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토요편지

한국축구-유럽축구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6. 15. 19:40

샬롬

한국축구 드디어 선진형에 도달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은 찡했다. 경기내내 박수를 치거나 함성을 질렀고 가끔(특히 박주영의 일대일 찬스가 무산됐을 때)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다. 월드컵은 이런 맛이 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기자지만 태극전사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을 때만은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의 팬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90분이 흘러갔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 가자 16강"을 혼자서 외쳤다.

한국축구가 이토록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다. 그리스전 쾌승은 홈에서 열렸던 2002년 대회의 '4강 신화'와.4년 전 독일에서 토고를 상대로 거둔 원정 첫 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은 2004년 유럽 챔피언이었던 그리스를 상대로 경기를 거의 완벽하게 지배했다. 전술적 완성도가 깊었고 선수들의 헌신도 눈부셨다. 한국축구는 그리스전을 통해 '선진국형 단계'에 돌입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전반 7분 이정수의 선제 골이 비교적 일찍 터진 뒤에도 한국은 전술의 흔들림이 없이 극히 정상적인 플레이를 전개했다. 한 골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잠그기에 돌입하거나.넘어지면 일어나지 않는 '침대축구'를 하거나.무의미하게 공만 빙빙 돌리면서 시간끌기를 하는 일이 없었다.후반 7분 박지성의 추가골이 터진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또 다른 골을 얻어내기 위해 계속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90분 내내 그리스를 압도할 수 있었다.이날 보여준 한국의 플레이 스타일은 아름다웠다. 근성과 정신력만을 강조했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패장 오토 레하겔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엄격한 규율이 있었고 개인기와 스피드도 갖춘" 능력있는 팀이었다.

강력한 수비력으로 유명한 그리스같은 팀을 상대하려면 선제골을 넣었을 경우와 먼저 실점했을 경우를 나눠서 가상 시나리오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허정무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우리가 먼저 골을 넣어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추가골을 얻기 위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라"고 지시했다. 앞선 팀이 계속 공세를 주도하면서 그리스는 좀처럼 경기 흐름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지 못했다. 정상적인 축구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수들의 전술적 소화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경기에 나서기 전부터 입이 덜덜 떨려왔다'는 선배들의 회고는 정말 옛 이야기가 됐다. 월드컵같은 큰 무대에서 누구를 만나도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하면서 대등하게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어차피 승패는 객관적인 전력 이외의 변수가 많다. 축구공은 둥글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스전은 한국축구가 이전과 다른 단계로 성장하고 있음을 입증한 역사적 경기였다. '유쾌한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세계 최강급이라는 아르헨티나도 두렵지 않다. 승패와 상관없이 마음껏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