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가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캠퍼스가 있는데, 그 캠퍼스의 생활관 뒷편에는 아늑한 한옥 기와집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한옥 개인 주택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이 교회의 설립자는 서경륜과 서경조 형제로서, 간단히 교회에 대해서 설명을 먼저 하면, 이 교회는 1883년 5월 16일에 설립되었으며, 설립장소로는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소래마을이다. 그러나 초창기 설립시에는 초가집 예배당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양지에 복원되어 있는 예배당을 건축한 것은 1895년 7월 8일로서, 8칸짜리 기와집 예배당이었다고 한다.
한편, 교회 설립자인 서경륜과 서경조 형제는 만주와 조선을 오고가며 인삼장사를 했었는데, 1878년 서상륜 나이 30세에 만주에서 열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고향 친구 몇 명이 찾아와 그를 현지 선교사가 운영하던 병원에 입원한 계기로, 그는 로스 선교사를 만나게 되고 매킨타이어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그 당시 서경륜은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고 로스 선교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병이 완치되면 예수님을 믿기로 약속하고, 병이 완쾌되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 그는 로스 선교사를 도와 성경번역을 도와주게 된다.
1883년, 성경 100권을 몸에 지니고 압록강을 넘던 그는, 밀입국 - 그 당시 조선에서는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었음 - 도중 관헌에게 발각되게 되고, 성경 10여권만 가지고서 자신의 고향의 황해도 소래로 피신하여 그곳에 정착했다.
이후 만주의 로스 선교사와 연락을 해 성경 6,000권을 배편으로 전해 받은 그는, 마을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에 힘썼으며, 얼마 후 세례지망자가 생기면서 예배당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초기에는 초라한 초가집에서 예배를 드렸던 그들은, 신도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예배당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결국 선산의 소나무를 베어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기에 이룬다. 이때 큰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서경륜의 동생 서경조이다.
한편, 소래교회의 건축 소식을 접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건축비용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순수한 우리의 힘으로 예배당을 건축하겠다는 뜻에 따라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후에 언더우드 선교사는 서양등을 교회에 기증하는 선에서, 소래교회 건축에 일조했다.
이같은 역사와 함께 건축된 소래교회가 현재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 복원된 것은, 한국기독교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결과이다.
본래의 소래교회가 있었던 장소가 아직까지 북한땅에 있다보니, 그 모습이라도 현재처럼 복원해서 후세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
여느 한옥집과 같이 복원된 소래교회는 실내로 들어가보니 막 베어낸 소나무를 이용해서 지운 건축같은 느낌을 준다.
노출된 나무 기둥과 깨끗한 나무 바닥 그리고 깨끗하게 단장된 하얀 벽면을 바라보니, 신앙에 대한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지금은 보기 힘든 전깃줄 고정 장치 애자를 보니,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한편, 이 건물 주변에는 최봉석(최권능) 목사 순교기념비가 서 있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치셨던 신앙의 선조들의 숙연한 신앙심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을 기리는 기념비도 서 있다.
끝으로 오는 7월 8일이면, 소래교회 건립 124주년이 된다. 지금은 갈 수 없는 황해도의 소래교회. 언젠가 한반도에도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꼭 방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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