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우리땅...
(해운대 달맞이'고개 서 본 대마도)
"대마도는 우리땅" 신인가수 아랑'의 노래 나와 ...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하는 노래가
넷티즌들 사이에 점차 퍼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5월 18일에 신인가수의 등용문인 http://www.millim.com에
신인가수 아랑'의 "대마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가 등록되어
네티즌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대마도는 우리땅의 작사자 겸 제작자인 최동국 씨는
부산에서 53km, 일본의 규슈 혼도에서는 147km나 떨어져 있는 대마도를
독도 수준의 외교 분쟁 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대마도는 우리땅을 만들었다며
독도가 외교분쟁지역으로 되기 때문에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어갈 위험이 있음을 걱정하면서
그렇다고 방어적'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현재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방어적으로 일관하고 있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공세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1949년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에게 대마도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며
이후에도 거듭 대마도 반환 요구를 하였으나
일본측의 항의와 당시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거부되었다고 밝혔다.
일본이 독도문제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역사적 근거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은
훨씬 시기적 연원도 깊고 자료도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며,
고려시대 중엽부터 대마도주에게 고려 관직을 주는 등
정치, 경제적으로 대마도는 고려에 속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수직왜인(조선 정부로부터 관직을 제수 받은 왜인) 제도 및
고려 시대의 진봉선 무역과 유사한 세견선 무역 등의 체제하에서
다시 대마도는 조선에 종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는 임진왜란 당시에도 풍신수길조차도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간주하여 대마도를 침략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조선의 지리에 밝은 대마도인으로 길잡이로 삼았으며
왜란 이후 조선의 대마도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메이지유신 이후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한국의 지배권이 완전 상실되었으며
대마도는 쓰시마란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고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대마도는 완전히 일본 정부에 편입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주장보다 시기적 연원도 깊고 자료도 풍부하기에
대마도 영유권주장은 그 자체로서 설득력도 있고
독도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한국의 쓰시마 (韓國の つしま)"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도 만들었고
이 노래를 일본에 많이 전파시켜주기를
네티즌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