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풍수는 인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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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지리’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 아득히 먼 옛날에는 바람과 물이 가장 중요한 주택의 입지 조건이었다. 태풍과 같이 강한 바람이 분다든가, 홍수나
한발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마음놓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기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깨끗하고 맛있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야 한다. 따라서 주거지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바람과 물의 여건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 이러한 지세를 관찰하는 작업이 곧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었고, 사람마다 지식과 능력에 따라 점차 전문성이
요구하게 되었다. 즉, 풍수를 잘 보는 작업으로 인하여 생존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풍수라는 말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요즘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의 유행처럼 그 옛날, 풍수지리사상(風水地理說思想)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풍수는 현대적인 의미로 웰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와는 달리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풍수’라는 용어가 시작됐다는 이론도 있다. 풍수지리의 핵심은
생기(生氣)의 취득에 있고, 생기를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은 바람과 물, 즉 장풍과 득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풍의 ‘풍(風)’자와 득수의
‘수(水)’자를 취하여 풍수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장풍득수 이론에는 풍수지리의 전체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장풍득수라는
말은 풍수지리가 이론적으로 상당히 발달된 시점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풍수(風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유래한 말로 감여(堪輿),
지리(地理), 지술(地術)이라고도 불린다. 감여는 땅과 인간과의 관계를 근본적.발생적 관계에서 관찰하고, 지리는 땅과 인간과의 관계를 학리적으로
설명하며, 지술은 흉지(凶地)를 피하고 복지(福地)를 구하는 술법에 중점을 둔 것이다. - 동방의 등불 한국(1994년) 지은이:원광대학교
총장.金三龍)
- 이러한 기존의 이론 이외에, 그동안 많은 풍수가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풍수는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이 발달된 오늘날에도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면 과학자는 단백질이나 지방과 같은 여러 가지 원소의 결합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의사는 바이러스와 같은 여러 가지 균의 집합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 그러나 이러한 대답이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 정확한 답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육체는 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 나라로 간다고 생각한다. 또 일부 불교같은 종교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풍수가들은 그동안 풍수지리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는 방법의 하나로 산소(山所)의 이장 과정을 많이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사람이 죽어 땅에 묻혔을 때 오랜 기간이 지나도 결코 흙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다.
- 만일 사람이 죽어 흙이 된다면 오래된 묘의 관 속에는 시신이 부패되어 형성된 흙이 있어야 할 텐데 흙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이 죽으면 흙 속으로 돌아가되 결코 흙이 되지 못하며, 바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런 측면에서 풍수가들의 말처럼 사람의 본질은 바람이라고 말하여야 옳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기나 생선 등도
썩으면 곰팡이가 되고 시간이 경과되면 모두 바람에 의해 흩어진다. 칼이나 낫과 같은 쇠도 녹이 슬면 공기 중에 산화되어 최후에는 모두 바람에
의해 흩어진다.
- 바람은 하늘로부터 발생한다. 따라서 하늘은 무한한 바람의 근원이다. 《주역》에서는 ‘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아갈 수
있으며,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하늘이란 곧 바람을 의미한다. 바람은 곧 사람의 목숨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은 전기 제품은 전기가 통할 때만 기계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 전기 제품의 생명력은 곧 전기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단 한 순간이라도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사람의 생명은 정지된다.
- 물은 공기와 함께 생명체의 중요한 기본 요소이다. 인체의 70퍼센트는 물로 구성되어 있고, 《주역》에서 물을 모든
물체의 제일로 꼽는 것도 물이 생명체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물의 성질을 파악하고 물의 흐름에 따라서 생활하는 방법을 정립해 왔다. 사람은 바람과 물로
생명체를 이루고 있으며, 바람과 물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고 응용했다. 그러므로 풍수라는 말은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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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국의 국토는 세계 제일의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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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많아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고 불려 왔다. 특히 백두산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의
백두대간은 중간에서 끊어지는 것 없이 전 국토를 하나로 연결하고, 그 중간 중간에 연결된 많은 산과 맥을 통해 전 국토에 생기를 전달하고 있다.
또 토질은 단단하고 습기가 알맞게 분포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탄력이 있어 흙에서 발산되는 빛과 소리도 밝고 명랑하다. 물 역시 맑고 깨끗하여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 한국의 국토는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이 시작하는 첫번째 지점에서 태평양을 향해 길게 뻗어 나와 마치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은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땅이며, 태평양 역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이다.
- 한국의 국토를 음양 이론으로 분석하면, 바다는 낮은 곳에 있어서 음(陰)이며 여성을 상징하고, 육지는 높은 곳에
있어서 양(陽)이며 남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대륙에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한국의 국토는 남성의 생식기와 같다. 생식기는 음과 양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신체의 가장 숭고한 부분이다. 그래서 신체의 각 부분은 생식기의 정상 기능을 위해 각종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공급하며, 다른 신체보다 가장 신비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음과 양이 서로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명당’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국토는
최고의 명당인 것이다.
- 우리 나라 서해안의 바닷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9미터의 높은 간만조 차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간만의 차이에
의해 개펄의 폭도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러, 그 길이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드물게 긴 개펄을 형성하고 있다.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 건너편의 땅으로 통로가 나타나는 현상’은 전라남도 홍도, 진도 앞바다를 비롯해 서해안의 다른 곳에서도 매년 나타난다.
- 개펄은 육지가 되기도 하며, 바다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결합하는, 이른바 음양이 충화하는
공간으로서 생기가 충만하다. 이러한 생기에 의해 서해안 개펄은 조개와 굴, 그리고 기러기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의 보금자리가 되고, 이곳에서
생긴 여러 종류의 해산물은 건강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해안에서 발생되는 생기는 바람을 타고 내륙 깊은 곳까지 기운을 전달하여 전 국토를
생기 있는 명당으로 만들어 준다.
- 한국의 국토를 대륙과 바다가 결합하는 생식기에 견줄 때,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현상은 음과 양이 결합하는
과정으로 분석된다. 이것은 곧 한국의 국토가 강력한 생명력이 있는 세계적인 명당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 또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산삼과 인삼은 한국의 것을 최고로 꼽는다. 중국이나 미국에서도 인삼이 재배되기는 하지만, 그
약효에 있어서는 한국 제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4천 년 전, 중국의 진시황이 산삼을 구하기 위해 선남선녀를 한국으로 보냈다는 기록도 중국
지역에 효험있는 산삼이 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은행잎이 독일산 은행잎보다 20배 이상 약효가 있다는 것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며, 한국 남성의
소변에는 신비한 약품 성질이 들어 있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바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이 세계 제일의 명당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들이다.
- 과거 한국 국토에 대한 풍수지리에서 ‘한국의 지리는 백 리 가는 평야가 없고 천 리 가는 물이 없어 큰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대국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라고 말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국민들이 자긍심을 갖는 것을 방해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에 비해 열등감을 갖도록 하고, 민족의 분열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말들이다. 한국의 국토에 삼천리를 뻗어 내려간 훌륭한
대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 풍수지리에서 땅의 기운을 분석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산과 물이다. 산의 기운과 물의 기운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면 무한한 에너지가 발생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지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실만을 강조하여 국토에 대한 의미를 비하시키는 것은, 한국 국토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잠재력을 두려워한
외국인들의 간교한 술책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무한히 넓은 들판과 나일 강 같은 긴 강이 많지만, 대국이나 큰 인물은 나지 않는다. 이것은
들판의 넓이나 강의 길이가 결코 국력과 관계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 지리적으로 우리 나라와 비슷한 나라는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는 유럽 대륙의 일부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알프스 산을
이루고 있고, 그 기운이 지중해로 내려와 3면은 바다로, 1면은 육지와 연결됨으로써 바다와 육지가 음과 양으로 결합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리적 조건이 우리 나라와 유사한 것이다. 기후에 있어서도 이탈리아는 우리 나라와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술, 특히 노래를 즐기고
사랑하는 면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 이탈리아는 주변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결코 큰 나라가 아니다. 더욱이 이탈리아에는 긴 강이 없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보면 이탈리아는 천 년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을 통치한 대로마 제국이 있었다. 국력은 결코 들판의 면적이나 강의 길이와 관계 없음을
알 수 있다. 즉 음양의 조화에서 발생하는 힘에 의해 국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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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은 풍수지리의
발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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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지리는 수천 년간 전해 내려온 한국의 전통 사상으로, 주로 집터나 묘터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적용되어 왔다. 현재
풍수지리의 이론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대만.홍콩.일본.싱가포르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실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풍수지리에 의한 건축과 인테리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 풍수지리는 이땅의 국토에서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옛 선인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그 이론은 후에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그런데 풍수지리가 중국에서 발생하여 우리 나라에 전달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고유 문화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말살된 채 중국으로부터 역수입된 책만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의 발생이 한국이라는 점은 몇 가지로
증명할 수 있다.
- 첫째, 한국 국토의 지리적 조건이다. 한국의 국토는 산이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 전국으로 분포된 크고 작은
산들이 대부분의 촌락과 도읍지의 자연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선인들에게 있어서 산은 농업이나 목축, 그리고 사냥 등을 통한 음식물이나 생활
필수품의 중요한 공급원이 되어 왔다. 사람이 죽으면 산에다 매장하는 것도 산 사람들과 산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산의 성질과 이치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러한 체험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축적되면서 산에 대한 이론으로 정립되었다.
- 풍수지리는 산의 변화가 다양하며, 특히 사람들의 취락지로 적당한 지세를 이루는 산이 많은 지역에서만 발생 가능하다.
때문에 중국의 중원지대와 같이 산이 없고 평탄한 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산의 성질이나 개념을 전혀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산에
대한 체험이 있다 하더라도 극히 미약한 수준을 넘기 어렵다.
- 따라서 산을 생활의 터전으로 하는 한반도의 지리적인 조건에서 풍수지리가 발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국의 산세는
동양의 어느 나라보다 아름다워서, 중국의 어떤 학자는 ‘죽어서라도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구경하기 바란다(願生 高麗國 一見 金剛山)’고
말할 정도였다.
- 한국의 지세는 전체적으로 명당일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산들이 각각의 지역마다 혈과 명당을 이루고 있다. 혈과
명당의 효능은 일찍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혈과 명당에 대한 체험은 풍수지리의 개념을 더욱 확실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둘째, 산신숭배 사상이 풍수지리를 발생하게 했다는 점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 숭배에 대한 신앙심이 유독 깊었으며,
그러한 신앙의 대상 중 산신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산신은 고대인들에게는 수호신이었으며, 한 지역에 있는 큰 산을
진산(鎭山)이라고 하여 숭배하는 것은 한국의 전통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산신을 모시는 일이 큰 행사였고, 흉년이나 가뭄이 들면 왕이
직접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 고구려는 개국 초기 국내성 이전에 오녀산성(五女山城)을 도읍지로 정했는데, 오녀봉이 있는 높은 산 정상을 도읍지로
함으로써 산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신숭배 사상은 산의 특별한 능력을 인정하며, 그 특별한 힘에 일상 생활의 안전과
발전을 기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산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경사진 땅도 산의 일부분으로 해석하게 한다. 산의 능선을 산의 기운이 평지로
연결되는 맥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개념은 바로 풍수지리의 용(龍)이 지기(地氣)의 통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의 이론은 산신숭배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발생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산신을 숭배하던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풍수지리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금낭경》이나 《인자수지》와 같이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풍수지리 책자에서 산을 단순히 기운의 발원처로만 취급하여 산신 개념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 셋째, 풍수지리 이론은 한민족 상고사의 실체중에 하나인 홍산문화(紅山文化) 의
기록유산,《주역》과 결합하여 더욱 완벽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이 없었다면 풍수지리 이론은 성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 풍수지리 이론은 산의 기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출발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역》의 기(氣) 이론이 적용된다.
- 易은 옛부터 여러가지 명칭으로 기록이 되어 왔는데 환역(桓易),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藏易), 주역(周易)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환역(桓易)은 바로 복희(伏羲)이전 단군(檀君) 시대의 역(易)을 말하며, 연산역(連山易)은 복희(伏羲) 또는
신농(神農) 때부터 시작하여 하(夏)왕조에 이르기까지 쓰인 역(易)이고, 귀장역(歸藏易)은 황제 혹은 신농(神農)으로부터 시작하여 은(殷)왕조에
이르기까지 쓰인 역(易)을 말하며, 주역(周易)은 열산씨(列山氏) 때로부터 주(周)나라에 걸쳐서 오늘에 이르는 역(易)을 말한다.
- 현재 사용되고 있는 《주역(周易)》은 그 이전의 환역(桓易)과 연산역(連山易)의 극히 일부분이 포함되어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주역(周易)》이 발생되기 이전에는 ‘환역(桓易)’과 ‘연산역(連山易)’ 그리고 ‘귀장역(歸藏易)’이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쓰이지 않고 《주역(周易)》만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 《주역(周易)》 이전에 있었다는 연산역(連山易)의 최초 창시자는 복희씨(伏羲氏)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제왕(帝王) 또는 신(神)으로 알려져 있는데 복희(伏遠:伏犧)·복희(宓羲)·포희(押犧)·포희(怏犧) 등으로 쓰기도 한다. 몸은 뱀과
같고 머리는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해·달과 같은 큰 성덕을 베풀었다 하여 대호(大昊:끝이 없이 넓고 큰 하늘과 같다는 뜻), 또는
대공(大空)이라고도 한다. 복희 황제는 3황 5제(三皇五帝) 중 수위에 있어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친다.
- 그러나 복희씨는 본래 단군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살던 사람으로, 성장 후에 중국 지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부족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따라서 복희씨가 만들었다는 연산역(連山易)은 그가 어린 시절 단군 통치 지역에서 배운 단군 시대의 역 즉, 환역(桓易)을
중국에 가서 발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한족 가운데서도 가장 순수한 혈통의 한족이라고 자부하는 객가인(客家人)의
출신이며, 중국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손문(孫文, 쑨원, 1866.11.12 ~ 1925.3.12)조차 3황(三皇)을 가르켜 동이인(東夷人)
즉, 조선(朝鮮)의 사람이니 중국의 역사에서 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였겠는가? 그러므로 《주역(周易)》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서 나온 사상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고조선의 기원을 무진년(戊辰年)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였지만은 이미 고조선 시대 이전에도
10간12지(十干十二支)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 ‘오행사상(五行思想)’의 발생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은 나라의 우왕이 오행에 대한 기록을 신서(神書)로서 숭상한
데서부터 시작됐다는 이론과, 홍범구주(洪範九疇)로부터 시작됐다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 우왕의 신서란 하늘의 별자리를 오행의 성좌로 관측하여 홍수를 예견하고 이에 대비하는 방법이었다. 즉 중국 지역에
살던 어린 무명의 우씨가 자신의 부족이 매년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단군 나라에 가서 홍수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이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자 단군은 가상히 여겨 그의 아들 부루로 하여금 우씨와 같이 현장에 가서 도와 주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 부루는 현지에서 오행의 천문을 관찰한 후에 홍수가 일어나는 이유와 그 시기 등을 판별하는 방법 등을 우씨에게 알려
주었으며, 우씨는 부루에게 배운 대로 천문을 관측해 홍수가 발생할 시점을 예견하고 주민들을 안전한 지대로 대피시켰다. 그후 과연 우씨가 예견한
대로 홍수가 발생했으나, 미리 대피했으므로 인명 피해가 없었다. 이 일로 우씨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아 왕으로 추대되었고, 부루에게
배운 오행의 천문에 관한 기록을 왕이 된 후에도 ‘신서’라고 말하고 높이 받들었다. 이와 같이 오행의 시초가 되는 신서란 단군의 아들이 중국에
건너가서 가르쳐 준 천문 관찰의 방법이다.
- 오행사상의 다른 발생 근거가 되는 ‘홍범구주’는 군주가 국가를 다스리는 기준으로서, 9가지의 원칙을 오늘날의 헌법과
같은 내용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 홍범구주의 내용은 모두 오행의 이론에 의해 설명되고 있는데, 홍범구주는 바로 단군 나라에서 사용한 왕실의
국가 경영 이론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중국으로 넘어가 마치 중국의 이론인 것처럼 잘못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 이와 같이 단군 시대에는 이미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의 이론이 일반화되었으며, 지세에서 발생하는 산의 이론은 이러한
철학과 더불어 풍수지리 이론을 자연스럽게 정립할 수 있었다.
- 넷째, 단군이 처음 신시를 건설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하늘 나라에 사는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땅으로 내려갈 즈음, 하늘로부터 지세를 살펴보고 삼신산인 태백산(한밝산)이 가히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되어, 천부인 3개와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한밝산) 신단수(神壇樹.朴達木)
아래로 하강하여 신시를 이루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이미 풍수지리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한국에서의 풍수지리는 이미 단군이 신시를 건설하고 개국하기 시작할 때부터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 다섯째, 고인돌 역시 풍수지리와 무관하지 않다. 고인돌의 위치는 대부분 산의 정상으로부터 평지로 연결되는 능선 위에
있다. 이러한 위치는 용의 맥을 따라 자리잡은 것으로, 이미 풍수지리 이론에 입각해 고인돌을 세운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고인돌의 입지 기준은
후대로 전해져 삼국 시대의 왕릉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비교적 정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발견된다.
벽화 내용은 무덤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북두칠성과 청룡, 백호, 주작, 그리고 현무 등의 천문과 오행사상, 신선사상, 수렵 생활, 그리고 춤과
무용 등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벽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천문과 오행, 그리고 신선사상이 담겨져 있다는 것은 곧 그 시대에도 단군
시대의 사상이 그대로 전해져 있음을 뜻한다.
- 삼국 시대에 와서 풍수지리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기록은 신라 제4대 임금 석탈해에 대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라 제2대 임금인 남해왕 때 무명의 어린 석탈해가 경주 남산에 올라가 지세를 살펴보니 지금의 반월성 터가 명당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살던 호공을 꾀어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하고, 그곳에 거주한 후 명당의 기운을 받아 남해왕의 사위가 되고, 그후 임금으로 추대되어 23년간
재위했으며, 죽은 후에는 토함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 세간에는 풍수지리가 신라 말기 도선에 의해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풍수지리는 이미 단군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삼국 시대에는 민간인들까지 풍수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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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이 어찌
반도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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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유구한 역사와 함께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던 배달겨레는 뛰어난 재주와 지혜를 시기하던 이웃나라들에 의해
교묘히 폄하되어 왔다. 지역의 특성상 잦은 전쟁으로 역사기록들이 유실되고 찬탈되면서 중국이나 일본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다보니 춘추필법이나 왜곡과
날조로 쓰여진 기록에 의해 잘못 의식된 열등감이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말로
민족의 분열과 사상.이념.종교의 반목을 만들어 내는 허무맹랑한 얘기들은 오랫동안 형성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의 간악한 말살 정책에
의해 생겨난 말들이다.
- 그것은 더욱이 35년의 강점기동안 일제가 만들어낸 일본식 한자를 사용하여 왔기에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으로 해방은 되었지만 피부에 남은 흉터처럼 남아 지금도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현대에 들어와서 과거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대한제국에 대한 강점기의 통치를 정당화하면서
한국의 근대화를 이룩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터무니 없게 평가하고 '한일합방은 조선이 원해서 한 것이다'라는 망언을 서슴치 않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가?
- 일제의 강점기중에 자행한 만행이 극에 달하여 인체실험과 생매장, 작두처형, 부녀자 집단사살, 강제노역, 강제수탈,
강제징집, 부녀자 강간, 일본군 위안부 공출, 학살, 화형 등등 차마 인간이 할 수 없는 생생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아직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망언을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이랴!
- 이러한 망언속에 어이없는 일이 한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힘있는 친일세력들의 농간에 단죄되지 않고 득세를
하여 독립유공자보다 호의호식하며 살아 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부족하여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모대학 명예교수라는 자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는 축복"이었다는 친일 망언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 거기에 국민가수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던 모가수는 생각없이 즉흥적느낌으로 친일적인 발언을 하여 물의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같은 일은 과거에 정치인, 기업인, 예술인, 학자들중에 일본에 동조한 세력들이 단죄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와 지금과 같은 모습들이
한국사회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모습은 일제시기에 식민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던 반도사관의 실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조선 반도는 지리적으로 대륙세력에도, 해양세력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외세에 괴롭힘을 당하는 수동성과 열등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 이렇게 일제에 의해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역사학도와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그동안 고질적으로 만들어 놓은
실증주의에 입각한 지리적 결정론에 의거해 반도의 열등성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하려는 민족 반역적인 비굴성을 합리화하려
했던 것이다.
- 원래 일본식 한자로 탄생하게 된 '반도(半島)'라는 낱말은 섬나라의 일제가 '온섬'과 대칭되는 말로 '반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반도(半島)'는 글자 그대로 '반쪽의 섬'이라는 말이다. 영어로는 'peninsula'라 하여 육지가 바다에 길게 돌출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부분을 말한다. 이 'peninsula'가 한국이나 중국 그외 한자권역의 나라들이 일본식 한자인 '반도(半島)'라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한국은 일제가 만들어 낸 말로써 의식하지 못하고 반도국가가 되고
말았다.
- 만일 'peninsula'가 일본식 한자처럼 '반쪽의 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면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사용을 거부하였을 것이다. 중국은 거대한 대륙으로 되어 있어 이해관계가 없기에 이의를 갖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정작 해당국인 한국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는 국제적인 용어가 되어버려 한반도(韓半島)라는 말은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되고 있다.
- 이왕에 일본식 한자를 사용할 바에는 차라리 한근지(韓根地)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뿌리의
땅'이라는 의미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수가 있고 '대륙에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한국의 국토는 남성의 생식기와 같다'고 풍수지리에서 해석하는
의미와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위성에서 내려 보아도 한국의 땅은 '뿌리'와 같은 모습으로 보여 이같은 느낌을 갖는다. 이같이 대한민국의 땅은 결코
'뿌리의 땅'이지 '반쪽 섬'은 아닌 것이다. 차제에 이에 대한 의식있는 연구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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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국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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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산의 정기를 받아 신기가 많은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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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 지역에 따라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등 여러 인종이 살고 있다. 이렇게 인종이 다른 것은 각 지역마다
산천의 정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물은 사람이 살고 있는 산천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 한국의 산천은 전체적으로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세계에서 뛰어난 명당 중의 명당이다. 이러한 국토의 기운을 받고
살아온 한국 민족이 다른 토질에 사는 민족보다 신비한 기운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 한국은 전체적으로 산이 많아 대부분의 취락 지역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어느 곳이나 작은 산 또는
능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산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에는 신비한 기운이 있다. 그래서 세계의 여러 종교는 대부분 산이
그 발생지인 경우가 많다. 산은 하늘의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공간이며, 땅의 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이다. 우리 나라 고대 역사에도 신이
백두산에 내려와 최초로 국가를 건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한국인들은 집 가까이 산을 두고 살아온 덕택에 산의 기운을 많이 받는 동시에, 산이 갖고 있는 신(神)의 기운도
많이 받아 자연적으로 신기(神氣)를 많이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하느님을 숭상했다. 산신 숭배는 하느님 숭배사상과 동일하다.
- 근래에 한국에서 세계 각국의 종교가 크게 번성할 수 있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 신기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신의 기운을 강하게 갖고 있는 민족인 것이다.
- 또 동양과 서양을 음양으로 분석하면 동양은 해가 뜨는 양(陽)이 되며, 서양은 해가 지는 곳이기 때문에 음(陰)이
된다. 한국은 동양에서도 첫번째 나라이므로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지역이다. 사람의 육체를 음양으로 구분하면 머리는 양이 되고, 몸통은 음이
된다. 한국의 국토는 양의 기운이 강하므로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몸통보다 더 발달하게 된다.
- 그래서 옛부터 창조력이 뛰어나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주어왔다.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쓰고 있는 한자를
비롯하여 세계인들도 놀라워하는 가장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인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5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들라고 하면 우리는 세종대왕을 첫손가락에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한글을 창제하였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한자창제설 - 한자(漢字)는 동양 3국(한.중.일)중에 한국인의
언어와 가장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만든 글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우리 민족은 上海(상해), 杭州(항주),
蘇州(소주) 라고 하는데 지나인들은 샹하이 [Shanghai], 항저우 [Hangzhou], 쑤저우 [Suzhou] 라고 발음하여 一字二音인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있다. 물론 일본인들도 韓國(한국)이나 先生(선생)을 '강고꾸'나 '센세이'로 발음하는 것처럼 一字二音인 경우가 흔하다.
그러므로 한자는 우리 민족이 만든 글자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곳은 풍수에 대한 페이지이므로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위에 푸른색으로 밑줄이 그어진 '동이족의 한자창제설'을 눌러 참조하길 바란다)
- 이렇게 창작 능력이 뛰어난 머리는 많은 전통적인 놀이를 고안하여 발전시켜 왔다. 가난아이 때부터 배우는
'곤지곤지'라던가, '잼잼'을 비롯하여 고누, 실뜨기, 윷놀이, 암자치기, 숫자치기, 발자치기, 제기차기, 고을모듬놀이, 독장수놀이, 척전놀이,
대말타기, 땅재먹기, 비석치기, 돌차기, 연날리기, 널뛰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고싸움, 차전놀이, 다리밟기, 놋다리밟기, 화전놀이, 격구,
씨름, 그네, 소싸움, 거북놀이, 술래잡기, 강강술래, 길쌈놀이 등등 수많은 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 이러한 한국에서의 전통적인 학습 방법은 자연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기본적인 과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산에서 도를 깨우치는 과정이나 유교의 경전, 불교의 선에 대한 수양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식 학습 대상은 사람의
신령스런 마음이다. 마음의 공부가 완성되면 영적인 능력까지 갖추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 이에 반해 서구식 학습 방법은 실제적인 물질 현상에 대한 수많은 반복 작업을 통한 귀납법으로 진행되며, 학습의 대상
또한 물질을 위주로 한다.
- 한국식 학습 방법이 사람의 마음, 곧 영(靈)에 목적을 두었다는 것은 이미 한국 사람이 선천적으로 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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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질고 인정 많은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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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들은 유달리 인정이 많다. 이것 역시 한국의 자연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즉 산과 물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일 비바람이 드세게 몰아치는 황야에 산다고 생각해
보자. 사랑보다는 원망과 괴로움, 분노가 가슴속 깊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 한국 사람들이 상하 수직적인 질서를 갖고 있는 것도 산천과 무관하지 않다. 지세의 높고 낮은 차이에 의해 상하 수직
질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왕권은 절대 권력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그 권력은 혈통으로 구분하고 세습되어 왕족 이외의
사람에게는 권력을 이양할 수 없는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었다.
- 이러한 상하 질서는 외교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즉 예의를 지키다 보니 남을 괴롭히고 침략하는 행위를 하지 못했다.
5천 년 역사 속에서 주변 나라들을 전쟁으로 괴롭히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그래서 한국은 주변 여러 나라들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로
칭송을 받기도 했다.
- 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 한국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를 천 냥 이상의 고귀한 가치로
인정했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재물보다 사람을 더 중요시했음을 의미한다.
- 이와 같은 한국 사람들의 성품은 한국의 산에서 비롯됐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듯, 한국의 아름다운 산은 사람의 마음을 어질고 평화롭게 만든다. 마음이 어질고 평화로운 사람은 하늘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게
되며, 또한 이웃간에 어진 덕을 베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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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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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노래와 춤을 퍽이나 즐긴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삼국 시대에는 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면 백성들은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선녀들이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많이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무덤은 죽은 사람을 모시는 공간으로 매우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를 이루는 데 반해, 고구려
고분 벽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병신춤과 곱사춤으로 유명한 공옥진 여사는 6·25전쟁 당시 갓 결혼한 상태에서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북한군에 의해
총살형을 언도받았다. 아무 죄도 없이 죽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던 공 여사는 마지막으로 노래나 한 곡조 부르게 해 달라고 요청해, 인생을
하직하는 노래를 눈물을 흘려 가며 불렀다. 이것을 지켜본 북한군인들은 공씨를 죽이기가 아깝다고 판단, 총살을 면해 주었다고
한다.
- 이와 같이 한국 사람들은 기쁠 때는 물론 죽음에 임박해서도 노래를 불렀다. 한국 사람들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사랑은
오늘날 수많은 노래방이 성업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고, 조수미·신영옥·홍혜경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들이 많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음악은 인간의 가장 수준 높은 언어이다. 음악은 영혼의 울림과 같으며, 고도의 예술적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분야이다. 미개한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소리만 있을 뿐이다. 한국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음악을 즐겼다는 사실은 바로 한국 사람들이 영적으로
높은 수준의 민족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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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혈통을 중요시하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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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선 각 성씨마다 오래된 족보를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김해김씨는 시조 김수로왕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 년에 걸쳐 70대에 이르는 족보를 갖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오래된 족보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한국인들밖에 없을 것이다.
- 이처럼 각 성씨마다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같은 혈족간에 작용하는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집집마다 새로운 가족이 태어나 가족 수가 늘어나는 일을 큰 경사로 여겼다.
- 반면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없으면 집안의 대가 끊긴다고 하여 매우 불행한 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집안의 대가
끊기면 조상들에게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로 인해 죽어서도 조상을 대할 면목이 없는 것으로 알고 죄악시했다.
- 대물림을 중요시하고, 각 혈통의 족보를 중요시하는 것은 한국의 지리적 위치와도 관계가 있다. 즉 한국은 아시아와
태평양이 음과 양으로 처음 만나는 신비한 생식기의 위치에 있으며, 생식기의 기본적인 기능은 자손의 번창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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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인내심과 근면성이 강한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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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인내심이 강하고 근면한 점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마음이 착하고 부지런하여 한시도
쉬지 않는 소에 비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동 지역에 진출했던 근로자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 국가들이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는데,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인내심과 근면성이 강하다.
- 이러한 근거 또한 한국의 산과 맥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산과 맥은 백두대간에서 시작하여 전라남도 땅끝마을에
이르기까지 맥을 강하게 연결하며 내려가고 있다. 산의 맥이 끊기지 않고 국토의 상하를 관통한다는 사실은 바로 사람이 오래도록 참고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하느님을 굳게 믿어 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늘에서부터 이 땅 위로 태어났으며, 죽으면 다시
하늘 나라로 올라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땅 위에 살고 있는 순간도 하늘 생활의 일부로 생각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은 하늘이 자기에게
부여한 임무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한다.
- 그러므로 한국 사람의 천직 개념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피나는 정성으로 만든 값진 물건이라 해도 때로는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주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들이다. 인내심과 근면성이 강한 한국인 본래의 성품은 최근 들어 많이 변화되었지만, 근본인 국토가
변하지 않는 한 언젠가 다시 아름다운 옛 마음을 찾게 되리라고 본다.
- 웰빙(well-being)이란?
- 산업 고도화는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반면, 정신적 여유와 안정을 앗아간 면도 적지
않다. 현대 산업사회는 구조적으로 사람들에게 물질적 부(富)를 강요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를 축적하는 데
소비한다. 따라서 물질적 부에 비해 정신 건강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고, 심한 경우에는 정신적 공황으로 발전하기까지
한다.
- 웰빙은 이러한 현대 산업사회의 병폐를 인식하고,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삶의 문화 또는 그러한 양식을 말한다. 1980년대 중반 유럽에서 시작된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1990년대 초 느리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슬로비족(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보보스(bobos) 등도 웰빙의 한
형태이다.
- 그러나 웰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로 육체적·정신적 삶의 유기적 조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나 삶의 문화가 포괄적 의미로서 웰빙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2000년 이후이다. 웰빙은 '복지·행복·안녕'을 뜻하는 말이다.
-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질병이 없는 건강한 상태뿐 아니라,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느끼는 소속감이나 성취감의 정도, 여가생활이나 가족간의 유대,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들을 웰빙의 척도로 삼는다.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가 웰빙이다.
-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웰빙족'으로 부른다. ①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산물을 즐기고 ②
단전호흡·요가·암벽등반 등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하며 ③ 외식보다는 가정에서 만든 슬로푸드를 즐겨 먹고 ④ 여행·등산·독서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한국에서도 2003년 이후 웰빙(문화)이 확산되어 웰빙족을 겨냥한 의류·건강·여행 등 각종
상품에 이어 잡지까지 등장하고, 인터넷에도 많은 웰빙 관련 사이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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