음 공급하기 시작했던 때를 회고했다.

봄에 알을 낳는 전어는 가을을 전후해 지방질이 많아지고 뼈도 부드러워져 가장 맛이 좋다. 전어구이나 전어무침 등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싱싱한 뼈회(세꼬시)로 먹는 게 최고다. 손바닥만해 크기가 작고 살이 많지 않아 뼈째 먹을 때 그 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추와 깻잎 위에 참기름을 섞은 된장, 풋고추와 마늘을 곁들인 꼬들꼬들 씹히는 전어의 고소한 맛은 진한 가을의 추억을 남겨주기에 충분하다.

#갈미조개의 매력, 선창회타운
 
 
  갈미조개
명지 IC에서 새명지를 지나 나오는 명지동 선창회타운은 최근 조개타운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 특히 낙동강 하구에서 자연산으로 캐오는 갈미조개는 '명지조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7곳의 횟집들이 한 건물에 모여있는 선창회타운은 회는 물론 각종 조개요리로 미식가들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횟집 안에서 내다보는 다대포와 을숙도의 아름다운 풍광도 맛을 더해 준다.

갈미조개는 수육, 전골, 구이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돼 나온다. 껍데기를 깐 조갯살의 모양이 갈매기를 닮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갈미조개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낙동강 명지산이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해 인기가 높다. 경북 포항에서도 나지만 명지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갈미조개는 9월말부터 이듬해 5월까지 맛볼 수 있다. 특히 12월 조갯살이 오를 때 맛은 최고조에 달한다. 조개 고유의 담백한 맛과 함께 특유의 쫄깃하고 신선한 맛에 누구나 쉽게 빠질 정도다.

선창횟집 대표 김필숙 씨는 "처음에는 갈미조개를 서비스 음식으로 내놓았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이것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이제는 주요리가 됐다"고 말했다.

갈미조개 요리 중 가장 선호도가 높은 전골은 적당히 삶은 조갯살을 초장이나 고추냉이에 찍어먹을 수 있도록 요리돼 나온다. 최근에는 램프 위에 올려 데워 먹는 것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강촌횟집 천동근 씨는 "갈미조개 외에도 가리비 대합 운피 등 각종 신선한 조개들이 풍부해 수육과 전골 구이 탕 등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몸에 보약, 청둥오리의 마을

철새 도래지였던 강서지역에는 오리요리 전문점들이 유독 많다. 특히 강동동과 대저2동에는 청둥오리 전문점들이 20여 곳 밀집해 있다.

을숙도 하구둑을 지나 강동동 이정표를 따라 찾을 수 있는 강동동 강동유황오리 농장은 유황오리와 보약죽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숯불 위에 석쇠를 올려 생오리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주말이면 가족단위 손님들로 붐빈다. 특히 오리뼈를 8시간 이상 고아 우려낸 물에 20여 가지 곡물을 넣어 만든 보약죽은 그 이름값을 한다.

강동유황오리 농장 대표 배영진 씨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낙동강 하구에 찾아왔던 청둥오리의 알을 부화시켜 농장에서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청둥오리 전문점들이 생겨났다"며 청둥오리 요리의 유래를 설명했다.

유황오리를 농장에서 직접 길러 판매하는 낙동강 오리알은 부산 경남 등지에 분점을 11곳이나 낼 정도로 유명한 곳. 400여 평의 넓은 규모는 강서구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직접 청둥오리를 키우기 때문에 남다른 육질을 자랑한다. 유황을 비롯해 황토 해조류 등 각종 영양이 풍부한 사료를 먹여 키워 건강식으로 손색이 없다. 연한 육질의 고기에 시원한 오리탕의 국물맛, 쫄깃한 소금구이로 부산 경남 일원에서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김해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호마을은 청둥오리 전문점의 원조로 자부심이 높은 곳. 10여 곳의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다. 몸에 좋은 청둥오리에 온갖 약재를 넣어 끓여낸 탕과 지방이 적어 쫄깃한 고기맛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있다.

#장어, 잉어의 별미

가락 IC를 지나 조만강 근처에는 아름다운 갈대의 풍광을 만끽하며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음식점 10여 곳이 있다. 먼길을 마다 않고 달려오는 드라이브족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강촌집은 깔끔한 장어요리를 자랑한다. 직접 재배한 야채를 넣어 만들 만큼 정성을 담아낸다.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의 직접 담근 장맛이 맛의 비결이라면 비결.

인근 민물집은 밖으로 내다보이는 강변의 조망이 시원하다. 숯불장어구이와 매기매운탕, 잉어찜이 모두 맛깔스럽다.

등나무집도 국산 장어만을 취급한다. 4가지 약초를 섞어 24시간 끓여낸 특별한 소스와 함께 이 집 안에 있는 100년 넘은 등나무가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죽전가도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어 놓는다. 잉어찜과 기름을 쫙 뺀 장어구이가 깔끔하다. 넓은 식당 자체가 마치 공원을 연상시키듯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텃밭에서 직접 가꾼 고추 상추 오이 등 무공해 채소가 식탁에 올라온다.
 
  강서 관광 안내도 지도 원본 제공 = 삼성기획 (051)301-0701

 

각광받는 농촌체험 현장


아들이 키운 토마토가 익어가요

 


 
  강서구 대저2동 솥뚜껑토마토 마을 분양자들이 주말체험 농장을 가꾸고 있다.
 
'도심 탈출은 강서로'. 부산 강서구는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벗어나 흙을 밟고 수확의 재미를 부모, 자녀와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명지 대파, 대저 토마토 등 각종 특산물들로 유명한 강서지역에는 주말농장을 비롯해 각종 농촌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솥뚜껑토마토 마을과 부산시 농업기술센터 2곳.

#솥뚜껑토마토 마을

김해국제공항에 인접한 강서구 대저2동 솥뚜껑토마토 마을은 지난 2004년 주말농장을 조성, 일반인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제공하고 있다.

솥뚜껑토마토마을은 비옥한 평야지역에 위치해 황산화 물질인 리코펜이 풍부한 토마토와 오리농법 무농약 쌀을 주로 생산하고 있는 마을로 약 900평의 땅을 주말체험농장으로 개방하고 있다.

'솥뚜껑'이란 마을의 모양이 솥뚜껑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마을의 이름 '정관(鼎冠)'에서 따왔다. 솥뚜껑토마토는 새콤달콤하고 단단한 육질로 유명해 일본에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분양에 들어간 이 주말농장은 낙동강 하구언에 위치해 있다. 비옥한 토지라 농작물들이 잘 자라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시내에 위치해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도 인기의 요인.

주말농장에서는 토마토뿐만 아니라 고추와 오이, 가지, 호박, 상추, 케일, 겨울초 등 계절별로 다양한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홈페이지(tomato.invil.org)를 통해 토마토를 전자상거래로 구입할 수 있다. 주말농장을 가지려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이미 100% 분양이 완료된 상태다. 내년에는 2~3월께 주말농장을 분양할 예정이며, 10평 임대료가 8만 원. (051)970-4345

#부산시 농업기술센터

강서구 대저1동에 위치한 농업기술센터는 농촌체험 연중 프로그램을 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는 오는 20일 강서구 명지동에서 진행되는 벼 수확체험이나 11월 8일 부추 베기체험(강서구 명지동), 배추 수확체험(강서구 대저 2동) 등의 프로그램을 남겨두고 있다.

체험비가 무료인데다 수확은 물론 농작물을 시식할 수 있어 매년 초에 참가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감자 토마토 표고버섯 미나리 배 수확, 유황오리알줍기 체험 등 연중 20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농업기술센터는 도심에서 녹색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지도하는 테마원예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테마원예는 매월 둘째주 목요일 열리며 이론과 실기, 체험이 병행된다. 가을채소 가꾸기, 겨울철 월동관리법, 베란다꾸미기, 주말농장 가꾸기, 야생화체험, 허브체험 등을 주제로 진행된다.

농촌체험과 원예프로그램 모두 예비 신청자를 접수 중이다. (051)971-5959
              글 · 사진 = 최현녕 기자
via@kookje.co.kr                            - 국제.06.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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