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에서는 자유공원 안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에 대한 찬반으로 시위도 있었고 언론의 논쟁도 있다.
나도 현재는 인천의 한 시민이다 보니, 이러한 논쟁과 갈등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지난 주말 처음으로 자유공원에 가
보았다.
벌써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반대측에서는 연단을 만들고, 그 주변에 철거 반대에 대한 많은 플래카드까지 설치를 마친
채, 전투경찰들도 대형 버스 한 대에 나눠타고 나와 있어서,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러한 긴장감은 그 다음날 시위때에 더욱
심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나는 오늘 맥아더 장군 동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자유공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천에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말경 우리나라의 개항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곳이 바로 인천이다 보니, 좋은 것이었든 아니면 좋지 않은 것이었든 간에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어찌보면 그 당시 외세에 무력했던 우리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어쨌든 69미터의 나즈막한 응봉산이 공원으로 유명해진 것은, 인천의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지계를 이 주변에
설치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1888년 자유공원은 조성이 되었는데, 서울의 탑골공원이 1897년에 조성되었으니 얼마나 빠른
것인가?
그동안 자유공원을 부른 이름만도 각국공원, 서공원, 만국공원에 이어서 1957년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니,
얼마나 많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 자유공원도 이름을 갈아치워야 했던 모양이다.
아울러 자유공원 옆에는 서구식 건물이 한 채 있는데, 예전에 제물포구락부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현재에는 인천광역시 중구 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언뜻 보면 서구식 건물을 흉내낸 듯한
모습이다.
독일인 사업가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알려진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는 부립도서관으로 해방후에는 인천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자유공원을 에워싸고 있었던 외국인 지계 안에서의 서구적 모습의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자유공원에서 언덕 아래를 바라보면, 중국식 건물들이 보인다. 바로 중국인촌.....
각 주요 길목에는 위 사진과 같은 패루가 서 있는데, 개항 당시 일본인 못지 않게 많았던 사람들이 바로
청국인이었고, 그들의 후예들이 오늘날에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인천광역시 안에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끝으로 자유공원내 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자유공원 내 가장 높은 언덕에 서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을
통해서 누구를 위해 싸웠든 간에 한 시대의 영웅이다.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해 세워진 이 동상은, 시대가 변화면서 철거나
이전에 대한 논의와 함께 민원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인천광역시 송도 근처에 세워진 이후에는, 그곳으로 이전해 줄 것과 함께 명실상부 자유공원이
우리의 정서에 맞게 꾸며진 장소로 바뀌어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에 의해서, 냉전 체제 붕괴 이후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유공원 언덕에서 바라본 인천항.
크고 작은 배들이 들고나면서 내뿜는 기적소리, 시대와 역사의 변화에 따른 갈등의 소리와는 아량곳하지
않고 아름답기만 하다.
출처 : 독일유학전문 에스엠유학원
글쓴이 : 토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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