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이야기

[스크랩] 소포클레스 - 오이디푸스왕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0. 25. 12:10

 

오이디푸스왕(Oidipous Tyrannos)

 

 

고대 그리스의 극시인(劇詩人)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이다. 제작ㆍ상연 연대 미상으로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에게도 같은 제재의 비극 작품이 있으나, 소포클레스의 것이 특히 유명하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유리피테스와 함께 3대 비극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 감정을 극의 주제로 한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희곡 작품으로 꼽히는 것으로서, 불확실하며 인간 의지대로 조정할 수 없는 운명의 굴곡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이 상연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BC 429∼420년으로 추정된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운(悲運)을 취급하여, 왕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죄악을 한걸음 한걸음 추구한 끝에 자기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물샐 틈 없는 훌륭한 구성과, 그 후 딸들과 이별을 슬퍼하는 아름다운 장면과의 대비는 큰 효과를 올리고 있다.


 우선, 줄거리를 살펴보자.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나라 안에 악역(惡疫)이 유행할 때, 선왕(先王)을 살해한 범인을 추방해야 된다는 신탁(神託)에 따라 그 범인 색출에 전력을 기울인다. 왕은 한때, 집정(執政)인 크레온을 의심하지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예언과 선왕의 왕비이며 자신의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설명을 들은 뒤로는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의혹이 깊어져 간다. 코린토스의 사자(使者)의 말, 자신이 테베에 들어오기 직전에 저지른 살인,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스런 예언, 그리고 선왕의 아들을 버린 양치기의 증언으로 마침내 자신이, 바로 운명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운명의 그물에 사로잡힌 존재로서, 아버지인 선왕을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극도의 절망상태에 빠진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신의 눈알을 뽑아내고,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한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의 만년(晩年)을 다시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BC 402)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소경이 된 늙은 오이디푸스는 딸 안티고네에게 이끌려서 여러 나라를 방랑한 끝에 아테네에 온다. 오이디푸스에게 있어서 죄란 무엇인가. 그는 신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에 걸려들었을 뿐,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과(罪過)도 없다고 끝끝내 주장한다. 이와 같은 자부(自負)를 가지고, 아직도 자기를 이용하려고 드는 자식이나 크레온을 뿌리치며 저주하는가 하면, 정의와 인간성이 넘치는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에게 축복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신과의 위대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스 비극은 우리가 당장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려 할 때조차 ‘나는 누구이며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니체가 지적하듯 그리스 비극은 관중으로 하여금 인간이란 노쇠와 죽음의 운명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비이성적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임을 새삼 깨닫고 통곡하게 하는 통찰의 순간을 담는다. 이 순간을 통해 관중은 인간 존재의 진실과 대면하고, 그 대면의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필멸의 존재인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 비극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던지는 엄중한 질문인 ‘너는 누구인가’야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이디푸스와 이피게네이아의 격렬한 비극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을 ‘통곡’의 순간으로 이끄는 이유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작품은 소재의 기발함에도 그렇거니와 그 제재를 교묘하게 극으로 완성시킨 작법 면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소포클레스 비극의 전형임은 물론이고, 넓게는 그리스 비극의 전형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시민교육이라는 역사적 테두리를 벗어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그리스 비극은 국가 수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순간에도 국가주의의 모순을 폭로하며, 국가와 가족의 요구가 상충할 때 전자를 따르는 게 얼마나 어렵고 도덕적으로 위험한지 보여준다. 그래서 고전은 시대를 불문하고 통용되는 것이다.‘부동의 신념’이나 영웅주의에 감춰진 독선과 국가주의의 허구성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이피게네이아가 아버지 아가멤논의 명예욕에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보면서 아테네 시민은 전쟁과 폭력이 애국심이나 희생의 논리로 둔갑하는 과정을 목도하고 영웅주의의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얼굴을 발견했을 것이다.

출처 : 碧 空 無 限
글쓴이 : 언덕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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