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소년 이야기
두 아이가 굴뚝을 청소하기 위해 굴뚝에 들어갔다. 얼마 후에 두 아이는 굴뚝을 깨끗이 청소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한 아이의 얼굴에는 시커먼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는데, 다른 아이의 얼굴에는 그을음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이이 중에서 누가 먼저 얼굴을 씻을까?
이 물음에 대해 ‘얼굴에 그을음이 묻은 아이가 먼저 세수를 한다’고 답했다면, 그것은 매우 상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얼굴이 깨끗한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씻지 않는 반면,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된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여 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하자. 굴뚝 청소를 마치고 나온 두 아이가 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얼굴은 그을음으로 까맣게 더러워져 있는데, 다른 아이의 얼굴은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얼굴이었다. 두 아이 중 누가 세수를 할까?
이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에 그을음이 묻지 않은 아이가 먼저 세수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히려 똑같은 질문을 무엇 때문에 두 번씩 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가 답이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어떻게 한 아이는 얼굴이 깨끗하고 한 아이는 더러울 수 있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유태인들의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굴뚝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요, 그을음은 세상 사람들의 허물이며, 아이들은 우리 모두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허물은 볼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려는 사람들의 속성을 잘 꼬집는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부족함과 허물을 지니고 있다.
『주홍글씨』나 『죄와 벌』과 같은 문학작품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허물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에 새까맣게 묻어 있는 그을음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 얼굴에 묻은 검정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웃어댄다.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며 심지어는 인격을 모독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기회가 있으면 부처님의 얼굴을 한번 자세히 바라 보라. 반쯤은 열린 눈으로, 반쯤은 감은 눈으로, 얼굴에는 엷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인자하기 그지없는 풍모를 보여준다. 부처님은 반쯤 열린 눈으로는 세상과 자연을 관조하고, 반쯤 감은 눈으로는 자아와 인간을 성찰하며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려 한다.
우리는 상대방 얼굴에 묻어 있는 티끌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끼어 있는 시커먼 때를 먼저 씻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더욱 맑고 깨끗해진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상대방을 바라 보려고 해야 한다. 보다 관대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전보다 한결 아름답고 빛나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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