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변화란것에 민감해 본적을이 있는가? 아주 작은 변화에도 자신의 것에 - 아닌말따나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변화에 대해- 한 번쯤들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리라본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자연계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진보를 위한 변화를 한다던지, 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기마련이다. 변화란 자연적인 이치에서 볼때, 살아 남기 위한 눈물나는 투쟁이며, 동족 보존을 위한 자신의 투사적 희생을 요구한다.
인류의 위해서 애써본적이 있는가? 부모와 형제를 위한 가정의 대한 어떠한 희생을 해본적들 있는가? 친구와 이웃을 위해 이로운 행동은 못할 망정, 주위의 안녕을 위해 기도해본적 있는가?
인간은 자연의 생태계적 의미에서 풀이되기보단, 이성을 바탕으로 자아를 실현 시킬수 잇어야한다. 자신의 안녕고 욕망을 위해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워 내것을 더 채우려하거나, 내세울게 없어서 한탄하는 자는 내것만 채우기에 바쁜인생을 살아가는자나 매한가지로 볼수있다. 그들은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비웃을뿐 아니라, 그렇게 사는것에 애초로운 조소를 만인의 앞에서 비난하기 바쁜자들이다.
변화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자들에겐 희생을 바란다. 기회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한 자들에겐, 작은 기회도 놓치지않고 들고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변화가 없는 기회란 없다. 기회란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오는 달콤한 열매이다. 남을위해 희생하는자에겐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자신의 할일에 철저하고 그 일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기회란 변화에 따라 맺어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회만 노리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의 손에 넘어갈 뿐이다.
개인의 욕망을 이루려는 자들은 그래서 역사의 순국자들을 앞다퉈 찬가하는것이다. 희생을 강요하는것은 아니지만 희생없는 댓가를 바라지 말라는 사상을 뇌리에 깊이 새겨두기 위해 강행하는 법이다. 동물적 입장에선 어떠하게 반응되는지 나로썬 알 수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스스로 강하지 못한 자신의 새끼는 아무렇게나 방치한다. 자연은 너그럽지 않거니와 인정도 없다. 기회는 그런 변화를 격어야만 생겨난다.
그러나 인간들은 저마다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애써 감추며, 타인에게 자신의 썩은 부분은 가면에 감추고 자신의 인정많음과 자신의 일을 공적으로 높이고 살아가는데 평생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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