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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화가 황주리의 하우스 갤러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6. 25. 05:53
황주리는 그림 걸기 좋은 집에 산다. 소파 맞 은편에 걸린 150호나 되는 대형 흑백 그림 ‘식물학’을 중심으로 시선이 머무르는 곳마다 온통 그녀의 행복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 집은 유독 그림이 어울리도록 컬러나 장식 적 요소를 배제한 채 아주 간결하게 마무리된 것이 특징.

화가 황주리의 집엔 ‘집 구경’보단 ‘그림 구경’하러 가는 편이 맞다. 그녀의 집을 소개해준 서울 삼청동의 한 갤러리 관장은 “황 작가 집에 가면 집 전체가 그녀의 작품들로 전시 되어 있으니 작품 구경 실컷 할 수 있을 거”라 귀띔해주었다. 혹여 별다른 구경거리 없는 집이라 한들, 황주리의 작품으로 가득 찬 집이라면 그 자체로 그림이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사람들은 그림을 고를 때 다양한 각도로 촉수를 세운다. 감동과 여운, 위로가 되는 그림. 더불어 앞으로 돈이 된다면 더 좋을 그림. 그리고 미술품은 온전히 개인이 소유하 는 독점적인 예술 분야라지만 내 집에 인연 만난 듯 잘 어울려 찾아오는 손님마다 덩달아 기분 맑아지는 그런 그림…. 그래서 대단한 컬렉터가 아니고서야 모처럼 그림을 고를 때 ‘우리 집 거실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아 고심한다.

황주리의 경우 집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는 대신 ‘내 그림에 어울리는 집’을 택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오래된 이 빌라는 유독 천장이 높아 150호 대형 그림을 세로로도 세울 수 있을 정도. 거기에 집 전체가 화이트 톤에 몰딩이나 조명도 어느 하나 그림에 거슬리는 요소가 없다. 심플한 화이트 공간에 크고 작은 그녀의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 말하자면 이곳은 황주리의 작은 갤러리인 셈이다.

실은 집을 선택하거나 꾸미는 등의, 작품 활동과 연관이 없는 일상들은 그녀와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의 몫이다. 미혼인 그녀는 어머니와 둘이서 이 집에 산다. 70이 넘은 어머 니는 화가인 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작가가 온전히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매니저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렇게 ‘그림에 어울리는 집’도 어머니가 손수 인테 리어해서 만들어놓은 것. 앤티크 고가구와 함께 돌 위에 그린 작품 ‘돌에 관한 명상’을 세팅하고, 기존 어머니 자신이 컬렉팅해 오던 그림들은 모두 그림 창고로 보내고 대신 딸의 그림이 적절히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그녀는 엄마가 만들어놓은 현재의 공간을 “인테리어가 잘 된 집은 아니고 그림이 너무 많은 집일 뿐”이라 고 소박하게 말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 왼쪽으로 고가구 위에 놓인 돌 그림은 자연석에 그림을 그려 넣은 ‘돌에 관한 명상’. 그 위쪽으로 보이는 그림은 ‘그대 안의 풍경’, 바닥에 내려놓은 2개의 그림은 가장 최근의 작품인 ‘삶 은 어딘가 다른 곳에(작은 10호 그림)’와 ‘식물학’이다.

“내가 들어가는 공간은 인테리어고 뭐고 다 무너져요. 어디든 다 작업실이 돼버리니까.” 그가 인테리어에 신경 쓰고 살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녀는 하루 8시간씩 그 림에 몰두하는 전업 작가로 유명하다. 한 평론가의 말대로 단순 업무가 아닌 한 생명을 잉태하듯 창작의 산고가 따르는 작업을 매일 8시간씩이나 반복한다는 건 보통 사람의 내공으로는 불가능하다 싶다. 그러니 그림 구상을 위한 고민들과 작업 외의 다른 것들은 신경을 쓸 여력도 시간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사는 집과 작업실을 통합해서 공간에 신경 쓰고 사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돌뿐 아니라 안경, 도자기, 앤티크 소품이나 시계 등에 그린 설치 작품들이 꽤 많은 데 움직이는 동선마다 그 입체 작품과 평면 작품이 유기적으로 어울리는 그런 공간요. 가구나 방석, 의자까지 다 내 작품으로 만든다면, 작은 미술관처럼 보이는 집이 나오겠 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세심한 관찰자

같이 살던 순종 불독 그림인 ‘자화상-내 이름 은 베티’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흑백 작품. 식탁 옆에 4개의 그림을 리듬감 있게 걸어두었다. 험해 보이지만 너무 순하고 표정마저도 풍부했던 이 불독에 대해 작가는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왕성한 작품 활동과 대중적인 인기, 화단의 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작가답게 그녀는 50을 갓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개인전을 25회나 열었다. 6월 27 일부터는 서울 삼청동의 리씨갤러리에서 스페인 작가 에마뇰 마료단, 국내 작가 오원배와 함께 3인전을 열 계획. 기존 황주리를 대표하는 작품이 컬러풀한 색감의 그림들이었 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간 많이 공개하지 않은 흑백 그림들을 보여줄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크고 많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은 흑백 그림이에요. 컬러 그림은 아는 사람이 많은데, 난 흑백 그림의 감상 포인트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나 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주저 없이 흑백 그림을 고르죠. 흑백 그림은 화장하지 않은 삶의 모습, 맨얼굴 같은 느낌이에요.” 컬러 그림이 예쁘게 포장된 편지라면 흑백 그림 은 외로움이 묻어나는 일기라는 것. 요즘 집들처럼 모던하고 큼직한 공간에는 흑백 그림이 더 잘 어울린다고. 실제로 미국인들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멋쟁이들은 흑백 그 림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1 소파 뒤쪽의 30호 그림 ‘그대 안의 풍경’. 동그라미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삶의 풍경들이 재미나다.
2 현관 입구에 놓인 고가구와 돌 그림들, 그리고 최덕교 작가의 브론즈 새장이 운치 있게 어울린다. 위쪽의 그림은 ‘식물학’.


황주리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억지웃음을 만들어내거나 과장된 상황을 만들지 않고, 그냥 느긋하게 감상하고 편안하게 기분 좋아지는 그런 그림. 작가의 다양한 상상력과 세심한 관찰력은 특유의 입체적이고 화려한 필체로 캔버스에 옮겨진다. 그녀 역시 요즈음 자신의 작품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인정한다. “20 대, 30대 때 그렸던 그림들을 보면 발칙하고 불온해요. 그 시대의 사회적 절망이 그림에 표출돼 있는 거죠. 그러고 보면 모든 사람이 자기 나이대에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는 가 봐요. 다시 하려고 해도 도저히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20대 때의 그림은 정서가 굉장히 어둡고 강렬하고 순화가 안 된 느낌인데, 그때 그림을 다시 그려 보고 싶어도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 반면 요즘 작품은 치유의 역할을 하는 그 림들이다. 작가는 생각이 많다. 그림뿐 아니라 작가가 쓴 3권의 수필에 쓰인 글들을 봐도 작가가 얼마나 섬세한 시선을 가진 관찰자인지 알 수 있다. 그림의 제목들도 역시나 하나같이 예민한 더듬이를 드러낸다. ‘추억제’ ‘이상의 시를 명제로 한 것들’ ‘식물학’ ‘그대 안의 풍경’ 같은 시적인 제목들. 제목을 구상하는 방법을 묻자 “내 안에 내재하고 있 던 어떤 것을 볼 때 글도 되고 그림도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처럼 삶을 함축하는 짧은 문장들이 그림의 제목이 되는 것. 타고난 관찰자의 시선을 지닌 작가는 같이 지내는 순종 불독의 표정, 카페의 연인들과 아기를 안은 엄마의 사소한 일상을 매일매일 날렵한 제목의 그림에 담는다. 유독 따뜻한 시선을 가진 관찰자이기에 그 녀의 그림 역시 그렇게나 행복한 표정들인가 보다.

3 식탁 옆의 그림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는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4 유독 그림을 좋아하는 황주리 작가의 어머니는 그간 모아온 그림 컬렉션을 죄다 그림 창고에 두었지만 몇몇 조각 작품들은 여전히 집 안에 세팅해두었다. 브론즈 작품은 강희덕 작품.

070726옮김

 

출처 : 서라벌블로그입니다
글쓴이 : 서라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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