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 회고하다. : Look back upon.
제목 :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
출시년도 : 1988년
상영시간 : 86min 20s
제작기간 : 1987년4월1일부터 1988년4월1일까지
원작, 각본,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 토쿠마 야스요시
음악 : 히사이시 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은 앞으로 전진해 나갈 뿐이며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신념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이런 현대인들의 정신적 기본바탕으로 과학문명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발달하지 못한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더 편하게, 더 빨리, 더 유용한 것을 원하는 이 시대,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한번이라도 뒤를 돌아보았는가? 40대 후반이라는 나이로 80년대 말 고개를 돌려 뒤를 보려 노려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는 산업발달로 한창 도시 생활을 만끽하고 있어야 함을 뒤로 한 채, 일본 어디 쯤 해당 되는 농촌을 주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그렇게 시작되고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 고 있는 《이웃집 토토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마스코트까지 될 만한 작품이니 어느 정도의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았을지는 알만 하다. 부엉이와 곰 그리고 너구리나 오소리 같은 동물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토토로”는 현재, 귀여운 캐릭터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의 시놉시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괴수와 두 아이의 이야기에 고개를 휘저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수입을 할 때도 역시, 괴수가 나오는 관계로 수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역시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속담이 맞는 것 같다. 끝까지 이 애니메이션을 밀어 부쳤던 프로듀서나 감독의 파워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토토로”라는 귀여운 캐릭터를 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이웃집 토토로》는 전작인 《천공의 성 라퓨타》와 분위기가 확연히 틀리다. 자연문명에 대한 귀화와, 기계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주를 이루는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그저 보기만 해도 즐겁게 만드는 두 자매의 시골생활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말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이며 가장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웃집 토토로》를 만든 이유로 이런 한 것일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제 3세계에서 벌어지는 비판적인 주제를 담은 영화들보다 일본 어느 시골에서 일어나는 친근한 이야기를 담아, 80년대 그 당시에서 예전의 모습을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 40대 후반이 되면 고향이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그와 같은 심리가 아닐까? 사회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관료제, 획일적인 업무에 벗어나 넥타이를 풀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그 시절을 잠시나마 회상하고자 만든 애니메이션, 보기만 해도 풍요로워지는 벅찬 가슴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웃집 토토로》의 캐릭터들은 가장 현실 적이고 어른이 되기 전의 아이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 충분한 공감을 할 수 있으며, 배경이 되는 장소 역시 누구나 살아보았던 혹은 들어보았던 평범한 농촌이며, 스토리는 환상적인 신화적 요소를 띄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정 반대되는 것들의 요소이다. 그런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있으면, 나도 저랬었지라는 생각을 벗을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도 들며 현재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싶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그랬을 것이다. 현대사회에 지친 자신의 심신을 휴식할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장소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는《이웃집 토토로》일테고, 그라는 조력자 덕분에 마음만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있던 우리를 극장 안에서 혹은, 브라우져 관 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웃집 토토로》는 놀라운 색채와 묘사, 터치, 구도, 캐릭터들의 움직임으로 더욱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다. 특히, 자연풍경 묘사는 정말 세세한 곳까지 빛과의 조화로 그려내는데, 눈에 익은 꽃이나 나무부터 이름 모를 풀과 꽃까지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어느 컷을 잡아내도 대충 그려냄이 없다. 터치가 그대로 묻어나올 정도의 장인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한다.《천공의 성 라퓨타》는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이나 하늘에 대한 뛰어난 색감은 있었으나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꼼꼼함이 덜 했던 것 같다. 또한, 말하고자 하는 대상의 정체도 바뀌었다. 예를 들면, 하늘에 떠 있는 라퓨타라는 공상의 성을 대신하여 낡은 일본식 목조집이 등장하였고, 이리저리 파괴만을 일삼고 하늘을 비행하던 비행정은 바람의 정령이라는 ‘미야자키’ 특유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고양이 버스로 대체되었다. 《이웃집 토토로》는 정말 꼼꼼한 성격이 들어나는 듯한 솜씨로, 배경과 캐릭터가 따로 노는 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최대한 없애주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색감에는 투명한 수채화적 느낌과 딱딱 떨어지는 스케치가 아닌 부드러운 브라운 톤의 매음새가 자연스러웠으며, 디지털적인 색감은 절대적으로 배재한 채, 자연의 색감을 담았다는 것에 놀라움 감이 있다. 그리고 배경에서는 적절한 자연적 풍미와 인공물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있어 퀄리티가 높은 구도감을 이루어주고, 캐릭터의 움직임은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별 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 정도의 부드러운 동선이 쓰인다.《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있으면, ‘미야자키’의 동선 드로잉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 있어 보이는 부분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은 애니메이션 내내 빙글 빙글 놀며 뛰어다니는 그 모습이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함께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동세를 띔과 동시에 연령대에 걸맞는 표정과 액션이 사실감을 더했다. 전체적인 《이웃집 토토로》의 느낌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와 공존하는 사람들, 특히 순수한 우리네의 어린이를 중점으로 한다. 시골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지, 《이웃집 토토로》의 자연은 아름다움을 유발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그래서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 숲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며 서정적인 흙내음까지 맡게 해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사실같은 묘사력과 분위기 덕분에 과거 향토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만 간다. 그게 ‘미야자키’의 목적이 되었든 아니었든 간에.
개인적으로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서 가장 뛰어나다고 느낀 것은 캐릭터의 성향이었는데 그중에서 ‘사츠키’와 ‘메이’에 대해서 조금 더 심화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선 첫 째딸인 ‘사츠키’는 남자아이처럼 활발하고 씩씩하며 병중에 있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는 맏딸역할을 똑똑히 해내는 캐릭터이다. 또한, 그녀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곡예를 하고 있기도 한 캐릭터이며, 자신의 감정을 꼭꼭 숨기다가 폭발시켜버리는 외강내유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극 중 나이 11살인 그녀는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극중 나이보다는 대 여섯 살이나 더 먹은 듯한 역할을 맡는다. 그것은, 그녀에게 큰 짐 일수도 있는 부분이며 한 창 놀 때의 제한적 행동을 뜻한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사츠키’의 ‘노동’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의 가치관에는 ‘노동’이란 결과물을 위한 객관적인 수단이라 박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는 내 사고가 오판일까, 어찌됐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한 채 11살의 아이의 역할도 즐기고, 집 안에서의 맏딸 역할을 보기 좋게 해낸다. 거기에다가 4살 박이 동생에게 때로는 즐거운 자매사이로, 때로는 부모보다 더 엄한 재-부모역할까지... 그녀의 웃음 뒤에는 힘겨운 짐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내 경험에서 나온 유추일 수도 있고 나와 일치되는 ‘사츠키’에 대한 연민일 수 도 있는 감정이었다. 마지막 ‘메이’를 찾아내고 터뜨리는 울음은 내 안에 뭔가를 터트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광쟁이 소녀가 되는 그녀를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라는 캐릭터가 그저 딴 나라 아이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사츠키’는 한국의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제 3자의 다른 이가 되어 공감할 수 요소가 충분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츠키’는 전 세계 여자 아이들에게 재조명되고 또 다른 자아가 되어 《이웃집 토토로》에 존재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츠키’라는 캐릭터에게 가장 연민이 가는 것 중 하나는 그녀 역시 자신의 아버지처럼 ‘토토로’를 볼 수 없는 나이가 점점 되 가고 있다는 것에 있다. 순수함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세상에 눈을 띄게 되는 것은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녀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 그녀가 점점 성숙해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토토로’는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녀는 ‘토토로’와의 추억들이 예전의 과거로 대치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츠키’역시 관객인 나와 별 다를 게 없어진다는 것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만큼 순수함이 사라진다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메이’는 4살의 어린이 역할을 적절하게 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츠키’는 나이보다 성숙한데 비해 ‘메이’는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대사가 없이도 모든 것을 표정이나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이다. 무서울 때는 소리 질러 웃어버리기, 기다림에 지쳐 타인에게 엎혀 잠들기, 새로운 존재감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리저리 따라다니기 등. 극중에서 ‘메이’가 하는 일이란, 그녀의 감정을 분출해내고 감정에 대한 조절이나 충족이 되지 않을 때 울거나 잠들거나 짜증 부리는 것이다. ‘사츠키’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이다. 아마도 ‘메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다른 사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토토로’를 만나게 되는 처음 부분에도 그녀는 두려움 보다는 애정이 한껏 묻어나는 눈빛으로 ‘토토로’를 대하고, 그 이외의 자연에 대한 태도도 그러하다. 어린 시절 애정에 대한 리비도가 채워지지 않을 경우, 엄마를 찾아 무작정 떠나는 것처럼 중간에 어찌 할 바를 몰라 울기만 하는 것처럼 아이는 방향을 잃게 된다. 이러한 ‘메이’를 채워주는 것은 여전히 ‘사츠키’와 ‘토토로’이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을 아름다운 동화라고 하는 것 역시 이 이유에 있다. 낯선 사물에 대한 적대감이 아닌 호감으로 대하는 순수한 아이를 진정 채워주는 것은 따뜻한 자연이라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연과 아이는 재-부모 관계로 이어져 자연이 갖는 모성적인 힘의 원천을 받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는 공생 관계처럼.
‘미야자키’는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 둘과 ‘토토로’라는 환상적인 존재로 이야기를 순수하게 풀어간다. 솔직히,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는 주인공이 아니다. ‘토토로’는 두 자매의 순수함과 아이스러움을 나타내게 해주는 중간 거처일 뿐이며, 부모에게 다가 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등장하는 검은 숯댕이인 ‘마쿠로쿠로스케’나 녹나무의 정령 ‘토토로’나 바람의 정령 ‘고양이버스’는 신화적인 존재로서 우리에게끔 물음표를 던져준다. 또한 우리가 그 물음표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이것들은 신화적이며 초자연 적인 존재로 아이들에게만 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 할 가능성은 있지만 당신은 볼 수 없다”라는 믿거나 말거나 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웃집 토토로》로 전작과는 다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그 흐름은 같아 보인다. 앞에 《천공의 섬 라퓨타》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것은 변주 일뿐 변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그저 한층 유머러스해지고 캐릭터중심의 이야기 방식으로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는 여전히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풍기기 때문이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신화적인 요소를 이용해 실질적인 캐릭터로 이 시대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찾기 위함을 고한다. 마치 실제 있는 듯한 착각을 주면서 현실의 상처를 《이웃집 토토로》에서 치유 받으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수 많은 현대인들이 그 치료방법에 의해 나아 졌다고 생각한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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