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 스파르타쿠스, 아스텍의 정복자 코르테스, 도쿠가와 이에야스, 훈족 왕 아틸라, 사자왕 리처드, 그리고 나폴레옹.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언뜻 보기에 아무런 공통분모가 없을 것 같은 이 여섯 명은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전사들’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회 최하층의 노예검투사에서 일국을 지배한 쇼군과 황제까지, 노예 해방을 부르짖었던 정의로운 투사에서 원주민을 학살한 악당까지, 이 여섯 전사의 면면은 무척이나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들을 극복하고 마지막 승리를 쟁취한 최고의 전사들이다.
이 책은 시청자들로부터 “BBC 최고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6부작 다큐드라마 〈전사들(Warriors)〉을 텍스트로 엮은 것이다. 방영 당시, 개성 강한 여섯 전사들이라는 소재를 BBC 특유의 탄탄한 구성력으로 버무려, 시청자들은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작품”이라며 극찬을 보냈다.
이 다큐드라마에 인물 전기와 전쟁사의 대가인 저자의 손길이 더해져 역사의 재미와 번뜩이는 통찰이 담긴 새로운 책이 되었다. 《전사들》은 단순히 전쟁 이야기만 하는 전쟁사나 영웅사가 아니라, 이 여섯 전사의 삶과 전쟁, 그들만의 ‘이기는 기술’을 파헤친 새로운 형식의 인문경영서다.
약점 많은 이들은 어떻게 최고의 전사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최고의 전사들이 되었을까? 《전사들》은 이들의 삶과 전쟁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우선, 여섯 전사들이 오르기 전 역사의 무대가 어떻게 펼쳐져 있었는지에 주목한다.
스파르타쿠스가 노예 검투사가 되었을 당시 로마는 어떤 국가였는지, 아틸라가 왕위에 오르기 전 훈족은 어떤 민족이었는지, 이에야스가 태어나기 전 일본의 정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전사들이 단순히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시대는 어떤 종류의 인물을 원하고 있었고 이 전사들은 저마다 그 시대의 일정한 요구에 부합하는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어떤 활력을 원하고 있었는지, 코르테스는 어릴 적부터 어떤 ‘악당 기질’을 갖고 있었는지, 또 이 둘이 만나 코르테스라는 악당이 어떻게 뛰어난 전사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지를 저자는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기질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모두 뛰어난 전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여섯 예비 전사가 겪는 위기와 약점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특히 저자는 이들이 결코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이들 역시 보통 사람처럼 수많은 약점을 가진, 아니 어쩌면 보통 사람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들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코르테스는 못 말리는 호색한이었고 아틸라와 나폴레옹은 죽을 때까지 미신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리처드 왕은 걸핏하면 정찰대를 직접 끌고 나갔다가 포로가 될 뻔하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주위의 여건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스파르타쿠스는 오합지졸의 무리를 이끌고 당대 최강의 로마군을 3년간이나 상대해야 했다. 부하들이 충성스럽지 않기는 아틸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내부의 적’은 리처드 왕의 경우가 가장 심각했을 것이다. 그가 이끌던 십자군은 저마다 속생각이 다른 “다혈질의 조울증” 신도들이었고, 툭하면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프랑스군이나 본국에서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던 동생은 그의 생애 내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약점들을 커버하고 자신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상황을 장악하고 전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장군으로서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뒤떨어졌지만, 그는 이 두 천재들의 능력을 끊임없이 모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코르테스는 바람둥이 기질을 십분 살려 마리나라는 마야인 여성을 사로잡는데, 그녀는 이후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사자왕 리처드 역시 지나칠 정도의 추진력 덕분에 솔선수범하는 수장으로서 존경을 받게 된다.
6인 6색의 ‘이기는 기술’
이 책이 다른 영웅담과 가장 다른 점은 이 여섯 전사들의 저마다의 무기, 전쟁 스타일, ‘이기는 기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저자는 그저 여섯 개의 성공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어떤 무기로 싸워 이겼는지를 분석한다.
스파르타쿠스는 오합지졸 부하들을 모아 로마 정규군에 대항하기 위해 카리스마에 호소했다. 그 자신의 매력과 강한 통솔력에 노예 해방이라는 명분까지 더했기에, 오합지졸이었던 노예군은 3년간 로마를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 역시 인간 관리의 천재였지만, 그는 약간 다른 방식을 썼다. 그는 장군으로서나 행정가로서나 완벽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비전을 주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목표를 주위 사람들의 목표가 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나폴레옹을 돕고 싶어 안달이었다. 실제로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는 주위의 실력자들의 도움으로 번번이 위기를 넘긴다. 사람들의 ‘헹가래’로 정상에 오른 경우다.
반면에 매력이나 카리스마가 아닌, 권력과 황금을 이용한 경우도 있다. 훈족 왕 아틸라는 형까지 죽이고 왕위에 오르지만, 거친 유목 부족인 훈족은 도무지 하나로 뭉쳐지지 않았다. 이에 아틸라는 중세 서유럽의 봉건제를 변형해 뿔뿔이 흩어지던 부족들을 하나의 ‘훈 왕국’으로 규합해낸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이라는 채찍, 그리고 황금이라는 당근을 앞세워 부하들을 복종시키고 훈족을 단단한 칼로 단련해낸다. 여기에 자신들의 주특기인 ‘치고 빠지기’를 발전시켜 유럽 국가들로부터 ‘보호비’를 받아낸다. 훈 왕 아틸라는 일종의 마피아로서 성공한 경우다.
이들이 주위의 힘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끈 타입이라면, 사자왕 리처드는 자신의 실력으로 상황을 장악한 경우다. 한 명의 전사로서뿐만 아니라 전략, 병참술, 행정 등 전 분야에 걸쳐 천재였던 그는 압도적인 실력과 전쟁 기계 같은 추진력으로 분열을 봉합하고 십자군을 이끌어나갔다. 이것은 전쟁 자체를 즐기는 독특한 그의 기질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섯 전사들 중에 가장 문제가 많은 코르테스는 그야말로 악당이다. 평생을 온갖 사기와 도덕적 무감각으로 일관한 그이지만, 저자는 그가 뛰어난 전사임에는 틀림없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음흉한 속마음을 감쪽같이 숨기는 포커페이스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욕망을 대의명분으로 포장해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그가 아스텍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총, 균, 쇠’ 덕분이 아니라, 아스텍인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틀락스칼라족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아스텍을 정복한 것은 ‘총, 균, 쇠’가 아니라 ‘악당의 혓바닥’인 셈이다.
저자가 가장 뛰어난 정치꾼이자 수수께끼의 인물로 뽑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뛰어난 실력이나 강한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자신의 약점을 오랫동안 보완하면서 큰 판을 보고 장기를 두는 시간 전쟁의 달인이었다.
특히 상대방 무리 중에서 흔들리는 자를 찾아내 배신자로 서서히 키워가는 프로그래밍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실력 부족을 뛰어난 안목으로 커버한 이에야스,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알았던 그는 결국 전 일본을 제패하고 쇼군이 된다.
전사의 두뇌와 심장을 배운다
저자는 짧은 머리말을 이렇게 끝맺는다. “우리는 전사들을 모두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큰 결함도 많았던 인간으로 말이다.”
《전사들》은 완벽한 초인이 태어나 세계를 제패해나가는 신화 같은 영웅담이 아니다. 이 책은 참으로 약점 많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무기로 정상에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드라마다.
초월적인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도 몹시 닮은 약점 많은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도움이 안 되는 아군을 이끌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위기들을 헤쳐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에게서 자신의 가능성을 엿본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송곳 같은 자신만의 무기 하나로 적과 세상을 꺾고 정상에 올랐던 여섯 전사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끊임없이 단점을 보완해나가는 인내심, 차례로 밀려오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강철 같은 신경, 주위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매력과 언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굳건한 확신이야말로 이들의 ‘이기는 기술’이었다.
이 모두를 갖춘 여섯 전사들은 없었지만 그들은 모두 승리자로 남았다. 매일매일이 전쟁 같은 인생과 비즈니스의 세계, 내 꿈을 이룬 승리자로 남고 싶다면 여섯 전사들의 두뇌와 심장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민학희 과장 (hh.min@yoursta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