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상황성에 대한 이해
정훈택 교수 (총신신대원 신약학)
신약성경을 배우고 사용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그 상황성 내지 상황적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상황적 요소들과 상황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다면 신약성경은 오해, 곡해를 면치 못할 뿐만 아니라 현대의 신자들과 교회의 믿음과 삶도 구부러지거나 부러질 수밖에 없다.
신약성경의 상황성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첫째, 하나님의 절대 진리, 특히 그 구원의 진리가 이천여 년 전의 특정한 언어 코이네란 글에 담겨 있음을 뜻한다. 인간의 언어는 유동적이다. 장소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신약성경의 각 책이 기록된 때, 곳, 저자, 독자 등이 신약성경의 언어적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둘째, 성령에 감동된 저자들이 쓴 이 글들의 내용은 특정한 역사 현장과 관련되어 있음을 뜻한다. 역사적 사건은 단회적이다. 같은 상황은 두 번 다시 만들어지지 않고, 같은 사건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신약성경이 보도하는 사건이 일어난 때, 곳, 당사자, 대화나 일의 진행 등이 신약성경의 역사적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상황적 요소들을 우리의 신앙과 삶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이 요소들에 담긴 일반적, 절대적 의미를 추출하거나 --직접 이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같은 의미를 담아 나를 수 있는 우리의 상황적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상황성 내지 상황적 요소들을 연구하면 이 두 가지 작업이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주제에 관한 충분한 토의를 위해서는 적어도 신약성경의 책들을 그 특성별로 - 즉 복음서(사도행전 포함), 서신서들, 히브리서, 계시록의 상황성으로 - 구분하여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서들의 상황성은 그 복잡성으로 인하여 복음사건, 복음, 복음서들의 상황성으로 세분하는 것이 좋다.
1. 구속사건의 상황적 요소
예수님의 탄생과 활동으로 시작된 구속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셨으며 꾸준히 예언하게 하셨던 일들이 성취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들어있는 상황적 요소를 파악하자면 사실 구약성경/시대의 상황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은 이 부분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대신 꼭 필요할 때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1) 나사렛 예수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을 때 --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선택하셨던 까닭에 -- 그를 마리아의 몸에서 유대인 예수로 태어나게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그리고 이 사역을 알리는 복음은 --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상황, 이천여 년 전의 나사렛, 갈릴리, 유대라는 역사적 상황, 그리고 당시의 사회?경제?문화적 상황 등 이와 관련 있는 모든 상황적 요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 상황은 예를 들어 현대 한국의 한민족과는 전혀 다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느 종족의 상황과도 같지 않다. 사실을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아닌 다른 사람, 따라서 다른 민족을 선택하셨다면, 그리고 다른 시대 다른 장소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그 때"로 고르셨다면, 구속사건의 진행과정과 이를 알리는 복음의 형태는 상당히 다르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영원한 말씀"이 사람이 되시자면 --특정한 인종을 따라 특정한 모습을 가지고 시공간의 세계로 오셔야만 하기 때문에-- 역사의 한 시점, 한 장소의 한 인간 집단을 선택하셔야만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라는 유대식 이름을 지니고 당시 유대인의 몸과 정신을 가지고 죄 없이 태어나셨다. 어린 시절을 나사렛 시골에서 보내셨고,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맞았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의 언어와 풍습, 관습, 전통, 문화, 역사를 익히시고 유대적 삶을 체험하셨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한 가지 사건 외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은 복음서가 예수님의 공생애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그 이전의 얘기는 모두 생략한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기간의 예수님은 별로 특기할 만한 일 없이 평범한 유대인으로 계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약 삼십 년의 이 기간은 후에 나타날 소위 "예수님의 공생애"를 준비하는 아주 중요한 기간으로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당시 모든 유대 상황적 요소들을 이용하고 포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 펼쳐질 하나님의 아들의 삶이었다.
2) 구속사건의 조연들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통한 구속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 주연이었다-- 인간의 역사에 침투한 구속역사였기 때문에 한 역사적 시점을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이 사람들은 지구 위의 특정한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작은 동네에서부터 민족, 나라를 구성했으며 헤롯가문의 직접적 지배하에 들어있었다. 헬라의 문화적 영향, 로마의 정치적, 군사적 지배 등 예수님이 관계했던 사람들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지배하는 요소는 다양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 사람들 사이에 진행됨으로써 복음서에 유명 혹은 무명으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의 활동과 삶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역할을 맡았던 이들 조연들의 상황적 요소들이 구속사건의 상황적 요소들의 일부가 되었고 복음의 원형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신적 의지가 이 땅에 실현되는 역사적 대상이요 도구로 선택되고 사용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역사와 구속의 복음을 담는 역사적 그릇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그릇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인류의 역사에 실현될 수도 또 표현될 수도 없었다. 이 상황적 요소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이 이 땅에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이 사람들의 상황적 요소들도 모두 구속사건의 원형, 복음의 원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 원형이 역사적 상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적 요소들이 들어있는 구속사건들
예수님의 삶과 행동, 말씀을 통해 지상에 진행된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서기 1세기 유대인, 유대 사회라는 역사적 상황 안에서 벌어졌다. 이 때문에 구속사건은 피할 수 없이 여러 상황적 요소들을 그 원형으로 포함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절대적 사건이 이스라엘의 메시야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하여 실현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연구하는 것은 항상 다음 두 가지 과제를 포함한다. 첫째, 이 상황적 요소들을 원형으로 고정시키는 것.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둘째, 역사적 상황에 구현된 절대적 요소를 찾아내는 것.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시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과제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신앙과 신학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 점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된 마태복음에 하나님의 구속사는 아주 강한 유대 색채를 가진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증명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주요 내용이다. 예수님의 계보도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여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한다.
이에 비해 로마인 혹은 헬라인들을 위해 기록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활동과 말씀, 그 의미들이 구약시대/구약성경/이스라엘보다 더 넓은 시각, 즉 전 인류의 죄와 운명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한다. 누가복음에 수록된 예수님의 계보는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다윗과 아브라함을 거쳐 아담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구속사건은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지역적인 면도 예로 들 수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당연히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나사렛에서 시작하였다. 구약적 시각에서 유대인들에게 이 점을 설명하고 증명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복음이 예루살렘, 유대와 사마리아를 벗어나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면 전 세계, 따라서 자연히 대 로마제국의 전 영역에 엄청난 결과를 남길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역이 어떻게 그 시골구석에서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 시작하고 진행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하여야 했다.
요한복음은 복음사건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역으로 설명하는 점에서는 다른 복음서보다 훨씬 강한 범세계적 어조를 가지고 있다. 우주의 창조 이전으로 시야를 옮겨 예수님을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영원한 아들, 영원한 로고스"로 소개한다. 역사적인 예수님의 활동과 말씀을 있었던 그대로 소개하는 복음서에 아무도 보거나 경험할 수 없었던 사실, 예수님의 선재를 그 내용으로 적어 놓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필수적으로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초대교회 성도들이 잘 알고 있었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 역사적 요소들 배후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꼈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의 생애, 사역, 말씀에 대한 사도들의 이와 같은 재해석은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로마?헬라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이 인간 예수를 신격화한 것이 아니라-- 구속사건에 필수적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요소들을 넘어 복음사건의 절대성을 밝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복음의 상황적 요소
복음이란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알려주는 좋은 소식이다. 하나님의 구속사건이 인간 역사의 한 시점, 한 장소에서 진행됨으로써 상황적 요소들을 그 원형으로 삼아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를 알려주는 복음에 이러한 상황적 요소들이 필수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복음의 상황적 요소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구속 사건 자체에 선택된 상황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복음의 상황적 요소를 구성하는 것에는 다른 요인도 있다. 이 항에서 우리는 이 추가적인 요소들을 주로 관찰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보도는 예수님이나 성령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것이 아니다. 복음서의 내용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사건에 따라서 제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목격자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도 있다. 따라서 복음의 발생에는 "제자"란 용어보다 "목격자"란 용어가 더 중요하다. 즉 제자든 제자가 아니든 목격자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예수에 관한 복음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 즉 복음의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최초로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말한 증인들이다. 예수에 관한 복음 즉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건에 대한 소식은 이렇게 목격자/증인에 의해 탄생했다. 따라서 목격자/증인의 모든 상황적 요소들이 복음의 제 이의 상황적 요인이 된다.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 즉 용어, 표현력, 문장 구조, 논리성 등이 복음에 형태를 부여한 것이다.
목격자/증인에게서 오는 상황적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역할을 크게 둘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1) 구속사건에서 처음부터 소리로 발생한 부분. 예수님의 설교나 사람들의 대화 등은 목격자/증인이 귀로 듣고 기억하고 있다가 그들의 발성기관을 이용하여 같은 소리를 냄으로써 복음을 전했다.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는 의미에서 목격자/증인의 상황성이 개입할 여지는 처음 발생한 설교/소리를 그대로 전할 가능성보다 크지 않다. 즉 복음의 내용 중 언어부에서 목격자/증인의 상황이 개입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아람어에서 헬라어로의 번역을 계산하면 상황성이 개입할 여지가 상당히 커진다. 실제 소리나 의미의 전달은 목격자/증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2) 처음에 사건으로 발생한 부분.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광경은 목격자의 눈과 시신경을 통해 뇌에 상의 형태로 기억된다. 사건을 알림, 즉 사건에 대한 보도로서의 복음이란 사건, 상의 형태로 새겨져 있던 기억을 언어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상을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목격자/증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그림을 설명하기 위하여 언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목격자/증인이 본 광경, 그들의 기억에 새겨져 있던 상을 언어로 바꾸어 주지 않았다면 복음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에 관한 복음은 목격자/증인들의 언어이다. 따라서 목격자/증인의 언어가 가진 상황적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첨가될 수밖에 없다. 복음사건은 상황적 요인들이 있는 증인들의 말에 담겨 최초로 복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목격자/증인들이 했을 역할을 통해 그들이 가진 상황적 요소들이 어떻게 복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추측해 보자.
목격자/증인 중 예수님의 생애 전체, 사역 전부, 그리고 교훈 모두를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은 없었다.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은 목격자들이 보고 들은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들이 경험하여 알려준 것만이 복음의 내용에 포함되었다. 예수님의 전 생애, 전체 활동 그리고 전체 교훈이나 생각에 비교할 때 복음서가 알려주는 것은 그 일부분 즉 특수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고 들었던 것일 수밖에 없다.
복음서가 보도하는 사건을 목격자/증인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이 듣고 보았다 하더라도 목격자들의 위치, 시각, 관심, 이해력, 그 역할에 따라 목격자들의 두뇌에 다르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같은 사건을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같은 사건에서 다른 인상을 받는 것 때문에 다른 강조점을 가진 사건으로 각인될 수도 있다.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다르게 이해하며 다르게 묘사한다는 것은 목격자/증인들의 신중하고 성실한 증언 자체가 어떤 사건이나 어떤 말씀의 한 단면 혹은 단편일 수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전체에 비교해 보면 이는 그 전체적인 사건이나 말씀의 한 특수한 면 즉 상황적 강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복음이 여러 복음 예를 들어 네 복음서로 만들어진 것은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를 택하신 이상,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한 사도만이 복음을 전할 최초의 임무를 맡았다면 많은 다양한 목격자/증인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전해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 두 명을 제자로 부르셨다. 사도로 임명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증인이 될 것을 부탁하셨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만이 소개되어 있어도 우리는 열 두 사도가 모두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중 네 개가 복음서의 형태로 남아 있다. 마태복음은 마태 사도가 전한 복음으로, 마가복음은 베드로 사도의 통역이었던 마가가 전해준 복음으로, 누가복음은 바울 사도의 동역자요 의사였던 누가가 전해준 복음으로, 그리고 요한복음은 요한 사도가 전해준 복음으로 알려져 있다. 네 명이 한 복음을 다른 형태로 전해준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복음의 상황성이란 단순히 목격자들의 용어와 표현력이라는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에 참여한 위치, 각도, 관점, 역할과 이해력, 믿음 등 내용적인 것과도 결합되어 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들이 복음이란 이름으로 전해주는 것을 사실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은 목격자/증인들도 있었다. 유대 지도자들도 예수님의 목격자들이었다. 그들은 같은 일을 보면서도 예수를 죽어 마땅한 신성모독자로 확신했다.
기독교인이란 이런 적대적이거나 호기심 어린 목격자/증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일을 보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인을 위해서 못 박히신 세상의 구주로 믿는 목격자/증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사건, 사실에 대한 증거만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력과 믿음과 느낌의 증거까지 모두를 옳은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목격자/증인들이 전해주는 복음을 그들 나름대로의 판단이요 믿음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게 된다.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신앙테크 >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율법과 복음 바른이해 /고동엽 (0) | 2009.05.16 |
---|---|
[스크랩] 동사로 풀어 보는 ‘하나님 나라’ -김세윤 (0) | 2009.05.16 |
[스크랩] 배타성이 강한 기독교, 유일신교 아니다- 류상태 (0) | 2009.05.16 |
[스크랩] 교회의 불량자 -송경호 목사 (0) | 2009.05.16 |
[스크랩] 오늘의 평신도들은 어떤 목회자를 기대하는가? (0) | 2009.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