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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천지의 비유풀이, 열처녀

명호경영컨설턴트 2011. 2. 4. 11:37

신천지의 비유풀이, 열처녀

-글/이인규-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13)

얼마 전 신천지에 빠진 사람을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상담결과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천지(이만희집단)에서 이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는데, 기름장사가 이만희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며칠후 또다른 신천지에 미혹되었던 사람을 상담하게 되었을 때에, “그렇게 배운 적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그렇게 배웠다”고 답변을 합니다. 

그동안 성경학자들은 열처녀에 대한 성경의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다양하고 폭 넓은 의견을 제시하여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초대교회부터 이러한 열처녀의 비유에 대해서 알레고리적인 주관적 해석이 특히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비유적인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는데, 전혀 연관이 없는 내용을 풍유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금물이며, 또 모든 단어를 비유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양의 문, 성도를 양이라고 비유한 성경에서, 양의 다리는 무엇을 비유하고, 양의 털은 무엇을 비유한다는 식의 해석은 본질적이며 중요한 멧세지를 외면하는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분명합니다. 그 비유는 양이라는 짐승의 속성이 원래 목자가 인도하는대로 따라가는 순한 짐승이라는 내용이 올바른 해석이며,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는 비유는 오직 예수님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열 처녀는 그리스도인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이며, 구체적으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구원을 받는 그리스도인,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이 비유에서 설명하는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고 영접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느나라도 혼인식날 신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10”이라는 숫자는 완전숫자이며, 유대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이었으며, 여러 종교 집회를 위해 필요한 정족의 인원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Lenski 라는 학자는 본문의 “열처녀”가 모든 시대에 예수를 신앙하는 모든 신자를 가르킨다고 하였습니다. 또 신랑은 재림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열처녀는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들러리이고, 혼인잔치(신부집)의 문은 구원을 상징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비유법에서 모든 단어 하나 하나에 모든 비유와 상징이 감추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열처녀를 통하여 모든 단어를 하나도 빠짐없이 비유와 상징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유를 통하여 중요하고 본질적인 멧세지를 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결혼식은 친척이나 동네 처녀들이 들러리를 서면서 신랑을 맞이하는 영접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신랑이오면 불을 밝혀서 신랑의 일행을 잔치자리로 인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한국식으로 풀면 안됩니다.

즉 열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파는 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신천지집단은 이 기름파는 자를 이만희라고 주장해 왔는데, “기름파는 자들”이 복수명사라는 것을 알자 “이만희와 성경교사들”이라고 해석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만희는 믿음 혹은 성령을 돈을 받고 파는 자들입니까?


만일 이만희를 기름파는 자로 해석한다면, 이만희에게 기름을 사러간 다섯처녀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적용시키렵니까?  또 기름장사인 이만희 역시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다섯처녀에게 기름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다섯처녀가 늦게 왔을 때에 혼인잔치의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성경본문의 열 처녀에 대한 비유에서는, 특히 기름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지는데, 이 기름을 “선한 행위”라고 하는 학자들도 소수 있으며, 어떤 학자들은 “구원을 얻는 믿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 혹은 “성령”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기름을 성령 혹은 믿음이라고 하는 견해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견해가 되는데, 물론 그러한 몇몇 해석들이 보편적인 해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나 믿음, 은혜와 성령,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거나, 다른 사람에게 얻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 또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미리 준비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보면, 그러한 단정적인 비유는 무언가 미홉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다섯 처녀도 (비록 그 기름이 부족하였지만)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열처녀의 비유는 신랑이신 재림예수가 예고하지 않은 시간에 갑자기 오신다는 것이며, 성도들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미리 준비하여야 하는 것들을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일지, 성령일지, 은혜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재림예수가 오실 때를 항상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 본질적인 멧세지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기름에 대해서 랄프 얼(Ralph Earle)이라는 학자는, 재림은 성령충만으로 예비된다고 함으로 “성령충만”이라 하였고, 핸드릭슨(W. Handriksen)이라는 학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랑을 환영하도록 변화를 가능케 해주시는 “성령”을 기름이라고 보았습니다. 브루스(F. F. Bruce)는 기름을 성령으로 상징하기보다는 그냥 “불을 밝히는 기름”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어제 썼던 기름은 오늘 등불을 밝히기에는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추에서 과거의 신앙경험은 오늘의 필요에 충분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매일의 은혜는 매일의 필요를 위해 획득되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 당시의 등불은 기름을 담는 용기가 작았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그 등잔을 오래 사용하기 위하여 여분의 기름통에 기름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신랑이 더디 왔다는 점에서 발생합니다. 만일 신랑이 일찍 왔다면 그 등불은 불을 밝히기에 충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름은 성령이라고 해석하기에 매우 곤란한데, 성령의 많고 적음도 이상한 논리가 되고, 여분의 성령을 준비한다는 자체도 이상합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해석하여도, 은혜로 해석하여도, 여분의 믿음과 은혜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며, 다른 곳에서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이러한 비유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즉 성경본문이 말하는 기름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는 은혜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재림시까지 인간 측에서 미리 준비하여야만 하는 어떤 책임한계를 뜻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성령이나 은혜보다는 오히려 “믿음”과 같은 개념이 적절한 비유가 되어질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서는 신랑이 더디와도 끝까지 지키고 지속하여야만 하는 믿음의 분량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물론 믿음도 다른 곳에서 사거나 구할 수는 없습니다. 즉 기름장사의 비유 자체는 적용될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비유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성경본문은 기름이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기름에 대한 비유는 굳이 해석하자면, 믿음, 성령등으로 보면 충분할 것 같으며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성도가 예비하여야할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은 결론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신랑이 늦게 오자 열처녀가 모두 졸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신랑이 늦게 오므로서 기름이 부족하게 된 것이며,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름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지체되어지는 재림을 항상 준비하여야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열 처녀에 대한 성경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柱: 마25장 의 비유들은 일맡은 자들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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