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도 종류가 있다. 겉만 아름다운 집, 안만 아름다운 집, 둘다 아름답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집. 광주에 자리한 서 씨의 전원주택은 겉과 안, 게다가 주변의 모든 풍광까지 거의 완벽하게 그려진 이상적인 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전원주택의 모습, 그 다양한 중지를 모은다면 아마 이 집과 가장 가까운 그림이 나올 것이다.
집이라는 것은 온갖 생활조건, 즉 집과 집 내부만이 아니라 집 안에서 내다본 바깥의 전망이 중요하다. 집이 세워져 있는 위치와 그 주위의 경치가 어떠냐 하는 것이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도심의 손바닥만한 땅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이들이 산과 개울과 호수를 자기네 정원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양자를 비교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집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눈에 담기는 것들. 산마루에 걸려 있는 흰구름이며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경치가 자기 것이 되는 집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1. 하늘을 정원 삼아 데크를 걸친 집
서울과는 멀지 않지만, 아직 자연의 한적함이 그대로 묻어있는 경기도 광주 산자락에 지형을 그대로 살린 채 지어진 새집을 찾아갔다. 가족 모두 도시생활을 벗어나고 싶던 염원으로,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3개월쯤 된 상태다.
집구경의 다른 이야기는 다 제쳐두고, 거실로 올라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새로운 광경부터 시작해야겠다. 그 곳은 숨겨진 숲이며, 숨겨진 산이고, 숨겨진 그들만의 정원이었다. 깎아내릴 듯 가파른 땅, 그 마지막 남은 자리에 지어진 집은 하루종일 거실에서 광활한 산등성이의 경치를 품는다.
게다가 거실을 통해야만 닿을 수 있는 정원은 마치 하늘을 앞마당으로 둔 듯, 마당의 끝까지 데크가 닿아있다. 맨발로 데크를 걸어 끝까지 가니, 마치 공중에 부양한 채 떠 있는 기분이다. 마당 끝 데크 난간에 조용히 기대면, 마주한 산의 꼭대기와 저절로 눈높이가 맞춰진다.
건축주가 집을 계획하고, 설계 시공에 들어가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이 정원이라고 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경사였지만, 야외공간을 많이 갖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데크공사에 예상보다 3배의 자금을 들이게 되었다. 집이 아닌 마당을 꾸미는 데는 대체로 돈에 인색한 편인데, 전원주택에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2. 사면이 모두 아름다운 외관
이제 이 집의 두 번째 포인트를 이야기하자. 우리나라에서 지어지는 집의 대부분은 한쪽 면만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가장 많이 띄는 부분. 주택의 정면이든 배면이든 공들여 장식하는 곳은 한 쪽 외관 뿐이다. 그러나 이 집은 사방이 고루 눈에 찬다. 울타리대문으로 이어져 현관 역할을 하는 건물 후면이 처음엔 집의 정면인 줄 알았을 정도니 말이다.
주차장 공간은 실내와 연결되어 있어 동선이 편리하며, 주택의 외관에 꽉 찬 느낌을 준다. 높은 차고의 다락은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걸까, 조그맣게 난 차고의 높은 반원창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목구조에 시멘트사이딩을 기본으로 하고 부분부분 인조석을 붙여 변화감을 준 점도 외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남편은 벽돌조적의 집을 원했고, 아내는 하얀 사이딩의 목조주택을 원했기 때문에, 그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 희고 순한 분홍빛 주택은 나무울타리를 넘나드는 붉게 핀 장미꽃으로 아름다움이 그 절정을 맞고 있었다.
#3. 1년 이상을 투자한 특별한 내부설계
세 번째 눈에 띄는 점은 내부설계다. 물론 전원주택의 특성상, 집마다 평면도가 모두 다르겠지만 이 집은 유독 처음 접하는 공간구성이 많다. 일단 신발을 벗고 올라서는 내부현관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실과 맞닿아 있는데, 천장고가 무척이나 높게 탁 트여 있다. 집이 아니라 대형홀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엔틱한 콘솔 위에는 아로마 향초가 타들어가고 낮은 천장의 코너를 돌고나면 또다시 크게 뚫린 거실과 만난다. 이처럼 천장의 높낮이에 변화를 주어 공간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복도의 끝과 끝에는 각각 부엌과 방을 두었는데, 한가운데 거실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할 만큼 넓다. 부엌과 식당을 거실과 구분하는 역할은 짧은 간이벽과 프레임이 대신하고 있다.
1층방은 노모의 공간이다. 전용드레스룸과 화장실이 딸려 있고, 방에서 정원으로 바로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낮은 가구는 안정적이고, 패브릭은 전통한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자색과 쑥색으로 통일했다. 은은한 동양여인네의 규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인테리어다.
주방은 부엌과 식당으로 명확히 나누어져 있다. 싱크대 벽면의 타일이 워낙 특이해 물어보니, 건축주가 직접 고르고 장식한 작품이란다. 건축주 서 씨는 “1년을 넘게 정보를 수집하며, 수많은 책과 잡지들을 교과서 삼았다”며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관련책 수십권을 사다 스크랩하고, 머릿 속으로 수십번의 설계도를 그렸다 지웠다”고 말했다.
이런 그녀의 수고는 부엌에서 극명히 찾아볼 수 있었다. 동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ㄷ자형 싱크대를 설치하고, 싱크대 한쪽은 바형으로 만들어 간이식탁 대용으로 쓴다. 부엌 공간 바로 뒤에는 간이주방이 있는데, 이도 제법 넓어서 웬만한 남의 집 부엌 크기다.
그 안에는 미로처럼 문 하나가 숨어 있는데, 열어보니 샛푸른 상추와 토마토나무가 심어진 작은 텃밭이 나온다. 데크 중간을 파내 흙을 채워넣고 밭으로 변신시킨 것인데, 주방과 제일 가깝고 볕과 그늘이 적당한 곳에 만들어진 깜찍한 아이디어다.
#4. 목조와 콘크리트의 과감한 접목
식당 부분의 시공 차별화도 주목할 만하다. 건축주는 2층 안방에서 넓은 테라스를 사용하길 원했기 때문에, 그 아래 식당 상부 전체가 테라스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목조주택의 특성상 2층의 방수가 취약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층 식당 부분을 콘크리트 기둥과 슬라브로 시공해 해결하였다. 목조주택이지만 꼭 필요한 부분엔 과감하게 콘크리트 구조를 접목시킨 것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장마철에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다.
식당 내부 네 개의 기둥 모서리에는 건물 외관을 치장한 파벽돌을 그대로 옮겨 사용했다. 이는 마치 통기둥의 견고함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장치인 듯 보였다. 자유로운 패턴의 벽돌과 바람에 살랑 흔들리는 커튼 자락이 한가한 식사의 한때를 상상하게 만든다.
#5. 한 채의 집안에 열개의 표정
부부침실과 아이방은 천장의 경사를 드러내고 강렬한 색대비로 꾸며져, 펜션 객실마냥 자극적이고 다채롭다. 방의 크기는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공간들(예를 들어 복도에 갑자기 나타나는 음악실, 방 입구의 진열대, 벽 하단부의 청소도구보관함 등)을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과감하게 응용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응용력은 건축주 서 씨의 숨은 노력이었다. 거의 직접 설계하디시피 한 집에 들여놓은 가구들도 예사롭지 않다.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이 독특해 물어보니, 그녀는 중고가구를 리폼하는 데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가구에 시트지를 붙이거나 페인트를 칠하고, 간혹 문양도 그려 넣는다. 아기자기한 화장대와 콘솔 등은 그녀의 작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1층과 2층의 인테리어 분위기는 무척이나 다르다. 1층은 노모의 방과 부엌, 식당, 거실이 정적이고 안정감 있게 조성된 반면, 2층은 젊은 부부와 어린 아들의 생동감을 그대로 구현해 주고 있다. 이는 패브릭 하나, 소품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한참을 고민한 결과들이다. 서 씨는 공간마다 다른 벽지와 가구들, 색다른 소재들을 적용해 집 한 채에 열가지가 넘는 표정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