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의 형성과정 - 박정수 교수
II. 고대유대교의 기초: 페르시아 시대
3) 이스라엘 종교의 새로운 길
가. 개인적 차원의 토라 경건
앞에서 설명했듯이 포로기 이후 정치적 단위로서의 국가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공동체는 실제로 지파(tribes)단위가 아닌 씨족(clans)으로서 돌아왔다. 지파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국가적 형태는 포로기 이후 파괴되었다. 이것은 이미 북왕국의 멸망이후에 시작되었고, 귀환 후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도했던 “유다인” 공동체의 특성에서 가시화된다.
외국 왕의 통치하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국가가 아닌, 종교로서 그 정체성으로서만 유지 될 수 있었던 포로기 이후의 상황에서 유대교의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다인 공동체가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종교적 유산의 수용과 새로운 해석의 주체로 내세웠다 할지라도, 야웨 하나님의 계약의 파트너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결코 혈통적 근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다(앞의 II. 1. 1)참조)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토라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야말로 “참 이스라엘”이 되는 유일한 척도가 되었다. 제2성전기 후기로 갈수록 토라의 실천이 점점 더 강화된 이른바 ‘토라 경건’의 배경에는, 창조주 야웨가 이방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희망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세계관과 신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종교적 무게 중심이 ‘토라 경건’으로 이전되면서, 고대 이스라엘 종교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유대교적 신앙은 성전예배이외에도 토라의 연구, 안식일의 준수, 기도와 주기적인 금식을 통하여 실천되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대교적 세계관과 신앙의 중심인 토라에 대한 실천과 연구는 이 모든 것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토라의 연구는 모든 유대인들의 삶에서 야웨를 체험하는 경건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f).
이 율법 연구에 헌신된 사람들은 물론 제사장이다. 그러나 점차 지혜의 전수자였던 서기관들이 전문적으로 토라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것이 토라와 지혜가 밀접하게 연관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로써 유대교에서 서기관이라는 제도화된 토라연구가들은 본격적인 활동과 기능을 하게 된다. 이들은 상류층의 지혜와 경건을 제도화된 영역에서 발전시킬 수 있을만한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시 119:90f).
그러나 그들은 상류층이라기보다는 중류층에 속한 자들로서 개인적인 토라경건을 통해 사회적인 하층민들의 경건과 융합함으로써 사회적인 통합의 기능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실천해야할 모든 개개의 유대인들에게 길과 방법을 제시하는 제도화된 기능인이었다. 그들 자신과 개개의 유대인들 모두는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종교적 개인’으로 서 있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 119:15f).
그러나 이러한 ‘토라경건’이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에 서 있는 희생제사나 하나님의 선택과 그 갱신, 그리고 하나님의 계약의 영원성에 대한 신념을 대치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존립했던 포로기 이전의 이른바 ‘공식 부문’이 폐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것은 유대교라는 새로운 종교적 공동체 의식 속에서 더욱 강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포로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스라엘 종교의 비공식 부문인 개인 경건이 더욱 활성화 되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인경건의 요소는 포로기 이후 지혜문학의 변화의 내용으로 부각된 이른바 ‘신학화된 지혜’와 관련이 있다. 지혜가 제시하는 삶의 형태는 토라가 가르쳐주는 종교적이고 도덕적 요구, 즉 ‘하나님 경외’로 집약된다. 이것은 변화된 ‘세계에의 순응’이라는 개인 처한 삶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혜로운 삶의 집약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단순히 토라와 연관 될 뿐만 아니라, 이제 창조된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대 유대교에서 “창조 지혜”의 형성과정에서 이러한 지혜의 변천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일찍이 Westermann은 창세기 1:1-2:4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사제학파가 가지고 있는 창조세계에 대한 “학적”이해를 발견하려 하였다. 이른바 종(種)과 유(類)를 통한 자연에 대한 분석적 사고의 맹아가 창조의 날의 분류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전통에서는 매우 낯선 이러한 합리적 이성의 맹아를 욥기와 창조시편(특히 104장)들 속에서 발견한다. 시편 19장은 이러한 창조 지혜와 토라가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가를 가장 분명히 드러내어 준다. 시인은 하늘과 태양의 현상들 배후에 있는 “지식”이 어떻게 “세계 끝가지” 이해가능하게 전달되는가를 노래한다(19:2-4). 그리고 시의 2번째 부분에서 이렇게 선포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7f). 이것은 “토라를 준수함으로써 얻어지는 삶의 질서는 전체로서 하나님의 질서에 근거한 창조질서와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창조 지혜”가 추구하는 우주의 질서와 잠언의 지혜가 추구하는 사회적 안정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왕에게 필요한 정의의 수호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보호는 야웨의 법을 따르는 사회적 규범이 되고(잠 29:4, 14; 29,7), 탐심에 대한 경고(23:20f; 5:8), 사회적 성실(6:6-11), 가족의 지속(5:18-20)은 교훈의 중요한 내용이 되고, 아비와 어미는 이것을 자녀에게 훈계하여야 한다(23: 13f, 22). 지혜는 결국 토라를 통하여 개인을 종교적 도덕적 요구에 세운다. 욥기 역시 이러한 종교적 합리적 사색을 회의주로 치우치지도 않고, 인과응보라는 이스라엘의 집단적 사고에 머물지 않고, 비평적이면서 개인적인 사색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보면 개인적인 “토라 경건”은 이스라엘의 종교의 공식부문이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더욱 포괄적으로 맺어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시 119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시편은 19편과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것으로 생각하는데, 언어나 주제에 있어서 같은 범주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편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토라 역시 개인이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토라신앙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정초하는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시 119:149). 토라가 살아있는 실존으로 인식되고, 그것에 대한 열망과 경외심은 바로 그러한 ‘토라 경건’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밤과 낮으로 그것을 묵상하며(997, 164. 147f절) 연구(45, 94절)하고 이해하고(79, 125, 152절) 배워야(7, 71, 73절) 하는 것이었다. 이제 개인적인 모든 관심과 삶의 길은 토라가 지시하는 삶의 길과 일치해야만 한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길)를 내게 보여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119: 33. cf. 119: 27. 32-35).
나. 종교적 리더십의 변화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종교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신정통치의 강화이다. 그것은 정치적 현실로는 가능하지 않은 하나님의 통치를 우주적 구원의 임재로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예언에서 묵시로의 변화에 담겨진 것인데, 이것의 가시적 제도화가 급속히 강화되어 이른바 제사장적 신정통치로 정립된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를 이끌었던 왕,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현자(賢者)이라는 주요한 기능은 포로기 이후 고대 유대교의 형성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형을 겪는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앞에서 설명한 종교의 내적인 변화에 기인한다. 그 내적인 변화의 요체는 전승이지만, 외적인 변화는 그 전승의 담지자이 살았던 사회학적 삶의 자리의 변화로 제도화된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에서 예언자에게는 역사 속에 계시하는 하나님 신탁의 전달이, 제사장에게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리고 현자에게는 그러한 계시의 실천 방법을 전달하는 기능이 요청되었다. 그러나 유대교의 형성과정에서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지배체제가 확립해 나간다. 그들의 기능은 점점 성전업무를 중심으로 되었고, 경제적 정치적 관료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들은 야웨를 섬기는 기능에서 이제 백성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반면 예언자들은 점차 현실에서 유리되어, 예언 자체가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에 매여 있지 않고, 세계의 모든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와 구원을 꿈꾼다.
이러한 사회적 삶의 자리의 급격한 변화에 대하여 Hanson은, 묵시의 담당자들이었던 예언자들이 처하게 된 혹독한 정치적 현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들은 이미 레위지파와의 성전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한 사독계열의 제사장들에 의해 성전 예배에서 배제되어,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의 회복의 프로그램에서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를 가지지 못한 채 묵시적 집단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175B.C.E. 헬레니즘의 과격파 메넬라오스가 비합법 대사제로 다스리던 때와 “불경한 대사제”(요나단?)이 다스리던 때를 제외한다면 예수시대와 유대전쟁까지 제사장 반열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어떤 형식으로든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의 다수당이었던 사두개파와 관련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예언자들은 현재는 악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그 질서는 심판 앞에 서 있고, 그 심판 너머 의로운 자들을 위한 새 세계가 준비되고 있다는 묵시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심판으로 분절된 두 시대(aeon) 가운데, 현재의 악의 세력은 다가 올 하나님의 필연적인 승리의 압박아래 놓여있다. 그 때는 멀지 않다.
이 세대에 있는 의로운 종이요 고난 받는 종(사 63; 65장; 53장)은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 신실한 자들이다. 구약성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죽은 자의 부활(단 12:2)에 대한 신앙은 이러한 의로운 자의 순교라는 맥락가운데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이 묵시를 받은 그룹을 구원받은 자들로 인식하게 한다.
이로써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적 기능이요 특징이었던 예언자와 왕의 긴장은 제사장적 종교 안에서 해소되어간다. 예언은 묵시로, 이스라엘의 삶은 토라에 의해 개인화된 경건을 추구하게 되고, 왕의 통치는 종교 공동체의 이상을 상징화하는 제사장적 신정통치로 대치된다. 이스라엘의 삶은 이제 이 토라와 성전의 종교적 상징의 조합 내에서 종말의 통치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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