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타인이 되어보다. : Become intimate strangers.
제목 : 마녀 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부제 : 우편 배달부 키키/마녀의 특급배달
출시년도 : 1989년
상영시간 : 102min 46s
제작기간 : 1988년4월1일부터 1989년7월17일까지
원작 : 카도노 에이코
각본,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 타카기 모리히사/스즈키 토시오/미아자키 하야오
음악 : 히사이시 조
낯선 자. 그 단어가 뜻하는 바가 아니라 우리가 피부로 받아들이는 단어의 어감상의 느낌을 알고 싶다. 그건 정말 낯선 자일까? 아니면 문화적 교류 내에서 내가 속한 소속이나 집단이 아닌 타에 속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인가? 예를 들어, 자신이 어느 나라에 갔다고 치자. 그리고 그 곳에서 얼마정도의 체류를 해야 한다. 그때 내 자신이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또 부인해도 어느 순간 자신이 ‘타인’ 이라고 느껴버렸을 때 그 감정을 감당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외로운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을 뜻하는 타인, 차라리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게 빠를 것이다. 다른 존재로 느끼는 자신을 다른 문화에 적응하며 결속되기를 원할 때 수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 자아와의 싸움이기에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일종의 ‘성장통’이기도 하다. 여기, 13살짜리 마녀의 ‘성장통’에 대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그저 발랄하고 가벼운 수채화의 느낌을 실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 그 마녀는 눈빛은 청소년기의 나를 닮아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쓰럽다. 같은 분류의 인간이라도 타인이 되는 것에는 크나큰 통과 의례로 분류하는 이 시대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잔인하게도 인간세계에 이 마녀 ‘키키’를 내려보낸다. 그리고 숨죽여 그 소녀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보자고 한다.
검은 옷이 차라리 코스모스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키키’는 영락없는 13세 소녀이다. 단지 그녀가 다른 점이 있다면 ‘마녀’라는 존재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마녀’의 개념에서 이 소녀를 빼낸다. 그저 주문을 외우고 나쁜 짓을 해대는 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순수한 ‘마녀의 피를’ 타고 내려오기만 했을 뿐 인간과는 다름없는 소녀 ‘키키’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오늘도 내일도 맑음이라는 기사가 흐르는 한 소녀를 비춘다. 마녀라는 것을 알 수 없는 이 소녀, 진정한 13세가 되는 해 떠나야 한다는 마녀들의 계보에 맞춰 ‘키키’도 떠난다. 요리쿵 저리쿵 부딪힐 것 같으면서도 잘만 나는 ‘키키’를 보면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모습이 따로 없다. 그 후 정착하게 되는 유럽 어느 나라처럼 보이는 곳에서 ‘키키’는 빗자루 비행을 즐기며 날아다니다가 경찰관에게 혼나기 까지 한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했던 것이 아니다. 이 순간부터 그녀는 ‘마녀’라는 이름의 오명으로 세상 사람들의 눈에서 ‘다르다’라는 멸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낯선 자’가 된다. 물론, 이렇게 서술한 말처럼 비판적이거나 건조하게 애니메이션에서는 나타내지 않는다. ‘미야자키’ 특유의 밝고 투명한 수채화들이 그것들 까지 융화시키기 때문인지, 아니면 ‘키키’에 대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부분을 가급적이면 작은 상처로 덮어두려는 그의 노력은 확실하다. ‘키키’는 이곳에서 배달직을 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고운 시선으로 그녀를 보지 않는다. ‘하늘을 난다’라는 자신과는 다른 이유를 핑계로 그녀를 멸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이 소녀의 성장통이 발견된다. 그동안 자신의 세계에서 느끼지 못했던 다른 존재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키키’특유의 성향이 낙관적인 쪽이라 모든 것을 친밀함으로 타협해 보려 노력을 한다. 모든 이들에게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자신을 소개하고 그들의 심부름을 자진하여 도와준다. 그렇게 그녀는 그들과 협력을 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는다.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키키’는 지쳐만 간다. 어느 누구라도 TAKE만 해줄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도중에 ‘키키’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톰보’나 빵집 주인 ‘오소노’, ‘우르슬라’를 만남으로써 ‘타인’에서 성숙되어져만 간다. 이들을 보았을 때,《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살짝쿵 부주제로 암시되는 것은 아마도 자아형성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주변사람들에 의한 영향도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키키’ 역시 무리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친밀한 타인’으로 남으려 하는 것 같고.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약간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키키’가 마성을 잃어버리는 이유를 이미지화 해주는데, 이는 정말 13살의 통과의례를 밟는 절차와 같아보였다. 우선, 그녀가 마성을 잃어버릴 때는 어느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손녀에게 파이를 전해주게 되는데, 죽을 고비를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전해준 ‘키키’와는 달리 그 손녀는 아주 귀찮아하는 표정과 행동이 역력했다. 그것을 본 ‘키키’는 처음으로 사람에 대해 ‘싫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 이후 비를 맞고 돌아온 ‘키키’는 어깨를 쭉 늘어뜨린 채 감기 몸살에 걸리게 된다. 어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언제나 낙천적인 마음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상이 어느 순간 ‘밉다’라고 느껴질 때, 회의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키키’는 처음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 것으로 성장통을 겪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보이는 ‘비행선의 존재’ 역시 그녀가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하늘을 날다’라는 이 제 3국에서의 트라우마는 ‘마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꿈꾸고 해냄으로서 대단한 호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늘을 날다’라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마성을 모두 잃게 된다. 이런 저런 작은 에피소드들이 맞물려가면서 ‘키키’는 진정 13살의 마녀보다 소녀에 가깝게 되고 정서적 방황을 겪게 된다. 그녀를 보는 우리 관객들 역시도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하늘을 멋지게 비행하던 그녀는 빗자루마저 뿌러지게 되고 이제는 ‘마녀’도 ‘소녀’도 아닌 제 3자가 된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키키’를 보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누구나 어른이 되기 전 겪었던 경험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키키’는 안쓰러워 보이고 너도 나도 ‘키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싶어 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아정체에 대해 갈등을 하는 사춘기 소녀 ‘키키’를 그려낸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쩌면 그리도 소녀를 잘 묘사했는지 입을 다물 수 없다. 그것도 흰색 머리가 반을 뒤덮은 할아버지로서... 아주 디테일한 것을 기점으로 서정적인 표현, 감정묘사를 해낸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가 왜 거장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 알 수 있게 만들 정도였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기술적인 측면을 보자면, ‘비행’과 ‘하늘’을 좋아하는 ‘미야자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본인이면서도 유럽을 그리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세심한 표현, 다채로운 채색은 관객들로 하여금 ‘키키’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 파란 하늘과 지상의 파라다이스처럼 보이는 지중해성 바다, 녹색으로 물들은 자연과 빨강, 흰색으로 이루어진 유럽풍 집은 그야말로 제 3국을 꿈꾸는 자에게 있어 유토피아였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얼마나 이 작품 하나를 위해 여러 각국을 돌아다니며 스케치를 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검정 드레스, 빨간 머리띠, 황색 빗자루는 어느 배경과 있어도 촌스럽지 않는 특수함이 묻어났고, 멋들어진 비행실력, 치마의 펄럭임등은 실사 영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만으로도 ‘비행 애니메이션’이 완성된다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는 하늘과 비행에 있어 주력을 다했는데, 진심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은 하늘에 있는 느낌을 주게 한다. ‘키키’가 불안하게 비행을 할 때면, 보는 나 자신도 몸이 기우뚱 해지는 것 같고, 저 아래 조그마하게 보이는 마을을 볼 때면, 나 역시 ‘키키’와 함께 떠 있는 듯한 환상까지 주었다. 그정도로 미야자키의 비행술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함이 확실했다. 또한, 앞서 보았던 《이웃집 토토로》나《천공의 성 라퓨타》보다도 더 맑고 깨끗해 보이는 하늘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늙어버린 할아버지의 머리엔, 가슴에는 이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상만이 남아있나 보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동경심은 ‘키키’가 마음껏 나는 하늘처럼 높아져만 간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도 ‘히사이시 조’의 ost의 파워는 대단했는데, 누구나 이유 불문하고 뽑는 명장면을 나도 다시 되 새김질 해보고 싶다. 마지막 비행선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톰보’를 구할 때 ‘키키’는 마성이 완벽히 찾아오지 않는 상태에서 대걸레를 타고 그를 구하게 된다. 이 부문에서 흐르는 음악은 그녀의 위태위태한 상황과 주변사람들의 관심어린 시선들과 맞물려 아기자기 해 보이는 긴장감을 선보인다. 그리고 바로 주변음이 묵음이 되면서 손을 붙잡는 그들, 그 이후 다시 점점 커지는 주변음. 마치 음소거를 눌렀다가 떼는 느낌의 장면이며 절정에서 결말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뽑힌다. 나 역시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시각적이 아니라 청각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 더 크기에 놀라운 연출력에 경의를 표한다. 자연스럽고 밝은 분위기의 《마녀 배달부 키키》ost는 작품성 완성도에 배가를 시켜, 중요한 부분으로 현재까지도 인정 받고 있다. 그래서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곁에는 콤비로 ‘히사이시 조’가 있는 듯하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작업 파트너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 생각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 대한 아쉬웠던 나의 의견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미야자키’ 법칙이 보였다는 건데, 이에 부정적인 측면은 없으나 그리 긍정적이지도 못하다. 그것은 그가 꾸준히 세워놓은 법칙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이 가끔 무서워 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침투하는 그이 사고방식이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일본인이면서 사회주의를 꿈꾸는 ‘미야자키’의 속성은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가장 극으로 치닫는다. 마치 ‘노동’이라는 매개체를 하지 않게 되면 사회의 어떤 것 혹은 인생의 과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13살의 아이에게도 ‘노동’이라는 짐을 옮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관조적 시선을 원하는데, 사회주의적이지 못한 나로서는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미야자키 자신이 가진 오류 중 하나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와 ‘노동해야 한다’이다. 전에 《이웃집 토토로》를 완성 한 후, 자기 자신은 아이들이 방안에 틀어박혀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뛰어놀아야 함을 원한다고 하였던 적이 있다. 그는 아이는 가장 아이답게 자연으로 돌아간 모습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애니메이션 특히,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노동’에 힘겨워 하는 소녀를 그려내어 보는 이도 어깨가 축 늘어지게 만드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치관은 참으로 특이하다. 그런데도 대단하다. 수용하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것들을 약화시킴으로 우리는 거부 반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쯤에서 그의 마력은 어쩌면 ‘키키’보다도 더 셀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하여도 미워 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인 《마녀 배달부 키키》는 어린 감수성을 지닌 할아버지의 하늘을 날 듯한 풍조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 숨겨진 소녀의 성장일기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자연친화/문명비판/이상향이 아닌, 인간의 통과의례 ‘아픔과 성숙’을 이야기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른 작품보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더욱 인간미가 보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녀도, 인간도, ‘미야자키 하야오’도 벗어날 수 없는 ‘친밀한 타인으로 지내기’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더욱 매력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고 본다.
(2005)
'세상테크 > 영화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 トトロ, 1988 (0) | 2008.09.04 |
---|---|
[스크랩] 마녀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1989 (0) | 2008.09.04 |
[스크랩] 붉은 돼지 紅の豚, 1992 (0) | 2008.09.04 |
[스크랩]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隱し, 2001 (0) | 2008.09.04 |
[스크랩] ‘미야자키 하야오’의 법칙 (0) | 200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