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탄부활과 절기

[스크랩] 부활장이라고 불리우는 고린도 전서 15장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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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장이라고 불리우는 고린도 전서 15장

 

본문 말씀:고린도 전서 15장1~58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 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1. 그리스도의 부활 15:1-11

바울은 이 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일부가 맹렬히 부인하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교리를 확고히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12절). 그리고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함으로 미래의 보상에 대해서도 부인하였다. 바울은 복음의 개략을 설명한다. 복음에 대하여 살펴보자.

 

[1] 바울은 복음을 강조한다(1,2절). 이 복음은 그가 변함없이 항상 전했던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그가 이전에 가르쳤던 그 복음을 가르쳤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이미 받았던 바로 그 복음이었다. 이 복음은 낯선 것이나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 복음은 그들이 그 안에 굳게 서야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그 복음 위에서야 했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이다. 이 기초를 제거하면 그 위의 구조는 완전히 몰락한다. 그들이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복음뿐이다(2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하지 않으면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의 신성한 종교의 구원에 대한 진리들이다. 그들은 이것을 마음속에 확고히 간직해야 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계속 고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단지 일시적인 믿음이 되고 만다. 만일 우리가 부활을 부인하면 예수를 믿는 믿음의 고백도 헛것이 된다. 기독교를 믿는 믿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 부활의도를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2] 이 복음의 실제는 무엇인가. 이것은 먼저 그가 받은 것으로 그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그것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귀중한 진리였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진리의 실체이며 또한 총체이다.

 

[3] 이 진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1)구약의 예언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따라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이러한 일이 옛 선지자들의 예언과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앎으로써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큰 확신을 준다.

 

2)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를 목격한 많은 목격자들의 증거에 의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러 번 서로 다른 곳에서 그를 보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심지어 바울도 그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다. 주 예수께서는 그가 다메섹을 향하여 갈 때 나타나셨다(행 9:17). 바울은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었으나 항상 자신을 겸손히 낮추었다. 그래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①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다(8절).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개인적으로 주와 교제를 가진 것과 같은 성숙한 사도직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는 그런 개인적인 교제를 가질 수 없는 때에 사도직을 받았다.

 

②자신을 사도들 중에서 가장 나중 된 자라고 지칭했다. 자신이 그리스도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자기는 사도직으로 부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고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겸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을 더 위대하게 만든다. 바울을 겸손하게 만든 것은 전에 그가 하나님께 대한 불타는 열심히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범한 악한 행동을 뉘우치는 것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손쉽게 이런 대역 죄인이라도 구해내시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성도가 되었을 때 그는 이전의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 때문에 더욱 충성하고 겸손하고 기뻐하고 신실해진다.

 

③자기에게 있는 모든 가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다. 비록 그가 근면과 열심과 봉사의 마음을 품었으나 자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빚진 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10절). 그가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신을 더 겸손히 낮추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감사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의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동일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다른 사도들도 자신의 복음과 똑같은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 주어 죽임을 당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 복음의 실체요 또한 총체라는 것을 지지한다. 이것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은 살았고 이것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은 죽었다.

 

Ⅱ. 죽은 자의 부활 15:12-1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절). 바울은 명백한 사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시한다.

 

[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리라는 사실은 과거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되었던 것이며 그가 부활한 것은 많은 목격자에 의하여 증명되어진 사실이다.

 

[2] 부활이 없다는 가정이 인정된다면 기독교의 중요한 원리들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또 사도들도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이며'(15절), 그들의 노고는 헛것이 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복음은 공허한 껍질만 남는다. 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도 헛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과 죄에 대한 희생의 대가로 우리에게 용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세력 아래 잡혀 있다면 어떻게 그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헛된 것이 되겠는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구원도 의롭다함도 없었을 것이다.

 

[3] 그들은 죽음이 육체의 생명 뿐 아니라 사람을 소멸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가정하에서는 부활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사후의 생명도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얼마나 공허한 것이 될 것인가!

 

[4]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종들에게 있어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서 더욱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19절). 만일 부활이 없고 또 장래의 보상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아마 이런 처지에 처한 그리스도인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참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되어 있다. 만일 이 세상의 쾌락도 없고 장래의 더 좋은 세상의 소망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 되겠는가!

 

Ⅲ. 부활의 순서와 상태 15:20-3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진리를 확립한다.

 

[1]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안에서 잠든 자들의 첫 열매로서 자신을 일으키셨다. 그가 부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안에 잠든 그들도 부활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도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 이것이 진리를 확증하는데 사용한 바울의 첫 번째 논지이다. 그리고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을 병행하여 설명한다(21절). 죽은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죽고 부활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공로를 인하여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은 것같이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 것이란 말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첫 열매로 부활하셨으므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23절) 는 그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할 모든 사람은 예수의 공로로 부활하게 되면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구원이 들어온 것이다. 바울은 부활에는 질서가 있음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 순서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는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첫 번째 열매들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에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이 일어날 것이다.

 

[2] 바울은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원수가 완전히 멸망될 때까지 중보적 왕국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한다(24-26절).

 

1) 이 주장에 함축된 뜻은 ①우리 주는 죽음에서 일어나셔서 모든 권세를 손에 넣으셨다. ②이 중보적인 왕국은 그 끝이 있다(24절). ③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이 완전히 정복되고 파멸될 때에야 비로소 이 중보적인 왕국은 끝난다(24,25절). ④그 원수중 하나인 사망도 파멸한다(26절).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부활한다. 성도들이 부활할 그때는 더 이상 죽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사망이 없어지지 않는다.

 

2)우리 구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의 왕권을 위임 받으신다. 하나님의 모든 권세는 사람인 우리 구주께 위임되어진다. 우리 구주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인성과 신성 모두를 소유하므로 하나님과 사람, 양자를 화해시킨다. 또한 승천하셔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를 그의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며 크신 권세로 다스리신다. 또한 마침내 원수들을 멸망시키시고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심으로 신자들의 구원을 완성시키신다. 이 위임된 왕권은 마침내 그것을 주신 하늘의 아버지께 바쳐진다(24절). 왜냐하면 이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주어졌던 것이기 때문이다(25,26절). 이 구속자는 원수가 멸망당하고 죽음이 없어질 때까지 통치를 하시며 이 목적이 성취되었을 때 그 권세를 하나님께 이양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할 것이다. 구주의 이러한 권세가 성도들의 시험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것인가! 그럴 수 없는 거시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즉,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28절). 그때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하여 그 권세를 하나님께 바친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만유안에 계시기 되며 하나님께 속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고 하나님만이 오로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비록 인성(human nature)이 우리의 구속자의 사역에 사용되었지만 하나님은 만유안에 계셨던 것이다.

 

[3]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예로 부활의 논지를 편다(29절). 죽은 자를 위해 받는 세례란 무엇인가? 어떤 학자들은 순교자들의 통행권이라고 해석한다. 왜 순교자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위해 순교를 당해야 하는가? 옛 선진들은 이것을 종종 피의 세례라고도 불렀다. 어떤 학자들은 초대 교회 시대에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어떠한 사람을 세례 주는 관습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의 뜻이 어떠하며 또 무엇이건 간에 바울의 이 주장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 도움을 주었을 것이며, 그들은 이 내용을 이해했을 것이다. 바울은 다음의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한다.

 

[4] 바울은 자기와 또 다른 많은 진실 된 교인들의 행동에서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을 들어서 논한다.

 

1)왜 그렇게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는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30절). 만일 기독교인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고 또 미래의 안식과 축복의 대망이 없다면 그렇게 많은 악독한 고초를 당하며 위험을 무릅쓰는 기독교인은 정말 바보임에 분명하다. 또 그가 이런 미래의 소망을 포기하고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한다면 그런 성품을 계속 유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그는 계속적인 죽음의 위협에 처해있었다. 말하자면 자기 목숨을 손으로 들고 다니는 꼴이었다. 바울은 항상 큰 곤경에 빠져야 했고 또 혹독한 원수를 대면하며 다녀야 했다. 에베소에서는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32절).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료 직공들이 소동을 벌였을 때는 많은 폭도들에 의하여 몸이 찢길 뻔했다(행 19:24). 또한 그가 짐승들과 싸웠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짐승이란 몹시 흉포하고 잔인한 성질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나의 이러한 싸움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는가? 그리고 죽은 후에 멸망하며 그 후에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으면 이보다 더 불쌍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바울이 그렇게 분별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그는 오직 죽은 후에 더 좋은 생이 있다는 소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 있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한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충성을 바쳐서 상급을 얻는 것은 합법적이며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바울도 그렇게 충성하였다.

 

2)만일 내일 죽을 터이면 오늘 이생의 안락을 구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다(32절). 만일 우리가 불신자들과 같이 죽고 망할 것 같으면 차라리 짐승처럼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것이 더욱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만일 죽은 후에 아무런 소망이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이 짧은 생의 모든 안락을 즐기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 까? 그러나 장래의 소망이야말로 현재의 모든 안락과 즐거움보다도 더 좋은 것이다.

 

[5] 바울은 주의와 격려와 책망으로 자기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1)악한 행실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제를 주의하라고 경고한다(33절).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행실이 나쁜 자들이며 그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할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그런 말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지시킨다. 그들과 인생이 나가는 방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순결성을 지키려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죄와 악은 감염이 된다. (2)죄를 끊고 더욱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한다(34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범하지 말라 너희의 소망을 말살시키고 타락시킬 자들과 나태와 어리석음으로 교제를 나누지 말라". 장래의 소망을 불신하는 것은 모든 덕과 경건을 멸절시킨다. 만일 부활과 장래의 새 생명의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할 것이다. (3)그들 중 일부에게 주는 엄한 책망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은 수치다. 신앙을 고백하고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있으면 책망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나태와 하나님을 경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장래의 생명과 부활을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고를 헛되이 하시지 않으시며 따라서 그들의 노력과 인내와 신실한 봉사와 즐거이 자진하여 받는 고난 등을 모두 신실하게 갚으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을 알므로 이 세상의 불공정성을 깨달은 사람은 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고난을 당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며 따라서 장래의 심판을 더욱 확고히 믿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지상 생활은 결국 의롭게 될 것이 확실하다.

 

Ⅳ. 부활의 몸 15:35-50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교리를 그럴듯하게 반대하는 이론을 반박하고 있다(35절). 그 반대 이론은 두 가지고 제기된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것인가?' 즉 어떤 수단으로, 무슨 권세가 이런 능력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그 부활한 몸의 질에 대한 것이다. 즉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것이다. 전자는 교리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며, 후자는 호기심으로 의심하는 약한자들의 주장이다.

 

[1] 전자의 의문에 대하여 바울은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는 것이며 매년 씨앗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36절). 씨앗은 죽은 후에 싹에 나며 또 다시 다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우리가 죽었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매번 목격하면서도 죽은 자를 일으킬 신령한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 그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상세하고 길다.

1) 흙에 뿌려진 씨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형체를 주신다. 뿌려진 모든 씨에는 각기 고유의 형체가 내정되어 있다. 씨가 큰 변화를 겪는 것처럼 우리가 다시 부활할 때도 그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 형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①육체(39절). ②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도 다르다. ③하늘에 속한 육체 중에도 여러 가지 영광이 있다(41절). 죽은 자의 부활도 완전히 변화한 후 여러 가지 영광을 얻을 것이다. 동일한 재료로 수많은 종류의 육체와 식물을 창조하신 이가 죽은 자를 살리시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땅에 속한 형체를 조성하신 이가 하늘에 속한 형체도 조성하시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찌 그런 능력이 있으신 이에게 죽은 자를 살릴 만한 능력이 없겠는가?

 

3)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42절). 죽은 자를 묻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거소가 마찬가지다. 다시 싹이 나오도록 땅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우리가 부활했을 때는 우리 몸이 무덤의 권세를 파하고 다시는 썩지 아니할 것이다. 현재의 우리의 몸은 비천한 몸이다.(빌 3:21). 그러나 부활 때에는 우리 주님의 몸과 같이 영광스러워지며 주님의 몸과 같이 빛이 나게 된다. 불쌍한 존재로서 죽음의 권세에 완전히 눌려 땅에 묻히지만 우리의 몸이 다시 부활할 때에는 신령한 생명을 얻어 원기왕성한 새 힘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또 그때의 우리 몸은 온전해진 영혼을 담기에 적합하도록 완전해진다. 무에서 물질을 창조하시고 그 물질로 하늘과 땅의 많은 종류의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또한 어찌 생명이 없는 썩어질 몸 속에 영광스런 생명의 몸을 만드실 능력이 없겠는가? 불가능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

 

4) 사도 바울은 이것을 첫 번째 아담과 두 번째 아담으로 비교하여 설명한다. ①우리가 첫 번째 아담에게서 이 세상에서의 육의 몸을 받은 것처럼 두 번째 아담인 예수께로서 신령한 몸을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②지금 우리의 몸은 아담으로 말미암았다. 즉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그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만일 첫 번째 아담이 우리에게 육의 몸을 줄 수 있었다면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어찌 우리에게 신령한 몸을 줄 수 없겠는가? ③우리는 두 번째 아담으로부터 신령한 몸을 받으려면 우선 첫째 아담으로부터 육의 몸을 받아야만 한다(49절). 현재 우리가 육의 몸을 입은 것처럼 장래에 신령한 몸을 입은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즉 현재 우리가 이 몸을 가진 것처럼 확실하게 또 다른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5) 이렇게 변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50절). 썩을 것으로는 썩지 못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성도가 다시 부활할 때 그 몸은 현재의 몸과는 전적으로 다른 훨씬 우수한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 지금은 썩어질 것이지만 그때는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이 되어 천상의 세계에 살기에 적합하게 될 것이며 그후로는 그곳에서 영원한 것을 유업으로 받아 살게 될 것이다.

 

Ⅴ. 사망을 이긴 부활 15:51-57

[1] 바울은 여기서 모든 성도들이 다 죽을 것이 아니며 또한 모두 변화하리라고 말한다. 썩어질 것으로부터 썩지 않을 것으로 변화될 것이다(52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신자들도 반드시 죽은 자들과 같이 변화를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즉 주님의 재림시에 살아있는 성도들은 죽지 않을 것이며 단지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에, 즉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 변화만 할 것이다. 또 이 소리에 무덤 문이 열려서 죽었던 성도들은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며 살아있던 성도들 또한 썩지 아니하는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52절).

 

[2] 이렇게 변화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53절). 썩어질 몸은 썩지 않도록 되어져야 하며 죽어야할 육체는 영원히 죽지 않을 육체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심은 것은 다시 소생해야 한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변화를 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54절). 즉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이 죽을 때 죽음이 삼키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 그러나 성도들이 모두 부활 할 때는 오히려 사망을 영원히 삼켜 버리신다.

 

1) 부활한 성도들은 정복된 적인 사망의 없어짐에 대하여 개가를 부를 것이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 우리는 더 이상 너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않고 너희 능력을 겁내지 않으며 오히려 조롱한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전에는 우리가 너희에게 옥살이를 했지만 이제는 옥문의 빗장이 벗겨지고 영원히 자유하게 되었다. 포로였던 자들이 완전히 석방되고 죽음의 승리는 끝났다."

 

2) 이 승리의 기초에 대해 말한다. ①사망의 능력이 나오는 곳은 어딘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56절). 죄는 사망의 창살에 독소를 바른다. 죄는 사망을 잉태하며, 사망에게 해치는 능력을 준다. 사망은 죄의 저주스런 결과요 소산이다. ②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얻는다(56절). '사망의 쏘는 것은 죄'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 쏘는 것이 제거되었다. 따라서 사망은 쫓겨나 더 이상 해칠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러나 율법의 저주는 우리를 위하여 구속자가 대신 받은 저주로 그 능력과 쏘는 힘은 박탈당했다. 무덤 문이 열리고 모든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여 영생을 얻고 다시는 죽음이 없는 곳으로 옮겨지는 그런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성도들은 이 승리를 소망하며 즐거워한다. 그들이 다시 무덤에서 영화로운 몸으로 일어날 때 그들은 당당하게 사망에 대하여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받고 죽음에서 풀려나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이 성도들의 승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리도록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절).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실 때 우리는 축복과 명예를 누릴 것이다. 그때 우리는 참 만족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며 동시에 우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찬양할 마음이 없으나 승리를 얻은 성도의 입술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이다. 우리 구주의 죽음과 부활과 고난과 승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겠는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이 울려 퍼지면 천사들도 그 찬양에 어울려 큰 소리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침으로써 화답할 것이다.

 

Ⅵ. 항상 주의 일에 힘쓸 것을 권고함 15:58

[1] 이 권면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복음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야 한다. "이 진리에 대한 너희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이 진리는 확실한 것이며 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독교인은 죽은 자의 부활을 확고히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장래의 부활에 대한 불신은 아주 사악한 삶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만일 장래에 우리가 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짐승처럼 먹고 마시는 데 빠져서 사는 편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2) 썩지 아니하고 영생할 소망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말도록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복음에 대한 소망의 터 위에서 요지부동해야 한다(골 1:23). 이 소망은 신자의 영혼을 확고하게 하는 닻이 된다(히 6:19).

 

(3) 바울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이 소망은 활력과 결단을, 그리고 인내와 끈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2]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터전 위에 서 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분명히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노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수고를 불공정하게 하나라도 빠뜨리시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지금 구하고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내려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좋은 삵을 받는다. 그렇게 선한 주인을 위하여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할 것이다. 땅에서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하늘에서 그를 볼 것이며 가 가운데서 살아나 영광스런 불멸우ㅏ 면류관을 받고 영생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출처 : 성경말씀 + 주석성경참조

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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