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새벽 문득 자료를 찾다가 본 사형수가 보낸편지라는 내용을 보고 정리합니다.
우리도 이런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루하루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살아갈까요.
문득 현재의 시간이 궁금해 지나가던 직원을 세워 시간을 물어보았습니다. 지난 2년 6개월여 동안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시간이 지금 느닷없이 궁금해 진 것이 신기해 한참동안을 생각에 잠겼었지요. 난 무엇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살았는가? 이것은 자의에 의한 것인가 아님 타의에 의한 것인가를 놓고서 말입니다. 바깥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면 거의 누구나 다 시간에 얽매인 생활을 합니다. ‘하루는 24시간’ 그 24시간 안에 계획했던 모든 것을 하루라는 시간 안에 나누어 쓰려면 결코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겠지요. 정지되어 버린 2년 6개월 아니 오히려 퇴보되어가는 제 자신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제 자신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삶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모를 그 시간을 위해 우린 각자 계획했던 데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내 삶의 시간만큼은 한도 끝도 없다는 착각 속에 흥청망청 세월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큰스님! 전 항상 저보다 나이가 적은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나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충실한 삶을 위해 노력해 보라고 합니다. 하루를 백년같이 살아가는 저희 사형수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시계라는 하찮은 기계 속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시간은 그들의 정성에 있으며 그들이 진실로 참회하는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1993년 2월 1일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아직까지 남아있는 날숨
“삼중 큰스님께 올립니다. 요즘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삶에 관한 명암(明暗)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삶에 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 모두가 죄를 지은 재소자들이라면 당연히 그런 마음들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습니다만 삶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이곳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의외로 많은 듯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도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저를 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저에게 진솔한 언행을 보임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삶이 그렇게 힘이 드십니까?’라고 물을 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습니다.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들이 왜 삶을 피곤해하며 삶에 회의를 느껴야만 할까요. 그것은 점점 더 각박해지며 복잡해지는 사회에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을, 여유로움보다는 메마름을 느끼기에 그럴 것이라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기계적이기보다는 인간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적당한 일거리와 적당한 노력, 그에 따른 적당한 대가와 적당한 휴식을 갖고 싶어 하는 그들은 그들에게는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행운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인간들은 그들 스스로가 차가워지며 각박해짐을 깨닫지 못합니다.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은 그럴 거라고 하는 것을 자기 합리화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요. 서로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먼저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지요. ‘김무경씨의 처지가 부럽습니다.’라고 했던 어떤 직원의 메마른 모습이 떠오릅니다. 1993년 2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삼중 큰스님께 올립니다. 아직도 이곳은 조석으로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벌써 3월하고도 중순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큰스님! 조금은 헤이해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며칠 전부터 세월을 세워 하루일정을 빡빡하게 잡아 지켜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평상시보다 잠을 줄이고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려 노력하다보니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터지고 온 몸이 뻐근한 것이 쉬 피로해지고......... 하여간 얼마나 지속될는지는 몰라도 요즘 제게 애로사항이 많이 생긴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제 욕심 같으면 더도 말고 한 석 달간만 징벌방이라도 들어가 혼자 아무런 외부의 변화 없이 하고자하는 뜻을 세워보았으면 하지만 여건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럴 때 부자유스러움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과거에 자유스러웠을 때, 뜻을 세워보지 못한 제 자신이 한스럽기도 합니다. 뭔가 뜻을 세웠다고는 하나 하루하루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잡념이 생기고 번뇌 망상에 끄달림은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오리혀 신경이 더 예민해져 있음에 평상시보다 더 조심스럽고 옆에서 누가 날 건드릴까 한껏 움츠려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이러는 것이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반은 해 놓았습니다. 게으름 없이 좋은 결실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1993년 3월 17일 서울구치소에서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삼중 큰스님께 올립니다. 한 여름의 장맛비를 연상케 하는 많은 봄비가 내린 뒤 개인 아침은 정말 상쾌합니다. 비록 창살이 걸쳐있는 창을 통해 바깥을 보기에 자연은 사정없이 갈라져 있지만 화창한 봄날이 아름답기에 그까짓 방해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답니다. 인간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같은 마음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큰스님!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싸움이 존재한다지요. 첫 번째는 인간 대 인간의 싸움, 두 번째는 인간 대 짐승과의 싸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각자에게 존재하고 있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지요. 그 세 가지의 싸움 중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지막인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해버린다면 그것은 곧 빈껍데기뿐인 인간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인내하고 끝없이 자제하며 끝없이 닦아나가야 할 자신과의 싸움, 이 어둡고 고독한 곳에서 그나마 인간답게 수형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싸움이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보다 더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번뇌 망상과의 싸움, 오늘도 그 복잡하고 힘든 싸움 속에서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칩니다. 밤늦게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도 말입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1993년 4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삼중 큰스님께 올립니다. 어제 비로소 해갑이 되었습니다. 3년여 가까이 제 손에서 떠날 줄 몰랐던 수갑이었기에 풀고 난 뒤가 왠지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마음은 수갑이나 풀고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해왔었습니다.
큰스님! 이제는 조그만 자유를 얻은 셈입니다. 제 몸에 조그만 여유가 있어도 이토록 자유스러운 것을 큰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때 왜 전 그것을 감사하지 못했고 왜 전 그 자유를 유용하게 쓸 수 없었는지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큰스님! 조금은 얼떨떨하고 매일 다니는 접견 장까지 두 손을 힘차게 흔들며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합니다. 바깥사람들은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요. 자유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라는 것을요.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몫에 대해 감사하고 처해진 여건에 순응하며 자유를 마음껏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누누이 얘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 자유의 소중함.
큰스님! 이제 예전에 계획했던 일들을 실천해 보렵니다. 수갑을 차고 있어서 하지 못했던 예배며 청소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늘 감사드리며 살아 숨 쉬고 있을 그날 까지 조금만 자유이기는 해도 늘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이 기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1993년 4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삼중 큰스님께 올립니다. 요즘은 밤낮으로 일교차가 무척 심합니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물이 차가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낮에는 창문을 열어놓아야 할 정도로 더움을 느낄 수가 있고요. 거기에다 건조주의보까지 내려져있어 목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름을 훤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큰스님! 징역에서는 먼지를 비타민이라고 합니다. 먼지라는 것에 자꾸만 신경을 쓰니까 나온 말인 듯합니다. 햇빛이 들지 않으면 먼지도 보이지 않지만 한번 햇빛이 들었다하면 방안에 하나 가득 날아다니는 먼지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보면서 마시는 것과 안보이면서 마시는 것의 차이는 상상 이상입니다. 수건으로 마스크를 만드느니, 물걸레로 방을 훔치느니, 난리법석들을 떱니다. 차라리 보지나 않았으면 여유 있게 앉아들 있을 텐데.......사람들의 마음이 이렇듯 현상에 끌어당김은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모든 것이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바이지만 선뜻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집착과 욕심 때문이겠지요.
큰스님! 오늘은 마음공부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큰스님! 큰스님 덕택으로 활발한 성격의 좋은 펜 벗을 두게 되었습니다. 항상 이 못난 놈을 위해 커다란 배려해 주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서로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며 좋은 펜 벗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그럼 내내 건강하시길 빌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1993년 4월 21일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큰스님께 올립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린 각박한 이 세상을 부정이라도 하듯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도 아직은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더 많다고 자주 얘기들은 합니다. 하지만 선뜻 그런 얘기들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일반적인 삶의 방식들이 많이 흐트러져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있는 자들은 있는 자들끼리 어울려 부를 축적해가고 없는 자들은 없는 자들과 한숨을 나누는 우리의 사회, 그런 터무니없는 원리는 이곳에서도 팽배해 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있는 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셀 수 없이 많고 없는 자들의 구멍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야하는 것처럼 더없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없는 자들의 억울함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묵살되어왔고 있는 자들의 부정함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처를 받아왔으니까요. 왠지 인간들이 살며시 아프다는 생각과 함께 가엾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 동감이나 하듯이 하늘은 커다란 노여움의 일갈을 토합니다. 새벽 한동안 하늘은 온통 무서운 천둥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 하나만의 슬픔이 아닌 없는 자들의 슬픔을 생각해봅니다. 올바로 살고 노력하여 얻어져야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수가 정의로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스님 오늘은 왠지 제 현실이 더 부끄럽고 초라해 보입니다. 1993년 4월 26일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삼중 큰스님께 올립니다. 어머니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이서 어머님을 뵈었을 때, 그때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제 모습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님의 늙고 원 몸을 안았을 때는 마음이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고 울지 않겠다던 제 자신과의 약속은 그 순간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지요. 3년 만에 어머님께 큰절을 드리고는 마주 앉아계신 어머님을 끌어안고 그 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토해내야 했습니다. 주위를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그 때 만큼은 모든 것을 잊은 채 어머님의 따스한 가슴에 파묻혀 그저 이렇게 어머님을 안을 수 있다는 것만을 감사해야 했습니다.
큰스님! 이제 더 이상 무슨 바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로막힌 철창을 사이에 두고서 지척에 계신 어머님의 체온마저도 느낄 수 없었던 접견 장에서의 안타까움은 하루하루가 괴로움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은 늘 천근만근 무거웠으며 행여 돌아서 가시며 눈물을 흘리실 지도 모르는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해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큰스님! 가족접견을 하게 해주 신 많은 분들께 제대로 인사 한번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따가운 봄볕아래 가족들과의 원만한 접견을 위해 애를 쓰시던 그 분들께 늦기는 했지만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 봅니다. 커다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들께, 실망스런 성연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자면 가일 층 제 자신을 추슬러 더 맑은 모습으로 수형생활에 충실하며 정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큰스님께도 감사합니다. 큰스님으로 큰 가르침으로 성숙해져가는 저를 느낄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만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또 소식 올리겠습니다. 1993년 5월 10일 성연올림. (김무경 편지 전문)”
“삼중큰스님께 올립니다. 밤에 비로 인해 잠을 깼습니다. 꿀맛 같은 잠을 깬 뒤의 나른함은 무섭도록 쏟아지는 비로 상쇄할 수 있었지만 어둠의 고독은 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기 전 제게 있어 밤이란 포근함이요 안락함이었습니다. 복잡한 것은 모두 밤에 해결이 되었고 제게 있어 밤은 바닥난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는 고마운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제게 있어 밤은 고통이며 슬픔입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번뇌 망상 흐느끼듯 다가오는 지난 추억들이 제 작은 가슴을 그나마 작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방을 하고나서 바뀐 환경 탓인지 아님 정든 인연의 끈을 끊기 싫어서인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도 밤엔 잠을 이룰 수 없어 두 눈은 휑한 채 있습니다. 무엇에 집착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하루 종일 무엇을 해야 하는 가로 고민을 하다가 지는 해를 바라보고서야 허둥지둥 책을 펼칩니다. 지난 3년 동안 난 어떻게 용케 버터 왔는가. 내게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책을 펼쳐 놓은 채 엉뚱하게도 지나 온 3년이란 과거를 되새기지만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왜인지. 비와 함께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녘에 비가 그친 틈을 타 피곤한 몸을 뉘었습니다. 기상 소리에 일어나기 싫은 몸을 겨우 달래서 일으키고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아! 그래 오늘은 도배를 하는 거야.’ 더러워진 벽을 원고지를 발라 하얗게 만드는 작업은 신이 납니다. 깨끗해진 방 모습에 제 마음도 깨끗해진 듯합니다. ‘내일은 집들이를 할까? 어머니도 부르고 누님, 여동생, 보살님, 아! 큰스님도 모셔야지.’ 오늘은 가슴 속에 담아 놓았던 한 모금의 한을 토해냈습니다. 큰스님을 사랑하는 성연올림. 1993년 6월 28일 (김무경 편지 전문)”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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