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한 치유 상담 2.
3. 당연한 감정인데
여하튼 분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감정 중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아졌다고 해서 화를 자주 안낼 것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할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분노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선결되는 조건이다.
에베소서 4장 26절 말씀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고 단지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고 당연히 화가 나는 것은 정상적인 감정이다.
문제는 화가 나는 것을 참아서 무의식 속에 억지로 넣느냐
아니면 바로 화를 내느냐에 대한 차이이다.
사실 화나는 것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 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특히 화를 내는 것은 커다란 악행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등의 말이 미담으로 전해져 왔다.
이런 사회구조의 영향으로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 "홧병"이 있다고 한다.
이 병은 화가 나는데 계속 참아서 결과적으로 가슴이 뛰고 손이 떨리며
밥맛을 잃게 되는 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한 감정을 숨길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분노는 정당한 감정이다. 따라서 드러내고 해결책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4.필요한 분노도
그렇다면 누구든지 분노 할 수 있다면 신앙인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초점이다.
화를 낼 수 있다고 해서 개인적인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은 성경에서 원하는 분노가 아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거룩하고 건설적인 분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모세를 통해서 이해 될 수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면서 크게 2번 화를 내게 된다.
한번은 건설적인 분노요 또 하나는 파괴적인 분노였다.
건설적인 분노
모세는 어렵게 바로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도착했을 때 불평하기 시작한다.
"네가 우리를 잘살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하느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느냐?하면서 모세에게 대항하게 된다.
모세도 꽤나 화를 잘 내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민수기 10장 15절을 보면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사람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라고 무지하게 화가 난 상태에서 기도를 드렸다.
문제는 하나님이셨다.
그저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렇게 화를 내면 오히려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실 일인데 더 화를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이 회중에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여기서 모세의 분노는 정당했으며 건설적인 분노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파괴적인 분노
그런데 모세가 화를 내는 또다른 모습이 있다.
민수기 2O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목마르게 되어 모세에게 화를 내게 된다.
"아니! 우리를 애굽에서 죽일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할려고 하느냐?
여기에는 무화과, 포도, 석류도 없고 더구나 마실 물도 없도다"
그러자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다가가서 분노를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못된 백성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번엔 자기편이 아님을 안 모세는 화가 나서 아론과 합께 총회를 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패역한 사람들아 들으라! 우리가 이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겠다."라고 하면서
화가 나서 반석을 2번 치게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다.
이 잘못된 분노로 모세는 그렇게 원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개인적인 분노는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세의 삶을 통해서 볼 때 분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노는 개인적인 죄를 해결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으로 써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화를 낼 때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유로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노는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도 바울도 화를 내셨다.
문제는 건설적인 분노였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에덴에서 알지못하는 신들을 섬기는 것에 분노하였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인을 섬긴다는 것에 대한 건설적인 분노였다.
예수님의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공생애 동안 발하신 분노는 우리와 전혀 다른 분노였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화를 내셨을 때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셨다.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후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도 많은 화를 내셨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무서워했고 결국은 못박게 하는 중추적인 입장이 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내셨는가?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많은 양들을 이끄는 잘못된 영적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고
더러운 침을 뱉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으셨던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분노는 결코 이기적인 일로 인해 나타난 것이 아니요 건설적이며 필요한 것이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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