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Bible Study

[스크랩] 마가복음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0. 19:13

마가복음

(가) 내 용
  마가복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간단한 서막이 나온 다음 하나님의 나라 운동사와 수난사로 양분되어 있다.
  서 막(1:1-13): 서막은 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준비단계로 세례요한의 활동(1:1-8), 예수의 세례받음(1:9-11), 예수의 시험받음(1:12-13)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사(1:14-13:37)는 두 차례의 활동과 두차례의 퇴각이 있은 다음 예수의 결단과 최후의 도전 및 묵시문학적인 경고로 짜여져 있다. 첫 번째 운동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1:14-15), 첫번째 제자선택(1:16-20)이 있은 다음, 가르침과 귀신축출과 병고침을 내용으로 하는 하나님의나라 운동(1:21-45)이 시작된다. 그러자 바로 율법학자들의 비판으로 인한 논쟁(2:1-12)과 두번째 제자서택과 충돌(2:13-3:5)이 있은 다음 바리새인과 헤롯당들에 의한 첫번째 예수를 살해할 음모(3:6)가 모의된다.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첫 번째 은둔기(3:7-34)에 들어간다. 한적한 곳으로 퇴각한 예수(3:7-12)는 제자 선택을 완료(3:13-19)한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에서 은둔지에 까지 찾아온 율법학자들에 의해 예수의 정체성 논쟁(3:20-35)이 벌어진다. 예수는 비유를 통해 첫 번째 제자훈련을 실시한다(4:1-34).
  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 운동사(4:35-6:29)는 예수 자신의 활동과 제자들을 통한 활동으로 구분된다.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을 가르친 다음 예수는 풍랑진압을 통해 악마의 횡포를 제압하고(4:35-41), 레기온 귀신 축출하고(5:1-20), 병고치는 일을 계속한다(5:21-43). 그러나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했다가 배척당한 후(6:1-6) 예수는 훈련시켜둔 열 두 제자를 파견(6:7-13)하여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계속시킨다(귀신축출, 병고침).
  그러던 중 세례요한의 처형 소식(6:14-29)을 들은 예수는 망명의 성격을 띤 두 번째 은둔기에 들어간다(6:30-8:26). 그는 국경 밖으로 퇴각(6:30-34)한 후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경제정의에 도전하고(6:35-44; 8:1-10) 자연의 횡포 제압(6:45-52)과 병고침(6:53-56; 7:24-30; 7:31-37; 8:22-26)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계속하다가 그 곳에까지 뻐친 유대교 세력과 충돌한다(7:1-23; 8:11-13). 그러자 예수는 다시 은둔기의 특색인 제자교육을 실시한다(8:14-21).
  그런 다음 예수는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정면 돌파의 결단을 내린다(8:27-10:52). 그는 베드로의 메시야 고백에 함구령을 내린 다음(8;27-30) 첫 번째 수난예고(8:31-9:1)를 하고 베드로의 저항에 강경하게 대응한다(8:32-9:1).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도중 변화산 사건(9:2-13)을 거쳐 벙어리귀신을 축출하고(9:14-29) 두 번째 수난예고(9:30-32)를 한 예수는 제자들의 지위다툼에 직면하여 그들을 훈계한다(9:33-37). 요한의 배타적이고 페쇄적인 문제제기를 기점으로 하여 여러가지 교훈들로 제자들을 가르친 다음(9:38-10:31) 예수는 세 번째 수난예고(10:32-34)를 한 후 야고보와 요한의 고위직 청탁 요구(10:35-45)에 직면고 그들을 타이른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짐심을 깨닿지 못하는 제자들을 앞에 놓고 시각장해인 바디메오를 고친다(10:46-52).
  최후의 도전(11:1-13:37)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11:1-11) 무화과나무를 저주하고(11:12-14; 20-26), 성전을 청소하고(11:15-19), 산혜들인 회원들과 충돌하고(11:27-33), 그들에게 포도원 농부 비유로 도전한 결과(12:1-11) 두 번째 음모에 직면한다(12:12). 계속해서 세금논쟁(12:13-17)과 부활논쟁(12:18-27)에 이어 제일 계명에 대한 질문을 받은 예수는 그것을 황금율로 응수한다(12:28-34).
  유대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끝낸 예수는 그들 가운데 특별히 율법학자들이 가르치는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왕권을 가진 메시야 교리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다(12:35-37). 이어서 그는 율법학자들을 다시 한번 강하게 비판하고(12:38-40)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가난한 과부가 바치는 지극히 작은 액수의 헌금을 높이 평가한다(12:41-44). 마지막으로 예수는 성전을 떠나면서 성전 거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묵시문학적인 경고를 한다(13:1-37).
  수난사는 수난주제, 배신주제 그리고 계승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수난주제는 유대교 지도자들(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한 세번째 음모(14:1-2)로 시작하여 체포(14:43-
52), 심문과 기소(산혜드린재판, 14:53-65), 재판과 사형선고(빌라도 재판, 15:1-20) 그리고 십자가형 집행(15:21-39)으로 이어진다.
  예수의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배태되기 시작한 배신 주제는 기름부음사화(14:3-9)에서 싻이 트서 유다의 음모 가담(14:10-11), 예수의 배신예고와 만찬(14:12-26), 베드로의 부인예고(14:27-31), 겟세마네 장면(14:32-42), 제자들의 도주( 14:52)로 이어지다가  베드로의 부인(14:66-72)으로 끝이 난다.
  계승주제는 기름부음사화(14:3-9)에서 정식으로 등장하여 십자가 밑에서 임종하는 여인들
(15:40-41), 백부자의 고백(), 매장(15:42-47) 및 빈무덤의 증인(16;1-8)으로 이어진다. 끝으로 16장 9-20절은 후기로 다른 사람에 의에 후에 첨가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될 수 있다.
      (1) 서 막: 준비단계(1:1-13)
      (2) 하나님의 나라 운동사(1:14-13:37)
         a. 첫 번째 하나님의 나라 운동(1:14-3:6)  
         b. 첫 번째 은둔기(3:7-4:34)
         c. 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 운동(4:35-6:29)
           ㄱ. 예수의 활동(4:35-5:43)
           ㄴ. 고향에서 배척당함(6:1-6)
           ㄷ. 제자들의 활동(6:7-13)
           ㄹ. 세례요한의 처형기사(6:14-29)
         d. 두 번째 은둔기: 망명(6:30-8:26)
         e. 수난예고와 예수의 결단(8:27-10:52)
         f. 최후의 도전과 묵시적 경고(11:1-13:37) 
           ㄱ. 도전과 충돌(11:1-12:44)
           ㄴ. 묵시문학적 경고(13:1-37)
       (3) 수난사(14:1-16:8)
          a. 수난주제(14:1-2; 14:43-15:39)
          b. 배신주제(14:10-11; 14:12-26; 14:27-31; 14:32-42; 14:66-72)
          c. 계승주제(14:3-9; 15:39-47; 16:1-8)
       (4) 후기(16:9-20)
  
(나) 저자문제
  본래 마가복음은 그 당시의 관행에 따라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책의 제목도 저자의 이름도 밝히지 않는 것이 그 당시 근동지역의 저작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름 없이 회람되던 이 책이 2세기 초에 와서 처음으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될 때 저자문제가 거론되게 되었다.
  히에라폴리의 감독 파피아스(Papias, 75-163)는 그의 비망록에서 처음으로 마가복음서의 저자를 마가라고 증언한다. 다섯 권으로 된 파피아스비망록은 주로 제자들의 언행록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현재는 그 책의 일부 단편들만 남아있다. 파피아스는 사도들과 직접적인 친분관계를 가지도 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파피아스 이후 교회는 파피아스 비망록을 근거로 해서 마가복음 저자를 마가로 확정지었다.
  마가는 누구인가? 그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마리아의 아들(행12:12) 이며 바나바의 생질(골 4:10)이요 바울의 동료로 1차 선교여행에 동참했던 마가 요한 이다(빌레몬 24; 딤후 4:11; 행 12:25). 그는 버가에서 바울 일행과 결별한 다음(행13:13; 행15:36-41) 수년 후에 바울과 함께 로마에서 투옥되었다(골 4:10).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이라고 부른다(벧전 5:13). 파피아스는 마가 요한이 베드로의 선교여행에 동참하여 통역으로 활동한 사람으로 두 번째 복음서를 저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가 저작설을 수용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다. 첫 째 파피아스의 주장과 그것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추종자들(이레네우스 등)의 진술 외에는 마가 요한이 우리의 두 번째 복음서를 썼다고 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어느 곳에서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둘 째 마가복음이 베드로를 유별나게 평가절하하는 방향으로 편집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를 아버지처럼 모시던 마가 요한이 쓴 작품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 묵시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떤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신앙고백과 신학적 입장을 기본으로하여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다) 저작 시기와 장소
  (1) 기록한 때: 유대인들은 66년에 로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다. 그 결과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73년에 최후의 보루였던 맛사다까지 로마군에 의해 전쟁이 시작된지 8년만에 처참하게 정복된다. 우리는 여기서 전쟁 중에 복음서가 기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60년대 저작설과 전쟁이 끝난 다음 70년대 저작설로 양분된다.
  마가복음은 묵시문학을 틀로 하고 있다. 묵시문학이 번창한 시기는 시리아 쎌류커스 왕조 시대와 유대전쟁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70년대 전반기에 저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을 지니는 것으로 여겨진다.
  (2) 기록한 장소: 전통적으로 기록장소는 로마로 주장되어 왔다. 본문중에 로마 군대 용어(레기온, 5:9), 로마 연대기, 로마의 화페단위(데나리온, 6:37) 등이 나타나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의 식민지에서는 이런 일이 어디에서나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용한 용어에 근거하여 기록 장소를 로마로 확정하는 것은 비판의 여지가 크다.
  반면에 마가복음에 갈릴리 주제가 기조를 이루고 있는 점을 감안 할 때(14:28; 16:7) 그 곳에 마가 공동체가 있었고 거기에서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라) 문서의 성격과 신학적 특색
  지금까지 발표된 복음서들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가는 최초의 복음서다. 어거스틴 이후 마가복음은 두 번째로 쓰여진 것으로 마태의 축소판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락흐만(Karl Lachmann) 이후 마가가 최초의 복음서요 마태는 마가의 확대판인 것으로 인정되어오고 있다. 그러나 브레데(W. Wrede)에 의해서 마가도 순수한 역사적 기록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마가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신앙고백적으로 해석하여 전달하고 있다.
  문학적 기법으로는 지리적 틀의 사용이 눈에 띈다. 그것은 예수의 활동을 놓고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대립시키는 기법이다. 갈릴리는 예수의 지역 이다. 그는 갈릴리 출신이다(1:9).
첫 활동을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크게 성공을 거둔다(1:14, 39). 제자선택도 거기서 한다(1:16-17). 부활한 다음 제자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도 갈릴리다(14:28; 16:7).
  반면에 예루살렘은 기득권자들의 중심지요 반 예수의 지역 이다(3:22; 10:33; 12:12; 14:41; 15:18).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은 단 한번이다. 그리고 체류기간도 매우 짧다. 거기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체포하여 재판하고 십자가에 처형한다(14:41-49; 53-65; 15:5; 15:21-32).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심판의 대상이다(13:2).
   마가의 신학사상의 배경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하나는 베드로의 설교 가설이다. 다른 하나는 바울 신학의 영향론 이다.
  파피아스(Papias) 이후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설교에 근거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내용의 구성을 살펴보면 그것이 목격자의 진술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전반부에서는 베드로를 제자들의 대변인으로 객관화해서 제시하다가(1 : 36 ; 5 : 37 ; 8 : 29 ; 9 : 2 ; 11 : 21 ; 13 : 3)후반부에 가면서 그를 비판하고 평가절하하는 것도 베드로의 진술을 토대로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다(8:4; 14:30f.; 66ff.).
  바울의 영향론은 예수를 부활 선포 이후의  초대교회의 메시아 신앙의 빛에서 본다고  하는 점에서 바울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근거한다(G. Volkmar, 1857). 그러나 바울 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헬레니즘적인 그리스도 선재설, 주(      ), 하나님의 아들의 낮춤 등의 개념들이 마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전승과 해석을 수집하여 편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K mmel).
  마가복음의 주제는 1장 1절에 나타나 있다. 기자는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복음'이란 말은 마가 이전부터 히브리문화권이나 헬라문화권에서 다같이 사용하던 개념이다.  
  복음(             )의 헬라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것은 좋은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내리는 상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은 후에 좋은 소식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발전했다. 히브리 문화권에서도 복음(bissar)은 소식(좋은것이건 나쁜것이건)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것은 주로 구원의 소식을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의 나라의 오심에 대한 종말론적인 메씨지를 가져옴을 뜻한다(사40:9; 5:7; 61:1; 시96편 등).
  복음을 맨 먼저 예수사건에 관련시켜 사용한 사람은 바울이라고 볼 수 있다. 바울서신에서는 그리스도의 선포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구원을 선포하는 설교를 복음이라고 부른다(롬1:1-2; 고전15:1-2).
  마가는 8장 35절에서 예수를 복음과 일치시키면서 복음의 내용이 곧 예수임을 주장한다. 그래서 마가에 의하면 예수는 복음 속에 현존하며 복음은 바로 예수다. 따라서 마가는 '복음'이란 개념을 자신의 편집 구절로 삼고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다(1:1, 14-15; 8:35, 10:29; 13: 30; 14: 9).
  마태의 경우는 복음이라는 개념이 마가에 의존하는 부분에서만 발견된다. 누가에서는 이 개념이 발견되지 않는다. Q 자료와 공관서의 다른 자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공관서 중에서는 '복음' 이 마가의 개념임을 알 수있다. 그러나 2 세기 초엽에 접어들면서 교회는 예수의 말씀, 그의 행위, 그의 고난과 부활 등을 기록한 책들을 복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2 세기 말부터는 복음서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예수는 본명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는 다같이 예수의 사명을 나타내는 호칭 이다. 기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세례받을 때 최초로 공식화한다(1:11). 거기서 하나님은 예수 자신을 향해 2인칭을 사용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한다. 두 번째는 변화산에서 하나님이 동참자들을 향해 3인칭을 사용하여 예수를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한다(9:7). 그러면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선포한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에게 자신의 권한을 물려주는 승계의 선포로 해석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십자가 처형장에서 백부장에 의해 고백된다. 그는 예수가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고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은 베드로에 의하여 고백된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메시야)에 대하여 세 종류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다윗왕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왕으로서의 메시야 교리다. 다윗의 후손 중에서 초인간적인 왕이 나와서 이스라엘이 세계를 제패하게 만든다는 패권주의적인 교리다. 그것은 가장 보편화되어있는 메시야 교리였다. 둘 째는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 교리다. 그것은 포로기 이후 왕 대신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갈 때 나타난 교리다. 세 째는 '사람의 아들' 교리다. 그것은 주전 2세기 말에 종주국인 시리아의 황제 안티오커스 IV세가 유대교 말살정책을 쓸대 거기에 항거하면서 나타난 교리다. 그것은 '고난의 종' 개년과 연결된다.
  베드로는 집권을 염두에 두고 왕으로서의 메시야 교리에 입각해서 예수가 메시야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마가의 예수는 그의 고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과 동일시 함으로(8:31; 9:31; 10:33-34; 14:62). '사람의 아들' 메시야 교리를 통해 그 당시 마가 공동체를 비롯해서 널리 편재해 있는 허황된 패권주의적인 메시야 기대를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
  '사람의 아들' 메시야 교리는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사람의 아들'이 당하는 고난 이다(8:31; 9:31; 10:33-34). 다른 하나는 그가 최후의 심판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아 '다스리는자'가 되는 일이다(8:38; 13:26).

 

 

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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