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시편과 잠언이야기

시편 1 장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2. 20:27

  시편 1 장

1    행복한 사람은 악한 사람들의 계책을 따라가지 않고,
                범죄자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빈정대는 사람들의 모임에 자리를 같이하지 않습니다.
2    야웨의 가르침만이 그의 간절한 기쁨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읊조립니다.
3    그는 물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아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 마다 번창할 것입니다.

4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람에 날려가는 겨와 같습니다.
5    그러므로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뎌 낼 수 없으며,
                 범죄자들도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에 서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6    야웨는 반드시 의로운 사람들의 길을 감싸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의 길은 없어질 것입니다.



                                                                     [시편 1-2장]

시편 1장과 2장에는 제목이 붙어있지 않다. 그러나 동일한 문구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1:1   “행복한 사람은… 야웨의 가르침만이 그의 간절한 기쁨이며”
        2:12  “행복한 사람은 … 야웨를 의지하는 자로다."

이 두 구절은 시편 전체의 의미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시편 전체로 들어가는 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먼저 시편 1장은 하나님의 율법(모세오경)과 지혜 스승들의 가르침(지혜서)에 귀를 기울이라고 가르친다(이런 이유로 시편 1장은 “토라”시, 혹은 “지혜”시로 분류된다). 한편 시편 2장은 예언서(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제를 가리키는데, 즉 야웨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 출신에서 한 인물을 택하여 그에게 향유를 부어 왕(메시아)으로 삼으실 것이며, 또 그를 통해 성취하리라고 하신 내용을 가리킨다(이런 이유로 시편 2장은 “왕의 시”, 좀 더 구체적으로 “메시아”시로 분류된다). 이렇게 볼 때, 시편 1장과 2장은 시편 전체를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즉 모세오경과 예언서와 지혜서)과 연결시키며, 시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전체의 큰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동시에 시편의 도입부로서 이 두 편의 시는 시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려는 사람들, 그래서 그것을 자신의 신앙의 증거로 삼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그들의 모습을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편 1장]

1절.
[행복한] 일반적으로 “복”으로 번역하지만, “행복”이라 번역하는 것은 훨씬 원문의 의미에 가깝다. “복”이라 할 때, 사람들은 물질의 소유를 연상한다. 그러나 행복은 “소유”(having)보다는 “상태”(being)를 가리킨다. 성경은 야웨를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지켜 행하며(94:12; 112:1; 119:1-2; 128:1; 잠 29:18을 보라. 참조, 시 41:1; 106:3; 잠 14:21; 사 56:2)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들(40:4; 84:5,12; 144:15; 146:5; 잠 16:20; 사 30:18; 렘 17:7을 보라. 참조. 시 2:12; 34:8)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가르친다. 행복한 상태란 건강과 부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생명의 주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보호 아래서 사는 삶에 대한 경험과 확신을 가리킨다. 시편은 경건한 사람들의 행복한 상태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시편 1장),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지상과 천상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권면으로 끝을 맺는다(시편 150장). 흥미로운 관찰은 시편 1장의 첫 단어인 “행복한”(happy)은 히브리어로 “아쉐레이”이며, “발걸음들”(steps)은 “아슈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생길을 똑 바로 걸어가는 발걸음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참조, 나훔 사르나[Nahum Sarna] 교수의 관찰).

[따라가다 → 서다 → 자리를 같이하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는 불경건한 자들이 불경건한 삶의 방식과 길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 단어 모두 “길”(道)과 관계가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결정하는 수많은 도덕적 선택들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은유다. “걷다가 서다가 주저앉는” 모습은 악한 사람들의 무리에 끌려가는 것이 점진적이고 습관적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가다] 걷는다. 삶을 이끌어가는 방식.

[계책] 모의와 충고와 꾀(잠 1:10-19를 보라).

[범죄자들] 악한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 삶의 방식이 된 사람(5절을 보라).

[서다] 위치하다.

[자리를 같이 하다] 정착하여 자리를 잡다. 주민으로 등록하여 그곳의 거주자가 되다.

[빈정대는 자] 하나님을 조롱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고집적으로 거절하는 사람(잠 1:22와 그 해설을 보라)으로 본시에 등장하는 행복한 사람의 삶의 방식에 대해 빈정대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2절.
[그 가르침을 … 읊조리다] 악한 사람의 감미로운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서 삶의 지침을 찾는다. 일반적 번역은 “묵상”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묵상이나 명상이란 개념보다는 입으로 암송하고 마음으로 되새김질하는 것을 가리킨다.

[밤낮으로] 온종일. 밝을 때나 어둘 때나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정상에서나 계곡에 있을 때나 한결같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한길로만 갈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가르침(율법)에 따라 살 때이다. 여호수아의 예를 보라(수 1:8).

3절.
[나무… 시들지 않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의 행복한 상태를 직유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나무는 세찬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견디어 내며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상록수(常綠樹, evergreen tree)의 표상과 함께 풍성한 열매와 시원한 그늘은 사람들과 짐승들과 새들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렘 17:8을 보라.

4절.
[바람에 날려가는 겨와 같습니다] 악인의 사악함이 힘이 있는 듯 보여도 결국 그렇지 못하다는 뜻. 악한 사람을 가벼운 겨에 비유한 직유법으로 겨는 가장 가벼운 바람에도 휩쓸려 날아간다. 쓸모없고 지저분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정결과 정화를 가져오게 된다.

5절.
[심판을 견뎌낼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때 그분의 진노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76:7; 130:3, 스 9:15; 말 3:2; 마 25:31-46; 계 6:17을 보라).

[모임]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하는 회중을 가리킨다(26:12; 149:1의 ‘회중’, 22:25; 35:18; 40:9-10의 ‘대회’, 111:1의 ‘공회’와 같은 의미, 시 15장, 24장을 보라).

[의로운 사람] 시편에서 “의인”이라 할 때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전하거나 순결하다는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에 맞추어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정하여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그들에게 주어진 힘과 권위가 있다면 그것이 가정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지성적 차원의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상관없이 그것들을 다른 사람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사람이다.

6절.
[감싸주시다] 히브리어의 문자적 의미는 “알다”이다. 두 당사간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로, 남자와 여자사이의 관계를 이 동사로 나타낼 때는 “성적 교제”를 말한다.

[악한 사람들의 길] 시의 첫머리의 “범죄자들의 길”과 한 쌍을 이루어 시를 열고 닫는 봉함엽서 기능을 한다. 그런 자들의 길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다.  

[길…길] 길은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첫 번째 길은 하나님의 눈에 드는 길이지만 두 번째 길은 하나님의 눈에 들지 않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면 잊힌 길이요, 결국 사라져 없어지는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