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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 제거’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6. 27. 09:05

호흡기 제거’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대법원 확정판결 있던 날, 기독교생명윤리협 주최 세미나 [2009-05-22 06:58]

▲이상원 교수는 “기대수명이 하루 남은 자와 이틀 남은자, 일주일 남은 자와 이주일 남은 자, 한 달 남은 자와 일 년 남은 자를 다루게 대우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대웅 기자
말기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락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21일,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존엄사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이날 판결의 의미와 함께 존엄사 논쟁의 근원적 문제인 ‘인간관’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제시했다.

주제발표한 이상원 교수(총신대 기독교윤리학·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는 ‘존엄사는 안락사와 다른 것인가’를 주제로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적 인간관으로 보면 인간에게 단지 정신기능 또는 영혼이 죽어버린 ‘생물학적 생명’만이 유지되는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런 관점에서 죽음에 관련된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존재 자체가 의문스럽고, 설사 인정하더라도 추정판단이나 대리판단으로는 환자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히 ‘존엄사’ 용어 자체에 반대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존엄사’의 의미가 ‘안락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토론에 나선 박재현 교수(경희대 의료윤리학)도 “우리나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 존엄사의 순서로 용어가 변해왔는데, 이는 윤리적인 부담을 덜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정한 존엄사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을 남김없이 다 받으면서도 인내하는 가운데 고통을 참아내고 고통의 의미를 물으면서 자연수명이 다하는 시점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라고 밝혔다.

이상원 교수 “영혼의 존재를 잊으셨습니까”

이상원 교수는 발표에 앞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근 배아복제 허용 이후 이번 호흡기제거 판결까지 생명 경시풍조가 이어지는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이 교수는 “존엄사 논쟁은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경우 욕구와 열망, 즐거움, 고통 등을 느끼는 전기적 생명(biographical life) 없이 생물학적 생명(biological life)만 유지된다는 주장에서 근거한다”며 “이는 기독교적 인간관 관점에서 영혼의 소멸이라는 개념이 되는 것으로, 성립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영혼이 생물학적 생명을 작동시키는 원리이며, 뇌의 지배를 받지 않고 뇌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식물인간 상태였다가 의식이 깨어난 환자들은 그 기간 중에도 의식이 있었으며 주위에서 하는 말과 행동들을 모두 듣고 느끼고 알았으나 적극적으로 반응을 못했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증언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또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 행위와 ‘무의미한 진료 중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진료 중단은 치료를 통한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적 질환 상태이거나 자연적인 노화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불가피한 환자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할 때, 의사가 중층적이고 신중한 의학적 검토와 함께 병원윤리위원회 등과 협의를 거쳐 환자 요구에 응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행위와는 구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본인의 명시적인 의사표명이 없고 △의사의 치료(중단)행위 자체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환자의 전체적 신체조건과 관계없이 치료중단 시술이 결정적 원인이 돼 단기간 안에 죽기 때문에 구분돼야 한다고 밝혔다.

“1년 남은 생명은 소중하고, 1시간 남았으면 소중하지 않은가”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소망관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이날 존엄사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 때문인지 많은 성도들이 참석했다. ⓒ이대웅 기자
특히 “영혼이 살아있고 신체가 작동하고 있는 한 남은 기대수명이 짧은가 긴가는 연명장치 제거 판단의 표준이 될 수 없다”며 “환자의 기대수명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해도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살아있는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 가능성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토론에 나선 최병휘 교수(중앙대 용산병원 호흡기내과)는 “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하거나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약의 효능을 놓고는 가능할지 몰라도 죽음에 관한 확실한 의학적 통계는 없다”며 “있다 해도 6% 가능성이 있으면 살리고, 4% 가능성이 있으면 죽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품위와 존엄은 인간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생명을 인위적 방법으로 종결시키는 행위를 존엄한 죽음이라 부르는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며 “본인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가 고통스러울 것이며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불확실하고 자의적인 판단에 의거해 영혼과 육체가 모두 살아있는 인간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위는 환자를 죽이는 행동일 뿐”이라고 밝혔다.

“진료비 부담 문제, 논쟁의 본질이 아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판결 결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박제현 교수는 “이 사건의 환자는 2008년 2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는데 이후 1년 3개월 동안이나 생존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사망할 수 있다며 ‘임종환자’, ‘연명치료 중단’을 말하면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원 교수는 “문제의 판결은 환자 자신의 직접적 의사표명 없이 환자 일부 가족들이 대신한 추정적 의사표명을 환자 자신의 의사를 반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가장 민감한 ‘진료비 문제’가 다시 거론됐다. 그러나 박재현 교수는 “똑같이 존엄사 논쟁을 했던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논쟁에 재정적 문제는 끌어들이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제일 시급하게 다뤄진다”며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이상원 교수는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정신적 부담과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지만, 그러하고 인위적인 생명 종결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면서도 “의료보험제도를 대폭 강화시켜 환자 가족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서유럽 복지국들처럼 의무 간병인 제도 등을 통해 가족들이 일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장기적 지원장치는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발표자들은 마지막으로 비기독교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생명윤리에 대한 의식 개선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목회 현장에서의 생명윤리 교육이나 설교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