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특집] 너무 착해도, 너무 모범생이어도 문제 있다 혹시 우리 아이도 정신장애?
명호경영컨설턴트2008. 9. 6. 07:33
[특집] 너무 착해도, 너무 모범생이어도 문제 있다 혹시 우리 아이도 정신장애?
초등생이 많이 겪는 정신장애 5
지난 4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서울의 한 소아정신과 병원에 어머니와 아들이 찾아왔다. 올해로 초등 6학년이 된 아들의 증세는 ‘왕따(집단 따돌림)’. 4학년 때부터 3년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힘이 없어 보인다면서 애들이 자꾸 때려요.” 그러나 ‘힘이 없어 보인다’는 본인 설명과 달리 아들은 또래에 비해 꽤 큰 키에 체격도 건장한 편이었다. 가정에 뚜렷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한다는 어머니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애가 자꾸 힘들어해서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진단 결과, 아들에게는 약간의 과민반응과 피해의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실제 따돌림도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지나치게 예민한 본인의 기질 탓이었던 것.
소아정신과 병원에도 일종의 ‘경기(景氣)’가 있다. 가장 호황을 누리는 시기가 4월을 전후한 바로 이맘때다. ‘새로운 학년’이라는 낯선 환경을 경험한 어린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는 시기가 진학 후 1개월 가량 지난 이때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는 3월부터 초등생 납치ㆍ살해 사건과 성폭행 미수 사건 등 연일 흉흉한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학부모와 자녀가 부쩍 늘었다.
뇌 활동이 가장 왕성해 지적ㆍ감성적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초등생도 성인 못지않게 크고 작은 정신장애를 경험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워 시간이 해결해주는 증세도 있지만 적절한 진단과 치료 없이 지나갔다간 치명적 결과를 낳는 증세도 있다. 특히 요즘 초등생이 겪는 정신장애 중 상당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세심한 관심과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 소아정신과를 찾는 초등생이 가장 많이 겪는 정신장애 5가지를 실제 사례에 비추어 소개하고 그에 따른 진단과 치료법을 묶어 정리했다. 아울러 자녀의 정신장애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부모의 자세 등에 대한 전문가 진단도 소개한다. 도움말 : 서울 연세소아청소년정신과
※각 사례는 올 4월 소아정신과를 방문한 실제 어린이 환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초등생이 많이 겪는 정신장애 5 1 착한아이 증후군 (The Good Child Syndrome)
예의 바르고 양보 잘하는 아들, 남이 때려도 맞기만…
▲ 일러스트 박상철
이럴 수 있어요 주부 이미정(가명)씨는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 1년생 아들 김승현(가명)군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군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입술까지 터져 피가 맺힌 상태였다. 부랴부랴 학교를 찾은 이씨는 김군의 담임교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승현이가 사소한 일로 친구와 싸움이 붙었는데 전혀 대항하지 않고 맞고만 있더라고요. 가까스로 싸움을 말려 화해시키긴 했는데 상처가 남았어요.”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친구가 때리는데 왜 가만히 있었니?” 김군의 대답에 이씨는 다시 한번 놀랐다. “착한 아이는 싸우면 안 되잖아요.” 김군은 늘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높은 편이었다. 집에서도 어른에게 깍듯하고 예의범절 잘 지키는 ‘착한 아들’이었다. 김군이 바르게 잘 자라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이씨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이 평소 자기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데 서툰 편이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씨는 고민 끝에 결국 김군의 손을 붙잡고 소아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거짓 착함’ 속에 분노 숨어… 격렬한 운동으로 강박증 해소
이렇게 고쳐요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은 김군에게 의사는 미술 치료를 시도했다.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려보렴.” 김군은 고민 끝에 무언가를 그렸다. 신체 부위 중에서도 유난히 치아 부분이 강조돼 있는 사람이었다. 김군이 그린 치아는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물어뜯을 듯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림을 관찰한 의사는 엄마 이씨에게 말했다. “승현이는 모두에게 무척 착한 아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있습니다. 아직 무의식의 영역에 있어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요.”
다행히 김군의 상태는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의사는 이씨에게 몇 가지를 주문했다. “승현이에게 운동을 시키세요. 공격과 수비가 있고 팀으로 움직이는 축구나 농구 같은 것으로요. 단, 수비나 골키퍼 말고 공격수로 활동하게 하세요.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며 경쟁하는 과정에서 착하게 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미워!’ ‘싫어!’ ‘안 해!’와 같은 부정적 어휘를 일부러 쓰게 하는 훈련도 필요해요. 그리고 어머님도 말투를 바꾸세요. 명령이나 지시, 질책은 되도록 피하고 권유나 긍정, 칭찬 위주로요. 아이가 착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아이를 억누른 건 아닐까’ 생각하고 ‘덜 착해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어머님의 태도만 바뀌어도 금세 좋아질 겁니다.”
착한아이 증후군 남들로부터 ‘착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혹은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무조건 억누르는 증상을 일컫는다. 누구에게나 늘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므로 매사 전전긍긍하는 것이 이 증상의 특징. 예의범절과 관련, 유난히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착한아이 증후군 환자가 보이는 행동은 ‘진짜 착함’이 아니라 외부 평가를 의식한 ‘거짓 착함’이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즉 착한 행동의 내면에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초등생이 많이 겪는 정신장애 5 2 불안장애(Anxiety Disorder)
“고학년 올라가도 모범생 돼야 할 텐데” 고민에 밤새 뒤척
▲ 일러스트 박상철
이럴 수 있어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황세정(가명)양은 요즘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2학년 겨울방학 끝 무렵부터 조금씩 잠을 설치기 시작해 3월부터는 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을 못 이루고 어렵게 든 잠도 중간중간 깨 ‘토막잠’이 되기 일쑤였다. 밤새도록 뒤척이는 딸이 걱정 된 엄마 강수정(가명)씨가 이유를 물어도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 황양의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 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도 원만한,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와 간호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라 가정환경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딸아이에게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며칠을 고민하던 강씨는 소아정신과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지나친 부모 기대가 문제… “공부가 다는 아니다” 격려 해야
이렇게 고쳐요 황양과 마주앉은 의사는 황양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내 소원은 첫째…, 둘째…, 셋째…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걱정은 …다” 등의 문장이 미완성인 채로 가득 쓰여 있었다. 황양의 잠을 빼앗은 스트레스 요인을 읽어내기 위한 일종의 상담 치료 요법이었다.
진단 결과, 황양의 상태는 ‘심각한 기타불안장애’로 밝혀졌다. 이미 충분히 모범생인데도 불구하고 ‘모범생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숙제를 다했을 때,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을 때, 친구에게 잘해줬을 때 등 학교 생활에 관련된 부분에서만 행복을 느꼈다.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무언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소가 되새김질하듯 똑같은 고민이 반복되며 수면까지 방해하는 ‘강박적 반추(Obsessional Rumination)’ 현상은 당장 치료가 필요할 만큼 위험한 상태였다.
결국 황양은 적당량의 약물치료와 함께 음악치료 등을 병행하기로 했다. 의사는 어머니 강씨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세정이에겐 주변의 높은 기대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공부량이 많아지는 3학년이 되면서 더 심해졌죠. 여기엔 지나친 부모의 기대도 한몫했습니다. 따님에 대한 욕심이 많으시겠지만 과제를 좀 줄여주세요. ‘공부를 꼭 잘할 필요는 없다’는 격려도 필요합니다. 불면 증세가 나타났을 때 바로 병원을 찾았다면 상담만으로도 치유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늦게 발견돼 상당 기간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불안장애 보통 아이에 비해 유난히 걱정이 많은 아이들을 진단할 때 소아정신과에서는 ‘불안장애’라는 표현을 쓴다. 걱정과 염려의 범위가 그야말로 방대한 경우 ‘범불안장애’, 교우관계나 성적 등 특정 부문에 대한 걱정의 수위가 심각한 경우 ‘기타불안장애’라는 진단이 각각 내려진다.
물론 어린이도 이런저런 걱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쳐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수준이 되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물론, 학업 능력이나 대인 관계에서도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불안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대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거나 부모가 습관적으로 협박성 발언(“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거지 된다” “조심해 뛰놀지 않으면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어”)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드물게는 유전적 요인도 발견된다.
산만하고 친구들과 못 어울려… 수업시간엔 딴짓만
▲ 일러스트 박상철
이럴 수 있어요 초등 3년 남기훈(가명)군은 공부를 잘 못한다. 선생님이 교과서를 읽으라고 하면 “…해…읍…미…다(…했습니다)”와 같이 뚝뚝 끊어 읽고 속도도 느리다. 받아쓰기 성적도 형편없다. 공부시간에는 딴 짓하기 바쁘고 매사 자기중심적 말과 행동을 일삼아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영 ‘꽝’이다. 그러나 그저 공부 못하고 주의산만한 정도인 줄만 알았던 남군의 어머니 김현숙(가명)씨는 얼마 전 있었던 사건으로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됐다.
“애가 친구들과 너무 못 어울리는 것 같아서 생일파티 열어줄 테니 친구들 좀 부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반 여자아이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냈더라고요. 그나마 초대장 돌린 애들도 오지 않았고요.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구나, 싶어 덜컥 겁이 났죠.”
결국 지방에 살던 남군과 어머니 김씨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을 골라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기 위해 상경했다.
치료 시기 놓치면 병 키워… 조기 발견이 중요
이렇게 고쳐요 남군과 어머니 김씨에 대한 상담을 끝낸 의사는 남군의 증상을 ‘학습장애를 동반한 중증 ADHD’로 진단했다. ADHD가 의심되는 증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이를 재빨리 포착하지 못해 병을 키웠다는 지적이었다.
“자녀가 ADHD인 걸 모르는 부모들은 그저 아이 성격이 산만하다고만 생각해 야단치거나 벌주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건 성격 문제가 아니라 병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좋아지지 않죠. 결국 아이는 자신의 상태도 정확하게 모른 채 만날 여기저기서 야단 맞는 것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학습장애 등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다행히 ADHD는 진료에 따른 예후(병의 경과를 예측하는 것)가 좋은 편입니다. 진단만 정확하면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그래서 빠른 발견과 치료가 더욱 중요합니다.”
의사는 남군의 경우, 학습장애가 함께 와 오히려 발견이 쉬운 편이라고 했다. “머리가 좋은 ADHD 환자들은 초등생 때까지 ‘산만하지만 공부는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기 때문에 증상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경우, 부모의 세심한 관찰을 통한 조기 진료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ADHD 또래에 비해 행동량이 지나치게 많고 충동적이며 참을성이 부족한 게 특징이다. 최근 발견되는 어린이 정신장애 중에서도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 통계에 따르면 학령기 어린이 중 약 3~8%가 ADHD 증상을 보이며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약 3배 정도 ADHD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다른 정신장애와 달리 ADHD는 부모의 양육 태도나 아이 본인의 스트레스 등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지만 임신 중 산모의 스트레스나 음주, 흡연, 조산이나 난산으로 인한 뇌 기능 손상 등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DHD 증상이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학습장애 등 다른 정신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초등생이 많이 겪는 정신장애 5 4 상상친구(Imaginary friend)
“또 1등 했어” “내가 인기 최고” 턱없는 거짓말 반복
▲ 일러스트 박상철
이럴 수 있어요 “엄마, 오늘 선생님이 ‘우리 혜진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네’ 그랬어요.”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최고로 인기 많아요.” “엄마, 지난번 시험에서 내가 또 1등 했어요.”
송수미(가명)씨가 초등 2년생 딸 박혜진(가명)양의 말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 건 며칠 전부터였다. 종알종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딸이 마냥 예뻐 보였던 송씨는 언제부터인가 딸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말대로라면 딸은 학교에서 굉장히 멋지고 인기 만점인 모범생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중위권 성적에 외모도 평범한 딸이 그 정도로 주목받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상담을 위해 학교를 찾은 송씨는 결국 그 모든 게 딸이 꾸며낸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담임교사는 “전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고 친구 관계도 딸의 말처럼 마냥 좋지 않았던 것. 갑자기 딸의 행동이 섬뜩해진 송씨는 ‘소아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는 주위 권유에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열등감을 망상으로 풀어… “사랑해달라”는 메시지
이렇게 고쳐요 박양과 어머니 송씨를 상담한 의사는 “혜진이 이야기 속 인물은 혜진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친구”라고 진단했다. 알고 보니 박양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매사 모범적인 데다 얼굴까지 예뻐 모든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언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게 된 박양이 언니를 꼭 빼닮은 상상친구를 만들어 그 친구가 자신인 양 엄마에게 자랑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박양에게 상상친구를 그려보게 했다. 박양은 한껏 화려하게 치장한 공주풍의 여자아이를 그려 보여주었다. 그런 딸의 모습에 송씨는 경악했다. 그러나 의사는 “그럴 필요 없다”며 송씨를 달랬다. “상상친구야말로 그맘때 어린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현실적 스트레스를 공상으로 푸는 거죠. 혜진이의 경우 언니에 비해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는다는 스트레스가 있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겁니다.”
의사는 송씨에게 딸의 상상친구를 잘 분석해 보라고 주문했다. “이 경우 상상친구의 모습 속에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놀라지 말고 따님이 외롭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주세요. 언니와 지나친 비교를 삼간다든지,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차려준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상상친구야말로 ‘엄마, 나 외로워요. 나 좀 사랑해 주세요’라는 아이의 메시지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상상친구 말 그대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친구’를 의미한다. 현실과 상상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연령대(취학 전~초등 저학년)에서 주로 나타난다. 소아정신과에서는 상상친구가 나타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자신보다 모든 조건이 월등히 우수한 또래나 형제가 있어 사사건건 비교 대상이 되는 경우, 그리고 맞벌이 가정의 외동처럼 친구와 함께 보낼 시간이 적어 외로움을 타는 경우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저출산 경향과 과도한 선행학습 등과 맞물려 최근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다.
상상친구를 만드는 아이들은 없는 일을 지어내 말하거나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다. 따라서 부모는 이를 일종의 ‘환각’ 증세로 착각해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상상친구 증상은 10세를 전후해 사라지며, 그 이전이라도 원인을 해소해주면 치료가 가능하다.
“엄마 아빠가 안 사줘서…” 아무 죄책감 없이 도둑질
▲ 일러스트 박상철
이럴 수 있어요 지혜란(가명)씨는 며칠 전 직장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동네 인근 서점 주인이었다. “따님이 저희 가게에 있는 소형 오락기를 훔치다 걸렸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만사 제치고 달려간 현장에서 그는 초등 4년 딸 최새봄(가명)양과 마주쳤다. 딸이 훔치려다 들킨 오락기는 소형 칩을 갈아 끼우며 게임을 즐기는, 요즘 초등학생에게 최고 인기인 신상품이었다. 서점 주인은 “기기뿐 아니라 칩도 함께 훔치려 했다”며 기막혀 했다.
평소 사소한 거짓말을 곧잘 해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도둑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갖고 싶었는데 엄마 아빠가 안 사줘서 훔쳤다”고 대수롭잖게 말하는 딸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지씨는 병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와의 약속 안 지키고 야단만 치면 물건에 대한 집착 커져
이렇게 고쳐요 상담 결과, 최양이 처음부터 오락기를 훔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몇 달째 부모에게 오락기를 갖고 싶다고 졸랐지만 부모는 못 들은 체하거나 무시했다. “우리 엄마는요, 내가 뭐 사달라고 하면 만날 똑같은 말만 해요. ‘나중에’라고요.”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최양에게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안과 의사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는 모든 일을 자기 위주로 해결하려 했다. 최양과 남동생 등 자식은 무조건 엄하게 키웠고 자신의 기분이 틀어지면 아이들과 한 약속도 아무렇지 않게 깨버렸다.
최양은 진료 전 이루어진 지필검사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컴퓨터 게임할 때’, 좀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은 ‘포켓몬(포켓몬스터의 줄임말,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 모으기’라고 썼다. “우리 엄마는…”으로 시작되는 빈칸은 ‘오락기를 싫어하신다’로, “우리 아빠는…”의 빈칸은 ‘호랑이같이 무섭다’로 각각 채웠다.
의사는 어머니 지씨에게 “게임이나 오락기에 대한 엄마의 신경질적 반응이 아이의 집착을 더 키운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새봄이에게 부모님은 ‘처벌자’입니다. 부탁은 들어주지 않고 칭찬도 절대 안 해주면서 으름장만 놓는 사람들이죠.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먹히지 않으니 결국 ‘훔쳐서라도 얻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겁니다.”
다행히 최양의 경우 사건이 난 직후 부모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예후는 좋은 편이다. 의사는 최양에게 “부모님은 어떤 경우에도 네 편이다. 징징대지 않고도 부모님께 원하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씨에게는 “자녀의 말을 덮어놓고 반대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경청하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경우에는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품행장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위반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을 말한다. 어린이의 경우 친구를 이유 없이 폭행하거나 동물을 괴롭히는 행위, 사소한 거짓말을 반복하는 행위, 등교 거부나 무단 결석 등을 일삼는 행위, 상습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행위 등을 품행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품행장애의 가장 큰 문제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전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물건을 훔치는 행위의 경우 초기에 교정해주지 않으면 상습 도벽(盜癖)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아이의 정서적 결함이나 충동 조절 능력 부족, 지나치게 엄한 부모, 단순한 호기심이나 영웅심리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전문가 인터뷰| 손석한 연세소아청소년정신과 원장
“아이들 문제는 대부분 부모가 원인 제공”
지나친 관심도 무관심도 毒, 부부 관계도 중요 가족 전체 진단해야 정확한 처방 가능
손석한 원장<사진>은 2000년부터 9년째 서울 방배동에서 소아정신과 전문병원 연세소아청소년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 매년 한 권씩 ‘어린이 정신장애’를 주제로 책을 펴내고 있다. 올 3월에도 그동안 모은 환자 파일을 사례별로 정리한 책‘1㎜’를 출간했다. ‘1㎜’란 부모와 아이의 마음 사이에 놓인 간격을 상징하는 말. 현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기도 한 손 원장에게 어린이 정신장애의 최근 동향과 학부모가 가져야 할 자세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초등생 납치와 성폭행 등 흉흉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엔 많지 않았는데 최근 사회 변화와 관련해 두드러지게 늘어나는 환자 유형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제일 큰 건 왕따(집단 따돌림) 문제죠. 몇 년 전만 해도 왕따 하면 집단 폭력과 같이 무시무시한 경험을 떠올렸는데 요즘은 그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유형이 많아졌어요. 어찌 보면 요즘 아이들이 사소한 스트레스 요인에도 잘 견디지 못하는 게 아닌가, 나약해진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결국 왕따는 또래 관계 문제로 귀결되죠. 왕따가 많아진다는 건 요즘 학생들이 또래와 관계 맺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또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지 높은 불안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제법 컸는데도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늘 엄마와 함께 있으려 하는 게 이런 아이들의 특성이에요. 다만 이 경우엔 부모가 원인 제공자일 확률이 높아요. 사회가 불안하다 보니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자꾸 감싸고 도는 거죠.”
최근 접한 어린이 환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나요. “대부분의 환자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모든 증상의 원인과 해결 방법 모두 관계, 특히 가족 관계와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 관계도 좋아야 하지만 원만한 부부 관계 역시 무척 중요합니다. 소아정신과는 그 특성상 환자 개인에 대한 상담보다 환자가 속한 환경, 특히 가정 전체에 대한 진단이 제대로 이뤄져야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의 부모가 자녀의 정신장애 여부에 관심 가질 만큼 삶의 여유가 없어 마음의 병을 방치하고 있다는 거예요. 결국 소아정신과 환자도 관심이 지나쳐 독이 된 경우와 무관심이 병을 키운 경우, 양 극단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생이 많이 겪는 정신장애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초등생 때 이상 증세를 보였다 해도 실은 어릴 때부터 그 원인이 축적돼 왔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다만 초등생의 경우 새로운 환경에 처음 노출되는 1학년이나 갑자기 학습량이 많아지는 3~4학년, 중학교 진학에 대한 부담을 떠안는 6학년 등 일정 주기에 따라 장애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시기에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도 아이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예컨대 자녀의 선행학습에 전혀 무관심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선행학습에 열을 올릴 경우, 아이가 겪는 스트레스는 엄청나죠. 따라서 초등학교 자녀를 둔 어머니라면 자녀를 대하는 태도를 쉽게 바꾸지 말고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이 정신장애는 적절한 시기에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몸도, 마음도 성장을 멈춰버린 어른과 달리 어린이는 육체와 정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계니까요. 자폐증과 같은 몇몇 예외 증세를 빼면 대부분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일찍 발견하면 굳이 병원을 찾지 않고 가정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자녀의 정신장애 여부를 빨리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일 중요한 게 세심한 관찰입니다. 단, 지시나 강요 등 다른 건 절대 하지 말고 오로지 관찰에만 집중하세요. 최근 내 아이의 행동에 미세한 변화가 있진 않았는지, 잘 못 먹거나 잘 못 자는 등 생리적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는지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맘때 아이들은 심리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유 없이 산만해지거나 말수가 적어지고 행동이 과격해지기도 하죠. 관찰이 끝나면 최근 행동 변화를 일으킬 만한 사건이 있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부모나 형제, 친구, 학교 선생님 등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많아요. 적절한 원인을 찾아 해소해 주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경우 저절로 해결됩니다. 모든 조치를 다 취해봐도 차도가 없다면 그때 의사의 도움을 요청해도 늦지 않아요.”